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과 이자를 깎아줄 테니 빚내서 집을 사라.’ 정부가 내놓은 ‘8·28 전·월세 시장 안정 방안’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렇다. 특히 집을 살 여력이 있지만 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해 전세에 머무는 중산층이 타깃이다. △연 1~2% 금리의 20년 만기 모기지(Mortgage·담보대출) 도입 △취득세율 영구 인하 △주택 구입자금 대출 지원 확대 등이 골자다.
집주인 손실 비용, 정부·납세자 부담정부가 선보인 깜짝 상품은 ‘수익·손익공유형 모기지’다. 국민주택기금에서 연 1~2%의 이자로 집값의 최대 40~70%까지 빌려준 뒤 나중에 주택을 팔 때 차익이 나면 기금과 대출자가 나눠갖는 제도다. 수익공유형은 수익만 나눠갖고 손실은 대출자가 떠안지만, 손익공유형은 수익·손실 둘 다 일정 부분 서로 분담한다. 기존 생애최초주택 구입자금 대출금리(연 2.6~3.4%)보다 저렴해 전세 수요자가 돈을 빌려 집을 사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국토해양부 장우철 주택기금과장은 “현재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60%에 달한다. 집값의 40% 이상을 대출하는 이 모기지에 전세금을 보태 집을 장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익·손익공유형 모기지를 대출받을 수 있는 대상은 부부 합산 연소득이 7천만원 이하인 무주택자다. 우선 올해 안에 생애최초주택 구입자 3천 가구에 한해 시범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사들이려는 주택은 전용면적 85㎡ 이하이면서 값이 6억원 이하인 아파트여야 한다. 연립·단독 주택은 빠졌다. 또 기존 아파트나 미분양 아파트만 해당되고 신규 분양 아파트는 안 된다. 지역도 수도권과 지방 6대 광역시로 한정했다. 최대 대출 한도는 2억원인데 집값의 70%(수익공유형)와 40%(손익공유형)까지만 빌려준다.
예를 들어 2억원짜리 집을 산다면 각각 1억4천만원과 8천만원을 국민주택기금에서 빌릴 수 있다. 20년 동안 원금과 이자를 갚아나가다 20년째가 되면 집값을 평가한다. 20년 전 샀을 때보다 얼마나 올랐는지 감정가나 실거래가로 계산한 다음 차액의 일정 비율을 국민주택기금이 가져간다. 참여연대는 “집값이 올라야 국민주택기금이 손실을 입지 않는 구조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해 집값이 올라가기 어려운 상황이라서 공공임대주택 건설 등 저소득층을 위해 투자해야 할 공적자금의 손실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빚내서 주택을 구입한 집주인이 부담해야 할 손실 비용을 정부, 나아가 납세자가 떠안는다는 의미다.
취득세 영구 인하, 지방 세수 결손취득세 영구 인하도 마찬가지다. 이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다주택자다. 예전에는 이미 집이 있는 사람이 추가로 집을 사면 주택 가격에 상관없이 4%의 취득세를 물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차등이 없어진다. 다주택자든 집을 한 채만 갖고 있든 새로 사는 집값에 따라 6억원 이하의 경우엔 취득세가 현재 2%에서 1%로 낮아지고, 6억원 초과~9억원 이하는 2%를 적용받는다. 9억원 초과는 현재 4%에서 3%로 낮아진다.
