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집안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재산 일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 형 이맹희씨에 이어 누나 이숙희씨까지 가세했다. 이맹희씨는 지난 2월12일(899호 이슈추적 ‘삼성가 형제 싸움에 비자금 문제 다시 터지나’ 참조), 범LG가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부인 이숙희씨는 2월27일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차녀인 이숙희씨까지 소송에 합류하자 상황은 삼성의 지배구조까지 염려하는 단계로 전이됐다. 애초 이맹희씨의 소송에 대해 CJ 쪽에서 “소송 취하를 설득하겠다”고 밝히는 등 재계에서는 합의로 끝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선대 회장의 차녀까지 가세하고, 장녀인 한솔그룹 이인희 고문을 제외한 다른 형제자매들은 침묵을 지키자 소송이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는 형국이다.
이 와중에 시민단체들은 2008년 삼성 특검에서 별다른 근거 없이 상속재산으로 인정된 차명재산(4조5373억원)에 대해 국세청이 본질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문제의 본질은 차명주식이 실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차명주식의 전환 과정이 적법한 것인지, 그 과정에 세금포탈 등 불법은 없었는지, 정당한 세금을 납부할 의무가 있는데 국세청이 이를 추징해야 할 임무를 저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있다”고 밝혔다. 한켠에서는 상속재산을 둘러싼 ‘집안싸움’이라고 보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조세정의 실현’이라는 공공선을 주장하는 형국이다. 커져만 가는 싸움을 4개의 열쇠말로 정리한다.
# 소송
‘2011. 6. 초순경 우연한 기회에 피고 이건희가 선대 회장으로부터 차명 상태로 상속된 약 4조5천억원의 금융재산을 삼성 특검 이후 단독으로 실명 전환한 사실로 인해 세금 문제가 발생하였고, 그 실명 전환이 상속인들 전원의 상속재산 분할 합의에 의한 것인지, 나머지 상속인들의 상속지분 증여에 의한 것인지 여부가 법적으로 문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숙희씨가 제출한 소장의 일부다. 그는 1957년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삼남 구자학씨와 결혼한 뒤 출가해 유산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란 국세청이 보낸 공문을 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지난해 6월 이맹희씨를 비롯한 형제자매들에게 2008년 12월 이건희 회장이 실명 전환한 재산에 대해 질의했다. 이건희 회장은 2008년 말과 2009년 초 삼성전자 주식 224만여 주와 우선주 1만2398주를 비롯해 삼성생명, 삼성SDI 주식 등 삼성 특검에서 드러난 차명재산의 일부를 실명 전환했다. 국세청은 이 재산이 이맹희씨를 비롯한 형제자매들이 자신의 지분을 포기하고 이건희 회장에게 건넨 것인지를 물었다. 만약 그렇다면 증여세가 발생한다. 2008년 특검에서 드러난 4조5천억원의 차명재산은 상속세 시효 5년이 지나 상속세는 면제됐지만, 그동안 차명재산을 형제자매가 공동으로 소유했고 이를 이건희 회장 앞으로 실명 전환하며 넘겨줬다면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는 것이다. 형제들의 재산이 한 형제에게 증여된 셈이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공문을 보낸 이유에 대한 해석은 엇갈린다. 국세청 관계자는 “재벌 총수 일가의 주식 변동을 정기적으로 조사한다”며 “당시 국세청의 공문도 그런 차원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세무 전문가는 “당시 국세청은 당혹스러운 처지였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는 “삼성 특검이 삼성 쪽의 주장을 받아들여 상속재산으로 인정했지만, 국세청으로선 이병철 회장의 유언장이 없는 등 상속세를 면제할 뚜렷한 근거가 없어 삼성 일가에 확인서를 요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국세청이 공문을 보낸 같은 달 삼성 쪽도 이건희 회장의 형제들에게 확인서를 보냈다. 먼저 ‘상속재산 분할 관련 소명’을 보내 ‘선대 회장의 상속재산은 상속 당시에 모든 재산 분할이 결정됐다’는 취지의 문서에 서명해줄 것을 요구했다. 거절당하자 ‘삼성생명의 차명주식 등은 선대 회장의 유지에 따라 이건희의 소유가 됐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2008년 삼성 특검에 따라 차명재산이 나왔고 이미 이에 대한 요구를 할 수 있는 제척기간 3년이 지나 이건희의 소유권에는 변함이 없다’는 내용을 담은 ‘차명재산에 대한 공동상속인들의 권리 존부’를 보냈다.
하지만 이런 삼성 쪽의 일방적 행보는 소송이라는 부메랑을 자초했다. 이맹희씨는 삼성의 요구에 비로소 차명재산의 존재를 알았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이숙희씨도 마찬가지였다. 범삼성가의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의 안하무인이 사태를 키웠다”며 “이 회장이 전부터 가족들에게 베풀고 설득과 타협을 시도해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겠냐”고 말했다.
