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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시대’ 한발 성큼?

‘포스트 이건희 시대’ 계승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입지 확대… 경영 비전과 핵심 계열사 지분 없는 점 난제로 남아
등록 2013-10-09 17:32 수정 2020-05-03 04:27

삼성전자가 기록을 새로 썼다.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연결기준)에 매출 59조원과 영업이익 10조1천억원을 올렸다고 10월4일 잠정 발표했다. 영업이익만 놓고 보면 2분기에 올렸던 사상 최대 실적(9조5300억원)을 다시 갈아치운 것이다. ‘분기 영업이익 10조원’ 시대가 처음 열린 것이기도 하다. 시장의 반응은 다소 미지근했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전 거래일과 같은 141만8천원(0.01%)에 장을 마쳤다. 연초에 비해선 여전히 6%가량 떨어진 수준이다. 주된 수익 창출원인 스마트폰과 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터라 지속적인 실적 향상에 의심을 품는 ‘성장한계론’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여전히 꺾이지 않고 있는 탓이다.

FT “경이적인 성장세 이어갈지 의구심”

이번 삼성전자의 실적 발표는 삼성그룹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적잖은 의미가 있다. 그룹 총매출의 70% 가까이가 삼성전자에서 나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룹의 유력한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능력을 본격적으로 평가받는 시험 무대로 여겨진 까닭이다. 이 부회장은 33살 때인 2001년 상무보로 처음 임원을 달았지만 주로 최고고객책임자(CCO)나 최고운영책임자(COO) 등 경영 지원 업무를 맡아오다가, 지난해 12월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 전반을 챙기는 최고경영진으로서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앞줄 가운데)이 지난 5월31일 ‘2013년 호암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함께 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그 뒤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등 세 자녀가 따르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앞줄 가운데)이 지난 5월31일 ‘2013년 호암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함께 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그 뒤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등 세 자녀가 따르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그러나 잇따른 실적 향상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에 대한 시장 평가는 아직 냉정한 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 증권업계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상 최대 이익이긴 하지만 (이 부회장에 대한) 증권업계의 컨센서스는 호의적이지 않다. 냉정하게 말해 이 부회장이 지금까지 실적에 기여한 게 없다. 오히려 요즘 들어 갤럭시 시리즈(판매)가 생각보다 멈칫하는 느낌이고, 시스템LSI(대규모 집적회로) 부문에서도 애플과 비즈니스가 틀어지면서 실망스러운 성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대체로 (이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에 대해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분위기다. 갤럭시 시리즈가 고비를 맞는 상황에서 조만간 비전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해외 언론도 여전히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3분기 실적 발표 직전인 지난 10월1일 영국의 유력 경제신문 인터넷판은 ‘삼성그룹의 유력 후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이 힘든 투자자 시험에 직면했다’(Samsung heir apparent Lee Jae-yong faces tough investor test)는 제목의 기사에서 “투자자들은 과연 이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이뤄진 뒤에도 그동안 보여줬던 것과 같은 경이적인 성장세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룹 내에서 ‘포스트 이건희 시대’의 계승자로서 이 부회장의 입지는 점점 확대되는 모양새다. 최근 의미 있는 움직임이 연달아 있었다. 삼성에버랜드(이재용 부회장 지분율 25.1%,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지분율 각각 8.37%)는 지난 9월23일 제일모직의 모태인 패션사업 부문의 자산과 인력을 1조5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실적 악화에 시달리는 패션사업을 떼어내고 전자재료와 화학 등 전자 소재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게 제일모직 쪽 설명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사업 조정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세 자녀에게 그룹의 경영권을 나눠 물려주기 위한 계열 분리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에버랜드는 삼성그룹 순환출자 구조(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카드)의 정점에 있는 사실상의 지주회사인데다, 이재용 부회장 등 세 남매가 지분을 함께 보유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계열사 중 하나라는 이유에서다. 만약 이번 사업 조정으로 이 회장의 승계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이 맞다면, 그 방향은 세간의 예상보다 이 부회장에게 더 유리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간 재계와 증권업계에서는 대체로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등 전자·금융 계열사의 경영권은 이 부회장이, 호텔신라·삼성물산 등 서비스·건설 계열사는 이부진 사장이, 제일모직·제일기획 등 기타 계열사는 이서현 부사장이 갖게 될 것이라고 추정해왔다. 그런데 막내의 몫인 줄 알았던 패션사업이 에버랜드로 옮겨가면서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에버랜드의 사업 규모가 더 커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제일모직이 완전한 전자 소재 기업으로 변신한다면 삼성전자와 사업 연관성이 더 커지는 만큼, 제일모직 역시 이 부회장의 영향권 아래 들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에겐 또 다른 호재도 있다. 에버랜드의 패션사업 부문 인수 발표 나흘 뒤인 9월27일 삼성SDS는 사업 시너지 극대화를 위해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네트워크서비스·솔루션 업체 삼성SNS(45.69%)를 흡수합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삼성SDS에서 이 부회장의 지분율은 8.81%에서 11.26%로 올라가는 효과가 발생한다. 한마디로 이 부회장의 미래 지갑이 두둑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지주회사 격인 에버랜드가 이 부회장이 적은 지분으로도 그룹 전반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게 해주는 계열사 노릇을 한다면, 내부 일감 몰아주기로 급성장한 삼성SDS는 이 부회장이 향후 계열사 지분 확보에 필요한 현금을 조달하는 창구가 돼줄 계열사로 꼽혀왔다.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에버랜드와 달리, 핵심 순환출자 구조에서 벗어나 있어 부담이 없는 삼성SDS는 언제든 상장하면 이 부회장에게 커다란 시세차익을 안겨줄 수 있는 까닭이다. 이건희 회장이 1999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불법·편법 저가 발행을 통해 세 자녀에게 두 회사의 지분을 미리 넘겨줬던 게 우연만은 아닌 셈이다.

