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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 고용에 물어봐

최저임금 인상이 절대선 아니지만

고용에 악영향 주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올리는 게 바람직
등록 2018-06-12 15:05 수정 2020-05-03 04:28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이 6월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에게 ‘최저임금 인상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이 6월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에게 ‘최저임금 인상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최저임금 문제가 태풍의 눈이 되어가는 모양새다. 진보와 보수의 시각 차이가 갈수록 첨예해질 뿐만 아니라 노정 갈등으로도 비화되고 있다. 사회적 논란이 뜨거운 것은 일단 환영할 일이다. 그간 최저임금 결정은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하는 노사 대표나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일로 여겼으나 이젠 훨씬 더 대중적 관심사가 되었다. 이는 최저임금이 합리적으로 결정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논란이 단지 진영 논리의 반복과 충돌에 머문다면 사회 갈등의 골을 더 깊이 파는 것 외엔 소득이 없을 수 있다. 논쟁이 좀더 차분하고 생산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도움이 되도록 최저임금을 바라보는 몇 가지 관점을 제시해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핵심은 고용에 미치는 영향</font></font>

먼저 한국에서 최저임금이 중요한 이유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좋은 방법은 외국과의 비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견줄 때 한국은 임금 불평등이 크고,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높다. 미국과 더불어 거의 최고 수준이다. 이것은 최저임금을 올릴 직관적 이유가 된다.

더 중요한 이유는, 한국에 단체협약 확장제도가 없다는 것이다. 단체협약 확장제도란 노동조합과 사용자 간에 맺어진 단체협약이 동일 업종의 무노조 기업 노동자에게도 적용되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유럽에서는 이 제도로 인해 단체교섭에서 결정되는 임금이 사회적 기준이 된다. 독일에 오랫동안 법정 최저임금이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제도가 없는 한국에서는 저임금을 줄일 실질적 유일 수단이 최저임금제도다. 그리고 최저임금은 단체협약 임금과 달리 전국적 최저 수준만을 정하므로, 한국은 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약한 무기를 가지고 저임금 문제에 맞서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절대선인 것도 아니다. 이때 핵심 문제는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다. 잘 알려졌듯, 최저임금 인상은 저숙련 노동자의 일자리를 없애 제도의 보호 대상 집단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것을 괜한 우려나 사용자의 엄포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근래 주유소들이 셀프주유소로 대거 바뀌거나 아파트들이 경비원을 줄이는 현상이 임금 상승과 관련 없다고 주장한다면 억지다. 몇 달 전 최저임금 근처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임금이 오르는 것은 좋지만 지금의 일자리가 없어질까 두렵다고 걱정하던 60대 여성 노동자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문제는 좀더 넓은 시야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가구소득 불평등과의 관계다. 소득 불평등은 개인 단위로도 따질 수 있고, 가구 단위로도 따질 수 있다. 이 중 어느 쪽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가구소득 불평등이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불평등 문제를 주 연구 대상으로 하는 사회계층·계급론에서도 계층이나 계급은 가구 단위로 따진다. 한국처럼 가족 연대가 강한 사회에서는 가구소득 불평등의 중요성이 더 클 것이다.

그리고 가구소득 불평등에는 개인소득 불평등과 더불어 고용량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이 늘어 개인소득 불평등이 줄더라도 저소득 가구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면 가구소득 불평등은 확대될 수 있다. 현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의 관계에서도 고용량이 중요한 변수가 된다. 소득주도성장이란 결국 임금소득이 주도하는 성장이다. 임금소득 증가는 임금 상승으로도 늘어나지만 고용량 증가로도 이뤄진다. 임금이 같더라도 고용이 늘면 임금소득이 늘어나고, 임금이 오르더라도 고용이 줄면 임금소득은 정체하거나 줄어들 수 있다. 만일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준다면 소득주도성장은 좌초할 수도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고용 상황 봐가며 인상폭 결정 </font></font>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5월25일 최저임금법 개정에 맞서 총파업 돌입을 선언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5월25일 최저임금법 개정에 맞서 총파업 돌입을 선언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방침을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은 고용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올리는 것이 좋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고용에 심각한 악영향이 확인된다면 최저임금 인상폭을 줄이거나 심지어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라는 목표가 절대시될 수는 없다. 사실 이 목표는 거의 아무런 사회경제적 근거 없이 지난 대통령선거 때 정당 간 경쟁의 부산물로 나와 설정됐다. 경위야 어쨌든 선거공약이므로 정부는 이를 지키려고 성실히 노력해야 하겠지만 그것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과연 한국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악영향을 미치는가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과거 경제발전 과정에서 경험한 ‘후발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보다 일찍 최저임금제도를 운용한 나라의 경험에서 지침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후발효과는 매우 약하다. 선진국에서도 아직까지 최저임금의 고용효과는 논쟁 대상이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노동경제학 교과서들도 최저임금의 고용효과는 한 방향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을 줄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심지어 늘릴 수도 있다. 이때 변수는 최저임금 상승폭과 노동시장 구조다. 노동시장 구조가 변수라는 것은, 같은 금액만큼 최저임금을 올려도 노동시장 구조에 따라 고용에 미치는 효과가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저임금 상승이 노동자의 구매력을 높여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이것이 고용에 미칠 효과까지 고려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한국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효과는 실제 우리 노동시장에서 나타나는 결과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렇게 하더라도 최저임금의 고용효과가 쉽게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통계 자료를 사용해도 어떤 분석모델을 쓰는지에 따라 최저임금의 영향은 다양하게 추정되고 해석된다. 완벽한 분석모델은 없으므로 통계적 ‘팩트’란 늘 불완전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약점을 계속 문제 삼으면 일종의 불가지론에 빠지고 결국 당파적 투쟁과 힘의 논리만 남게 된다. 우리는 불완전한 연구 결과를 가지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합리성이란 제한된 합리성에 머문다는 사회과학의 고전적 명제가 여기에도 적용되는 셈이다.

