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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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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재협상의 성과? 절반만 믿어라

FTA 재협상 전부터 미국이 만지작거리던 쇠고기 관세 철폐 카드…

협상 대상 아니라던 쇠고기 문제 본격 논의되었나
등록 2010-12-09 15:30 수정 2020-05-03 04:26

“쇠고기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
11월29일(현지시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위해 미국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도착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기자들 앞에서 한 말이다. 그때 김 본부장의 말을 믿는 것이 옳았을까.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절반만 믿었을 것이다. 12월3일 오전(현지시각) 끝난 재협상의 구체적 내용과 결과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의 요구가 강하게 작용한 이번 FTA 재협상에서 미국이 쇠고기 카드를 꺼내지 않았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과거 한-미 FTA 협상 과정을 되짚어봐도 그렇고, 현재 미국 내 분위기를 봐도 그렇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김종훈 본부장 등 통상 담당 공무원이 흔히 하는 말이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는 FTA 협상 대상이 아니다” 혹은 “미국산 쇠고기 협상과 FTA는 별개”라는 말이었다. 대내적으로는 한국 국민과 축산농가를 안심시키기 위한 발언이었고, 대외적으로는 나름의 협상 전략이었다.

쇠고기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거짓말

»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12월3일 오전(현지시각) 워싱턴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회담을 연 뒤 “금번 회의에서 자동차 등 제한된 분야에 대해 실질적 성과를 거뒀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5월 회담에 앞서 악수 하고 있는 모습. 연합

»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12월3일 오전(현지시각) 워싱턴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회담을 연 뒤 “금번 회의에서 자동차 등 제한된 분야에 대해 실질적 성과를 거뒀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5월 회담에 앞서 악수 하고 있는 모습. 연합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당장 국민을 속이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이런 협상 전략이 미국에 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표적 사례가 2006년 이른바 ‘4대 선결조건’ 논란이었다.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하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와 스크린쿼터 축소 등 미국의 4가지 요구를 수용했다는 의혹이 논란의 핵심이었다. 정치권과 언론이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계속 내밀어도 김종훈 본부장(당시에는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 등은 “4대 선결조건은 (양국 간) 통상 현안일 뿐 한-미 FTA 협상과 연계해 미국에 양보한 것이 아니다”라고 발뺌을 계속했다.

논란이 커지자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해 7월21일 직접 “실제로 협상 정지 차원에서 통상 현안을 해결하고자 한 것인 만큼 대통령의 결정으로 4대 선결조건이라는 표현을 수용한다”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2007년 4월 한-미 양국이 FTA 협상 타결을 선언한 뒤에도 미국산 쇠고기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였다. 2007년 11월19일 수전 슈워브 당시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김종훈 본부장과의 통상회담에서 “2008년 2월까지 쇠고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한-미 FTA를 나머지 2개(파나마·콜롬비아) FTA와 패키지로 처리하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며 한국을 압박했다.

미국축산육우협회의 강한 요구

이듬해에도 FTA를 볼모로 한 미국의 쇠고기 시장 개방 압력이 이어졌다. 2008년 1월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당시 사공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특사와 김종훈 본부장 등을 만난 슈워브 대표는 미국의 FTA 처리 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달라는 김 본부장의 요구에 맞서 “쇠고기만 해결되면 최대한 조속히 한-미 FTA를 처리하도록 하겠다”며 또다시 쇠고기 카드를 활용했다.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는 ‘쇠고기 시장 개방’을 FTA의 선결조건으로 요구하고, FTA 협상이 끝난 뒤에는 ‘쇠고기 시장 확대’를 FTA 비준 조건으로 제시하는 식이었다.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끌려다닌 쪽은 한국이었다. 미국산 쇠고기를 둘러싼 한-미 양국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그해 4월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에 합의한 뒤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는 것”이라고 선언하며 사실상 끝났다.

