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다음커뮤니케이션 인수’. 만우절인 지난 4월1일 온라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떠돌던 ‘가짜’ 기사의 제목이다. 경제 뉴스를 캡처한 것처럼 꾸민 그럴듯한 속임수였다. 제목에 ‘낚인’ 누리꾼이 많았다. 그동안 KT, 구글, 엔씨소프트 등이 다음을 인수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으니, 아주 허황된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김범수 의장 실질 지분 40% 안팎그런데 이번엔 만우절의 거짓말도, 오보도 아니다. 현실이다. 카카오와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지난 5월26일 전격적으로 합병을 선언했다. 두 회사는 오는 8월 주주총회를 거쳐 10월에 통합법인을 출범시킨다고 발표했다. 회사 이름은 ‘다음카카오’로 결정됐다. 형식상으로는 카카오가 다음에 흡수합병된다. 비상장사인 카카오는 합병 뒤 해산된다. 1:1.556의 비율로 카카오의 주식 1주를 다음이 발행하는 신주 1.556주로 교환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실제로는 카카오가 다음을 인수하는 꼴이 된다. 현재 카카오 최대주주(29.2%)인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다음카카오 지분 22.2%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되기 때문이다. 김 의장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벤처캐피털업체 ‘케이큐브홀딩스’의 지분까지 합치면, 김 의장의 실질 지분은 40% 안팎으로 늘어난다. 반면 2007년 경영에서 물러난 다음 창업자인 이재웅 전 대표의 지분율은 4%대로 낮아진다. 이 전 대표는 최근 사회적 기업과 벤처기업 인큐베이팅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선 ‘초대형급 태풍’이 불어올 것이라고 내다본다. 1995년 설립된 다음커뮤니케이션은 포털 업계의 ‘맏이’다. 2004년 이후 온라인 검색 점유율과 매출 규모 등에서 네이버에 밀려 ‘만년 2위’ 자리에 머물고 있지만, 다음은 한메일·카페 등 인터넷 서비스를 국내에 가장 먼저 선보인 업체다. 맏이와 손잡은 카카오는 최근 떠오른 모바일 시장의 샛별이다. 카카오가 운영 중인 카카오톡은 국내 모바일 메신저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한 ‘국민 메신저’다. 맏이와 ‘무서운’ 막내가 합쳐지면 시가총액 4조원대의 ‘공룡’ IT 기업이 탄생한다.
두 회사가 공식적으로 설명하는 합병 이유는 이렇다. “카카오의 강력한 모바일 플랫폼 경쟁력과 다음이 보유한 우수한 콘텐츠 및 서비스 노하우를 결합하면 최상의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될 것”(최세훈 다음 대표), “통합법인은 모바일을 비롯한 IT 전 영역을 아우르는 커뮤니케이션·정보·생활 플랫폼 사업자로 성장해나갈 것”(이석우 카카오 대표). 지난 5월26일 오후 서울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엔 절반의 진실이 숨겨져 있다. 드러난 진실이 ‘야망’이라면, 숨겨진 진실은 ‘약점’이다.
다음이 최근 몇 년 새 처한 상황을 돌이켜보자. “다음이 시장을 선도적으로 치고 나가는 건 참 잘한다. (모바일 메신저인) 마이피플만 해도 웹서비스도 지원하고, 이모티콘도 가장 먼저 선보였다. 전략적으로 완벽하다. 하지만 모바일 사업을 일찍 시작했는데도 다음은 안 된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못한다.” 다음에서 임원으로 근무했던 한 인사가 털어놓은 이야기다. 실제 다음은 모바일 메신저 ‘마이피플’, 트위터형 SNS 서비스 ‘요즘’ 등 여러 모바일용 서비스를 내놨지만, 이렇다 할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 때문에 다음은 몇 년 새 매출액이 늘어나는데도 영업이익은 줄어들었다. 온라인 검색 점유율은 네이버의 4분의 1 수준인 15% 안팎, 모바일은 10% 초반대에 불과하다. 모바일 시대의 성장 모멘텀을 쉽사리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네이버 종잣돈 댄 한게임 창업주반면 2006년 설립된 카카오의 성장은 눈부셨다. 2010년 출시한 카카오톡은 모바일 플랫폼의 최강자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이용자 수뿐만 아니라 소셜 게임인 ‘애니팡’의 성공에 힘입어 매출도 급속도로 늘어났다. 지난해 연매출은 2108억원으로, 2011년(18억원)보다 무려 100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카카오톡과 카카오스토리 이후 후속타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음악·글 등 디지털 콘텐츠를 사고팔 수 있는 유통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를 야심차게 출시했다가 쓴맛을 봤고, 카카오패션과 카카오뷰티, 카카오뮤직 등 다양한 정보 플랫폼을 꺼내들었지만 고만고만한 관심을 끄는 데 머물렀다. 특히 해외시장에서의 실패는 뼈아팠다. 카카오톡을 들고 일본을 비롯해 몇몇 동남아 국가에 적극적으로 진출했지만, 투자금만 날리고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현재 한국을 제외하고는 카카오톡이 시장점유율 1위인 나라는 없다. 지난해 7월 카카오톡 세계 가입자 수 1억 명을 돌파한 이후로는, 가입자 증가 추세도 다소 둔화됐다.
