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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가볍게, 일본차의 쌍검 승부

등록 2007-11-02 00:00 수정 2020-05-03 04:25

유럽 고효율 디젤 엔진에 맞서 친환경 자동차로 소형화·경량화 카드 꺼낸 도쿄 모터쇼

▣ 도쿄=한겨레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역시 환경이다. 자동차 시장의 화두는 이제 확실히 환경으로 넘어왔다. ‘어떻게 하면 이산화탄소를 더 적게 배출하는 자동차를 만들 것인가’라는 화두를 붙잡고 수많은 자동차 엔지니어들이 오늘밤도 연구실 불을 밝히고, 회사 경영진들은 머리를 싸매고 있다. 바야흐로 ‘친환경 자동차 대전’이다.

1인승 콘셉트카 몰고 온 도요타 사장

현재 자동차 시장 트렌드의 주도 경쟁을 벌이고 있는 유럽차와 일본차는 이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전략을 세우고 있다. 유럽차의 무기는 ‘고효율 디젤 엔진’. 디젤 엔진은 가솔린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30% 가까이 적다. 거기에 연비를 더 올리고 배출가스 저감 장치를 달아 공해물질 배출을 최대한 줄인다는 것이 유럽차들의 전략이다. 이런 전략을 극대화해 드러낸 자리가 지난 9월 열린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당시 벤츠와 아우디, 폭스바겐 등은 “디젤 엔진이 현재로서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유럽차 업계는 점점 더 강해지는 유럽 내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다. 수소전지 등 현재 논의되는 차세대 연료는 상용화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판단하고 있다.

유럽차의 파상 공세에 대항하는 일본차들의 무기는 뭘까. 10월24일 개막해 11월11일까지 일본 치바현 마쿠하리 메세에서 열리는 도쿄 모터쇼 현장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았다.

10월24일 오전 11시 세계 각국의 기자들로 발디딜 틈이 없는 가운데 도요타자동차의 언론 브리핑이 시작됐다. 도요타의 와타나베 가쓰아키 사장은 1인승 콘셉트카 ‘i-리얼’을 직접 몰고 브리핑장에 등장했다. 그는 차를 멈춘 뒤 3개의 콘셉트카(아직 양산 단계에 들어가지 않은 시제품 자동차) 앞에 내려섰다. 그 차들은 이번에 최초로 공개된 ‘1/X’ ‘아이큐’ ‘린’.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지고 수십 개의 비디오카메라가 그의 모습을 담기에 바빴다. 일본차뿐 아니라 세계 자동차 회사의 ‘왕자’ 도요타의 미래 전략이 전세계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바로 ‘소형화·경량화’다.

‘아이큐’의 길이는 3m에 2cm 모자라는 2m98cm다. ‘초고효율 패키지’라는 것이 도요타의 자랑이다. ‘배출가스가 문제라고? 그럼 왕창 작은 차를 만들어서 연료 소비를 줄이지.’ 이런 속셈이 뻔히 보이는 차다. 작지만 실내 공간은 생각만큼 좁지 않아 어른 3명과 아이 1명이 탈 수 있다. ‘1/X’는 무게로 승부한다. 이 차의 무게는 420kg. 자사의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 무게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이제 왜 이 차가 ‘1/X’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는지 감이 올 것이다. 다른 차의 몇 분의 1 무게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으로 차체를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무게다. 엔진의 용량은 500㏄. 전기 모터와 엔진을 동시에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엔진에 가솔린뿐만 아니라 바이오에탄올도 사용이 가능하다. 연비는 보통 차에 비해 50% 이상 향상됐다.

8시간 충전에 200km 달리는 전기자동차

도요타뿐 아니다. 혼다의 ‘푸요’, 닛산의 ‘피보2’, 스즈키의 ‘픽시 SSC’ 등 일본 회사들이 의욕적으로 내놓은 콘셉트카들은 대부분 1~3인승 정도의 작은 차들이다. 다이하쓰의 초소형 트럭 ‘머드 마스터-씨’, 스즈키의 ‘엑스-헤드’ 등 상용차들도 소형화 대세에 동참했다. 자신들의 ‘주특기’인 작은 차로 ‘친환경대전’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일본차 업계의 전략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원래 일본은 경차의 왕국. 작은 차를 만드는 데는 따라올 나라가 없다. 고효율 디젤 엔진이라는 검을 든 유럽 기사와 소형화·경량화라는 쌍칼을 든 일본 사무라이의 대결이 이제 막 시작될 참이다.

