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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조종사들은 왜 떠나나

등록 2008-03-28 00:00 수정 2020-05-03 04:25

올해 두 달 만에 20명이 나가고 이직 예정자들도 많아… 기장 승진 때 노조원들에 대한 차별 논란

▣ 김규원 기자 한겨레 지역부문 che@hani.co.kr

“이젠 가야 할 준비를 해야 할 때일까? 하나둘 떠나갈 때도 별로 떠나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둘셋이 떠나고 넷다섯이 되니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차별이 싫다. 우리에겐 차별이 아니라고 변명하지만, 그럼 설득을 시키고 이해를 시킬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떠나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다. 돈은 문제가 아니다. 차별이 싫다.”(3월6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 누리집 자유발언대에 오른 ‘가야 하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이 회사를 떠나고 있다. 회사와 조종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1월부터 3월 중순까지 사표를 낸 조종사는 모두 20명이다. 2007년 한해 동안 사직한 조종사가 22명인 것을 보면, 두 달 만에 20명은 상당히 많은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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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관행 깨고 자체 인사 평가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조사 결과로는 더 많다. 지난해부터 올해 3월 중순까지 아시아나항공을 떠났거나 떠날 예정인 조종사들은 모두 51명이며, 부기장이 42명, 기장이 9명이다. 옮긴 항공사를 지역별로 보면, 한국 22명, 아랍 13명, 중국 12명, 일본 3명, 베트남 1명 등이다. 군산에 본사를 둔 저가항공사인 이스타항공에는 18명이 옮겨갔다. 협회는 이미 옮긴 51명 외에 20여 명의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이 추가로 이직을 원한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은 왜 이렇게 회사를 떠나려고 할까? 아시아나항공의 한 기장은 “현재 노조원 290여 명 가운데 기장 승진 자격인 4천 시간 이상 비행한 부기장이 150~170명가량인데, 이 가운데 80여 명만 기장 승진을 했고 나머지 70~90여 명이 승진하지 못했다”며 “노조 소속 부기장들에게 기장 승진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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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항공법상으로는 3천 시간 비행,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의 사규로는 4천 시간 비행 경력을 쌓으면 기장 승진 자격이 주어진다. 전세계 항공사들의 관행상 사고 경력이나 건강 등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시니어리티’(서열)에 따라 승진하는 것이 보통이다. 도제식 기술자에 가까운 조종사 업무 특성상 비행 경험이 가장 중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은 자체 인사평가에 따라 부기장을 기장으로 승진시키고 있다. 기장이 부기장보다 권한이나 대우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점에서 보면, 기장 승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조종사들에겐 치명적이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을 떠난 한 조종사는 “비행 시간이 7천 시간이 넘고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데도 아마도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이라는 점 때문에 기장 승진을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조종사는 새 항공사에서 기장으로 승진할 예정이다. 사표를 낸 상태인 한 노조원 부기장도 “이제 막 4천 시간 비행을 넘겨 아직 기장 승진을 걱정할 때는 아니지만, 노조원인 선배 조종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기장 승진이 어렵겠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경쟁사인 대한항공 사정은 어떨까? 대한항공은 2007년 10여 명의 조종사가 그만뒀으나, 올해는 퇴사한 조종사가 한 명도 없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서용수 위원장은 “대한항공은 조종사 가운데 노조원이 다수여서 차별을 받지는 않는다”며 “인사 적체가 있어 5천~6천 시간 정도 비행해야 승진하지만 대체로 서열에 따라가므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적은 편”이라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위원장이었던 김영근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장은 “2005년 아시아나 조종사 파업이 끝난 뒤 노조원들에 대한 인사상 차별이 지속돼 노조원들의 불만이 컸다”며 “최근 항공시장 활황으로 전세계적으로 조종사 수요가 늘어나면서 아시아나 조종사들이 살길을 찾아 떠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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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쪽 “노조원 차별 없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은 “기장 승진 과정에서 노조원에 대한 차별은 없었으며, 자체 인사평가 시스템에 의해 기장 승진자를 선정해왔다”며 “서열에 의한 승진보다는 인사평가에 따른 승진이 더 합리적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은 4천 시간 이상 비행 경력을 가진 조종사 가운데 노조원과 비노조원의 기장 승진 비율을 알려달라는 요청에 대해 “회사의 인사 자료를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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