카카오는 다음과 합병함으로써 이런 약점을 어떻게 극복하려는 걸까? 이에 앞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라는 인물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범수 의장이 지난 몇 년 동안 보여온, 다소 독특한 행보 때문이다. 김 의장은 항상 안정보다는 도전을 선택했다. 승부사 기질이다. 그는 삼성SDS를 다니다가 뛰쳐나와서 1998년 게임 포털 ‘한게임’을 창업했다. 그 뒤 2000년엔 대학 동기(서울대 공대 86학번)인 이해진 네이버 의장을 찾아가, 한게임과 네이버의 합병을 전격 제안했다. 당시 야후·라이코스 등에 밀려 업계 4~5위였던 네이버는 한게임이 인터넷 고스톱 게임 등으로 벌어들인 돈을 실탄 삼아 검색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데 투자했다. 이를 바탕으로 네이버는 포털 1위로 올라섰다. 김 의장은 NHN 공동대표를 맡았다. 그런데 ‘잘나가던’ 2007년 그는 돌연 회사를 또 그만둔다. 대신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다가 2010년 카카오톡이라는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를 만들어 돌아왔다.
김범수 의장은 지난 5월26일 오전, 카카오 직원들을 모아놓고 다음과의 합병 과정을 설명했다. 내용은 이렇다. 3주 전쯤 최세훈 다음 대표와 김 의장이 식사를 했다. “카카오가 내년에 상장하니까 시너지 낼 방안을 고민해보자”는 등의 덕담이 오갔다. 그런데 얼마 뒤 최 대표가 전화를 걸어와 “내년 말고 지금부터 하시죠”라며 합병을 전격 제안했다고 한다. 논의는 급물살을 탔고, 김 의장은 ‘네이버-한게임’에 이어 또 한 번 합병이라는 승부수를 선택했다.
“국내 잡고 이후 해외로 가는 전략”다시 ‘약점’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카카오는 애초 내년 5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다음과 합병하면 기업공개로 직접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방식이 아니라, 우회상장을 통해 지름길로 주식시장에 입성하게 된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카카오가 해외시장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대신, 국내 시장 1위 굳히기에 들어가길 선택한 것 아니냐고 해석하기도 한다. 최근 세계 모바일 메신저 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페이스북은 ‘와츠앱’을, 일본의 온라인 소매업체 ‘라쿠텐’은 모바일 메신저 ‘바이버’를 인수했다. 현재 카카오톡의 사용자 수(1억3천 명)는 라인(4억 명), 와츠앱(4억5천만 명), 위챗(6억 명)에 뒤진다. 이와 관련해 이석우 카카오 대표는 “빨리 다음과 합병해서 큰 시너지를 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다른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빠르게 약진하므로, (내년까지 기다리면) 누수 시간이 상당히 생길 수 있어 합병을 전격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의 한 관계자는 “카카오가 일단 국내시장을 먼저 잡고, 이후에 해외 서비스에 힘을 모을 전략을 세운 것 같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국내 온라인 포털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다. 모바일 시장에서도 ‘카카오톡 vs 라인’ ‘카카오그룹 vs 밴드’ 등 카카오의 가장 큰 경쟁 상대다.
“카카오는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로는 성공했다. 그런데 ‘소통’의 가치는 잡았는데, ‘정보’의 가치는 잡고 싶어도 잘 안 잡히는 거다. 정보 유통 플랫폼이 돼야 모바일 광고시장 등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데, 카톡(카카오톡)이나 카스(카카오스토리)에는 뉴스·영화·스포츠 등의 정보가 흘러다니는 게 부족하다.” 한 IT 업체 직원의 말이다. 이런 이유로 카카오는 그동안 뉴스를 비롯한 각종 콘텐츠 서비스 플랫폼 구축에 공을 들여왔다. 지난해 한 강연회 자리에서 이석우 대표는 “2012년 주요 뉴스를 스마트폰 푸시(알림)로 배달하는 서비스를 준비했었다. 뉴스는 워낙 중요한 콘텐츠여서 많은 고민을 한다. 그러다가 ‘카카오가 뉴스를 시작하네. 너희도 포털처럼 그렇게 하겠지’ 등등의 반응에 ‘앗 뜨거워!’ 하면서 그만뒀다. 함부로 할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는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카카오는 이미 ‘카카오나우’(kakaonow), ‘카카오토픽’(kakaotopic) 등 뉴스 관련 도메인을 등록해둔 상태다. 올해 상반기에 출시할 목표로 뉴스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을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네이버가 뉴스 유통을 둘러싸고 언론사들과 갈등을 빚는 모습을 봐온 터라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다음은 카카오에 꽤 매력적인 파트너다. 다음은 지난 20년 동안 뉴스·영화·만화·토론(아고라)·지도 등의 카테고리에 방대한 정보를 담아왔다. 랭키닷컴이 집계한 4월 방문자 수로 본 포털 뉴스 시장점유율에서, 미디어다음(35.3%)은 네이버뉴스(49.3%)에 크게 밀리지 않는다.