그간의 연구 결과가 보여준 사실은, 한국에서 지금까지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률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도 이런 결론이다. 그리고 지난해와 같은 금액의 임금 인상이 앞으로도 계속 이뤄진다면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지만 보완 조처를 하면 고용 감소 문제도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2019년 최저임금을 많이 올릴 근거로 충분하다. 그다음엔 고용에 줄 영향을 봐가면서 결정하면 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소득 불평등 확대, 사회복지로 풀어야</font></font>

최저임금의 부정적 효과가 보고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정민 서울대 교수에 의하면 최저임금 인상이 취업자를 줄이지는 않았으나 노동시간을 줄였다. 이런 연구 결과도 무시돼서는 안 된다. 추가 연구가 필요하겠으나 그럴 가능성이 있음을 일단 인정해야 한다. 만일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량을 줄여 저소득 가구의 소득을 줄이는 문제가 실제 나타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당연히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

여기서 최저임금에 대한 또 다른 편향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또 다른 편향이란 최저임금이 고용에 조금이라도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관점이다. 최저임금 수준이 아주 낮지 않은 한,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설사 전체 노동시장 수준에선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줄이지 않는다고 해도 개별 노동자의 관점에서 보면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 고용량이 유지되는 효과의 상당 부분은 저임금 사업체의 노동자가 직장을 옮김으로써 생기는데, 이 노동자들은 일시적으로나마 실업자가 되는 부담을 지게 된다. 그러므로 최저임금 효과는 전체적으로 판단돼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소득 가구를 중심으로 약간의 고용 감소가 나타남에 따라 가구소득 불평등이 다소 확대된다고 해서 최저임금 인상이 중단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긍정적 효과들, 예를 들어 전반적인 임금소득 증가나 불평등 완화 효과가 더 크다면 최저임금은 계속 오를 수 있다.

그러면 가구소득 불평등 확대 문제는 어떻게 하나? 여기서 필요한 것이 사회복지다. 앞에서 가구소득 불평등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개인소득 불평등과 고용량을 들었는데,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사회복지제도에 의한 재분배다. 구체적으로는 근로장려세제(EITC), 실업수당, 실업부조 같은 것들이다. 이 제도들을 통해 저소득 가구의 실질소득을 올리고 가구소득 불평등 확대를 막을 수 있다.

선진국들은 최저임금이나 단체교섭 같은 노동시장제도와 복지제도를 잘 조합함으로써 불평등 문제에 대응해왔다. 우리도 이런 전망과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최저임금의 역할이 적절히 설정되고, 최저임금에 대한 과잉 기대와 우려도 극복된다. 현 정부의 사회정책에서 가장 아쉽다고 생각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정부는 다양한 노동시장 정책과 복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그것들을 적절히 결합하는 큰 그림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지적은 노동계에도 적용된다. 양대 노총(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노동시장 문제는 임금과 고용, 그리고 사회복지의 적절한 조합으로만 해결된다. 이 과제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이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이 달성된다고 해서 최저임금 문제가 종결되는 것은 아니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 사회가 계속 부딪치고 해결해야 할 문제의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임금수준은 기업 차원의 문제였지 거시경제적 문제가 아니었다. 일부 대기업은 임금이 올라도 그 부담을 비정규직이나 하청기업에 전가할 수 있었다. 최저임금제도는 있었으나 절대 수준이 낮아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게다가 경기가 나빠지면 연장근로 감축으로 임금수준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었다. 이젠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최저임금이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고용에 끼칠 영향을 따질 필요가 생겼고, 곧 연장근로 상한도 대폭 줄어든다. 이른바 임금의 하방경직성이 문제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종종 직면해야 하는 외부적 경제 충격이 고용에 미치는 악영향이 과거보다 더 심각하고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커지기도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취약한 사회적 대화 장치 작동 능력</font></font>

그렇다면 임금 인상과 고용 창출, 그리고 사회복지를 적절히 결합해 삶의 질을 전반적으로 높이고 불평등을 줄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엔 체계적인 정부 정책도 있어야 하지만 노사를 비롯한 다양한 경제주체의 의견과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노사정위원회 같은 사회적 대화다. 이런 장치가 잘 작동하는지가 일국의 사회적·제도적 역량을 보여주는 것일 텐데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매우 취약하다. 우리도 이런 능력을 키워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그것도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가 막 등장한 것이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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