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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추고 묻고 들어라, 안 되면? 그 입 다물라

페미니즘, 갑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화법’보다 중요한 건 ‘마음’

제1231호
등록 : 2018-09-21 17:56 수정 : 2018-09-3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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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역 공무원들이 스피치 역량 훈련을 하는 모습. 대화 기술만큼 중요한 것은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다.연합뉴스

지난해 상반기 큰 화제를 모은 자기계발서 두 권의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모든 관계는 말투에서 시작된다>(김범준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와 <말투 하나 바꿨을 뿐인데>(나이토 요시히토 지음, 유노북스 펴냄). 신이 인간에게만 준 선물 ‘말’(言), 모든 것의 시작이며 그 하나만 바꾸면 모든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제목이다.

두 책을 필두로 시작된 ‘대화법’ 서적 열풍이 사그라들 줄 모른다. 지난해 여름 출간돼 이미 25만 부가 나간 <말 그릇>(김윤나 지음, 카시오페아 펴냄)이 꾸준히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신간 <운을 부르는 부자의 말투>(미야모토 마유미 지음, 포레스트북스 펴냄)와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대화법>(나이토 요시히토 지음, 홍익출판사 펴냄)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10년간 30만 부쯤 팔린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샘 혼 지음, 갈매나무 펴냄) 등 ‘화법의 고전’이 한정판으로 재출간돼 다시 주목받기도 한다.

‘말 공부’의 유행

전문가들은 베스트셀러, 그중에서도 자기계발서 트렌드는 현실을 ‘즉각’ 반영한다고 말한다. “지금 문제가 생기면 바로 수정하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자기계발서의 특징”(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이기 때문이다. ‘멘토링→인문학→어른을 위한 공부법→말투’로 이어지는 최근 자기계발서 변천사를 훑어보면 이해가 쉽다. 그 가운데 ‘대화법 서적’ 열풍이 반영하는 현실의 키워드는 크게 세 가지다. 페미니즘, 갑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김현정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베스트셀러 담당자는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작년에 페미니즘과 갑질이 이슈화되면서, 자기보호 차원의 화술 책이 많이 유행한다. 당당하게 말하고 ‘노!’(No)라고 말하고 자기 자신을 위하는 에세이류 화법 책들이 인기가 많다”고 짚었다. 이미숙 홍익출판사 주간은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대화법>이 성공한 뒤 ‘사람들은 본인이 이래저래 엄청 치이고 산다고 생각하는구나’라고 느꼈다. ‘타인과 잘 지내고 싶은데 만만하게 보이고 싶지는 않은’ 요즘 사람들의 심정이 책 제목에도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의사소통 수단으로 급속하게 자리잡은 SNS 역시 역설적으로 ‘말 공부’의 필요성을 증대시켰다. 남궁은 갈매나무 편집자는 “온라인·SNS 소통이 늘면서 ‘면대면’으로 대화할 기회가 적어졌고, 처음 사회에 진출한 젊은층이 더 대화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공병호 소장은 “SNS가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언어에 대한 제어·통제·관리 능력을 상실하는 경우 많다”며 “SNS 방식으로 대화를 하다가 손해 보는 일을 겪거나 대화에 실패한 경험이 쌓였고, 그것을 교정하는 실용서가 느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공 소장은 강연과 인터뷰로 평소 젊은이들과 소통할 일이 잦다. 그만큼 “젊은 분들이 무례한 표현과 말투를 쓰는 걸 보면서 놀라는 경우”도 많다. 공 소장은 “그분들은 말 한마디 때문에 상대방으로부터 ‘전부’를 잃어버리는 셈인데, 그런 문제에 대한 인식·각성이 늘고 있기 때문에 화법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민혜영 카시오페아 대표가 들려준 <말 그릇>의 ‘대박 스토리’는 그 좋은 예다. 젊은 팔로어가 많은 한 페이스북 계정에 <말 그릇>이 소개됐다. 어떤 독자가 댓글에 ‘너 입에 욕을 달고 다니던데 이 책 나랑 같이 보자’며 친구를 태그했다. 이 댓글을 기점으로 SNS상에서 ‘너 꼭 <말 그릇> 읽어보라’며 친구를 태그하는 댓글 놀이가 시작됐다. 댓글은 순식간에 7만 개로 불어났다. 민 대표는 “심리적 부분을 건드리고 자기 성찰적인 책이어서 30대 전후 독자가 많이 볼 거라 생각했는데, 더 어린 연령대에서 많이 읽었다”고 설명했다.

