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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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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런 알고리즘에 기댄 도시

디지털 ‘공유경제’의 본거지 샌프란시스코 탐방기… 놀고 있던 자원을 팔아 돈과 바꾸다
등록 2016-06-23 08:00 수정 2020-05-02 19:28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 모습. 우버가 택시를 밀어내고, 에어비앤비가 동네에 영향을 끼치는 ‘디지털 경제’를 보여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 모습. 우버가 택시를 밀어내고, 에어비앤비가 동네에 영향을 끼치는 ‘디지털 경제’를 보여준다.

낯선 곳에서 호텔 문을 나설 때 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도나 가이드북? 아니면 달러나 신용카드? 이제는 다 놔두고 스마트폰만 들고 나오면 된다.

5월18일 오후 2시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한 호텔. 10분 전 호텔 로비에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우버’(Uber)를 실행시켰다. 현 위치는 이미 스마트폰이 알고 있었고, 목적지를 찍어 예상 비용만 확인했다. 예약 버튼을 누르니 주변에서 검정색 아이콘으로 움직이던 차 한 대가 3분 뒤 오겠다며 운전기사의 이름 하페드(Hafedh)와 사진을 메시지로 띄웠다.

호텔 앞 건너편 도로에는 택시가 몇 대 서 있었다. 호텔에서 나온 우리는 누가 봐도 어디론가 갈 것처럼 보였지만 스마트폰을 쥔 우리를 향해 오는 택시는 없었다. 스마트폰 지도에서 깜빡이던 우버 차가 몇 분 뒤 스마트폰 밖으로 나와 호텔 앞에 섰다. 우버는 차량 공유 서비스다. 개인 승용차를 집에 세워두지 않고 우버 플랫폼에 등록하면 이동해야 하는 사람과 연결해줘 택시처럼 탈 수 있다. 운전기사 하페드는 간단히 내 이름과 목적지를 확인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안 되는 영어로 운전기사에게 이리저리 설명하거나 주소가 담긴 메모를 건네다 진땀 흘린 기억은 사라졌다.

차는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고갯길을 따라 올랐다. 샌프란시스코 도로는 경사가 만만치 않아 이 고갯길을 넘는 교통수단으로 전차가 오래전에 도입됐고, 지금은 관광용으로 많이 쓰인다. 차는 고갯길을 넘어 목적지인 디비사데로 거리의 한 주택 앞에 20분 만에 섰다. 하페드에게 고맙다는 말만 하고 내렸다. 곧 스마트폰으로 문자메시지가 왔다. 16.4달러. 우버에 등록된 신용카드로 이용료가 자동으로 지급됐다. 미국에선 택시 탈 때도 줘야 한다는 팁을 챙겨줄 필요 없이 그냥 내리면 된다.

파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집은 조금 전 있었던 관광지 같은 시내가 아닌 평범한 주택가에 있었다. 계단으로 올라서니 대문에 자물통이 걸려 있었다. 이틀 전인 5월16일 집주인 캘리 호프먼은 전자우편을 보내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스마트폰 안에서 스마트폰 밖으로
우버 풀(합승 서비스)을 이용할때 스마튼 폰에 뜬 지도. 목적지까지 요금, 거리, 시간과 운전기사와 합승자가 누구인지까지 설명되어 있다.

우버 풀(합승 서비스)을 이용할때 스마튼 폰에 뜬 지도. 목적지까지 요금, 거리, 시간과 운전기사와 합승자가 누구인지까지 설명되어 있다.

이 집은 ‘숙박 공유 서비스’인 에어비앤비에서 찾았다. 에어비앤비는 공유 플랫폼을 통해 빈방이나 빈집을 등록하는 주인과 여행객을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여행객이 집을 찾아 예약하고 집주인이 숙박을 허락하면 도착하기 며칠 전 집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알려준다. 숙박비는 신용카드로 자동 결제된다.

캘리가 알려준 대로 비밀번호를 누르니 자물통이 열리고 집열쇠가 나왔다. 그 열쇠로 나무문을 여니 미국 드라마에서 보던 가정집이 나왔다.