# 탐욕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은 이건희 회장은 1988년 5월18일 상속인을 대표해 국세청에 상속세를 신고했다. 상속재산은 237억2300만원, 상속세는 150억1800만원으로 신고했다. 당시 상속인은 고 이병철 회장의 4남6녀 중 일본인 처 소생인 1남1녀와 덕희를 제외한 자녀 7명과 부인 박두을씨였다. 이는 현재 벌어지는 소송에서 덕희씨가 언급되지 않는 이유로 풀이된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살아생전에는 절세 등으로 부를 축적해야 하나 최종 마무리는 상속세로 나타난다고 강조하신 선친의 뜻을 받들어 국민이 납득할 세금을 내겠다”고 강조했다. 삼성그룹 쪽도 신고한 상속재산이 최대 수치이며, 전담팀까지 만들어 재산찾기 작업을 벌여 해외 골프장 회원권까지 포함시키는 등 최대한 노력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말은 20년 뒤인 2008년 4월17일 삼성 특검의 수사 결과 발표로 거짓으로 판명됐다. 이어 닷새 뒤 이학수 당시 삼성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쇄신안을 발표했다.
“이(건희) 회장은 누락된 세금 등을 모두 납부한 후 남는 돈을 사회사업에 쓰도록 할 계획이다. 조세포탈 문제가 제기된 차명계좌의 경우 세금을 납부하고 남은 돈을 사회사업 등에 쓴다는 것이며, 삼성생명 주식 등은 조세포탈과 관련이 없기에 여기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삼성전자, 삼성SDI 등 7개 계열사의 차명계좌를 통한 주식 거래로 얻은 양도소득(5643억원)에 따른 탈루 양도소득세 1128억원 등을 납부하고 남은 돈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이었다. 대신 2조3119억원 상당의 삼성생명 주식은 이건희 회장의 오롯한 재산이 됐다. 불법 비자금이었다면 부담해야 할 수조원의 세금도 면제받았다. 삼성이 약속한 사회 환원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신 이건희 회장은 2008년 5월 탈루한 세금과 가산금을 합쳐 1829억원을 냈다. 삼성생명 주식을 자신의 이름으로 돌려놓았고, 지배구조는 더 탄탄해졌다.
하지만 소송이 제기된 현 상황에서 보면 전혀 다를 수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초기에는 차명 임원들 재산으로 주장하다 선대 회장의 재산으로 입장을 바꾸었다”며 “소멸시효를 이용해 세금을 면제받으려는 욕심이 지금의 화를 불러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차명재산은 다른 삼성 일가에서도 드러났다. CJ는 2008년 이아무개 재무팀장의 살인 청부사건 수사 때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이 들통 났다. 그 결과 1700억원의 세금을 납부했다. CJ도 드러난 차명재산을 삼성처럼 상속재산이라고 주장했다. 신세계 역시 2006년 참여연대가 “신세계그룹 총수 일가가 대규모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해온 사실을 (국세청이) 포착하고 세금 추징 절차를 시작했다”고 주장해 논란에 휩싸였다. 이듬해에도 심상정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감사원 감사 결과를 근거로 “서울지방국세청이 신세계 차명주식에 대해 과세시효인 10년간의 증여세만 추징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신세계는 “사실무근”이라며, 국세청은 “개인 과세 정보”라며 사실 확인을 거부했다.
제대로 신고했다던 이병철 회장의 유산이 사망한 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삼성과 CJ에서 다시 등장했다. 불법으로 조성된 비자금을 의심받는 상황도 신세계에서 나왔다. 재산을 유지하고 세금을 줄이려고 탐욕을 부렸다. 뒤탈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불거졌다.
# 갈등삼성 직원이 CJ 이재현 회장을 미행을 하다 들통이 났다. CJ 쪽은 이재현 회장의 아버지인 이맹희씨가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알려지자 삼성 쪽이 미행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 녹화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화면도 언론에 제공했다. 화가 단단히 났다는 점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은 셈이다. 반면 삼성 쪽은 “계열사인 삼성물산 직원이 업무를 한 것뿐”이라며 그룹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그런데 삼성과 CJ의 갈등을 들여다보면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의문점이 발견된다. 삼성 직원이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 손경식 회장의 개인회사인 ㅈ사에서 차를 빌렸다는 사실이다. 신분이 노출될 게 거의 확실한 회사에서 차를 빌려 그 차로 렌터카 회사의 관계사 회장을 미행했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CJ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놓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행을 빙자한 경고성 위력시위라는 해석이다.
