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직원은 보았지만 삼성은 보지 않았다?



‘MBC 훔쳐보기’ 의혹에 삼성은 “회사 차원 아니다” 강변…

문화방송 김재철 사장도 삼성의 책임 묻지 않아
등록 2010-11-12 10:56 수정 2020-05-03 04:26

“(문화방송) 내부 정보 유출 파문과 관련해 저희 삼성 직원이 관련됐다는 점에서 유감을 표명한다.”
11월3일 이인용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은 브리핑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삼성이 문화방송 기자들의 취재 내용과 기사, 뉴스 큐시트 등이 올려진 내부 정보망 ‘뉴스시스템’을 훔쳐보고 있었다는 보도 내용(834호 표지이야기 ‘삼성은 MBC 내일 뉴스도 알고 있다?’)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보고 않을 정보를 왜 모았나

문화방송은 지난 7월부터 특별감사를 벌여 내부 정보망 관리자 A씨가 이 회사 기자 출신인 삼성경제연구소 B씨에게 뉴스시스템에 접속이 가능한 아이디를 제공했고, 삼성 쪽에서 이 아이디로 내부 정보망에 접속한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문화방송은 또한 A씨가 전자우편을 통해 B씨에게 회사 정보를 정리해 전달한 흔적을 발견해 지난 10월 말 A씨에게 대기발령을 내렸다.
이인용 부사장은 이와 관련해 “이번 사안이 회사 차원에서 벌어진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삼성이 조직적으로 문화방송 내부 정보망을 들여다본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정말 그럴까? 이 부사장의 해명대로 이번 일을 ‘개인적인 일’로 여기는 이는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 정도인 것 같다. 김 사장은 같은 날 ‘사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 본사 정보시스템부 소속 직원이 MBC에서 퇴직한 외부인에게 정보를 유출한 정황이 확인됐다”며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보시스템의 보안과 인력 체계를 재점검하고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퇴직한 외부인’이 삼성 소속이라는 사실은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삼성에 책임을 묻겠다거나, 사과·재발방지를 요구하겠다는 말은 더더구나 없었다.
이 때문에 문화방송 노조는 이튿날인 11월4일 특보를 통해 “회사에 보고조차 하지 않을 정보를 왜 그 직원이 그렇게 열심히 수집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백번 양보해 삼성의 변명대로 직원 한 명이 ‘호기심’에서 저지른 잘못이라 해도 사죄부터 하는 게 도리”라며 삼성을 비판했다. 또한 김재철 사장을 향해서도 “MBC를 대표한다는 사장의 글에 삼성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삼성의 적반하장식 태도에 경영진이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다”고 일침을 날렸다.
시민단체들도 삼성의 ‘해명’을 믿을 수 없다는 태도다. 참여연대는 “언론사의 뉴스시스템을 들여다보고 비판적인 내용에 압력을 가하는 삼성의 감시와 통제는 경악스러운 일”라며 “삼성은 아무도 믿지 못할 변명을 하기보다 철저한 조사를 거쳐 이번 사건의 전말을 공개하고 책임자 문책과 공개 사과 등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MBC가 ‘삼성’이라는 거대 자본권력 앞에 진실은 묻어두고, 정보를 유출한 내부 직원 한 사람을 징계하는 선에서 어물쩍 넘어가서는 결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늘을 가린 손바닥 치우기

문화방송과 삼성은 이런 요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까. 이진숙 문화방송 홍보국장은 과 한 전화 통화에서 “조만간 인사위원회를 열어 A씨 징계 수위를 결정한다. 삼성도 진상 조사를 철저히 해 관련자에게 책임을 묻고,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은 내부 조사를 거쳐 적절한 조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사와 조처의 목적은 이인용 부사장이 강조한 것처럼 “세간의 잘못된 의혹과 시선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과연 문화방송과 삼성은 하늘을 가린 손바닥을 치우게 될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