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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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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선(電線) 그들의 전선(戰線)

콩밭도 매고 삽질도 하고 밥도 지으며,
<한겨레21> 기자 2명과 대학생 기자 21명 4박5일 밀양을 살다
등록 2014-07-31 14:53 수정 2020-05-03 04:27
경남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괴곡마을(골안마을+양리마을) 위(골안마을 쪽)로 운무에 싸인 송전탑이 우뚝하다. 6월11일 행정대집행 이후 하단을 빠르게 올리고 있는 107번 송전탑을 포함해 ‘송전탑 대열’(106번~109번)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경남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괴곡마을(골안마을+양리마을) 위(골안마을 쪽)로 운무에 싸인 송전탑이 우뚝하다. 6월11일 행정대집행 이후 하단을 빠르게 올리고 있는 107번 송전탑을 포함해 ‘송전탑 대열’(106번~109번)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우리의 전선(電線)은 그들의 전선(戰線)에서 돋고 있었습니다.

비가 끓인 운무를 거대한 쇳덩이가 밀쳐냈습니다. 불끈 발기한 ‘전기의 성채’가 산안개 사이로 머리를 우뚝 내밀었습니다. 7월15일 골안마을(경남 밀양시 산외면 괴곡리) 뒷산 108번 송전탑 아래에서 안개가 활활 타올랐습니다. 한국전력과 경찰이 반대 농성장을 평정(6·11 행정대집행)한 뒤 밀양에선 765kV 송전탑들이 물먹은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109번 송전탑은 페인트칠까지 끝났고, 107번도 밑동부터 줄기를 틔워올렸습니다. 꽂히는 것치고 찌르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산을 올려다보는 주민들 마음에서도 안개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요래 요래 하이소.”

‘콩밭 매는 아낙네들’이 있었습니다. 106번 철탑을 등진 대학생 기자들이 주민의 가르침에 따라 콩밭을 맸습니다.

“단디 보이소. 요건 콩이고 이건 팥인기라.”

전날 학생들은 콩 모종으로 잘못 알고 콩 심는 자리에 잡초를 심은 ‘전력’이 있었습니다. 콩밭 옆에선 푸른 풋것의 사과가 붉음을 얻고 있었습니다. 골안마을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공사현장으로 오르는 길목을 막고 한전 직원 및 경찰과 날마다 대치했습니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을과 마을마다 경찰버스와 119구급차가 상시 대기하며 ‘속도전 공사’를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선 헬리콥터들이 두두두두 날며 공사현장으로 자재를 실어날랐습니다.

평밭마을(부북면 대항리) 뻐꾸기의 청량한 울음소리를 포클레인 엔진 소리가 삼켰습니다. 7월14일과 15일 이틀 사이에 레미콘 차량 70여 대가 산길을 올라 129번 공사장에 ‘공구리’(콘크리트 타설)를 쳤습니다. 공사는 초조하고 다급했습니다. 작전 혹은 전쟁 같았습니다. 마을(화악산 중산간 해발 400여m 위치)을 오르는 임도 곳곳에서 경찰이 삼엄한 경계 근무를 섰습니다. 차량이 나타날 때마다 경찰들은 무전기를 들고 마을 위로 보고를 타전했습니다. 별빛도 비추지 않는 한밤중 산속에서도 24시간을 경계하는 경찰의 경광봉 불빛만 깜빡였습니다. 129번 농성장은 경찰의 초소로 변했고, 공사장 진입로 옆엔 플래카드가 나붙었습니다.

“CCTV 설치 지역. 상기 지역에 무단 침입시 사법처리될 수 있습니다.”

주민들이 삶을 지키려 움막을 쳤던 땅엔 이제 발 딛는 것 자체가 불법이 되고 말았습니다. 행정대집행 뒤 ‘체제로서의 송전탑’은 마을 안으로 서슴없이 진격하고 있었습니다.

평밭마을에 짐을 푼 남학생 기자들은 컨테이너 사랑방(송전탑 반대 새 농성장) 보강 공사를 도왔습니다. 사랑방 앞 구덩이 메울 흙을 파느라 생전 처음 삽질을 한 대학 기자는 어색한 동작으로 정말 ‘삽질’을 남발했습니다.

평밭마을에서 농활을 한 기자들은 밤마다 비를 맞으며 ‘야생의 샤워’를 했습니다. 캄캄한 밤 숲 속에서 발가벗고 땀을 씻은 뒤엔 컨테이너 숙소에서 7~8cm 대형 거미 및 귀뚜라미들과 동침했습니다.

마른 가슴 안에 야윈 무릎을 품고 덕촌 할매(손희경씨·80)는 호미질을 했습니다. 쪼그려 앉으면 몸이 종이처럼 접히는 몸무게 34kg의 할매는 살이 빠져나가 가죽만 남은 손으로 풀을 뽑았습니다. 시집올 때 머리에 꽂은 은비녀가 짝 잃은 홑가락지로 남아 할매의 손마디를 지켰습니다.

