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 플레이어 시장의 신화를 만든 레인콤 양덕준 사장의 변신 선언…콘텐츠와 문화가 결합된 ‘멀티 컨버전스 디지털 기기’로 진화할 것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지난해 말 이후 MP3플레이어 시장에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급속히 퍼졌다. 애플 아이팟의 저가 공세와 삼성전자 및 중국 업체의 시장 공략이 거세지고, 휴대전화·디지털카메라도 MP3플레이어를 기본으로 달게 되면서 MP3플레이어 시장은 ‘레드오션’으로 빠져들었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마진이 줄어들면서 MP3플레이어 업체마다 MP3플레이어를 접고 휴대용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 또는 무선휴대인터넷(와이브로) 기반의 게임기로 옮겨가고 있다. 잘나가는 기업도 하루아침에 위기에 몰릴 정도로 급변하는 것이 요즘의 시장 경쟁환경이다.
애플 저가공세로 시장 위기
‘아이리버 신화’를 창조한 레인콤 역시 지난 2000년 회사 설립 이후 지난해 처음으로 117억원의 적자를 낸 데 이어 올 1분기에도 큰 폭의 영업손실(135억원)을 기록했다. 아이리버가 “국내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에서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한” 세계적 브랜드지만, 강남구 도곡동 레인콤 사무실은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신제품으로 구상했던 T20, T30 모델은 디자인만 해놓고 출시를 못한 채 죽고 있었고, 그런대로 팔리고 있는 레인콤 전자사전 ‘D20 딕플알파’가 MP3플레이어의 수익성 악화를 만회해주는 형편이었다. 올 초 80여 명을 감축한 탓인지 텅 빈 자리도 여럿 눈에 띄었다.
아이리버가 국내 MP3플레이어 시장에서 여전히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어닝 쇼크’(실적 악화 충격)에 빠져 주가는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삼성전자 이사로 있다가 47살에 사표를 던지고 자본금 3억원, 직원 7명으로 레인콤을 차린 뒤 일약 ‘신흥 벤처 부호’에 올랐던 양덕준 사장의 신화도 차츰 꺼지고 있다. 레인콤은 지난해 부도설에서부터 일본 소프트뱅크 인수설 등 온갖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레인콤이 최근 ‘아이리버 E10’(MP3플레이이어에 동영상 재생, 플래시 게임, FM라디오 등 다양한 기능을 넣은 신제품)을 내놓았다. 또 지난 23일에는 지상파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수신 단말기인 ‘아이리버 포켓TV’(아이리버 B10)를 출시했다. MP3플레이어 업체에서 탈피하겠다는 선언일까? 지난 5월15일 과 만난 양덕준 사장은 “MP3플레이어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 돼버렸다. ‘아이리버=MP3플레이어’라는 등식에서 벗어나, 레인콤이 이제 멀티 컨버전스를 지향하는 업체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2004년만 해도 전세계 MP3플레이어 시장에서 하드디스크 타입은 애플이, 플래시메모리 타입은 레인콤이 양분할 정도였다. 아이리버의 수익성이 악화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
=애플이 MP3플레이어 시장에서 가격파괴를 선도했다. 애플이 ‘아이팟’ ‘아이팟 셔플’ ‘아이팟 나노’를 내놓으면서 세 차례에 걸쳐 가격 공세를 폈다. 다른 기업들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가격파괴를 단행한 것이다. 이에 따라 레인콤도 글로벌 시장에서 수익성이 나빠졌다. 애플의 저가 공세로 MP3플레이어의 위기가 예상보다 1∼2년 앞당겨진 셈이다. MP3플레이어 브랜드 파워에서 애플 다음이 아이리버다. 우리가 지난 1∼2년 동안 애플을 의식한 제품 마케팅을 전개했다. 그런데 애플처럼 MP3플레이어 기기를 슬림화하는 콘셉트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애플을 의식한 마케팅 전략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쓰기 편해야 하고, 특히 사용자들이 새로운 개념의 디자인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콘셉트에는 기술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지난해에는 신개념 MP3플레이어를 구현하는 데 기술적으로 제약이 있었다. 배터리 수명 문제도 있고 부품도 따라오지 못했다.
그래도 MP3 시장은 생존할 것
애플이 왜 가격파괴 공세에 나선 것인가?
=애플은 향후 홈네트워크에 단말기를 연결하는 크로스 네트워크 플랫폼을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애플 아이팟 무비, 아이팟 나노 모두 사용자층을 넓히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시장점유율이 40% 이상되면 시장을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애플은 계획적으로 유통마진을 작게 잡고 공세적으로 나왔다. 애플이 전세계적인 가격파괴 드라이브를 걸었고, 우리를 비롯한 다른 MP3 업체들은 마지못해 속수무책으로 따라가야 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세 번에 걸쳐 MP3플레이어 가치 평가절하가 진행돼 후유증이 컸다. 한마디로 애플이 글로벌 MP3플레이어 시장을 죽여놓았다. 그러나 가격 전쟁은 이제 일단락되는 느낌이다. 물론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면 MP3플레이어 가격도 떨어지게 된다.
