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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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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형 직불제 도입을 환영한다”

앨런 버크웰 영국 임피리얼대학 교수, “유럽연합 전철 밟지 않으려면 목표를 분명히 해야”
등록 2019-12-05 09:49 수정 2020-05-03 04:29
유럽연합 공동농업정책(CAP)의 설계자로 알려진 영국 임피리얼대학의 앨런 버크웰 교수가 대통령자문기구인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초청을 받아 11월26일 서울에 왔다.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제공

유럽연합 공동농업정책(CAP)의 설계자로 알려진 영국 임피리얼대학의 앨런 버크웰 교수가 대통령자문기구인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초청을 받아 11월26일 서울에 왔다.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제공

농업이 반환경적인가?

최근 유럽에서 농민들과 환경단체 사이의 갈등이 두드러지고 있다. 환경단체들이 “농업에서 온실가스를 너무 많이 배출한다”고 비난 강도를 높이고, 프랑스 파리와 독일 베를린에서는 10월 농민 수만 명이 항의 집회로 맞서는 일이 벌어졌다. 김영재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은 “유럽 농민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농민이라 생각했는데, 파리와 베를린 현장에서 거리로 농민들이 뛰쳐나오는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 말했다.

유럽 농업도 겪는 환경 갈등

대통령자문기구인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이하 농특위·위원장 박진도)는 유럽보다 더 반환경적인 한국의 농축산을 친환경으로 바꾸는 대전환의 길에 나섰다.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농사짓고 가축 키우고 농촌 경관을 잘 가꾸도록 이끄는 데 농정의 제1목표를 맞추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행착오와 진화를 거듭하는 유럽연합식 공익형 직불제의 전면 도입을 추진한다.

11월27일 인터컨티넨탈 서울코엑스호텔에서 유럽연합 직불제의 설계자인 앨런 버크웰 영국 임피리얼대학 명예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하루 전날 농특위가 연 국제심포지엄에서 ‘EU 농정개혁, 그 지향과 교훈’이란 주제 발표를 했다.

한국 농업계는 유럽 농업을 배워야 할 선진형 모델로 생각한다. 그런데 환경단체로부터 반환경적이란 비난을 받는다는 건 충격적이다.
유럽연합은 농업의 환경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막대한 직불금(Direct Payments)을 농민에게 지급한다. 하지만 10~20년 전에 설정한 환경 기준치를 아직도 충족하지 못한다. 물속 질소와 인의 함량, 대기의 암모니아 함량, 온실가스 배출량이 여전히 과도하다. 농민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많은 예산을 지급하는 유럽연합의 입장은 다르다. 농민들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데 미흡하다. 아직도 유럽 농업의 갈 길이 멀다. 그래서 환경단체와 갈등이 벌어진다.

농민들은 왜 거리로 나섰나.
농민들은 유럽연합 공동농업정책(CAP)의 직불금 예산 삭감을 가장 우려한다. 실제 올해 유럽연합 전체 예산의 36%이던 공동농업정책 예산이 내년엔 33%로 줄어든다. 환경 기준이 강화되는 추세도 큰 걱정거리다. 농민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농가소득이 낮다는 게 불만이다. 직불금으로 지원되는 돈이 많지만 사료·비료 업체나 식품가공업체들이 훨씬 더 큰 몫을 취한다.

농민이 충족하기에 환경단체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은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다. 스스로 훨씬 높은 기준을 정해놓고 농사짓는 농가도 많다.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환경 기준이다. 기후변화를 생각하면 지금보다 더 높은 기준을 설정해야 하고,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많은 농민이 지나치게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근본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토론은 많이 하지만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 고려하면 환경 기준 높여야

사회적 합의가 그렇게 어려운가.
지금 집약적 농업 시스템은 환경에 해를 끼친다. 그래서 비료와 농약, 살충제를 쓰지 않는 유기농 같은 새로운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된다. 사실, 농가 입장에선 유기농을 해도 손해 보지 않는다. 수확량이 줄어도, 가격이 오르고 직불금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 국민의 입장은 다르다. 모두 유기농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소비자가격 상승을 용인할 것인가. 환경오염을 줄이길 원하지만, 누구도 돈을 더 내는 것은 원치 않는다. 이것이 문제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공동농업정책을 편다. 28개국이 공동의 농업정책을 세워 공동 기준으로 예산을 집행한다. 공동농업정책 예산은 올해 77조8200억원으로, 유럽연합 전체 예산의 무려 36%에 이른다. 유럽연합 예산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15조원대인 한국 농업예산 총액의 5배가 넘는다. 유럽연합 초기에는 지금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컸다. 유럽연합 전체 예산의 80%에 이르렀다.