“고구마 봐라. 이제 캐 먹을 만큼 다 컸다.”

대학독립언론네트워크 학생들이 15일 오전 경남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들머리에서 사랑방에서 이남우 어르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밀양/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대학독립언론네트워크 학생들이 15일 오전 경남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들머리에서 사랑방에서 이남우 어르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밀양/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대학독립언론네트워크 학생들이 15일 오전 경남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에서 농활을 하고 있다. 밀양/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대학독립언론네트워크 학생들이 15일 오전 경남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에서 농활을 하고 있다. 밀양/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싯골(부북면 위양마을) 동래댁(정임출씨·73)의 밭을 대신 매며 할매가 말했습니다. 대학생 기자들이 손에 선 호미를 들고 할매 뒤를 따랐습니다.

동래 할매 ‘바깥양반’(윤여림씨·75)이 탈장 수술을 받고 입원하자 돌봄 없는 밭이 안쓰러웠나봅니다. 지난해 위암수술을 받았던 그는 행정대집행 뒤 “사랑방 맨든다고 그렇게 일해싸터마” 병을 또 얻고 말았습니다. 덕촌 할매도 그날(6월11일) “창시(창자)가 튀어나오도록” 몸에 쇠사슬을 꽁꽁 묶고 버텼습니다. 관절염과 골다공증이 심한 할매는 “안마한다꼬 주무르면 내 몸 다 으스러진다”면서도 호미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거(765kV 송전탑) 올라가는 꼴 보고 있으믄 천불이 나서 몬 산다. 이거라고 해야제.”

비닐하우스로 지은 위양마을 새 사랑방에서 덕촌 할매는 화투를 쳤습니다. 돈 대신 ‘대출받은 돌’을 걸었습니다. 할매는 밭을 맬 때마다 ‘돌 은행’에서 한 움큼씩 ‘돌 대출’을 받습니다. 대학 기자들에게 할매와 화투를 치는 일은 풀을 뽑는 것만큼이나 시급한 농활이었습니다.

“느그가 밥하나?”

스쿠터를 타고 달려온 아주머니가 용회마을(단장면 태룡리) 사랑방 안을 들여다보며 물었습니다.

“예….”

사랑방 안에서 여학생들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얼굴에 웃음을 피운 아주머니는 “어쩐가 해서 와봤다”며 스쿠터를 돌려 밭으로 향했습니다. 김득중 후보(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로 7·30 재선거 출마)를 응원하러 경기도 평택에 간 주민들 대신 학생 기자들이 사랑방 어르신들의 식사 준비를 맡았습니다. 기자들은 물을 채운 냄비에 김치를 ‘담가놓고’ 김치찌개 끓이는 법을 ‘의논’했습니다.

밤마다 밀양 곳곳은 송전탑 붉은 불빛에 쏘여 따가웠습니다. 검은 하늘 아래 검은 산 위에서 핏방울처럼 선명한 붉은 빛이 저 멀리 떠 있는 희뿌연 달빛마저 위협했습니다. 하나둘 연결되는 송전선이 마을마다 공동체를 끊으며 눈물을 잇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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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이 달구고 장마가 식히며 ‘볕이 빽빽한 땅’의 7월을 빚고 있었습니다. 과 대학독립언론네트워크가 한여름 밀양으로 농활을 다녀왔습니다. 기자 2명과 대학생 기자 21명은 7월14일부터 18일까지 4박5일간 밀양에 있었습니다. 밀양을 살지는 못했으나 밀양에 있는 것으로서 행정대집행 이후 한 달을 살피려 노력했습니다.

4개 마을(평밭마을, 위양마을, 괴곡마을, 용회마을)로 나눠 들어갔습니다. 컨테이너, 비닐하우스, 경로당, 사랑방에서 자고, 먹고, 밤새우며, 토론했습니다. 비가 오지 않을 땐 콩밭을 맸고, 깻잎을 땄습니다. 사랑방 보수 공사를 거들었고, 마을 어르신들 밥도 지었습니다. 비가 오면 취재수첩과 영상카메라를 들고 주민들을 만났습니다. 농성장 철거 뒤 마을 안으로 거리낌 없이 파고드는 국가권력도 목격했습니다. 이 앙상한 기록은 일하며 취재하겠다는 기자들의 ‘농촌활동’이 일도 취재도 실패했음을 증명하는 가난한 결과물일 수도 있습니다. 젊은 날의 농활은 부끄럽지만 치열했습니다. 그 뜨거운 여름의 기억을 위안 삼아 상처 난 땅의 숨소리를 거친 언어로 전합니다. 두 차례에 나눠 싣습니다.

밀양=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밀양 농활을 마친 뒤 3일 만인 7월21일 한국전력은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 인력을 투입해 345kV 송전탑 공사를 강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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