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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되나 보자’는 시범사업?

등록 2007-10-26 00:00 수정 2020-05-03 04:25

토지공공임대제 앞장서 제기했던 전강수 교수…“반값 아파트로 진의 왜곡한 홍준표 쪽도 책임 있어”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에 의해 ‘반값 아파트’라는 선정적인 이름으로 알려진 ‘토지공공임대 제도’를 도입하자는 제안이 공식적으로 처음 제기된 것은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 직후였다. 김윤상 경북대,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권영준 경희대 교수를 비롯한 60~70명의 경제학자들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보낸 부동산 정책 건의서에서 ‘행정도시’(현 행정복합도시) 개발을 토지공공임대제 방식으로 하자고 밝혔다. 토지 소유권은 국가나 공공기관이 갖고 건물의 소유권만 입주자가 갖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토지에서 비롯되는 불로소득이 사적 영역으로 넘어가 부동산 시장을 어지럽히는 고질병을 막는다는 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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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 두 조건 중 하나도 충족 안 돼

부동산 정책 제안 당시 초안 작성을 맡았던 전강수 교수는 10월18일 과 만나 “노무현 정부가 이런 대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어 보였기 때문에 부동산 보유세 강화 방안과 함께 토지공공임대제를 제안했는데, 노무현 당선자나 (대통령직)인수위 쪽에선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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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도시라는 제한된 공간을 넘어 일반적인 ‘토지공공임대형’ 아파트 도입 주장을 본격적으로 제기한 주체는 2005년 2월 출범한 시민단체인 ‘토지정의시민연대’였다. 그해 하반기 부동산 시장을 뜨겁게 달군 경기도 판교 지역의 투기 열풍 와중에서 토지정의시민연대는 공영 개발보다 한발 더 나아간 토지임대형 방식의 분양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잇따라 내고 토론회도 몇 차례 열었다.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토지·주택위원장을 맡고 있던 전강수 교수는 김윤상 교수와 더불어 토지정의시민연대의 주장에 이론적 바탕을 제공했다. 토지정의시민연대의 제안에 이어 그해 8월에는 대한주택공사(주공) 부설 주택도시연구원이 토지임대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공영개발 확대와 토지 및 주택 공급 방식의 다양화’라는 보고서를 내놓기에 이른다.

홍준표 의원이 ‘토지임대형’이란 새로운 분양제도를 ‘반값 아파트’라는 야한 이름으로 포장해 정치권에 화두를 던진 건 지난해 2월이었다. 홍 의원은 서울시장 후보 당내 경선에 나서면서 이를 자신의 대표적인 구호로 내걸었으며, 그해 11월에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대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 촉진을 위한 특별조치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아직 국회 계류 중이다. 애초부터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던 정부·여당이 ‘시범 추진’ 쪽으로 돌아선 것은 홍 의원의 주장에 여론의 호응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 1월 부동산 대책 때 새로운 분양제도로 환매조건부와 함께 토지임대부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고 4월 공포된 개정 주택법에 그 근거를 마련했다.

주공이 개정 주택법을 바탕으로 경기도 군포시 부곡동의 택지개발지구에 지은 첫 토지임대부 및 환매조건부 분양주택은 모두 804가구(토지임대 389가구, 환매조건 415가구)다. 환매조건부는 토지임대부와 약간 달라 분양받은 입주자가 토지와 건물에 대한 소유권을 모두 갖되 분양 뒤 20년 안에 주택을 팔고자 할 때는 법령 기준에 따라 주공에 되팔도록 돼 있다. 이 두 유형을 모두 합쳐 ‘반값 아파트’로 통칭해왔다. 잘 알려진 대로 10월15~17일에 실시된 청약 결과, 804가구 중 최종 분양 신청된 물량은 119가구로 청약률은 15%에 그쳤다. 미분양률 85%의 완전한 실패작이다.