지난 5월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바다를 건너는 장대한 금문교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제는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는 실리콘밸리로 더 유명하다.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이곳에서 이른바 새로운 디지털 경제 흐름인 ‘공유경제’를 시작해 세계로 진출했다. 우버와 에어비앤비의 공습 속에 세계는 공유경제가 하위 계층의 소득을 높이는 좋은 자본주의인지, 노동조합 보호에서 하위 계층을 제외하는 나쁜 자본주의인지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불었다. 논란의 본거지인 샌프란시스코의 상황은 어떨까.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동안 항상 우버를 타고 다녔다. 택시는 공항에 도착했을때 단 한 번 이용했다. 일반적인 우버엑스(세단형 택시 서비스)를 이용해도 택시보다 비용이 저렴한데 우버풀(합승 서비스)을 이용하면 이것마저도 반 이상 싸진다. 우버풀은 비슷한 목적지로 가거나, 경로 도중 내리는 승객이 있으면 3명을 모아 태운다. 컴퓨터 프로그램(알고리즘)으로 자동으로 계산된다.

우버 운전기사는 돈을 벌고, 이용자는 돈을 아낀다. 우버 이용자들이 서비스에 매기는 별점은 평균 4.7점(5점 기준)에 이를 만큼 높다. 2001년 시작한 우버는 강력한 편리성을 바탕으로 세계로 퍼져나가 현재 475개 도시에서 서비스 중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영업하던 택시회사 옐로캡은 우버의 확산에 밀려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2008년 시작한 에어비앤비의 강점은 동네를 경험하는 데 있다. 호텔이나 모텔을 이용하면 세계 어디를 가나 도심의 비슷한 위치에서 비슷한 방 구조를 만난다. 에어비앤비는 그렇지 않다. 일반인이 살던 집을 빌려주니 호텔 여행으로는 볼 수 없는 곳을 가고, 운이 좋으면 집주인의 환대를 받으며 다른 문화적 경험까지 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찾아간 캘리의 집에서도 도심에서 접할 수 없던 분위기를 느꼈다. 캘리가 소개해준 동네 레스토랑을 찾아가 현지인들과 함께 저녁밥을 먹고, 동네 술집을 찾아 맥주를 샀다. 미국은 편의점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은 덤이다. 에어비앤비는 여행객들이 시내뿐만 아니라 지역 곳곳까지 찾아오게 만들어 지역 상권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좋은 자본주의인가 나쁜 자본주의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에어비앤비 집주인 캘리 호프먼. 간호사인 캘리는 가끔씩 에어비앤비를 통해 집을 빌려주고 돈을 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에어비앤비 집주인 캘리 호프먼. 간호사인 캘리는 가끔씩 에어비앤비를 통해 집을 빌려주고 돈을 번다.

캘리가 에어비앤비 숙소를 운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돈을 벌려고 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자매가 공동 운영) 여행을 좋아하고 다른 곳을 여행하며 에어비앤비를 알게 됐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도 해보면 좋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싱가포르에서 찾아온 가족과도 친해져서 우리가 싱가포르에 갈 때는 그 집을 찾았다.”

에어비앤비가 제안한 새로운 여행 방법은 환영받았다. 2011년 100만 명(누적 기준)이던 숙박객이 지난해 7천만 명까지 늘었다. 숙소로 빌려준다고 등록된 집은 12만 개에서 200만 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스마트폰을 통해 모든 이를 연결해 ‘편리한’ 세상을 열었다. 이전에는 돈을 벌 수단이 아니었던 집과 자동차로 소득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우버와 에어비앤비의 직원들도 지구의 자원을 아끼고 사람들을 더 가깝게 만드는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의미를 둔다. 그러나 이 서비스에 ‘공유경제’라는 착하고 좋은 말까지 가져다붙일 필요가 있을까.

캘리의 집은 깨끗하고 조용한 동네에 위치해 값이 비싸다. 89만달러(약 10억원)에 샀는데,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게 주는 혜택을 받아 집값의 80%를 대출로 충당했다. 넓은 방이 2개, 거실과 식당, 부엌, 화장실이 있는 집이다. 캘리는 동생과 돈을 합치고 부모님에게 돈을 빌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 간호사인 캘리는 동생과 함께 매달 대출금을 갚는다.

탈세와 젠트리피케이션
차량공유서비스를 만들어 세계적으로 엄청난 투자를 받고 있는 우버 사무실 모습.

차량공유서비스를 만들어 세계적으로 엄청난 투자를 받고 있는 우버 사무실 모습.

캘리는 에어비앤비를 하며 사람들과 교류하고, 에어비앤비 수익으로 집도 고치고 유지비를 낸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캘리에게 에어비앤비는 1석2조의 효과다.

