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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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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합의도 안 지키는 MB, 의장국 ‘정상 자격’ 있나



금융개혁·재정긴축·국제노동기준 준수 등 기존 합의 이행에 무성의…

서울 정상회의 의제도 핵심 비켜가
등록 2010-11-12 11:41 수정 2020-05-03 04:26

이명박 대통령이 요구하는 ‘국민의 자격’은 까다롭다. 11월11~12일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준비하며 정부는 많은 요구사항을 쏟아냈다. 정상회의가 열리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 지하상가의 업주들은 1박2일간 사실상 장사를 쉬어야 한다. 정상회의 경호 때문이다. 이주노동자와 노숙인이라면 G20이 끝날 때까지 몸을 숨기는 것이 상책이다. 일반 시민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교통질서를 준수해야 하고, 금연 캠페인에 참여해야 한다. 정상회의 기간에는 자율적인 승용차 2부제 눈치를 봐야 한다. ‘세계가 지켜보고 있으니’ 음식물쓰레기 배출도 자제해야 한다. G20 의장국의 초등학생이라면 환율 공부쯤은 기본이다.
 
금융위기 공동 대처 위해 모인 G20

11월5일 이명박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와 관련해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금융규제 등 세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핵심 의제는 이번 서울 G20 회의에서 다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1월5일 이명박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와 관련해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금융규제 등 세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핵심 의제는 이번 서울 G20 회의에서 다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일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가 있지만, 일단 여기까지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선진국 정상의 사교클럽에 불과하다’고 비판받는 G20 체제의 민주적 정당성이나 실효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잠시 뒤로 미룰 수 있다. 1년에 두 차례씩, G20에 포함된 20개국이 돌아가며 여는 국제회의의 유치를 ‘대통령의 업적’으로 선전하는 ‘대통령 직속 G20 준비위원회’의 간절함도 이해한다. 기왕 한국에서 여는 국제회의니, 망하기보다 잘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대체로 같다. G20까지 며칠 남지 않았으므로 조금 손발이 오그라들어도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의 ‘오버’를 인내할 수 있다.

대신 조건을 하나 붙여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G20을 앞두고 ‘국민의 자격’을 강조한다면, 그는 스스로 의장국 ‘정상의 자격’을 보여줘야 한다.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연일 분위기 띄우기에 앞장서는 이 대통령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당신의 G20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까.”

‘정상의 자격’을 가늠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과거 G20 회의에서 내놓은 합의를 충실하게 지켰는지를 따지면 된다. 아울러 그가 제시한 서울 G20 정상회의 의제가 G20 본래의 취지에 맞는지도 살펴야 한다. 이 대통령이 과거 G20의 합의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거의 ‘온 국민 총화단결’을 요구하며 치르는 서울 G20 정상회의가 G20 애초의 문제의식을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에게 박수를 보내기 어렵다.

은행세 도입 좌절됐지만 나라별로 진전 이뤄

2008년 11월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처음 G20 정상회의가 열린 이유는 뚜렷했다. 같은 해 하반기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시작으로 세계경제에 몰아친 금융위기 탓이었다. 국경을 가리지 않고 세계를 넘나드는 금융자본의 속성상, 리먼브러더스 파산은 단지 미국의 5대 투자은행 가운데 하나가 쓰러졌다는 뉴스 이상의 의미였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유럽으로 이어져 영국의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 프랑스의 BNP파리바, 스위스의 USB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럽의 글로벌 은행이 정부의 긴급 구제금융 등을 수혈받아 연명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한국 등 아시아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 아래에서 갈수록 세계화·구조화되는 금융시장의 위기는 국가 단위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어느 때보다 각국의 협력이 필요했다. 금융시장의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를 통한 금융 개혁, 아울러 각국의 재정·금융 정책을 통한 거시경제 정책의 공조까지 이른바 ‘주요 20개국’ 정상이 머리를 맞대기 시작한 것이 G20이다.