공동농업정책의 목표는 농가소득 보전과 기후변화 대응(환경), 그리고 농촌의 발전이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다양한 직불금 형태를 정해놓고, 해당 농가에 해마다 직불금을 지원한다. 공동농업정책 예산은 거의 100% 이런 직불금으로 짜여 있다. 농가에서 받는 직불금 수급액이 평균 연 2천만원으로, 전체 농가소득의 30%가 넘는다. 우리는 내년 예산의 10%대인 2.2조~3조원을 유럽연합식 직불금으로 편성할 방침이다. 유럽연합에서는 그냥 직불금이라 하지만, 한국에선 환경 등 공적 가치에 부응한다는 점을 강조해 ‘공익형 직불제’ 또는 ‘공익기여 직불제’로 부른다.

앨런 버크웰 교수가 11월27일 <한겨레21> 기자와 만나 유럽연합의 농정 개혁을 이야기하고 있다.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제공

앨런 버크웰 교수가 11월27일 <한겨레21> 기자와 만나 유럽연합의 농정 개혁을 이야기하고 있다.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제공

EU 직불금은 전체 농가소득의 30% 이상
유럽연합은 농가에 직불금을 지원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엄격한 환경 의무(상호준수의무) 등의 이행을 요구한다. 한국도 공익형 직불제를 도입하면서 상호준수의무 이행을 요구할 텐데, 영세 고령농이 많은 현실에서 어떻게 잘 정착시킬지 걱정이다.

상호준수의무가 직불제 도입에서 꼭 필요한 최선의 장치는 아니다. 돈(직불금)을 주면서 조건을 다는 식인데, 지금은 그보다 더 낫고 긍정적인 방식이 있다. 공립학교 교사에게 주는 급여를 예로 들어보자.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부에서는 그에 마땅한 급여를 지급한다. 교사의 공공서비스를 돈으로 사고판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농가에서는 환경·경관 등의 공공서비스를 수행한다. 그에 상응하는 급여(Payment for service)를 정부에서 주는 것이다. 한국에선 상호준수의무라는 말을 처음부터 쓰지 말라. 잊어버려라.

유럽연합에서도 공동농업정책의 직불제 추진 과정에서 혼선이 많았고 여전히 논쟁 중인 것으로 안다. 이제 처음 공익형 직불제를 도입하려는 한국에 조언해달라.

지난 20년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무엇보다 정책적 도구와 목표의 일치가 미흡했다. 환경농업으로 이행, 곧 기후변화 대응이 모자랐다. 목표 기준 설정이 낮았고 그조차 농민들이 잘 지키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 여러 차례 공동농업정책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가장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지금까지 충분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

직불제를 도입하면서 농가소득 보전 목적이 컸던 것으로 안다. 점차 기후변화 대응과 농촌 발전 쪽으로 중심을 이행한다는 것인데 제대로 안 됐다고 들었다.
2013년의 조처로 이행 전략이 차질을 빚었다. 루마니아 출신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동유럽과 서유럽 사이 직불금 배분 불균형을 개혁하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서유럽 농가의 직불금 수입을 줄여 동유럽 농가의 소득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후변화 대응 같은 환경 측면이나 농촌 발전 목표는 뒤로 밀렸다. 요식적 차원에서만 중요한 목표로 제시됐을 뿐 실제는 후퇴했다.

2017년 ‘공동농업정책을 상자 밖에서 생각하기’란 재미있는 제목의 제안서를 냈던데, 어떤 문제의식을 던졌나.
농업정책을 깊게 들여다보면, 사실 농업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다. 농산물 시장은 알아서 작동한다. 정부 개입이 필요 없다. 그런데도 농업에 정부가 개입하는 이유는 농업이 환경과 토지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경관, 생물다양성, 수질 관리, 치수 등이 농정의 대상인 것이다. 농민은 농업 자체와 먹거리 생산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정책에서는 환경을 포함한 농업의 다기능성이 중요해진다.

공익형 직불제 도입으로 농정 대전환
한국은 이제 농정 대전환을 시작한다. 우리 정부와 농특위는 공익형 직불제 도입을 추진한다. 한국의 한 농민단체장은 버크웰 교수의 주제 발표를 듣고 “유럽연합도 이렇게 문제가 많은데 우리 갈 길이 어디인지 답답하다”고 걱정하더라. 이 길로 가는 것이 옳은 미래인가. 유럽의 혼선과 시행착오를 반면교사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 정직하게 말해달라.

앞날이 순탄치 않겠지만 옳은 길이라고 믿는다. 제대로 길을 잡았다고 생각한다. 정착하기까지 세월이 걸릴 것이다. 농민들을 설득하는 일도 간단치 않다. 끈질기게 소통해야 한다. 유럽연합의 나쁜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환경과 기후변화, 농촌 발전 등 직불제 도입의 확실한 목표를 처음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훗날 비난을 피하고 혼선도 덜 수 있다. 굿 럭(Good Luck·행운을 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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