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다니는 정성윤(28)씨는 지난해 1월 ‘생애 첫 차’로 친환경차인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샀다. 환경에 대한 걱정이 남달랐던 건 아니다. 색다른 차를 타고 싶었다. 국민차인 쏘나타의 장점은 갖췄으면서도 디자인은 튀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마음에 들었다. 경제성도 따졌다. 하이브리드의 연비는 21km/ℓ(당시 공인 연비 기준)로 일반 가솔린 모델(14.8km/ℓ)보다 40% 이상 높았다. 400만원 남짓 비싼 차 가격을 감안해도, 매력적인 연비였다. 친환경차에 주어지는 세제 혜택도 가격 부담을 덜어줬다. 취득·등록세에서 130만원을 아꼈다.
“남보다 빨리 탔다”는 자부심 생겨나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정씨는 하이브리드차에 푹 빠졌다. 평일에는 왕복 20km 거리를 출퇴근하고 주말에는 시내 외곽으로 자주 나가는데도, 기름값은 한 달 30만원을 넘지 않는다. 엔진 소음이 적어 운전도 편안하다. 깨알 같은 장점도 많다. 서울 시내에선 터널을 통과할 때 혼잡통행료가 무료고, 공용주차장에선 주차비가 반값이다. 그는 “하이브리드차가 주는 소소한 기쁨이 있다. 남들보다 일찍 친환경차를 타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도 생겼다”고 말했다.
연비는 높고 온실가스 배출은 적은 친환경차의 대표주자인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지가 넓어졌다. 최근 새로운 하이브리드 모델이 잇따라 출시되는 덕분이다. 하이브리드차는 도로 상태에 따라 엔진과 전기모터를 번갈아 사용하는 방식의 차를 뜻한다.
기아차는 지난 12월16일 준대형급 세단인 K7의 하이브리드 모델 ‘K7 하이브리드 700h’를 선보였다. 기아차의 하이브리드차 라인업이 준중형(2009년 포르테 하이브리드 출시)과 중형급(2011년 K5)에서 준대형급으로 확대된 것이다. 현대차 역시 전날 준대형급 ‘그랜저 하이브리드’를 내놨다. 지금까지 현대차에도 하이브리드 모델은 준중형 아반떼(2009년)와 중형급 쏘나타(2011년)만 있었다.
K7과 그랜저 하이브리드에는 현대·기아차가 개발한 ‘세타Ⅱ2.4MPI 하이브리드 엔진’과 ‘35kW급 고출력 전기모터’가 탑재된 덕에 최대출력이 총 204마력(ps)에 이른다. 일반 가솔린 엔진을 단 K7과 그랜저의 최고출력(201마력)을 다소 앞서는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두 하이브리드 모델의 연비는 16km/ℓ(복합연비 기준)로 일반 모델(11.3km/ℓ)보다 뛰어나다. 예를 들어 그랜저 하이브리드를 1년간 타면 같은 급의 일반 모델을 운전하는 것보다 연간 98만원(2만km 주행, 휘발유는 ℓ당 1877원)을 아낄 수 있다. 그 덕에 환경이 받는 부담은 크게 줄어든다.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05g/km, K7 하이브리드는 106g/km에 그친다. 두 차량의 일반 모델이 내뿜는 이산화탄소(155g/km)는 그보다 48%나 많다. 다만 하이브리드 모델에는 엔진 이외에 모터와 배터리가 추가로 들어가는 탓에 차 가격이 부담된다. K7과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가격은 일반 모델보다 400만~500만원 비싼 3400만~3500만원이다.
기아차와 현대차는 기존 중형급 하이브리드의 성능을 개선한 ‘K5 하이브리드 500h’와 ‘쏘나타 하이브리드 2014’도 각각 내놨다. 두 하이브리드 모델의 연비는 16.8km/ℓ로, 일반 모델을 탔을 때보다 기름값을 연간 100만원가량 절약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30~40대 소비자의 달라진 욕구현대·기아차가 하이브리드 모델을 준중형·중형급에서 준대형급으로 강화한 건 새로운 하이브리드 고객층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기존 하이브리드차의 주고객은 연비 효율에 민감한 30대 후반~40대 초반 소비자였다. 그 이상의 연령대가 선택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모델은 없었다. K7과 그랜저 하이브리드가 출시된 이후, LG그룹이 새로 승진한 임원에게 두 모델을 제공하기로 한 게 상징적인 예다. 여기엔 LG화학이 현대·기아차에 모터와 배터리를 제공하는 파트너라는 점이 작용했지만, 국산 프리미엄 하이브리드차가 처음 대기업 임원용 차량으로 쓰이게 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김중대 기아차 국내마케팅 팀장의 설명이다. “하이브리드의 주고객인 30대 후반~40대 초반 소비자들은 5년 전만 해도 중형차를 탔다. 그러나 지금은 준대형차를 원한다. 또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는 40대 중반 이상 소비자도 하이브리드차에 관심이 생겼다. 이러한 새로운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하이브리드차 라인업을 확대했다.”
세계 완성차 업체와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현대·기아차의 전략적 목적도 크다. 최근 완성차 업계의 화두 중 하나는 ‘미래 성장동력인 친환경차 시장을 누가 선점하느냐’다. 각국이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 친환경차에는 혜택을 주고 정반대인 차에는 불이익을 주는 환경 규제 정책을 도입했거나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2015년부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차를 사는 소비자에겐 부담금을, 배출량이 적은 차를 사는 소비자에겐 보조금을 주는 ‘저탄소차협력금제도’를 실시하기로 했다. 2024년까지 수도권 전체 등록 차의 20%인 170만 대를 친환경차로 보급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조처 중 하나다. 현대·기아차가 수출과 내수시장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가지려면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친환경차에는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 방식들은 기술과 인프라 부족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개발·상용화 속도가 느려, 당장은 자동차 업체들이 하이브리드차 출시에 집중하고 있다. 실제 세계 친환경차 시장에서 하이브리드차는 90% 이상을 차지한다.
국내 시장을 향한 도전이 만만치만은 않다. 지난 11월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판매량은 892대로, 1년 전보다 53.4%나 줄었다. K5 하이브리드도 전년 동월 대비 48.4% 급감한 601대가 팔리는 데 그쳤다. 소비자들이 아직은 기술력이 앞선 일본·독일의 하이브리드차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도요타 프리우스, 시빅 하이브리드 등 일본 하이브리드차의 연비는 18.9~23km/ℓ에 이른다. 현대·기아차 하이브리드 중에서 가장 고효율인 쏘나타·K5(16.8km/ℓ)를 크게 앞지른다. 국내 소비자들이 폴크스바겐 골프, BMW320d 등 연비와 주행 성능이 모두 뛰어난 유럽산 디젤차를 선호하는 것도 현대·기아차가 넘어야 할 장벽이다.
“성장할 수밖에 없는 트렌드”강동완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렇게 전망했다. “아직까지 국내에는 하이브리드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다. 국내·외국산을 합쳐 전체 승용차 판매량의 2.3%에 불과하다. (급정거·급가속) 운전 습관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하이브리드차의 연비 효능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해서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만큼 하이브리드차가 성장할 수밖에 없는 트렌드임에는 확실하다.” 새로운 하이브리드차 출시를 계기로 친환경차에도 눈길을 주는 트렌드가 생겨날지는 소비자들의 선택에 달렸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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