이후 정부의 부실 협상에 대한 비판이 촛불집회로 이어지자 한승수 당시 총리는 5월8일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미국과 다른 나라들과의 협상 과정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는 언제라도 미국과 체결한 협정의 개정을 요구하겠다”고 약속했다. 같은 자리에 있던 김종훈 본부장은 ‘새로운 상황’의 핵심을 “대만이나 일본이 우리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합의했을 경우”라고 정리했다. 물론 공수표였다.

웃기는 일은 한 총리가 국민 앞에서 ‘새로운 상황’을 언급하기 3일 전, 한국 정부가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며 미국에 굴욕적 요청을 했다는 사실이다. 2008년 5월5일 주미대사관이 외교부에 보낸 전문 등을 보면 당시 최석영 주미공사(현 FTA 교섭대표)는 웬디 커틀러 USTR 대표보와 접촉해 “국내에서의 비판 여론을 감안해 미 측이 일본, 대만 등 주요 미 쇠고기 수입국들이 우리와 같은 기준을 수용토록 조속히 협상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난다. 최 공사는 심지어 총리 담화문 발표 당일 다시 웬디 커틀러와 접촉해 한 총리의 담화문 발표 배경을 일일이 설명하며 담화문에 대한 공개적 반박은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대미 굴욕 외교였다.

그렇다고 미국이 이명박 정부를 배려한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지난 1월 대만은 내장과 분쇄육, 뇌, 척수, 눈, 머리뼈 등 위험 부위를 제외한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만을 수입하겠다고 입법 예고했다. 일본은 여전히 20개월령 이하 미국산 쇠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한국은 이 두 나라의 기준에 맞춰 미국에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미국이 한국의 ‘쇠고기 시장 확대’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현재 한국은 2008년 합의에 따라 월령 제한 없이 내장까지 수입해야 한다. 다만 2008년 촛불집회 이후 미국 수출업자가 30개월 이상 소의 자율규제라는 편법적 방법으로 한국 정부를 도와주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산 쇠고기를 둘러싼 한-미 양국의 줄다리기가 주로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 해당하는 것이었다면, 지난 11월 재협상 직후 미국의 태도는 조금 달라졌다. 월령 제한 및 수입 금지 부위 해제를 여전히 앞세우되, 동시에 현행 40%의 수입관세 철폐를 새롭게 요구하고 있다.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축산육우협회(NCBA)가 정부에 가장 강도 높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관세 철폐다.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11월초 한-미 FTA 재협상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미국이 쇠고기 카드를 만지작거리자 국내 언론은 대부분 ‘협상용’이라는 식으로 그 의미를 축소했다. 그렇지만 미국의 쇠고기 관세 철폐 카드를 단순히 협상용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우선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은 FTA와 별개의 통상협의를 통해 논의해야 하는 의제가 맞다. FTA 의제인 쇠고기 관세는 다르다. 한-미 양국이 FTA 재협상 과정에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다 보면 자동차에서 시작한 협상이 노동과 의약품, 투자 등 다른 이슈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 양쪽이 이런저런 카드를 펼쳐놓고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쇠고기 문제라고 해서 예외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비과학적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우리가 미국산 쇠고기 내장 부위를 모두 받아들일 때도 미국 축산업자에게 상당한 이득이 돌아가겠지만, 만약 관세 철폐 기간을 단축한다면 (미국 쪽이)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의 규모는 훨씬 크다”며 “미국도 30개월령 이상은 절대 받을 수 없다는 한국 여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관세 철폐 요구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축산 농가 타격 우려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이 한국 국민의 안전과 정서를 건드리는 민감한 이슈라면, 관세 철폐는 곧바로 국익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면서 국내 축산 농가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어느 쪽도 우리에게 이득이 될 만한 것이 없다. 이해영 교수는 “(연평도 사태 직후인) 이 불리한 타이밍에 협상팀이 미국에 건너간 이유 자체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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