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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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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맥, 잘리면 짤린다?

정몽구 회장의 전 사위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사장 전격 사임…
일감 몰아주기로 성장한 신 사장 일가 소유 ‘삼우’ 관심 쏠려
등록 2014-09-17 15:19 수정 2020-05-03 04:27

삼성그룹이 3세 승계 구조를 다지기 위한 사업 구조 개편에 부쩍 속도를 내는 가운데, 한가위 연휴 직전인 지난 9월5일 현대자동차그룹에서도 작은 ‘변화’가 있었다. 주요 계열사 중 한 곳인 현대하이스코의 신성재 사장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여느 최고경영자 교체와 달리, 신 사장의 사임에 눈길이 쏠린 건 그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전 사위인 탓이다. 신 전 사장은 올해 초 정 회장의 셋째딸인 정윤이씨와 이혼을 했다.
매출액 1조원이 넘는(현대하이스코의 매출액은 한때 7조원을 웃돌기도 했다) 상장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전격 사임했으나, 회사 쪽은 단지 ‘일신상의 이유’ 때문이라고만 밝혔다. 하지만 신 전 사장의 부침 과정은 한국 재벌그룹 내에서 패밀리 비즈니스(가족경영) 논리가 어떻게 기업경영을 지배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목소리가 높다.

성장 과실, 키운 것인가 수확만 한 것인가

신성재 전 사장을 두고, 주변에서는 대체로 열정이 넘치는 경영자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철강업계 관계자인 ㄱ씨는 “현대차그룹에서 계열사 경영진을 모아 회의할 때 신성재 사장이 가장 먼저 도착하곤 했다. 정몽구 회장한테 그렇게 열심히 하는 점에서 신임을 얻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철강업계 관계자 ㄴ씨는 “신성재 사장은 체력이 좋기로 업계에서 소문이 났다. 한번은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골프장까지 서울 한남동에 있는 집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오더라. 그렇게 타고 와서 골프까지 치니, 주변에서 혀를 내둘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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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적극적이던 신 전 사장은 왜 갑자기 사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을까? 그는 한가위 연휴 전부터 미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사장의 사임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그가 현대차그룹과 인연을 맺은 시기로 잠시 거슬러 올라가보자.

신성재 전 사장은 1995년 현대정공에 입사했다. 정몽구 회장의 셋째딸인 정윤이씨와 결혼한 건 입사한 지 2년 뒤인 1997년이다. 이때부터 신 전 사장은 고속성장 가도를 달리는 현대차그룹이라는 로켓에 올라탄다. 신 전 사장은 1998년 현대강관(현 현대하이스코)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3년 1월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 부회장과 함께 당시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년 뒤인 2005년엔 현대하이스코 사장으로 승진했다. 입사 10년 만에 사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면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부회장과 신 전 사장 등의 승진 인사를 두고 “대주주 일가의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사장을 맡은 뒤 현대하이스코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한다. 강관 사업을 하던 현대하이스코는 부도가 난 한보철강의 냉연부문을 2004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냉연부문은 철강을 가공해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와 기아차에 자동차용 강판을 납품하는 사업이었다. 현대·기아차가 전세계 판매량 5위권 자동차 업체로 성장하면서, 자동차 강판을 납품하던 현대하이스코의 매출도 덩달아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2005년 2조6827억원이던 매출액은 2010년 5조8465억원으로 2배가 됐고, 2011년 6조9352억원, 2012년에는 7조746억원으로 늘어났다. 8년 사이 매출액이 3배나 증가한 셈이다.

그의 경영능력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철강업계 관계자 ㄱ씨는 “회사 내부에서는 신성재 사장의 경영능력이 좋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면 앞으로 현대제철도 맡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목소리도 있다.