기술보다 태도

대화법은 늘 베스트셀러였다. 최근 경향은 기술보다 태도가 강조된다.

이미숙 주간의 말마따나 “화법은 영원한 베스트셀러 주제”다. 문주영 포레스트북스 편집자는 “생활과 너무 밀접하기 때문에 화술 책은 항상 있는데, 화술이 말투로 바뀐 것”이라 한다. 대화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주제라는 뜻일 텐데, 요즘 트렌드에는 몇 가지 도드라진 특징이 있다. 이전 ‘성공 비즈니스 대화법’류의 책들이 ‘말하는 기술’에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 인기를 끄는 책은 ‘말하고 듣는 사람’에 관심을 기울인다.

코칭심리전문가인 김윤나 ‘THE 연결’ 대표가 <말 그릇>에서 “그럴듯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말을 만들어내는 저 깊은 곳, 말의 근원지인 자신의 내면을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 대표는 “내면의 특성, 말하자면 감정을 느끼는 방식이나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 자라온 환경 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어쩌다 지금 같은 말하기 패턴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며 이런 변화의 과정을 ‘말 그릇을 키우는 과정’으로 표현한다. 그 과정은 결국 “나를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힘을 기르는 법”과 맞닿아 있다.

대화할 때 말에 먼저 담아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요즘 베스트셀러들은 그 점을 꿰뚫는다. 가령 반려동물은 아예 말을 못하지만 주는 것 없이 사랑스럽다. <운을 부르는 부자의 말투>에선 “동물의 ‘말’(눈빛·몸짓)에는 가시가 없기 때문”이라며 “개나 고양이와는 인간의 언어로 대화할 수 없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꼬집는다. 이 책의 주제인 ‘부자 되는 말투’의 기본도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있다. 돈은 사람이 운반하고, 사람의 호감을 얻지 못하면 부자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평범한 보험회사 직원에서 갑부가 된 저자 미야모토 마유미는 “누군가 상처를 받을 만한 험담, 독설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사실 사람들은 생각보다 관대해서 특별히 남들이 싫어할 만한 짓만 안 하면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해준다”고 설명했다.

말할 때는 내 마음뿐만 아니라 상대의 마음도 들여다봐야 한다. “노”(NO)라고 의사를 분명히 하고 싶을 땐 더더욱 그렇다.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대화법>에선 “본래 거절이란 상대의 체면을 깎아내리고 심리적으로 상처를 입히는 행위다.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상대의 기분을 어루만져주는 게 예의”라며, 거절할 때는 더욱더 상대의 마음을 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더 밝게 웃는 얼굴로 “그 대신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라고 살짝 역제안을 하는 식이다.

진짜 감정 찾아보기

말을 하는 데는 목적이 있다. 내가 말하는 순간 느끼는 감정 안에는 내가 말하고 싶은 이유의 ‘핵심’이 있다. 말을 잘하려면 우선 나의 ‘진짜 감정’을 찾는 게 중요한 이유다. 가령 속상할 땐 “속상하다”고 말하고 위로받으면 되는데, 속상함을 화로 착각해 ‘버럭’ 하는 건 관계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마음과 다른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복잡한 감정들 사이에서 ‘진짜 감정’을 인식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말 그릇>에서는 “대화 중에 감정이 출현할 때 ‘지금 이것은 어떤 감정일까?’ 3초간 ‘잠시 멈춤 질문’을 되새기며 스스로에게 답해보라”고 제안한다. 사실 물리적 사건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건은 일단 마음속에서 처리 과정을 거친 뒤 가치판단·생각·기대·과거의 경험·습관적 태도·언어 등을 바탕으로 감정을 만들어낸다.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에서는 어떤 감정이 상황에 적합한지 확인할 때, ‘정말 그런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내 감정만큼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잠시 잠깐의 노력도 큰 결실로 이어질 수 있다. 말실수가 잦은 사람은 상대에게 말로 공격 받았을 때 먼저 ‘분노’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은 “이제부터는 말하기 전에 생각한다는 목표를 세워보자”며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잠시 생각하는 여유를 갖게 하는 기법”을 소개한다. 사실 누군가에게 화가 났다면 그건 자기 입장에서만 상황을 바라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몇 초간 ‘내가 저 입장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자신에게 공감의 질문을 던져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것만으로도 적의를 없앨 수 있다. 왜 그래야 하냐고? 이 책에선 “이유를 고민하는 몇 초의 시간 덕분에 나중에 후회하게 될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말하고 싶은 욕구를 다스리려면