사실 삼성과 CJ의 갈등은 계열사 분리 시절부터 있었다. 1994년 계열분리를 앞두고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건희 회장 집 CCTV가 바로 옆집인 이재현 회장 집 정문 쪽이 보이도록 설치돼 출입자를 감시했다는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양쪽의 갈등은 이후 잠잠하다 지난해부터 갈등이 다시 불거졌다. 공교롭게도 최근 드러난 재산 갈등이 불거진 시점이다. 지난해 6월 CJ가 대한통운 인수를 추진하자 삼성은 삼성SDS를 동원해 포스코와 손잡고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CJ의 인수 자문사 역할을 삼성증권이 맡고 있었음에도 인수를 추진했다. 결과적으로 CJ는 대한통운 인수에 성공했지만, 시장 예상치보다 훨씬 큰 돈을 들여야 했다. 이건희 회장과 특수관계사인 JTBC에 대한 지원으로 케이블방송이 주산업인 CJ E&M과 갈등이 있었다는 설도 나온다.
이런 갈등은 비단 재산 다툼 때문만은 아니다. CJ는 이병철 회장의 장손인 이재현 회장이 이끈다. 1987년 이병철 회장의 장례식 때 영정을 든 이도 이재현 회장이다. 하지만 삼성 내부에서 그만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CJ의 한 전직 임원은 “이 회장이 1997년 계열분리 이후 장손으로서 회사 이미지, 경영 실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애썼다”며 “하지만 실적에서는 오히려 함께 분리된 신세계가 더 성장하는 등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 상당한 압박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삼성 쪽으로부터 외삼촌인 손경식 회장의 회사 혹은 어린 회사라는 평가가 나와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만큼 CJ로서도 삼성의 적통을 잇는다는 자부심만큼이나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불만도 있었던 셈이다.
이런 과거 때문에 재계는 다양한 구도를 그린다. 최근 불거진 형(이맹희씨)과 동생(이건희 회장)의 갈등뿐만 아니라 작은아버지(이건희 회장)와 조카(CJ 이재현 회장·이미경 부회장) 사이의 갈등 확산 가능성도 제기된다. 여기에 지난해부터는 대한통운 인수전에 뛰어든 삼성SDS로 인해 이 회사의 최대 주주인 삼성전자 이재용 사장도 포함시켜 3세들 간의 갈등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 정의이들이 다투는 이른바 ‘상속재산’은 누구의 것일까?
국내 대기업은 대부분 정부의 특혜를 받고 자랐다. 물론 기업가 정신까지 더해져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광복 직후 일제의 귀속 재산을 불하하는 과정에서부터 차관 배분, 수출기업 지원, 노조 탄압 등 갖은 혜택이 있었다. 유진수 숙명여대 교수(경제학)는 저서 에서 “한국의 기업들은 그동안 정부로부터 무수한 특혜를 받아왔다”며 “다른 많은 기업들과 국민들이 감수한 희생을 생각한다면 이에 대해 보상할 도덕적 의무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도덕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희생 위에서 거둔 열매를 나누는 것까지 해야 한다. (중략) 이는 자신이 특혜를 받는 과정에 암묵적으로 비용을 지불한 사람에 대한 보상이다”라고 지적했다.
삼성도 정부의 특혜를 받았다. 하지만 특혜로 축적한 재산을 뒤로 감춘 것도 모자라, 그 재산이 드러나자 형제들 간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맹희·숙희씨는 그 재산을 두고 “가족들 간 어떠한 합의분할서를 작성하거나 이에 관한 어떠한 합의도 한 바 없다”며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삼성은 “25년 전 선대 회장의 유지에 따라 경영권이 상속됐다”며 “그 문제는 다 정리됐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동시에 “회장부터 전 임직원이 앞만 보고 달려가도 어려운 게 경영 환경”이라며 “이런 소송이 제기되니까 안타깝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고 했다. 재벌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온 경제를 담보로 한 공갈협박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삼성에 특혜를 몰아주는 동안 희생을 강요당한 국민과 기업의 몫이 4조5천억원에 분명히 있다고 볼 수 있다.
설혹 삼성의 돈일지라도 삼성생명의 경우 절반 이상이 상속재산이 아닌 이병철 회장 사후인 1988년 삼성생명의 유상증자 과정에서 늘어난 주식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돈에 대해 국세청이 ‘조세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국세청은 현재 삼성전자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이 투입돼 12월에 끝낼 예정이었지만 한 차례 연장됐다. 경제개혁연대는 “국세청은 삼성 특검이 제대로 밝히지 못한 삼성그룹 차명재산의 성격과 조성 재원 등의 사실관계를 명확히 확정하고,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상속세 및 증여세 등을 빠짐없이 부과·징수해 조세정의를 실현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참고 문헌:(유진수 지음, 한국경제신문 펴냄), (1988년 5월18일치 1·2면)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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