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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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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이로 회사를 팝니다

등록 2012-09-20 17:08 수정 2020-05-03 04:26

직원들 월급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회사가 돈벌이를 못한다고 21명 직원들의 생계줄을 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노후자금인 적금과 보험까지 해약해도 월급마저 줄 수 없게 된 지난 3월, 중소기업 사장인 강성홍(52·가명)씨는 연 24~30% 고금리 사채를 끌어다 쓰기 시작했다. 은행과 보증보험회사들은 5억원의 빚이 있는 그에게서 일찌감치 등을 돌렸다. 그는 그렇게 6개월 동안 매달 5천만원씩 사채빚을 내 버티고 있다. 주방용품이란 게 원래 경기에 따라 부침이 심했지만 그래도 지난해까지는 한 달에 1억2천만원의 매출이 올려 그럭저럭 회사가 유지됐다. 그러나 올해 들어 경기 불황에 문을 닫는 음식점이 늘어나 매출이 7천만원 밑으로 뚝 떨어졌다. 그런데도 연료비 5천만원, 인건비 3천만원, 이자 1천만원, 4대 보험료 500만원…. 돈은 끝도 없이 들어갔다. “1995년부터 일궈낸 회사를 어떻게든 지켜내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젠 누가 인수만 해준다면 당장이라도 팔고 싶다. 추석이 지나도 숨통이 안 트이면 우리 같은 중소기업들은 다 쓰러질 것이다.”

사채로 연명하는 중기 사장들
회사를 포기하는 중소기업 사장이 늘고 있다. 저조한 매출과 불어나는 빚을 감당 못하는 이들은 스스로 인수·합병(M&A) 시장을 찾는다. 이들에겐 선택권이 없다. 회사가 더 망가지기 전에 새 주인을 찾아야 얼마라도 빚을 갚고, 회사도 살릴 수 있다. 회생 시기를 놓치면 회사는 부도를 맞고 영원히 퇴출되거나 은행한테 강제 구조조정을 당해 껍데기만 남게 된다. 자식처럼 온 힘으로 일궈낸 회사가 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담담히 지켜볼 사장은 없다.
19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헤쳐온 이들을 끝내 M&A 시장으로 밀어넣은 건 경기 불황이 가져온 내수시장 위축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생활이 팍팍해진 소비자가 지갑을 닫자 중소기업들은 휘청대기 시작했다. 전체 312만 개(2010년 기준) 중소기업 총매출의 70%가량이 내수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탓이다. 대기업은 수출과 내수시장의 포트폴리오가 상대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어 불황을 버틸 힘이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그저 소비자의 지갑이 열리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각종 통계지표는 중소기업이 겪는 심각한 경영난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 7월 중소 제조업체의 평균가동률은 70.3%까지 떨어져 2009년 8월(69.1%)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추석 대목을 앞두고도 물건 주문이 없어 쉬고 있는 공장이 많다. 매출 감소는 유동성이 부족한 중소기업에는 자금난으로 직결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748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추석자금 수요조사’에서 2곳 중 1곳이 ‘현재 자금 사정이 곤란하다’고 답했다.
한계 상태에 이르러 부실화되는 회사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 9월 시중은행들은 1335개 중소기업을 구조조정 후보로 추려 금융 당국에 전달했다. 금융위기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그나마 이는 은행에서 빚을 50억~500억원 얻을 정도로 규모가 큰 중소기업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수억원의 빚 때문에 유동성 위기에 몰린 영세업체들은 얼마가 되는지 추정조차 안 된다. 2010년 이미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중소 제조업체가 전체의 15%였는데 지금은 그 규모가 2~3배 늘었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조경업체를 운영하는 인성식(47·가명)씨는 “매년 3~4건씩 해오던 정부·공공기관 공사를 올해는 단 한 건도 맡지 못했다. 다른 조경업체가 따낸 공사의 일부를 불법으로 하청받아 하고 있다”며 “빠듯한 공사비의 10~15%를 원청업체에 떼주고 나면 오히려 적자다. 올해 직원을 7명에서 3명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매수자 알선 정부 지원제도 없어
경영 환경이 최악으로 치닫자 부도나 강제 구조조정만은 피하려는 중소기업들이 M&A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여기선 중개업체들이 매각을 원하는 중소기업의 재무 상태와 신용 위험, 소송 관련 여부 등을 파악한 뒤 관심 있는 매수자가 나타나면 연결해주고 수수료로 매매가의 3%를 받는다. 회사 매각을 원하는 중소기업에 매수자를 알선해주는 정부 지원제도가 없는 탓이다. 종종 중소기업 매매를 중개하는 일부 회계·법무법인을 제외하고 현재 중소기업만 전담으로 하는 중개하는 업체가 20여 곳에 이른다. 이 업체들은 각자 200~300개의 매물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만 해도 업체마다 매물이 한 달 평균 10개 미만으로 나왔지만 올 들어선 15~20개씩 쏟아진다는 게 여러 업체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경기에 민감한 건설업체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서비스업·제조업 등 다양하다. 일부 중소기업 사장은 중개업체 홈페이지를 통해 미래 인수자에게 ‘기술을 개발해 특허등록도 했지만 자금이 부족해 능력 있는 인수자를 찾는다. 개발 제품이 세상에 빛을 보기 바란다’ ‘맨주먹으로 회사를 키웠다. 좋은 분이 맡아달라’와 같은 당부의 말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사장들의 절박한 바람과 달리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매수자는 드물다. 가격이 지난해보다 20~40% 떨어졌는데도 경기 전망이 워낙 불투명한 탓이다. 중소기업 매매를 전문으로 중개하는 스타브릿지엠앤에이의 김도성 이사는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올해보다 전체 매물은 적은데도 한 달에 6~7건 정도 평균 계약이 성사됐다. 그런데 올 들어선 3~4건에 불과해 매물 적체가 심하다.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큰 건설사나 제조업체는 거래가 거의 안 된다. 최근엔 도급한도 100억원인 종합건설업체가 10억원에 나왔다가 6억6천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정책을 핵심 국정 과제의 하나로 추진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는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가 지난 6월29일 주최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인한 중소 상공인들의 피해 상황을 듣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정책을 핵심 국정 과제의 하나로 추진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는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가 지난 6월29일 주최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인한 중소 상공인들의 피해 상황을 듣고 있다.