이번 모터쇼의 또 하나의 특징은 콘센트에 전원을 꽂는 충전 방식을 채용한 전기 자동차가 대거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런 움직임은 디젤 엔진 개발이 유럽에 뒤지고 하이브리드 기술은 도요타에 선점당한 다른 일본차 업계에서 두드러졌다.

미쓰비시의 소형 쿠페 콘셉트카 ‘i-MiEV’는 200V 전원에서 8시간30분을 충전하면 200km를 달릴 수 있다. 급속 충전을 하면 35분 만에 80% 정도 충전할 수 있다. 사람들이 하루에 차로 운행하는 거리는 평균 60km 수준. 출퇴근용과 짧은 나들이용으로 충분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기자동차이지만 시속 20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고 미쓰비시 쪽은 설명했다. 쓰바루의 소형 해치백 ‘G4e’ 또한 충전식 전기자동차다. 8시간 충전에 200km 운행이 가능하다. 쓰바루 쪽은 2010년께면 이 기술을 적용한 차량을 시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도요타도 그동안 엔진 구동력만을 이용해서 충전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콘셉트카 ‘Hi-CT’를 내놓았다. 볼보도 ‘C30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콘셉트카’를 선보였다.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전기차는 가솔린 엔진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800년대 후반 영국에서 실용적인 전기자동차가 개발돼 1920년대에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엔진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모터 구동 방식의 전기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전기자동차가 다시 권토중래를 노리는 셈이다. 그러나 전기모터가 차세대 차량의 주요한 구동 방식이 될 것인지에는 예측이 엇갈린다. 대형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납 등이 도리어 환경을 더 해친다는 견해와 배터리 기술 혁명으로 한계를 넘어설 것이라는 기대가 부딪치고 있다.

농담하는 로보트, 차 표면은 말랑말랑

세계 3대 모터쇼 중 미국차의 홈그라운드인 디트로이트 모터쇼와 유럽차의 안방인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와 비교해서 도쿄 모터쇼가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일본 특유의 ‘만화 같은 상상력’이다. 이번 모터쇼에서도 역시 이런 경향은 여전했다. 곳곳에 공상과학 만화에서 바로 튀어나온 것 같은 콘셉트카들을 선보였다.

닛산의 ‘피보2’를 타면 운전석 쪽에 있는 로봇이 우선 인사를 건넨다. 이 로봇은 운전자의 표정까지 인식할 수 있다. 운전자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농담까지 할 수 있다고 한다. 차체는 360°로 돌아가서 운전자가 내리고 싶은 방향으로 내릴 수 있게 한다. 바퀴도 좌우로 돌아가기 때문에 주차하기도 쉽다. 도요타의 ‘RiN’은 ‘웰빙’을 목표로 한 차다. 운전자의 심리 상태에 따라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영상을 비춰주고 차내의 산소 농도도 자동으로 조절해준다. 혼다의 ‘푸요’는 표면이 말랑말랑하다. 모서리가 하나도 없이 만들어진 둥글둥글한 차체와 차량 상태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 램프가 귀엽다. 개발할 때 목표로 했다는 ‘애완동물’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다. 쓰즈키의 1인승 콘셉트카 ‘픽시SSC’는 합체·분리가 가능한 차량이다. 고속으로 달릴 때는 좀더 큰 몸체와 합체해서 달리다가 시내로 들어오면 의자만 한 크기의 조종석만 따로 분리해 움직일 수 있다. 휠체어만 한 크기의 도요타의 1인승 자동차 ‘i-리얼’도 상상력 경쟁에서 빼놓을 수 없다. 역시 ‘미래차의 향연’답다.

△모델들이 도요타의 콘셉트카 ‘린’(RiN) 앞에서 포즈를 잡고 있다. (사진/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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