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과 주민들의 참여로 진행되는 한국토지공사의 ‘어린이놀이터 리모델링’ 사업
기업 사회공헌 현장 ⑤ 한국토지공사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 9월17일 오후,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어린이놀이터 씨알공원. 공원 돌벤치 위에 초등학생들의 가방이 옹기종기 놓여 있다. 동네 어린이 10여 명이 놀이터 한쪽 나무 그늘 아래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앉아, 몇몇은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몇몇은 색종이를 오려 붙이고 있다. 아이들은 저마다 플라스틱 화분에 색종이를 붙여 조그맣고 귀여운 아트북 화분을 하나씩 만들었다. 아이들 틈에는 ‘온누리봉사단’ 조끼를 입은 한국토지공사 직원 4명과 ‘걷고싶은도시만들기 시민연대’(이하 도시연대) 사람들 서너 명이 섞여 있다. 한국토지공사 서울지역본부 박용민 차장이 아이들이 만든 화분에 흙을 담아주고 강낭콩을 심어줬다. “자, 집에서 잘 키우고 놀이터가 새로 다 만들어져 개장하면 그때 가져오세요.” 한국토지공사가 사회공헌 활동의 하나로 진행하고 있는 ‘어린이놀이터 리모델링’ 사업의 현장이다.
씨알공원의 리모델링 디자인 주제는 어린이 동화 ‘재크와 콩나무’로, 하룻밤 사이에 하늘까지 자란 콩나무에 올라 하늘나라에 도착한 재크의 이야기다. ‘씨알’이라는 공원 이름에서 따온 콘셉트이다. 주택가 안에 자리잡은 300여 평 규모의 이 놀이터는 지은 지 15년 정도 된 낡은 공원으로, 목재 놀이기구마다 페인트칠이 대부분 벗겨져 있고 그네 줄은 비바람에 군데군데 녹슬어 있다. 공원 한쪽에 있는 나무 벤치에는 동네 노인들이 걸어놓은 듯한 오래된 거울이 걸려 있고, 공원 울타리에 나붙은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 경고문은 이 놀이터가 오래도록 방치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 공원은 사실상 어린이 놀이터의 기능을 잃은 채, 동네 길을 가로질러 가는 통로 구실만 하고 있다.
‘재크와 콩나무’를 현실로
한국토지공사가 사업비(총 2억원)를 대고 시민연대가 설계·디자인하는 이 놀이터 리모델링 프로그램은 동네 어린이들과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날 동네 어린이들이 놀이터에 모여 화분 만들기를 한 것도 리모델링 디자인 과정에서 어린이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것이다. 도시연대 최성용 팀장은 “놀이터가 낡은데다 놀이기구가 단조롭고 특색이 없어서 그런지 근처에 사는 아이들이 이 공원을 별로 이용하지 않고 길 건너 저쪽 새 놀이터로 가서 놀고 있다”며 “오늘처럼 아이들이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공원이 리모델링된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고, 이 공원에도 놀거리가 있다는 점을 어린이들 스스로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재크와 콩나무’ 동화에 등장하는, 하늘 위에 사는 거인을 상상해 저마다 그렸는데 최 팀장은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들을 놀이터 디자인에 반영할 생각이다.
지난 7월 한국토지공사와 도시연대는 놀이터 근처에 있는 공연초등학교에 가서 어린이들한테 자신이 좋아하는 놀이기구에 손을 들어보라고 묻는 방식으로 놀이행태 선호도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특색 있는 놀이기구를 볼 때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또 동네 어린이들을 모아 ‘어린이놀이터 평가단’을 만든 뒤 놀이터 곳곳을 돌면서 시설물마다 빨강·노랑·파랑 스티커를 붙여 좋아하는 시설과 바꿨으면 하는 시설을 평가하도록 했다. 어린이들은 평가판에 “더 재미있게 변했으면 좋겠어요” “올라타기가 재미있어요”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미로를 만들어주세요”라고 쓰는 등 특이한 놀이기구를 만들어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작은 참여를 통해 아이들의 기대 수준은 계속 높아졌다. 이날 화분 만들기 프로그램에서 전영주(초등1) 어린이는 “빙빙 돌아가는 뱅뱅이 회전그네를 만들어달라”고 했고, 최수민(초등1) 어린이는 “모래 바닥 말고 고무 매트가 깔려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또 박혜원(초등5) 어린이는 “그네줄이 쇠가 아니라 단단한 플라스틱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온 동네의 관심사