신 전 사장을 오랫동안 지켜본 철강업계 고위 임원 ㄷ씨는 “현대하이스코의 급격한 성장과 신성재 사장의 경영능력을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잘라 말한다. ㄷ씨는 “신성재 사장이 일을 잘하기는 했지만 현대하이스코의 성장은 현대차가 자동차 강판 공급을 위해 전략적으로 키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성장이라는 소중한 과실을 직접 키워낸 것인지, 아니면 커진 과실을 따내기만 한 건지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등 재벌 오너 출신의 경영자들에게 흔히 따라붙는 논란이다.

이해관계자에게 설명조차 없는 사임

실제로 신 전 사장의 연봉(2013년 기준, 14억9천여만원)도 다른 계열사 사장급보다 많은 편이었다. 그는 현대하이스코보다 덩치가 훨씬 큰 현대제철의 박승하 부회장(13억5천여만원)보다 더 많은 급여를 챙겼다. 전문경영인인 기아차 이삼웅 사장(11억9500여만원)과 현대차 김충호 사장(8억9900여만원)보다도 월급 봉투가 훨씬 두둑했다. 경제개혁연대가 상장기업 임원 연봉 공개 입법활동을 벌이면서 재벌 오너에 대한 충성도나 친소 관계가 아닌 공정한 성과보상 체계에 따라 임원들이 연봉을 받아야 경영이 투명해진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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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승장구하던 신 전 사장의 행보에 빨간불이 처음 켜진 것은 지난해 말 현대하이스코의 사업 조정 때다. 그동안 현대제철과 합병설이 돌던 현대하이스코는 합병 대신 주력 사업이던 냉연부문을 현대제철에 넘겨주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냉연부문은 포스코처럼 제철소 안에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냉연부문을 내주는 대신 현대하이스코는 원래 하던 국외 스틸가공센터와 차량 부품, 강관 사업 등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제철은 지난 6월 말 현재 기아차 19.78%, 정몽구 회장 11.84% 등이 지분을 갖고 있다. 정 회장은 올해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났지만, 정의선 부회장은 사내이사를 유지하면서 아들 정 부회장에게 힘이 실린 곳이다.

주력 사업을 빼앗긴 현대하이스코는 큰 타격을 입었다. 2012년 7조원이 넘던 매출액은 지난해엔 1조3161억원으로 급락했다. 32억9천만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업손실은 현대차그룹 차원의 계열사 사업 조정의 결과라는 성격이 강하므로, 당장 계열사 경영자가 모든 책임을 져야만 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이 때문에 철강업계 내에선 올해 초 이혼을 사임의 직접적 원인으로 꼽는 분위기다. 입사 뒤 10년 만에 사장 자리에 오른 배경이 이제는 반대로 자리에서 끌어내렸다는 얘기다. 정의선 부회장 쪽의 견제 가능성과 관련해 한 경제계 인사는 “현대차 내부에서는 신성재 사장의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는다”며 큰 비중을 두지는 않았다. 신 전 사장의 손윗동서인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 혁신적인 경영철학과 활발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 등으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데 반해, 그룹 내에서 신 전 사장을 의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상장기업 최고경영자의 거취와 관련해, 이해 당사자들이 모든 정보로부터 소외된 현실을 꼬집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신 전 사장이 갑자기 물러난 이유를 현대하이스코나 관련 계열사 등의 주주, 은행, 채권자들이 명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은 재벌그룹 내에서 임원 인사가 얼마나 불투명하게 이뤄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사위여서 사장이 됐든 이혼해서 사임을 했든 간에 중요 이해관계자들에게 인사에 대해 설명이 되냐 안 되냐의 문제가 선진국 기업과 한국 기업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사돈 덕에 성장해 배당성향 10%대→93.66%

신 전 사장이 물러나면서 관심은 현대차그룹의 대표적 일감 몰아주기 기업인 삼우에 쏠리고 있다. 삼우는 현대차와 기아차에 자동차용 강판 등을 납품하는 1차 협력사로, 신 전 사장의 아버지인 신용인씨가 회장으로 있다. 정몽구 회장을 사돈으로 둔 삼우는 2013년 매출액 9063억원 가운데 7919억원(87.3%)을 현대차그룹 계열사를 통해 올려 공정거래위원회와 언론 등의 집중 조명을 받아왔다.

