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개 기업집단과 계열사 1554곳이 지난 5월3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누리집(dart.fss.or.kr)에 ‘대규모 기업집단 현황 공시’를 올렸다. 지난해(816호 경제 ‘오너 지분 많은 계열사, 그룹 내부거래가 40~80%’ 참조)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 공시는 2009년 ‘대기업 집단 현황 공시제도’ 수정을 통해 도입됐다. 이를 살펴보면 ‘계열회사 간 상품·용역 거래 현황’ ‘계열회사 간 주요 상품·용역 거래 내역’ 등을 알 수 있다.
특히 삼성, 현대·기아차, SK, LG 등 4대 그룹 계열사 가운데 총수 일가의 지분이 많은 기업(LG그룹의 경우 지주회사인 (주)LG의 지분이 많은 기업)이 내부거래 비율이 여전히 높았다.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에버랜드, 삼성SDS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또 현대·기아차그룹의 글로비스, SK그룹의 SKC&C, LG그룹의 서브원 등이 있다. 이들 5개 기업의 내부거래 비율은 적게는 42.3%(삼성에버랜드)에서 많게는 76%(LG서브원)를 기록했다. 평균 58.3%로 최근 재벌닷컴이 30대 그룹 전체 계열사의 평균 내부거래 비율로 밝힌 28.2%의 2배를 넘는다. 내부거래액도 껑충 뛰었다. SKC&C는 가장 적게 8.1%가, 글로비스는 가장 많게 69.7%가 늘었다. 덕분에 매출도 크게 올랐다. 특히 글로비스는 매출이 82.7%나 늘어났다. 이는 현대·기아차그룹 전체(36.1%)의 2배가 넘는 수치다. 5개 기업의 매출 성장률은 평균 40%에 달해 다른 계열사보다 훨씬 좋은 실적을 보였다. 다만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내부거래 비중은 전년보다 0.1%(삼성SDS)만 늘거나 0.2~3.8% 줄었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비스는 5개 기업 가운데 단연 돋보였다. 정몽구 회장과 아들 정의선 부회장은 글로비스의 주식 50%를 보유하고 있다. 2010년 매출이 5조8340억원으로 전년보다 2조6413억원 늘었다. 매출 증가율이 82.7%에 달했다. 그 배경에는 크게 늘어난 내부거래가 있었다. 내부거래는 2009년 1조5805억원(매출의 49.5%)에서 1조1013억원이 늘어난 2조6818억원(46%)으로 늘었다. 늘어난 매출액 2조6천억여원 가운데 계열사가 1조원 넘게 도움을 준 셈이다. 거래 기업은 총 계열사 42개 가운데 기아차(17.1%), 현대제철(9.4%), 현대차(9.3%) 등 20개에 달했다.
삼성그룹도 총수 일가 소유의 기업들이 크게 성장했다. 삼성SDS는 이건희 회장 일가가 주식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지분은 0.01%에 불과하지만, 이재용 부사장(8.81%)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4.18%),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4.18%) 등이 상당량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SDS는 지난해 가파르게 성장했다. 2010년 매출은 3조6천억원으로 전년(2조4940억원)보다 1조1326억원 늘었다. 늘어난 매출액 가운데 7164억원이 내부거래에서 나왔다. 늘어난 매출액의 3분의 2가량이 계열사들 덕분이었다. 내부거래는 전체 매출의 63.1%를 차지했다. 거래 기업은 그룹 내 가장 많은 매출을 내는 삼성전자로, 전체 매출의 33.4%를 차지했다. 이어 삼성생명보험(3.5%), 삼성물산(2.5%), 삼성카드(2.3%) 등이었다. 거래 계열사는 63개 계열사 가운데 55개로 대부분 계열사와 거래를 했다.
삼성에버랜드 역시 2009년 매출 1조7515억원에서 2010년 2조2187억원으로 26.7%가 늘었다. 높은 성장에는 내부거래가 큰 도움이 됐다. 2010년 내부거래액이 8999억원이고 매출 비중은 42.3%로 전년(42.5%)과 거의 같지만, 금액으로는 1547억원이 늘었다. 주요 거래 기업은 삼성전자로 전체 매출액의 18.6%를 차지해 가장 많이 기여했다. 또 삼성생명보험(3.7%), 삼성중공업(2.6%), 삼성물산(2.1%) 등 57개 계열사가 삼성에버랜드와 거래했다. 삼성에버랜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아들 이재용 사장 등 가족이 주식 46.04%를 소유하고 있다.