2008년 워싱턴 회의 때만 해도 각국은 이런저런 문제의식만 쏟아냈지, 이렇다 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해 구체적인 진단과 대안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09년 4월 런던 G20 정상회의 이후였다. 이들이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대마불사 은행과 금융기관의 방만한 운영 △통제 불능 수준으로까지 확대된 파생상품 시장 △지나친 금융규제 완화와 이로 인한 금융투자 주체 및 감독기관의 도덕적 해이 등 세 가지였다.

‘대마불사 은행’이란 규모가 너무 커지다 보니 문제가 발생해도 막대한 소비자 피해 등을 우려해 파산시키지 못하는 금융기관을 가리킨다. 문제가 되는 파생상품의 사례로는 최근까지도 국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키코 상품을 떠올리면 된다. 사회적 필요와 관계없는 금융상품이 ‘신금융서비스’ 혹은 ‘첨단 금융공학’의 이름으로 변질돼 지금까지도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금융규제 완화에 따른 금융투자 주체의 도덕적 해이’란 쉽게 말해 은행 등 금융기관도 위험한 행동을 하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이런 제도적 장치가 없었다는 뜻이다.

위기의 원인을 놓고 서로 공감대를 확인한 G20은 지난 6월 캐나다 토론토 정상회의가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금융 개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은행세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해왔다. 은행세란 금융기관에 부과하는 일종의 세금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국민의 세금이 아니라 금융기관 스스로 위기 비용을 치를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만약 은행세 문제에 G20 참가국이 단일한 합의안을 내놓고, 또 이를 구체적으로 이행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다면 G20 체제에 대한 찬성 여부를 떠나 큰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6월 토론토 정상회의에서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려 그냥 개별 국가가 알아서 하기로 결정했다. 다시 말해 G20은 은행세에 관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은행세에 관한 진전은 각 나라 차원에서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1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내놓은 강력한 금융개혁안이었다. 오바마 개혁안의 핵심은 금융기관이 위험을 대비해 금융안정분담금 형태로 은행세를 내야 한다는 것과 이른바 ‘볼커룰’이다. 오바마가 월가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볼커룰은 은행이 고객 예금으로 ‘위험한 도박’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헤지펀드나 사모펀드 등 위험도가 높은 투자를 주로 하는 대형 상업은행과 금융지주회사가 주요 대상이다. 물론 은행세와 볼커룰을 핵심으로 하는 오바마의 금융개혁안은 같은 해 6월 미 의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금융기관의 강력한 로비와 보수적인 일부 민주당 의원들 탓이었다.

2011년 G20 의장국인 프랑스 등 유럽연합 주요 국가의 경우 금융안정분담금 형태의 은행세보다는 금융거래세를 선호하고 있다. 자국 금융시장을 흔드는 단기투자자금의 유·출입을 규제하기 위해 국제적 자본이동에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이 1970년대에 제안한 ‘토빈세’가 대표적이다. 토빈세를 실시하는 대표적인 나라는 브라질을 꼽을 수 있다.

 

금융규제 완화로 역주행하는 MB
11월5일 이주공동행동 관계자들이 불법체류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 숨진 베트남 이주노동자의 죽음에 항의하며 서울 목동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20101105

11월5일 이주공동행동 관계자들이 불법체류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 숨진 베트남 이주노동자의 죽음에 항의하며 서울 목동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20101105

G20 서울 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은 어떨까? 이명박 대통령이 11월1일 발표한 서울 정상회의의 4대 의제는 ‘환율’과 ‘국제통화기금(IMF) 개혁’ ‘글로벌 금융안전망’ ‘개발’이다. G20의 본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금융거래세 도입 등 핵심적인 금융규제 의제가 쏙 빠져 있다. G20을 계기로 한국이 의제를 직접 주도하는 ‘룰메이커’(Rule-maker)로 도약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선전과 달리, 이건 ‘앙꼬 없는 찐빵’만 내놓고 ‘단군 이래 최대 이벤트’로 부풀리는 것과 다름없다.