실제로 삼우의 성장 배경은 신성재 사장의 초고속 승진과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신용인 회장은 원래 섬유 제조와 도·소매 업체를 경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신 회장은 자동차 사후수리(AS)용 부품 보관 용기를 생산하는 중소업체인 우림산업을 인수하고 삼우로 이름을 바꾼다. 신 전 사장이 결혼한 직후인 1998년 삼우는 충북 음성에 새 공장을 짓고 사업품목을 상용차 휠로 전환한다. 현대차에 납품하는 협력사로 변신한 것이다. 이 사업은 애초 현대차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옛 현대정공)의 몫이었다.

삼우는 2005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더욱더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충남 당진과 울산에 공장을 건설해 현대하이스코와 현대제철로부터 자동차 강판을 받아 가공해 현대차와 기아차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2005년은 신 전 사장이 현대하이스코 사장으로 취임한 해다. 2001년 177억원이던 삼우의 매출액은 2013년 9063억원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3년간 매출액이 51배나 뛴 것이다. 지난해 거둔 영업이익만 226억원에 이른다. 다른 현대·기아차 1차 협력사와 견줘보더라도 삼우의 성장세는 확연하다. 현대차그룹의 동반성장포털 자료를 보면, 1차 협력사들의 평균 매출액은 2001년 733억원에서 2013년 2373억원으로 지난 13년 동안 3.2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처럼 삼우의 초고속 성장의 배경에는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적극적인 일감 몰아주기가 있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2014년 6월 공개된 삼우의 ‘대규모 기업집단 현황공시’를 보면, 삼우의 매출액 가운데 90% 가까이가 현대차그룹에서 발생하고 있다. 2013년의 경우 전체 매출액 9063억원 가운데 계열사 거래 비중은 현대차 5894억원, 기아차 1845억원, 현대하이스코 124억원에 이른다. 철강업계 관계자 ㄴ씨는 “앞으로 삼우가 계속 일감을 받을 수 있을지 철강업계에서는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신 전 사장이 사임함으로써 현대차그룹이 더 이상 일감을 삼우에 몰아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편 이런 상황 속에 삼우의 배당성향이 몇 년 새 급격히 상승한 것은 특이하다. 삼우의 배당성향은 과거 10%대에서 2009년 26%로 오르더니, 2011년 35%, 2012년 49.62%로 빠르게 올랐다. 특히 지난해 배당성향은 93.66%까지 상승했다. 배당성향이 93.66%라는 것은 당기순이익 가운데 93.66%를 회사 내에 유보하거나 투자하지 않고 주주들에게 나눠줬다는 이야기다. 국내 기업에서 2000년대 후반 이후 이익 가운데 배당금으로 지급되는 비율은 대체로 20% 초반 정도다. 외국인이 대주주인 탓에 배당성향이 높은 국내 은행의 배당률도 50% 수준이다.

경쟁력 확보에 무용한 일감 몰아주기

배당금은 삼우의 지분을 가진 신 전 사장 가족에게 집중됐다. 지난해까지 신 전 사장 가족은 삼우의 지분 100%를 보유하다가 사모펀드에 21.05%를 넘겼다. 현재 아버지 신용인 회장이 39.47%, 신성재 전 사장이 19.74%, 신 전 사장의 자녀인 우진(21)·우택(18)·우현(10)군이 6.58%씩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신 전 사장 일가가 받은 배당금은 한 주당 1만6800원씩 모두 60억원여원에 이른다. 지난해에도 39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재벌이 일감을 몰아줘 성장한 기업이 투자 대신 배당성향만 높다면, ‘일감 몰아주기’가 고용 창출과 제품 경쟁력 확보와 관계가 없다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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