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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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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스럽다’ 피하려면

지엠 사태 2대주주 산업은행 책임론 불거져…

제도적 한계 때문이라는 변명 속 적극적인 경영 감시 부족 지적도
등록 2018-02-27 17:03 수정 2020-05-03 04:28
설 연휴 직전에 날아든 한국지엠(GM)의 전북 군산공장 폐쇄 소식에 대한 비난 여론이 지엠을 넘어 2대주주인 산업은행으로 향하고 있다. 2월20일 군산 시내에 공장 폐쇄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설 연휴 직전에 날아든 한국지엠(GM)의 전북 군산공장 폐쇄 소식에 대한 비난 여론이 지엠을 넘어 2대주주인 산업은행으로 향하고 있다. 2월20일 군산 시내에 공장 폐쇄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요새 시중에 가장 심한 욕설로 통하는 말이 바로 ‘지엠스럽다’이다.”

2월19일 사석에서 만난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은 농반진반으로 이렇게 말했다. 설 연휴 직전인 2월13일 한국지엠 전북 군산 공장의 폐쇄 방침을 밝힌 제너럴모터스(GM)를 겨냥한 말이다. 지 의원은 국회 안에서 ‘지엠 전문가’로 통한다. 지난해 9월 한국지엠의 철수 움직임을 가장 먼저 공론화한 정치인이다. 지 의원은 지엠의 ‘먹튀’를 막아 국부를 지켜야 한다고 기염을 토했다.

100여 개 자료 요청에 6개 제출한 지엠

그런데 지 의원의 타깃은 지엠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지엠의 2대주주인 산업은행(산은)도 그의 리스트에 올라 있다. 지 의원은 “산은이 17% 지분을 가진 2대주주인데도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3% 지분만으로도 회계장부를 열람할 수 있는 등 결코 작지 않은 권한이 있는데 이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가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는 바른미래당은 2월22일 ‘한국지엠 사태 국정조사 추진’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지 의원은 국정조사를 통해 “산은을 해체하는 수준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산은 책임론’을 제기하는 이는 비단 지 의원뿐이 아니다. 상당수 언론도 “산은이 직무유기를 했다”고 지적한다. 그 비난 강도는 ‘먹튀’ 당사자인 지엠 못지않다. 지엠이 2013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철수했을 때 한국지엠의 철수 가능성에 대비해야 했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게 산은 책임론의 뼈대다.

산은은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책임론을 공개적으로 반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산은맨’들은 사적으로 답답함을 토로한다. 특히 주주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태도다. 제도적 한계로 관철하지 못했을 뿐 주주로서 요구할 것은 다 했다는 것이다.

우선 회계장부 열람은 산은이 이를 요구해도 지엠 쪽이 거부하면 별수가 없다고 설명한다. 실제 산은은 2017년 100여 개의 회계 자료를 요구했는데 한국지엠은 고작 6개만 제출했다. 이런 전례를 볼 때 산은이 회계장부 열람을 요청해도 지엠이 제대로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산은 관계자는 “지엠이 회계장부 열람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소송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데, 재판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실익이 없다”고 했다.

대우건설 관리 부실 책임론

산은은 또 한국지엠의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지엠 이사진이 지엠 쪽에 유리하게 짜여 있어 경영 참여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이사진 10명 가운데 7명이 지엠 쪽 인사여서 주요 안건이 지엠의 뜻대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13년 지엠이 옛 대우자동차의 글로벌 판매망(현지 판매법인)을 정리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지엠은 손실 발생 등의 이유로 대우차 현지 법인 폐쇄를 추진했고, 산은은 매출 감소를 우려해 반대했다. 그러자 지엠은 이사회에서 표대결로 이를 관철했다. 지엠은 또 2014년부터 한국지엠에 본사 업무지원비를 부담시켰는데, 이때도 산은 쪽 이사들이 반대했으나 표대결 끝에 통과됐다.

산은은 한국지엠 경영 감시도 소홀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지엠 본사가 2015년 한국지엠의 유동성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운영자금을 지원하면서 공장을 담보로 제공할 것을 요구했으나, 산은은 이를 주주총회에서 부결시켰다. 공장을 담보로 제공하면 공장 처분 결정권이 지엠으로 이전되기 때문에 지엠이 언제든 한국을 떠날 수 있게 된다는 판단에서다.

산은은 2016년 4월부터 한국지엠을 중점관리대상으로 지정해 경영 진단 컨설팅 등을 요구하는가 하면, 이듬해 3월에는 주주감사권을 행사해 삼일회계법인과 함께 회계 감사를 시도했다. 하지만 모두 지엠 쪽의 거부로 관철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산은맨’들은 직무유기라는 비난이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한 산은 관계자는 “은행은 규정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징계를 당한다. (징계를 무릅쓰고) 지엠을 봐줄 이유가 뭐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산은 책임론이 과도하다는 의견은 산은 밖에서도 나온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산은이 지엠을 상대하기는 버겁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산은을 향한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다. 산은이 그동안 국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 대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적잖은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산은은 불과 3주 전인 2월8일 호반건설과 진행하던 대우건설 매각 협상을 중단했다. 대우건설의 숨겨진 국외 부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산은은 호남기업 특혜 의혹, 헐값 매각 논란 등이 있음에도 호반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공격적으로 매각을 추진했다. 하지만 대우건설의 국외 사업장인 모로코 사피 복합화력발전소 현장에서 3천억원의 손실이 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호반건설이 인수를 포기했다. 산은은 “대우건설 경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 만큼 사전에 국외 부실을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관리 부실 책임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산은은 그에 앞서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해 4조원의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대우조선해양은 2013년과 2014년 각각 4천억원 넘는 영업이익을 냈다고 발표했다가 2015년 3월 각각 7500억원 안팎의 적자를 냈다고 정정했다. 산은은 2009년부터 부행장 출신을 대우조선 최고재무책임자(CFO)로 파견했지만, 이런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임원 124명 지분 기업 재취업

금융계에서는 산은의 이런 행태를 일종의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다. 산은의 일부 고위 임원들이 국책은행의 본분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할 때 사익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산은 퇴직 뒤 산은이 지분을 갖고 있거나 채권단으로 구조조정에 참여하는 기업에 재취업하기 위해 이들 기업의 감시를 소홀히 한다는 것이다.

산은 퇴직 임원의 재취업 문제는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나오는 단골 지적 사항이다. 지난해 국감 때도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산은 퇴직 임원 124명이 이들 기업에 재취업한 것으로 드러나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산은이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산은스럽다’는 말이 새 유행어가 될지 모른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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