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편법으로 만든 돈’으로 그룹 경영권을 승계한다는 굴레를 씌울 것인가. 이건희 회장이 5월10일 밤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지면서 삼성그룹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5월8일 ‘어버이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삼성SDS 주식 870만4312주(지분 11.25%)를 현금화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995년 아버지 이건희 삼성 회장으로부터 받은 종잣돈으로 만든 주식이다. 비상장주식회사 삼성SDS는 이날 이사회를 열어 올해 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기로 결정했다.
이 부회장에게 씌워진 불법 승계의 굴레
삼성SDS 주식은 상장 추진 기대감에 5월9일 장외가격 종가 기준으로 20만5천원까지 값이 올랐다. 상장 뒤 삼성SDS 주식값이 뛰면 이재용 부회장은 870만 주를 매각해 1조원이 넘는 현금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은 1990년대 말 삼성엔지니어링과 제일기획 주식 등을 이런 방법으로 팔아 수백억원을 벌어들인 바 있다. 삼성SDS는 그룹 지배구조의 하단에 있어 이재용 부회장 등 3세가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기 위해 지분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도 삼성SDS 지분 3.9%를 팔아, 계열 분리 때 자신의 회사 지분을 사들일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삼성SDS의 상장 추진은 삼성이 이건희 회장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는 본격 신호탄이다. 이건희 회장은 5월10일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집 근처 순천향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삼성서울병원까지 갈 수 없을만큼 위급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건희 회장은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져 심장 혈관확장(스텐트 삽입) 시술을 받고 입원중이다. 삼성서울병원은 이건희 회장에 에크모(환자의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하는 체외막산소화 장치)를 부착했다가 12일 오전 뗐다고 밝혔다. 고령의 이건희 회장 이후를 예전보다 급격히 준비해야할 상황에 들어선 것이다.
또 삼성SDS의 상장 추진은 이재용 부회장이 자신의 힘이 아닌 그룹 차원에서 만들어진 시나리오대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삼성SDS 상장을 통해 이재용·이부진·이서현 3남매가 승계를 위해 세금을 내거나 핵심 계열사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돈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자신의 리더십을 통해 그룹 경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보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건이나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과거의 사건에 묶여 있음을 보여주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IMAGE2%%]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과정이 그룹에서 오랫동안 준비한 것임을 보기 위해선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은 1994~96년 이건희 회장에게서 60억원을 증여받는다. 이때 16억원을 세금으로 내고 나머지 돈으로 계열사 지분 매매에 나선다. 1995~97년 이재용 부회장은 에스원, 삼성엔지니어링 등 비상장 주식을 매입한 뒤 이들 기업이 상장하면 주식을 되파는 방법으로 560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제일기획의 CB도 매입해 주식으로 전환한 뒤 팔아 140억원의 수입을 올린다. 계열사 주식 거래로 막대한 돈을 만든 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 삼성SDS의 지분을 확보한다. 증여세 16억원만 내고 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1999년엔 삼성SDS가 321만7천 장의 BW를 발행해,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사장, 이서현 사장 등 이건희 회장의 자녀에게 나눠줬다. BW는 일정 기간이 지난 뒤 특정한 가격에 회사의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준 사채다. 당시 이건희 회장 등이 적정가격보다 낮은 가격(7150원)에 이 권리를 나눠준 것을 두고, 2009년 법원은 배임과 조세포탈 등으로 유죄를 선고한다. 이재용 부회장은 2002년 BW를 전량 주식으로 전환해 삼성SDS 지분 9.1%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삼성그룹은 삼성SDS에 계열사 일감을 몰아줬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3년 ‘대규모기업집단현황공시’를 보면, 2012년 삼성SDS의 매출 4조4236억원 가운데 그룹 계열사 물량은 3조4383억원으로 77.73%를 차지했다. 일감을 몰아준 덕에 삼성SDS는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이 부회장 등이 가진 주식 가치도 함께 상승했다. 삼성SDS뿐만 아니라 삼성에버랜드, 삼성SNS 등 삼성그룹의 비상장회사 매출은 이렇게 확대됐다.
실패는 있었지만 성공은 없어
이 과정이 삼성그룹의 작품이었음을 2007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폭로했었다. 당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JY 유가증권 취득 일자별 현황’이란 문건을 공개했고, 삼성 비자금 사건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이 문건을 보면 재용씨의 계열사 주식 매매가 각 계열사의 개별 사안이 아니라 경영 세습을 목적으로 그룹 차원에서 진행된 단일 사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계열사 지분을 확보할 당시 이재용 부회장은 20대 후반으로 유학생 신분이었다.
반면 이재용 부회장은 유학에서 돌아온 뒤 뛰어든 인터넷 사업에선 실패를 맛본다. 2000년 초 벤처 열풍이 한창일 때 이 부회장은 e삼성 등 10여 개 인터넷 기업을 만들었으나,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이 기업들은 부실화됐다. 삼성 계열사들이 결국 ‘구원투수’로 등장해 관련 회사의 주식을 인수해 뒷수습을 한다. 참여연대는 2005년 삼성 계열사들이 이재용 부회장의 회사였던 e삼성, e삼성인터내셔널, 시큐아이닷컴 등 회사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400억원에 가까운 손실을 봤다고 집계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그 뒤 별도의 사업을 내세우는 대신 삼성전자에 집중한다. 물론 한 번의 실패를 통해 경영자가 더 많이 성장한 경우는 허다하게 많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이 경험을 통해 다른 사업을 성공시켰음을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는 아직 알려진 바 없다.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은 배터리 사업 등 모든 비즈니스의 실무를 뛰고 있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과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 최근 ‘마하경영’을 주창하는 등 건재한 상태에서 이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전면으로 등장하기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증권가에서는 이 때문에 아들인 이 부회장이 총수 일가 가운데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데도 한동안 이부진 사장 등과 그룹 경영권을 두고 경쟁할 수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정의선 부회장이 주요 계열사의 등기이사 등을 맡으며 경영 실적을 쌓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상황이다.
삼성그룹의 승계 과정은 이제 속도를 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시작되면서 바람이 분 사업 조정은 이제 승계 준비로 넘어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지난해 제일모직 패션 부문과 에버랜드의 합병을 시작으로, 삼성이 전자 부문, 금융 부문, 중화학 부문 등 부문별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있을 승계를 대비한 포석이다.
소신과 리더십 발휘하도록 해야
문제는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자금은 시나리오대로 확보하고 있지만, 경영 리더십에 대해선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시각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김상조 소장은 “삼성그룹이 이재용 부회장을 계속 온실 속에 가둬놓지 말고, 스스로 자신의 소신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은 5월1일 미래전략실의 팀장(사장급)들을 대거 삼성전자로 발령 내며 인적 개편을 마쳤다. 한 재계 인사는 “미래전략실의 힘을 빼고 이 부회장이 있는 삼성전자의 위상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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