토지공공임대제를 앞장서 제기했던 전강수 교수는 “이 제도의 성공을 위해선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는 충족돼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위치에 괜찮은 아파트’를 짓거나, 아니면 ‘분양가를 대폭 낮추는 조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 지역에 토지임대형 아파트를 공급하면 분양가를 크게 낮추지 않더라도 실수요자가 있을 것이다. 강남의 10억~15억원짜리 아파트를 3억~4억원 내고 건물만 분양받아 매달 일정한 임대료를 내게 하면 살 만한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첫 토지임대형을 선보인 군포 부곡 지구는 강남 같은 ‘좋은 지역’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분양가를 훨씬 더 낮춰 시세의 70%대 정도로 책정해야 한다고 전 교수는 말했다. 현 시세의 70%대는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 원가에 적정한 이윤을 붙인 합리적인 수준이란 설명이다. 대거 미분양 사태를 빚은 군포 부곡 지구의 토지임대형 주택의 분양가는 시세의 90%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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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부담 클 이유 없어

분양가를 낮추려면 재정 부담을 추가로 져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전 교수는 “시범사업의 대상이 800가구 정도여서 재정 부담이 클 이유가 없다”며 “정부가 ‘실패를 보여주기 위한 시범사업’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시범 지역이라는 게 뭐냐. 성공시키려고 하는 거 아니냐. 잘 만들어 성공시키려 애를 써야지, 저쪽 멀리 떨어진 지역에 선정해놓고 ‘어디 되나 안 되나 보자’는 식이었다.” ‘야당’의 홍준표 의원이 선도적으로 제기한 방안이어서 세밀한 연구를 하지 않은 채 무책임하게 진행했다가 책임 떠넘기기를 한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전 교수의 지적이 아니어도, 청와대 쪽은 10월16일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애초부터 실효성이 낮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며 홍 의원에게 책임을 미뤄 빈축을 샀다. 전 교수는 “토지임대부에 대한 청와대 쪽의 부정적인 태도는 자신들의 부동산 정책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라며 “더욱이 ‘홍준표 말대로 했더니 망했지 않나’라는 식은 정책 결정자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물론 홍 의원도 비판의 화살을 피해가지는 못한다. 오히려 토지공공임대형의 진정한 의미를 1차적으로 왜곡한 책임이 있다는 게 전 교수의 지적이다. “‘반값’이란 이름은 치명적이다. 집값이 오르니 가격과 직접 씨름해서 ‘뭔가 보여달라’는 국민 정서와, ‘내가 보여준다’는 포퓰리즘이 결합한 것이다. 토지공공임대제로 투기를 잡고 아파트 값을 잡는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한꺼번에 몇백만 가구를 공급하는 방식이면 몰라도 군포 부곡 지구의 분양 물량이 몇 가구나 된다고….” 토지공공임대제로 투기를 잡는다는 환상을 심어줄 게 아니라, 지역별 특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토지공공임대형을 공급하는 장기적인 자세로 새로운 분양 방식을 차츰 정착시켜나가야 하며 시범 지역은 그 출발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토지공공임대형에는 크게 ‘미국형’ ‘싱가포르형’ 두 가지가 있다. 미국형은 시장가치대로 임대료를 받아 사적 불로소득을 막는 방식이고, 싱가포르형은 분양가와 임대료를 낮게 책정해 주거 복지를 꾀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군포 지역은 두 변수 중 어느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한 어정쩡한 내용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지역의 특성에 따라 이 두 유형을 포함해 다양한 방식을 쓸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게 전 교수의 분석이다.

다양한 ‘맞춤형’으로 제공해야

건설교통부는 ‘반값 아파트’의 대거 미분양 사태와 관련해 각계 주택시장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시범사업 평가단’을 구성해 11월 한 달 동안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평가 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이를 반영해 12월 말까지 확대 시행 여부를 정한다는 계획이다. 전 교수는 “‘공공임대제로 집값을 잡는다’는 식은 잘못이며, 단기 대책을 병행 추진하면서 이룬 집값 안정의 터전 위에서 공공임대제라는 새로운 분양 방식을 다양한 내용으로 만들어 ‘맞춤형’으로 제공해야 주거 복지 정책으로서도 의미를 띨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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