기업 생태계 파괴, 불황 견뎌낼 여력 없어

중소기업 사장들이 회사에서 손을 떼려는 건 경기 불황 탓만은 아니다. 경기엔 늘 굴곡이 있었지만 이들은 최선을 다해 살아남았다. 그런데도 이번 위기를 넘지 못하는 건 각종 불공정행위로 기업 생태계가 파괴돼 중소기업이 불황을 견뎌낼 수 있는 ‘임계치’가 낮아진 탓이다. 이명박 정부에선 지난 2년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동반성장 등 그럴싸한 말이 쏟아졌지만 구조적 문제는 더 악화됐다. 대기업들은 집단에서 나오는 일감을 중소기업에 나눠주는 데 더 인색해졌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보면, 42개 대기업 집단의 내부거래 금액은 2010년 144조원(내부거래 비중 12.1%)에서 지난해 184조원(13.4%)으로 40조원 증가했다. 11만 개 중소 제조업체의 연간 매출과 맞먹는 일감이 대기업 집단 내부에서 처리된 것이다. 그나마도 중소기업에 주는 일감에 대해선 단가를 쥐어짠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ㄱ산업은 국내 모든 자동차 완성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덕에 매년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늘 운영자금에 쪼들려 지금은 은행빚이 30억원까지 늘어난 상태다. 인건비와 각종 운영비는 계속 오르지만 납품단가는 2010년 한 차례 조정된 뒤 제자리인 탓이다. 오히려 몇몇 부품의 실제 납품단가는 매년 3~5%씩 줄어들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신차에 부품을 제공한 지 3년 정도가 지나면 단가를 매년 낮춰야 하는 ‘단가 인하’(CR·Cost Reduction) 관행이 이젠 계약서에도 들어갈 정도”라며 “아무리 매출을 올려도 이자비용까지 뺀 순수 마진율은 5%도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실태조사로도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는 쉽게 확인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3월 말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200여 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전체의 90%가 ‘원자재 가격 인상분이 올해 납품단가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거나 일부만 반영됐다’고 답변했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 건 정부의 든든한 지원 덕분이다. 정부는 말로는 중소기업의 경영난을 걱정하면서도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적극 제지하기는커녕 중소기업에는 최저임금과 같은 안정장치인 ‘납품단가원가연동제’ 도입도 거부하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초과이익공유제’가 있으나 마나 한 ‘협력이익배분제’로 쪼그라든 것도 대기업의 반발을 넘지 못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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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대기업에 절망한 중소기업이 결국 주저앉게 되는 곳은 은행의 문턱 앞이다. 경영난으로 돈가뭄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이 은행으로 달려가지만 담보대출 한도가 꽉 찬 회사는 거절당하기 일쑤다. 신용보증기금 등에 수수료를 내고 보증서를 받아오게 하거나, 추가 담보 명목으로 적금 등 상품 가입을 강요하기도 한다. 중소기업들은 운 좋게 대출을 받더라도 신용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같은 담보대출인데도 대기업은 물론 가계보다 더 높은 금리를 감당해야 한다. 작은 중소기업들은 주식시장 상장이나 회사채 발행 등으로 직접적인 자금 조달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금 수요 더 커졌는데 대출은 바늘구멍

금융 당국도 올해 들어 중소기업이 기계와 원자재 등 동산으로도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게 하고, 연대보증제도도 완화하는 등 제도를 손질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이 제도를 시행할 의지가 별로 없다. 은행들은 지난해 중소기업에 총 11조원을 대출해줬지만 올해엔 지난 8월20일까지 6조원을 내주는 데 그쳤다. 자금 수요는 더 커졌지만 대출금은 더 줄어든 것이다. 반면 대기업에는 지난해 27조원을 대출해준 데 이어 올해도 벌써 28조원을 내줬다. 액세서리 생산업체를 운영하는 홍철기(54·가명)씨가 최근 겪은 일이다. 그는 재료비 5천만원이 급하게 필요했지만 이미 빚이 5억원이 있다는 이유로 대출을 거부당했다. 추가 담보로 기계를 맡아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지난해 대출을 받으며 은행의 요구로 가입한 적금 3개를 깨달라고 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경기가 좋을 때는 은행들이 서로 돈을 빌려가라더니 지금은 우리 숨통을 조인다. 뉴스 보면 정부가 이런 횡포를 현장 점검한다고 하는데 다들 말잔치만 하고 있다. 임자만 있으면 회사를 안 팔 이유가 없다.” 어느 때보다 중소기업을 위한다는 정부에서 어느 때보다 많은 중소기업이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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