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와 영장 논란으로 불거진 외환카드 주가조작은 매각작전의 일부분…‘주연배우급’ 윗선 조사 예정, 론스타의 불법 밝히려면 김&장 조사 불가피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론스타의 ‘먹튀’로 끝나는가, 각본 없는 ‘반전 드라마’가 될 것인가? “2003년에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의 투기 행각은 잘 짜인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제작은 론스타인데, 감독은 김&장 법률사무소가 맡아 관료들의 로비력과 법률지식을 총동원해 드라마를 완성시킨다. 연출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배우로는 현직 관료들과 은행 간부들이 등장한다.”(투기자본감시센터 장화식 정책위원장)
외환카드 인수로 지분율 유지
1조4천억원을 투자해 자산 70조원짜리 외환은행을 삼키고 3년 만에 무려 4조5천억원의 매각차익을 거둔 투기판 드라마가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막바지로 갈수록 외환은행 헐값(불법) 매각 의혹 사건은 점입가경이다. 과연 4조5천억원의 대박을 터뜨린 론스타는 돈을 챙긴 뒤 한국 땅을 무사히 떠날 수 있을까?
순탄하던 론스타의 ‘먹튀 드라마’에 작은(?) 위기가 닥치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이 새롭게 터져나왔고, 론스타 경영진에 대한 영장을 둘러싸고 법원이 기각하고 검찰이 재청구하는 공방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3년간 외환은행 매각을 둘러싸고 온갖 의혹이 제기됐지만,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은 이번에 검찰 수사에서 새롭게 등장한 대목이다. 검찰에 따르면, 2003년 10월 중순 엘리스 쇼트 부회장과 마이클 톰슨 법률자문 이사,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 등 론스타 경영진이 외환카드 주가를 떨어뜨린 뒤 외환은행과 합병시키는 시나리오(이른바 프로젝트 스콰이어·Project Squire)를 마련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계획이 ‘프로젝트 나이트’(Project Knight)이고, 외환카드 주가조작은 외환은행 인수 단계에서 치밀하게 구성된 하부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론스타가 허위감자설을 발표해 외환카드 주가를 떨어뜨린 뒤 낮은 가격에 합병했다면서 당시 론스타 쪽 이사들의 허위 감자계획 의결에 관한 녹음테이프를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쇼트 부회장과 톰슨 이사 등 론스타 본사 경영진은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미국으로 출국해버렸고, 현재 영장 발부 여부를 놓고 검찰과 법원이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는 인물은 유회원 대표다.
얼핏 보면, 외환카드 주가조작은 사건의 ‘본체’인 외환은행 헐값(불법) 매각 의혹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그러나 두 사건이 전혀 별개인 것도 아니다. 검찰에 따르면, 론스타는 의도적으로 외환카드 감자설을 퍼뜨려 외환카드 주가를 폭락시킨 뒤에 외환카드를 합병했는데, 이렇게 합병 비용을 줄여서 외환은행 지분을 51% 이상 유지할 수 있었다. 당시 론스타가 정상적으로 외환카드를 인수했다면 외환은행 지분율은 40%대로 내려갔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론스타가 51% 이상의 경영권 지분을 갖고 있지 못했다면 나중에 팔 때 국민은행에 6조4천억원을 매각 가격으로 제시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외환카드 주가조작 역시 외환은행 인수·매각 시나리오라는 큰 틀 안에서 치밀하게 진행된 작품이라는 얘기다.
검찰은 유씨를 구속해 신병을 확보하면 헐값 매각이라는 본체 수사의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화식 정책위원장은 “론스타와 (외환은행 매각 당시 론스타의 법률 대리를 맡았던) 김&장은 유회원씨를 겁이 나면 검찰에서 다 불어버릴 사람으로 보고, 유씨가 구속되는 사태를 결사적으로 방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과 법원의 영장 발부를 둘러싼 갈등 이면에는 김&장 법률사무소의 필사적인 로비와 변호가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유씨가 론스타 본사 및 김&장 쪽과 내부 전자우편을 교신해온 것을 캐면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서 론스타 본사의 불법성과 ‘김&장’의 구실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판단 실수에서 불법행위로
현재 검찰은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조작 과정 등에 론스타가 어떻게 개입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불법행위를 밝혀내지 못한 상황이다. 이미 구속된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과 경제관료들이 헐값 매각 과정에 개입한 대목은 일부 드러났지만 ‘먹튀’를 극적으로 반전시키려면 론스타 본사의 위법성이 드러나야 한다. 그런데 외환카드 주가조작이 외환은행 인수·매각과 맞물려 돌아가는 수레바퀴라면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로 론스타 경영진이 처벌될 경우 론스타가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화식 정책위원장은 “검찰이 애초에 유씨를 구속시킨 뒤 수사를 대충 끝내고 빠져나갈 심산을 갖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검찰과 법원의 자존심이 걸린 싸움으로 비화하면서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헐값(불법) 매각 의혹이라는 본체 수사로 들어가보자. 지금까지는 외환은행 매각에 관여했던 외환은행이나 금융·감독 당국 인사들의 ‘정책적 판단 실수’ 선에 머물렀지만 최근 이강원 전 행장이 구속되면서 사태의 초점은 ‘불법행위’로 번지고 있다. 이 전 행장과 경제관료들이 공모 또는 묵인해 계획적으로 론스타를 밀어줬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행장은 외환은행 부실을 과장해 자산·부채 실사결과를 내도록 회계법인에 요구하고, 매각 가격을 장부가보다 낮게 산출하도록 매각 주간사에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매각 당시 BIS 자기자본비율 전망치를 금융감독위원회에 6.16%로 보고하는 등 BIS 비율을 조작하고, 2002년 11월 당시 변양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에게 ‘10억달러+α’에 외환은행 지분 51%를 넘겨주는 주가 시뮬레이션 자료를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전 행장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외환은행 매각 당시 김&장 고문)의 광주서중 후배이고,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2002년 이 전 행장이 외환은행장에 임명될 당시 외환은행장 후보추천위원장)과는 아시아개발은행에서 같이 일한 적이 있다. 