화학적으로 융합할 수 있을까“카카오는 카카오톡과 소셜 게임 말고는 다른 성공적인 서비스가 없었다. 그런데 뉴스 서비스에서 다음은 경쟁력이 있다. 특히 진보적인 30대 후반 이상 이용자들의 충성도가 높다. 다음카카오는 연예·스포츠 뉴스 등 20~30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쟁탈전을 네이버와 벌일 것이다. 성패는 모바일에 최적화된 뉴스 편집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달려 있다. 뉴스를 통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모바일 광고시장이 다음카카오로 흘러 들어오도록 하고 싶은 거다. 여기서 관전 포인트는 네이버의 대응이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의 분석이다.
다음카카오의 등장에 네이버도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지난 5월29일 닐슨코리아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 4월 카카오톡 순이용자 수는 2544만 명으로 네이버(1665만 명)를 훨씬 웃돌았다. 카카오톡 서비스 이용 시간도 네이버보다 2배 긴 것으로 나타났다. 웹에서는 독보적이던 네이버의 지위가 모바일 시대로 넘어가면서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네이버의 모바일 메신저 ‘라인’은 일본과 동남아 등에선 부동의 1위지만, 국내 점유율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네이버는 모바일 시대에 기동력 확보를 위해 자회사 캠프모바일을 설립하긴 했지만 ‘밴드’ 이외에 아직 이렇다 할 성공 모델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다.
일단 다음과 카카오의 결합은 ‘윈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합병으로 카카오는 다음이 축적한 양질의 콘텐츠와 광고 노하우를 확보하게 됐다. 다음이 보유한 국내 광고주는 20만 명이 넘는다. 국내 최대의 모바일 트래픽을 갖고 있는 카카오와 결합할 경우 모바일 광고 사업에서 높은 시너지를 기대해볼 수 있다.”(신한금융투자증권 공영규 연구원) 페이스북코리아는 지난해 광고 매출로만 카카오의 절반에 가까운 1천억원을 벌었다. ‘소리 없이’ 돈을 긁어모은 셈이다. “카카오는 다음의 검색·지도·쇼핑 등 자산을 활용해 게임에만 집중돼 있던 비즈니스 모델(1분기 매출 비중 73%)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카톡 플러스 친구를 활용한 광고 및 카카오스토리 동영상 광고 등이 예상 가능하다”(LIG투자증권 정대호 연구원)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다음카카오가 커뮤니케이션뿐만 아니라 각종 정보와 생활 플랫폼으로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두 회사의 화학적 융합이 이뤄져야 한다. 이석우 카카오 대표는 “세계 모든 이용자들에게 가치 있는 서비스를 하려면 현금도 중요하지만 다음이 갖고 있는 훌륭한 자원인 인재 등이 합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직원은 2600여 명, 카카오는 600여 명이다. 두 회사는 당분간 독자적으로 운영되다가 순차적으로 통합될 계획이다. 한동안은 다음 본사가 위치한 제주도와 서울 한남동 사무소, 그리고 카카오의 경기도 판교 본사까지 ‘한 지붕 세 사무소’ 체제가 불가피하다. “두 회사는 참여와 개방, 공유의 정신과 수평적 기업문화 등 주요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최세훈 다음 대표)지만, 직원들끼리 직책이 아닌 영문 이름을 서로 부를 정도로 아직 ‘벤처’ 같은 카카오와, 강한 리더십 없이 느슨한 조직 운영이 최대 장점이자 단점인 다음의 조직문화 사이에는 분명 간극이 존재한다.
독점 체제에서 과점 체제로?더구나 두 회사가 합쳐지면서 조직이나 사업 개편을 하는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하다. 네이버와 한게임이 포털과 게임으로 각자 영역을 확보하고 있던 2000년 합병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마이피플과 카카오톡, 스토리볼과 카카오페이지, 카카오그룹과 쏠그룹 등 다음과 카카오의 서비스 영역은 상당 부분 겹친다. 다음의 한 관계자는 “애초에 설계도를 갖고 시작한 일이 아니고 법적으로 한 회사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아직 구체적인 서비스에 대한 논의를 하기엔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다음카카오의 등장이 이용자들의 만족도를 높일지도 미지수다. 네이버와의 경쟁이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토양이 되는 건 맞다. 하지만 단지 네이버 독점 체제에서 네이버-다음카카오 과점 체제로 사업자 기반만 바꿔놓을 우려도 있다. 이동통신 시장처럼 자칫 또 다른 ‘공룡’ 사업자만 키우는 꼴이 될지 모른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은 배의 존재 이유가 아니다.” 지난해 한 행사장에서 만났던 김범수 의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그는 자기 삶의 목표가 ‘더 나은 세상’이라고 했다. 카카오를 통해 모두가 꿈을 이룰 수 있는 모바일 생태계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얘기였다. 그가 카카오 다음으로 갈아탄 ‘다음카카오’는 어떤 항로를 새로 개척해나갈까? 모바일이라는 바다가 출렁이고 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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