미국 철학자 존 듀이의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말 그릇>에서 “말하는 순간만큼은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대우받기를 원한다. 찰나의 눈빛과 한마디 말에도 반응하는 사람 앞에서 그는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된다”고 조언하는 이유다. 잘 듣는다는 것은 그냥 듣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책에선 “‘말하고 싶은 욕구’를 다스리는 동시에 상대방의 말속에 숨어 있는 여러 가지 의미를 파악하고 그 안에 담긴 마음까지 파악해내야 하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말을 많이 하는 대신 주로 들으면 상대방이 우습게 볼 거라는 우려는 완전한 오해다.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대화법>에선 “아무리 노력해도 말하는 게 서툴다면 차라리 듣는 것에 뛰어난 역할을 지향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충실한 경청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고, 백 마디 말을 늘어놓는 사람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기에, 누구도 절대 당신을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괜히 까다롭게 구는 사람을 다루는 데도 ‘경청’만 한 것이 없다.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은 “사람들은 본래 관심을 끌기 위해 까다롭게 군다”며 “화난 사람에게 귀를 기울여라. 그러면 그는 저절로 목소리를 낮추고 이성적으로 굴 것”이라고 귀띔한다.

가장 높은 경지는 침묵

“침묵보다 나은 말이 있을 때만 입을 열라”는 말이 있다. 화법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 가장 높은 경지의 말하기 기술은 바로 ‘침묵’이다.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은 “진정한 대화의 기술은 맞는 곳에서 맞는 말을 하는 것뿐 아니라, 안 맞는 곳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불쑥 해버리지 않는 것까지도 포함한다”는 작가 도로시 네빌의 말을 소개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나중에 되삼키려 애쓰지 말고 그 순간 꿀꺽 말을 먹어버려라”고 조언했다고도 전한다.

유머도 마찬가지다. 웃길 자신이 없을 때 가장 손쉬운 일은 누군가 재밌는 이야기를 했을 때 실컷 웃어주는 일이다. <운을 부르는 부자의 말투>는 “당신의 웃는 얼굴과 웃음소리가 말하는 이에게는 최고의 유머”라고 조언한다.

<말 그릇>의 일부다. “요즘에는 말하기를 ‘주도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말을 권력으로 여기면 곧 그것으로 사람을 통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중략) 그러나 관계는 ‘통제의 언어’로 지속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고유성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억지로 바꾸려 들거나 강요하면 관계는 끊어진다.”

그렇다. 인간은 자율성을 침해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설득하고 싶다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주도적 역할을 주어 저항을 줄이는 게 효과적이다.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에서 제안하는 것처럼 “내일까지는 발표 준비를 해야지”라는 명령보다 “내일 발표 때는 무슨 얘길 하려고 하니?”라는 질문이, “친구들과 놀러가기 전에 쓰레기를 내다버리도록 해”라는 명령보다 “쓰레기를 내다버려준다면 친구들과 놀아도 좋아”라는 부탁이 상대방의 ‘협조’를 끌어내기에 훨씬 효과적인 이유다.

명령보단 질문 아니면 부탁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대화법>에선 “베테랑 판매원은 세 가지 옷을 추천한다”고 힌트를 준다. “옷을 하나만 제시하면 고객은 강요받는다는 인상을 받으며 (중략) 두세 가지 종류로 폭을 넓혀 건네면 선택의 주도권이 고객에게 넘어간다”며 “누군가에게 어떤 의견을 제안할 때는 반드시 복수 이상으로 하라. 그러면 상대가 제안을 받아들여줄 확률이 올라간다”고 조언한다.

개인적 경험이 쌓일수록 그것은 바뀌기 힘든 하나의 ‘공식’이 된다. 공식은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말 그릇이 넉넉한 사람들은 “한 사람의 공식 안에는 그들만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공식의 차이는 ‘인간성과 우열’의 차이가 아니라 ‘경험’의 차이”라는 걸 안다. <말 그릇>은 “누구나 원하지 않는 공식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것, 그 공식이 인격의 차이에서 생긴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함부로 충고할 수 없게 되고, 그야말로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는 게 가능해진다”고 당부한다.

<운을 부르는 부자의 말투>의 일부이자, 소개한 네 권의 공통적인 전제다. “이 책을 100번쯤 읽어보면 당연한 말만 쓰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당연한 일을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것뿐이지요. 이 책을 산 사람 중 대부분은 아마 책을 읽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각오를 다지고 한 번이라도 실천한 사람은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은 토머스 에디슨의 말로 마침표를 찍는다. “우리의 최대 약점은 포기다. 확실한 성공 비결은 언제나 한 번 더 시도하는 데 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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