한국토지공사와 도시연대 쪽은 동네 아이들뿐만 아니라 놀이터 근처에 사는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놀이터를 어떻게 바꿨으면 하는지 물어보았다. 사실 동네 주민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놀이터를 보수해달라고 구청에 민원을 제기해왔다고 한다. 지역주민 이병희(45)씨는 “배수가 제대로 안 돼서 항상 놀이터에 물이 고여 있고, 불량 청소년들이 와서 담배 피우는 모습도 간혹 보인다. 이번에 리모델링한다고 하니 예쁘고 아기자기한 놀이터보다는 단순해도 좋은 자재를 써서 쉽게 노화되지 않고 오래가는 놀이터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미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놀이터 리모델링 디자인에 대한 1, 2차 설명회도 열렸다. 한국토지공사 기업시민팀 유상욱씨는 “놀이터를 일단 만들어놓고 알아서 이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런 요구를 반영해 설계하는 프로그램”이라며 “놀이터가 바뀐다는 사실에 대해 이곳 동네 사람들이 점차 관심을 보이고 있고 소문도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작은 동네 공원이고 큰 사업은 아니지만, 놀이터 리모델링이 온 동네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도시연대 쪽은 높게 설치된 울타리를 제거하고 나무들을 옮겨 심어 이 공원을 아이들의 놀이공간과 주민들의 커뮤니티 장소로 바꿀 생각이다. 특히 ‘재크와 콩나무’에 등장하는 콩나무를 주요 형상물로 삼아 콩나무 줄기가 등받이가 되고, 공원 입구도 되고, 등나무 지붕도 되게 하는 식으로 공원을 새로 단장할 예정이다. 최 팀장은 “하늘까지 높이 자라는 콩나무 형상의 놀이기구는 동화 속에 등장하는 신비한 무지개와 함께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될 것”이라며 “오늘 화분에 심은 작은 콩알이 자라서 벤치가 되고 놀이기구가 되고, 결국 어린이들의 일상적인 놀이가 동화 속의 연장이 되도록 디자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이 와서 조용히 별 탈 없이 예쁜 놀이터 하나를 뚝딱뚝딱 만들 수도 있지만, 한국토지공사의 ‘살고 싶은 지역 만들기’ 사회공헌 프로그램은 동네와 놀이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지역 사람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다. 지난해 진행된 수원시 매탄동 어린이놀이터 리모델링 사례를 보면, 공사 기간 중에 많은 주민들과 아이들이 공사 현장을 수시로 기웃거렸다. 도시연대 최 팀장은 “당시 자신들의 생각이 어떻게 반영되는지 궁금해하거나 흥분하는 아이들도 많았다”며 “매탄동 놀이터 담장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뒀는데, 담장을 없애면 시원하고 개방된 느낌을 주겠지만 주민들 스스로 ‘주변의 자동차가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면서 담장 개방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시환경 개선에 초점 맞춘 활동
한국토지공사 쪽은 “우리는 사업 특성상 환경 파괴 분야에 관심을 갖고 도시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춘 사회공헌 활동을 펴고 있다”며 “올해 5억5천만원 정도를 투입해 낡은 어린이놀이터 2곳(씨알공원, 경기도 평택시 서정동 원이충어린이공원)을 리모델링하고, 전국 30여 개 놀이터의 오염된 바닥 모래를 교체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놀이기구에서 흘러나온 중금속에 오염된 모래는 20∼30cm 정도 파내서 교체하거나 걷어내 소독한다. 지난해에도 한국토지공사는 서울 강동구 성내동 선린공원과 수원시 매탄동 놀이터 등 2곳에 대한 리모델링 사업을 벌였다. 두 곳 역시 지역주민과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해 각각 ‘엄마의 품’과 ‘도롱뇽’이라는 주제로 새롭게 단장했다.
기획연재- 기업 사회공헌 현장
▶[기업 사회공헌 현장 ① KT] “자, 오늘은 컴퓨터 배우는 날”
▶[기업 사회공헌 현장 ② 포스코] “제대로 배워서 남 줘야죠”
▶[기업 사회공헌 현장 ③ 다음(Daum)]캄퐁참에서 보낸 ‘뜨거운 휴가’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포근한 올 겨울, 축축하고 무거운 ‘습설’ 자주 내린다
뉴진스 “29일 자정 어도어와 전속계약 해지…광고·스케줄은 그대로”
[영상] 명태균 “조은희 울며 전화, 시의원 1개는 선생님 드리겠다 해”
명태균 처남의 이상한 취업…경상남도 “언론 보도로 알았다”
한동훈 ‘도로교통법 위반’ 신고…“불법정차 뒤 국힘 점퍼 입어”
러, 우크라 전력 시설 폭격…영하 날씨에 100만명 단전 피해
의사·간호사·약사 1054명 “윤석열 정책, 국민 생명에 위협”
제주공항 도착 항공기에서 50대 승객 숨져
전쟁 멈춘 새…‘이스라엘 무기고’ 다시 채워주는 미국
삼성, 경영진단실 신설해 이재용 측근 배치…미전실 기능 부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