재계, “기업 보안상 불가피한 선택”
SK그룹의 SKC&C는 사실상 SK그룹의 지주회사 구실을 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이 회사의 44.5%를, 동생 최기원씨는 10.5%를 갖고 있다. 또 SKC&C를 통해 (주)SK를 지배하고, (주)SK는 다시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등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SKC&C는 매출의 63.9%를 계열사에 기대고 있다. 2010년 매출 1조4752억원 가운데 내부거래가 9425억원(63.9%)에 달했다. 전년보다 늘어난 1627억원의 매출액 가운데 절반가량인 707억원이 내부거래에서 나왔다. 그룹 안 최대 기업인 SK텔레콤이 매출의 36.2%를 차지했고, SK이노베이션(6.2%)·SK네트웍스(4.6%)·SK브로드밴드(4.4%) 등도 SKC&C와 관계를 가졌다. 총 86개 계열사 가운데 51개 계열사가 내부거래에 참여했다.
LG그룹의 서브원도 1조원 넘게 매출이 늘었다. 2009년 매출 2조5765억원에서 2010년 3조5953억원으로 39.5% 성장했다. 내부거래도 6754억원이 늘어난 2조7320억원을 기록했다. 그 비중은 매출의 4분의 3이 넘는 76%로 전년(79.8%)보다 약간 줄었다. 서브원은 지주회사인 (주)LG가 주식 100%를 소유하고, 구본무 회장 등 총수 일가가 (주)LG의 주식 31.3%를 갖고 있다.
이에 대해 해당 기업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태도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비스 관계자는 “처음부터 각 계열사의 물류를 통합해 그 시너지 효과를 누리기 위해 만든 회사여서 내부거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내부거래 비중만을 따지지 말고 통합에 따른 효과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최근에는 외부 매출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그룹의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기업 보안’을 이유로 들었다. 삼성에버랜드 관계자는 “빌딩관리, 자산관리 등을 하는 입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다른 그룹의 경쟁업체에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SDS 역시 “일본의 주요 금융회사가 정보기술(IT) 서비스 업체를 계열사로 두는 것처럼 기술과 물량 등 기업 비밀을 유지하려면 계열사를 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빌딩 등 부동산 관리를 하는 LG그룹 서브원도 비슷한 견해였다.
SKC&C 관계자는 “계열사의 보안 문제와 함께 오랜 기간 SK텔레콤의 IT 사업을 맡아해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내부거래가 계속 발생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외부거래 비중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벌 총수 일가가 소유한 기업의 내부거래는 늘 ‘물량 몰아주기’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사실로 드러난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글로비스에 물량을 몰아줘 826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점점 늘어만 가는 재벌의 내부거래에 대해 정부는 불법적으로 부를 넘기는 경우 제재를 하겠다고 밝혀왔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의 계열사 물량 몰아주기에 대해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밝히는 등 의지를 보인 바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는 없다. 올해도 다시 ‘물량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와 제재 등을 고려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지난 3월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변칙 증여하는 관행에 세금을 물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이를 위해 태스크포스팀(TFT)이 구성돼 구체적인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 또 공정위는 지난 5월 “대기업의 구매대행사업(MRO) 계열사에 ‘물량 몰아주기’를 통해 편법적인 재산 증식 수단으로 악용되는 문제가 지적돼 불공정 행위가 있는지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위, 재벌계열사 물량몰아주기 전반 조사해야”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는 “재벌그룹들이 총수 일가가 소유한 IT 서비스나 물류 등과 관련된 기업에 물량을 몰아줘 고속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며 “공정위는 최근 재벌그룹의 MRO 기업(소모성 자재 구매 대행업체)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보다 넓은 물량 몰아주기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를 빨리 시작해야 한다 고 말했다. 또 “2004년 상속·증여세 포괄주의가 도입돼 국세청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세금을 물릴 수는 있다”며 “국세청이 현재 고려 중인 물량 몰아주기를 통한 부의 증여에 대해 조속한 규제를 통해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 불법이 드러난 경우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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