삼성 “시너지 위한 사업조정일 뿐”

또 다른 연구원의 분석이다. “세 남매의 에버랜드 지분 취득을 통해 삼성의 소유구조(지분) 승계는 1990년대 말에 사실상 마무리됐다. 남은 건 자식들이 (계열사를) 어떻게 나눠갖느냐다. 이번 사업 조정을 보면 이 부회장이 핵심 계열사를 갖는 게 분명해 보이고, 나머지는 딸들이 얼마냐 챙기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삼성그룹은 이러한 해석에 선을 긋고 있다. 삼성 쪽 관계자는 “늘 해오던 대로 각 부문이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사업 조정을 한 것뿐이다. 자녀에게 사업을 넘기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 쪽 해명과 달리, 재계와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앞으로 삼성이 추가 사업 조정, 자녀 지분율 확대, 계열 분리를 통해 3세로의 경영권 승계를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 등 세 남매가 삼성에버랜드를 제외하곤 그룹 내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분을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은 이건희 회장에겐 숙제다. 11조원이 넘는 주식을 자녀들에게 계열사 지분 확보를 위한 실탄으로 쥐어줄 수는 있지만, 현행법상 절반은 세금으로 떼어야 한다. 현재의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를 수직적인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 자녀들이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반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면서 계열사를 쪼개 갖는 데 유리하긴 하다. 그러나 삼성이 원하는 대로 지금처럼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유지하면서 지주회사 체제로 변신하려면, 공정거래법·금융지주회사법 등이 개정돼야 한다.

별도 지주회사 만들어 지분 넘길 듯

김진방 인하대 교수(경제학)의 전망이다. “이건희 회장은 아마 SK그룹이 그랬듯, 별도의 지주회사를 만들어 실질 지주회사인 에버랜드 밑에 두는 변신을 꾀할 거다. 자녀들이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남은 지분을 넘겨줄 거다. 자녀에게 바로 주면 세금이 너무 많으니, 아마 다른 계열사나 공익 재단을 활용할 거다. (이런 승계 과정 때문에) 이 회장도 골치가 아플 거다. 중요한 건 이 과정에 이 회장이 또다시 불법·편법을 저지르지 않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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