지역의 상황은 캘리가 기대하는 미래와 다르다. 집을 단기 임대하는 수익은 장기 임대하는 것보다 크다. 더구나 규제 방안이 도입되고 있지만, 이전 에어비앤비 집주인들은 집을 빌려주고 받은 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았다. 집주인에게 에어비앤비가 가져다준 수익이 더 클 수 있었다. 이를 맞추지 못한 세입자들은 더 싼 외곽 지역으로 집을 옮길 수밖에 없다.

실리콘밸리의 한 기업에서 일하는 유아무개씨는 “주택 구입 대출금을 월급으로 내기 빠듯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에어비앤비를 하려고 집을 사고 있다. 에어비앤비가 샌프란시스코의 집값을 올리고 젠트리피케이션(도시 주택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외곽으로 내몰리는 현상)을 초래한 게 크다”고 했다. 탈세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불거지면서 샌프란시스코에선 에어비앤비와 집 없는 원주민, 시청 간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다.

5월18일 만난 샌프란시스코 지역신문 칼럼니스트 네비우스는 이런 문제를 지적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양극화 문제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정보기술(IT) 기업 때문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일부에 불과하다. 샌프란시스코는 관광산업 비중이 큰 도시다. 관광객 때문에 집값이 올랐다. 집값이 비싸지면서 교사·경찰·소방관 등이 외곽 지역으로 나가 살 수밖에 없다면 도시는 교육 문제나 대형 사고를 해결할 수 있을까.”

5월19일 에어비앤비 본사에서 만난 닉 윌킨스 홍보 담당 이사는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했다. “현지 나라를 방문한 에어비앤비 이용자의 30~40%는 에어비앤비가 아니었으면 그 동네를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통계가 있다. 그만큼 에어비앤비는 동네 상권을 살리고 주변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을 만들고 있다. 에어비앤비를 활성화하는 게 왜 도시에 도움이 되는지 정치인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긍정적 효과’에 대해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우버 기사들도 대부분 동의했다. 원래 직업이 사진가라는 이도, IT 엔지니어라는 이도 우버 운전기사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러나 장밋빛 미래만이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공유 플랫폼(장터)은 평범한 사람을 기업가로 만드는 중이다. 과로와 불확실한 보상이라는 단점은 소규모 기업가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무엇보다 모든 사람이 기업가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일거리를 찾고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는 선순환 고리에 올라탈 만한 동력과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 ‘장터’란 헤엄치지 못하면 가라앉는 살벌한 장소다.”(엘리스 스테파니, )

우버 기사들이 노동자냐 소규모 기업가냐는 논란은 이미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정에서 까지 불붙은 상태다. 우버는 이를 피하기 위해 자회사를 만들어 기사들이 원하면 노동자가 될 수 있게 했다. 우버가 앞으로 꺼내들 카드는 많다. 경제 불황 속에 우버 기사가 되려는 실직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고, 우버는 인간 운전기사가 필요 없는 자율주행차를 연구 중이다. 공유경제 기업을 창업한 전문가인 엘리스 스테파니는 “모든 노동자가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둔다고 해도 결국 플랫폼(우버)의 선의와 비밀스러운 알고리즘에 의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소득층만 돈 번 공유 플랫폼

오히려 우버와 에어비앤비처럼 공유 플랫폼을 만들어 서비스와 노동을 사고파는 것이 고소득층의 소득을 더 높인다는 분석도 있다. 은 지난 5월 미국 은행 JP모건체이스의 연구소 보고서를 인용해, 소득 상위 20% 가운데 소득의 일정 부분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올린 사람은 163만 명으로 하위 20%보다 15만 명이 더 많다고 보도했다. ‘공유경제’ 기업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놀고 있는 사람들의 소득수준을 높이거나 소득 양극화를 좁힌다는 얘기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디지털 경제의 발원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현재는 여전히 공유경제의 향방을 놓고 논란 중이다.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가져다준 이점은 이용자에게는 돈과 시간을 아끼고 다른 경험을 안겨줬다. 대신 이전에 있던 노동자와 세입자를 보호하는 법은 무력화되거나 쓸모가 없다. 그럼에도 세계의 많은 펀드와 기업들은 우버와 에어비앤비 등에 수조원의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세계 시장을 독점하게 되면 엄청난 과실이 떨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과실이 평범한 우버 기사와 에어비앤비 집주인에게까지 향하진 않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미국)=글·사진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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