예를 들어 5억원짜리 집을 산다고 하자. 집을 한 채만 갖고 있다면 지금은 취득세로 1천만원(취득세율 2% 적용)을, 다주택자라면 2천만원(4% 적용)을 내야 하지만 앞으로는 둘 다 500만원만 내면 된다. 10억원짜리를 사면 지금은 모두 4천만원(취득세율 4% 적용)을 내야 하지만 3천만원으로 부담이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지방 세수가 많이 줄어든다. 취득세가 지방 세수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탓이다. 안전행정부는 6억원 이하 주택 취득세를 1%로 영구 인하하면 지방자치단체의 세수 결손 규모가 연간 2조4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정부는 또 국민주택기금에서 지원하는 주택 구입자금 대출의 자격 요건은 완화하고 대출 한도는 크게 늘렸다. 지금까지는 부부 합산 연소득이 4500만원 이하인 무주택 가구가 3억원 이하의 주택을 살 때 1억원까지만 연 4%의 이자로 빌려줬지만, 앞으로는 소득은 6천만원 이하, 집값은 6억원 이하, 최대 대출액은 2억원으로 대상을 넓혔다. 금리도 소득이나 만기별로 2.8~3.6%로 낮췄다. 지난 4·1 부동산 대책 때도 대출받을 수 있는 최저소득 기준을 높이고 금리를 내렸는데 이번에 또다시 손을 본 것이다.
이처럼 정부 부동산 대책의 무게중심이 빚 내 집을 사도록 유도하는 쪽에 맞춰짐에 따라, 가계부채 증가 속도엔 더욱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실제로 가계부채는 지난 2분기에 다시 큰 폭으로 증가했다. 1분기에 3조원가량 줄었던 주택 대출이 5조5천억원 늘어난 것을 포함해 4·1 부동산 대책 이후 가계대출은 2분기 석 달 동안에만 17조5천억원 증가했다. 2분기 말 현재 가계부채 잔액은 980조원(가계신용 기준)에 이른다. 가계부채, 특히 주택담보대출은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한 상태다.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320조원으로 일시상환 대출이 102조원(32%), 분할상환 대출이 218조원(68%)이다. 예전처럼 집값이 계속 올라가는 상황이라면 집을 팔아 대출금을 갚을 수 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집값은 하락세로 돌아선 상태다. 집주인이 대출금을 갚을 길이 막혀 있다는 뜻이다. 5~6년 전부터 주택담보대출 만기가 도래할 때마다 1년씩 상환 기간을 연장하며 사실상 ‘돌려막기’ 하는 채무자가 늘어난 배경이기도 하다. 해마다 만기와 거치 기간을 연장하는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100조~120조원 수준인 데 반해, 이 가운데 제때 빚을 갚는 비율은 10% 안팎에 그친다.
유럽, 정부가 임대료 인상률 관리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김병권 부원장의 진단이다. “정부는 번지수를 한참 벗어난 부동산 대책을 내놓아 서민들을 곤욕스럽게 한다. 집값도 전셋값도, 그리고 월세 임대료도 모두 소득에 비해 절대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다는 점이 문제다. 정체돼 있는 소득에 비해 전세와 월세의 기준이 되는 집값이 절대적으로 높다는 엄연한 현실을 정부는 자꾸 잊는다. ”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20대 모임인 '민달팽이유니온'의 권지웅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마치 갈증으로 죽어가는 사람에게 소금물을 주는 것과 같은 꼴이다. 소금물을 마시면 당장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지만 체내 염분 농도가 높아져 시간이 지나면 도리어 더 고통스러워진다. 전·월세 상한가 도입 등으로 소득과 집값의 격차를 줄이는 게 아니라, 정부의 정책대로 돈을 빌려주는 것으로 그 격차를 계속 떠받치면 결국 악순환에 빠진다. 더 이상 대출을 받을 수도 없는, 받아서도 안 되는 사람들이 더 큰 빚의 굴레에 갇힌다.”
합리적인 대안으로 꼽히는 건 재계약 때 인상률을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와 세입자가 원하면 전세 계약을 한 번 연장해주는 계약갱신청구권 등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2년의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 증액되는 전·월세에 대해서만 인상률을 연 5%로 제한한다. 계약이 끝날 때는 얼마로 올리든 세입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반면 독일·영국·프랑스 등 많은 나라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임대료 인상률을 정부가 관리한다. 독일의 경우 민법에 계약갱신청구권과 함께 지자체가 정한 공정임대료 이상으로 임대료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인상률 상한제를 명시하고 힜다. 독일의 평균 주택 임대차 기간이 13년이고 4명 중 1명은 20년 넘게 한집에서 사는 이유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세입자 2명 중 1명이 2년마다 집을 옮겨다닌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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