이 전 행장은 진념 전 경제부총리(당시 론스타의 회계법인인 삼정회계법인 고문)가 기아자동차 회장으로 있던 무렵 기아포드할부금융 사장으로 있었는데, 이때 진념 전 부총리의 눈에 들어 이헌재 라인에 합류하게 됐다고 한다. 은행 경력이 전혀 없던 그가 갑자기 외환은행장이 되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그 뒤 한국투자공사(KIC) 사장까지 오른 건 탄탄한 인맥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종남 사무국장은 “이강원 전 행장이 갑자기 승승장구하게 된 비결은 특출난 재능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동아줄을 잘 잡았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이씨가 판을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던 건 아니고, 금융당국이나 청와대 등 윗선의 방침에 수동적으로 따른 역할에 머물렀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연배우급 거론되는 변양호·김석동
현재까지 ‘윗선’으로 거론되는, 론스타 ‘먹튀 드라마’의 주연배우급은 당시의 변양호 재경부 국장과 김석동 금감위 국장이다. 검찰도 당시 금융·감독당국 관계자 2∼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조만간 청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전 행장의 배후세력으로 정책 당국자들만 지목한다면 반쪽 수사에 그치게 된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의혹의 몸통은 경제관료 쪽보다는 김&장 법률사무소”라며 “론스타의 불법성을 밝힐 의지가 있다면 김&장과 론스타 본사의 이메일 교신내역, 이헌재 고문의 컴퓨터를 압수수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환은행 관계자나 금융·감독 당국 관료들의 불법행위만으로는 대형은행을 먹잇감으로 삼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투기사건을 반전시킬 수 없다. 바꿔 말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국민은행에 재매각한 행위 자체를 ‘원인무효’로 만들 수 없다. 결국 론스타 본사의 불법행위가 드러나야 한다.
외환은행 불법 매각 의혹의 두 가지 핵심 쟁점은 BIS 비율 조작과 은행법 시행령의 예외조항을 적용한 대목이다. BIS 비율 조작은 금융회사가 아닌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BIS 비율 전망치를 8% 이하로 낮춰 부실은행으로 만든 것인데, 이 부분은 이강원 전 행장의 구속영장에 나와 있다. 남은 건 은행법 시행령의 예외조항(“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자격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적용한 경위와 책임 소재다. 김&장에 대한 압수수색 요구는 바로 여기에 있다. 투기자본감시센터와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 등에 따르면, 김&장은 2003년 7월8일 재경부에 비밀리에 법률검토 문건(‘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자격에 관하여’)을 전달해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편법 매각할 수 있는 길을 알려줬다(표 참조).
임종인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당시 론스타의 인수자격과 관련해 어떤 곳으로부터도 법률 검토를 받은 적이 없는 재경부와 금감위가 유독 론스타의 대리인인 김&장에서만 비공식적으로 또 ‘대외비’로 분류해 법률 검토를 받은 건 사전 공모가 명백하다”며 “김&장 고문으로 있던 이헌재 전 부총리가 재경부와 금감위의 연결고리로서 로비 창구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특히 7월8일 이후 재경부와 금감위의 회의 내용이나 자료는 김&장의 법률 검토 내용과 구성이 똑같고, 김&장의 의견을 그대로 베낀 것으로 드러났다. 장화식 정책위원장은 “재경부와 금감위가 김&장에 법률 검토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김&장이 먼저 재경부와 금감위에 준 것이다. 론스타의 손발 노릇을 한 김&장은 민간 법률사무소라서 지난 6월 감사원 조사에서는 손대기 어려웠는데, 이번 검찰 조사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예외승인’ 위해 사전에 공모했나
그동안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경제관료의 오류와 책임은 있었지만 론스타의 불법성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앞으로 그 한 축이 무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론스타의 대리인인 김&장이 정부에 법률검토 문건을 전달한 건 외환은행 매각을 위해 론스타와 재경부, 금감위가 사전에 공모했다는 물증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초점은 애초에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불가 입장이었던 재경부와 금감위가 김&장의 법률 검토 문건이 전달된 뒤 갑자기 ‘예외승인’으로 돌변한 과정의 비밀에 있다.
검찰이 전격적으로 김&장 법률사무소 쪽으로 수사 방향을 틀 경우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한 국민은행은 기로에 서게 될 공산이 크다. 국민은행은 지난 5월 본계약 체결 당시 감사원 조사와 검찰 수사 등 정부 당국의 승인이라는 선행조건을 만족시켜야 매각대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 때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이 입증돼 기소된다면 론스타는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이 흔들리게 된다. 물론 법원의 최종판결이 나와야 하지만,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이 박탈되면 국민은행에 재매각한 계약은 파기되고,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현재 64.6%)을 6개월 안에 10% 이하로 낮춰야 한다. 론스타로서는 시간에 쫓겨 제값을 못 받고 팔아야 할 수도 있다. 아무튼 ‘론스타 게이트’의 불길이 김&장의 연루 여부로 번질수록 론스타는 불길한 예감이 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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