이유는 이명박 정부부터 금융거래세 도입에 별다른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월9일 국제통화기금

(IMF) 연차총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자원대국인 브라질과는 다르다. 우리가 그런 정책을 펴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라며 토빈세 등 금융거래세 도입에 선을 그었다. G20 정상회의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윤 장관 등 일부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이 은행세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내놓았지만, 진정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명박 정부 금융정책의 핵심은 금융규제가 아니라 거꾸로 ‘금융 자율화’를 핵심으로 하는 ‘금융 선진화’에 있다. 올해 초 대통령의 최측근인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한 세미나에서 했던 말을 곱씹어볼 만하다.

“바람직한 금융규제의 방향과 정도에 대해 (모든 나라를)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우리 경우는 금융규제를 일부 완화해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수준으로 올라가려는 상황으로, 최근 국제적 논의를 그대로 적용해 금융규제를 강화하면 우리의 금융 자율화 정도를 다시 초등학생 수준으로 되돌리는 잘못을 범하게 될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와 진보 진영이 G20 서울 정상회의를 비판하는 이유도 정부의 이런 태도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규제 강화와 투기자본 과세를 위한 시민사회네트워크’는 지난 10월 말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에 금융거래세 및 은행세 도입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묻는 상세한 공개 질의서를 보낸 적이 있었다. 돌아온 것은 금융위원회 도장이 찍힌 한 장짜리 팩스가 전부였다. 그나마 내용은 몇 줄 되지도 않았다.

“금융거래세 도입 문제는 국제 공조가 필수적인 만큼 향후 G20 차원에서 구체적인 국제 공조 추이 등을 보아가며 검토할 예정이며, 은행세 도입에 대해서도 국제적인 논의 동향을 보아가며 신중히 검토할 예정임을 알려드립니다. 끝.”

기획재정부에서는 아예 회신조차 하지 않았다.

부자 감세도 선진국 흐름과 반대

협조적이지 않은 의회와 막강한 금융권의 로비에 갇힌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조차 금융규제를 위해 노력하는 상황에서, 1997년 ‘IMF 사태’를 겪은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기존 G20이 큰 틀에서 합의한 금융규제 의제조차 따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본시장통합법이나 금산분리 완화 관련법을 밀어붙여 은행의 대형화·겸업화는 물론 대기업의 은행 소유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MB의 ‘G20 역주행’이라 할 수 있다.

역주행 사례는 더 있다. 최근 한나라당 일부 의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집하는 ‘부자 감세’ 정책이다. G20은 지난 6월 토론토 정상회의 때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각국의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긴축의 필요성에 합의했다. 재정 적자를 줄이려면 정부 지출은 줄이고 세금은 더 걷어야 한다. 세금 부담이 늘어야 한다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유층의 양보가 필요하다. 미국의 오바마가 중간선거를 앞두고도 부자 감세 철폐를 주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요 선진국의 흐름도 부자 증세다. 유독 이명박 정부만 부자의 세금을 깎겠다며 버티는 것이다.

노동 부문에서도 이 대통령의 G20 역주행은 그치지 않는다. 2009년 피츠버그 정상회의 때 G20은 “경제위기를 핑계로 국제노동기준을 약화시키거나 무시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합의문에 명시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이명박 정부가 이런 G20 합의마저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공공부문에서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고, 파업을 이유로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적용돼 구속되는 사례도 여전하다”며 “한국 정부는 국제노동기구가 지정한 8가지 핵심 국제노동기준 가운데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와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 등에 비준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기존 G20 합의의 이행 정도를 점수로 매긴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 시민사회의 평가다. 그가 선전하는 것처럼, 서울 G20 정상회의가 국격 상승의 기회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각 나라가 고민하는 금융 개혁 부문 등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모범답안을 내놓고 논의를 주도하는 것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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