한창 잘나갈 때는 레인콤이 한두 달에 1개씩 신모델을 쏟아냈는데, 지난해 9월 ‘U10’ 출시 이후에는 잠잠한 편인데….
=올 상반기에 아이리버답지 않게 전혀 신제품을 출시하지 않았다. 사실 파격적인 신제품을 내놓을 수 없다면 출시를 자제하기로 했다. 그러나 최근 출시한 E10을 비롯해 조만간 신개념 레인콤 제품들을 소비자들한테 선보일 것이다. 주로 MP3플레이어와 융합된 멀티 컨버전스 디지털 기기가 될 것이다. 지난해까지는 연초에 신제품 로드맵을 모두 공개했는데 올해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여전히 MP3플레이어에 목숨 건 것처럼 보는데, 아니다. 올해 초 인력의 25%를 감축했는데 사업 전환을 위해서였다. MP3플레이어 사업은 유지하되 규모를 줄인 것이다.
주력으로 최근 내놓은 ‘U10’도 시장 반응이 기대만큼 좋지는 않은 것으로 아는데….
=U10은 MP3플레이어를 넘어 PMP 계열에 속한다. 게임과 동영상 재생이 다 된다. 이 모델은 ‘디자인 없는 디자인’을 채택해 액정 자체가 디자인이고 버튼이 따로 없이 액정을 눌러 손쉽게 인터페이스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U10을 기획, 개발하는 과정에서 애플에 의해 두 번이나 가격 인하가 이뤄져, 출시 이후 가격이 문제였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는 인식 때문에 판매에 애로를 겪었는데 점차 많이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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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3플레이어가 독자적인 디지털 기기로서 기능을 못하고 이제 틈새시장에 불과한 것 아닌가? 휴대전화나 디지털카메라에 MP3플레이어가 부가기능으로 다 들어가고 있는데….
=디카 업체는 앞으로 디카가 디지털 기기의 중심이 될 거라고 하고, 휴대전화 업체는 휴대전화가 중심이라면서 휴대전화 쪽으로 모두 흡수될 거라고 말한다. 그래도 MP3플레이어 시장은 존속할 것이다. 잘 살펴보면 휴대전화와 디카에서 MP3플레이어 사용 빈도는 굉장히 낮다. MP3를 많이 들으면 배터리가 확 줄어들기 때문이다. 휴대전화와 디카 모두 갈수록 부가가치가 낮아지니까 그 돌파구로 MP3플레이어도 달아보고 카메라 화소 싸움도 하면서 자꾸 교체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MP3플레이어가 아직 진화의 방향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을 뿐, 컨버전스를 꾀한 진화된 제품을 내놓는다면 여전히 MP3플레이어 시장은 유지될 것이다. 디지털 기기 시장에서 컨버전스의 주도권을 누가 잡을지는 아직 모른다. 이제 싸움이 시작된 것일 뿐이다. 사실 멀티미디어의 효시는 음원이다. 뮤직에서 엔터테인먼트가 처음 시작됐고 여기에서 영상이 나오는 식이었다.
‘제2의 아이리버 문화’ 만든다
MP3플레이어가 어떻게 진화한다는 뜻인가?
=이제 MP3플레이어 시장 1위는 소니의 워크맨 1위만큼이나 무의미해졌다. 부가가치가 낮아 점유율 1, 2위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 돼버렸다. 이제 수익성 있는 모델, 즉 프리미엄 시장을 지향하는 고급 브랜드로 진화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 휴대전화에 디카와 MP3플레이어를 단순히 하드웨어끼리 접합하는 형태는 진정한 디지털 컨버전스가 아니다. 콘텐츠와 문화가 같이 입체적으로 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애플의 아이튠(iTune·아이팟의 음악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이 모델이 될 수 있다. 아이팟을 아이튠에 접속하도록 만들어 ‘아이팟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도 라이프스타일과 문화의 중심 브랜드로, 즉 ‘제2의 아이리버 문화’를 만들어내는 쪽으로 갈 것이다.
하반기에 내놓을, 와이브로 기반을 이용한 게임기 ‘G10’ 단말기는 어떤 것인가?
=아직 자세한 것은 공개할 수 없고, 콘텐츠를 무선으로 전송할 수 있는 와이브로 기반이 KT 사업자 등에 의해 구축돼야 한다. 제품 출시도 와이브로 기반 구축에 보조를 맞출 것이다. G10을 일단 10만 대 정도 생산할 예정이다.
아이리버는 세모 모양의 ‘프리즘’ 모델, 항공모함 모양의 ‘크래프트’ 모델처럼 고정관념을 깬 ‘튀는 디자인’을 강조해 대박을 터뜨렸다. 디자인 우위만으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고 보는가?
=다른 업체들이 디자인에 많이 신경쓰지 않을 때 우리가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었다. 당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활약하던 이노디자인 김영세 대표를 무작정 찾아가 휴대용 MP3플레이어를 하나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돈은 벌어서 나중에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리버 제품에는 혁신적인 ‘Design by INNO’ 마크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업체들이 기본 사양으로 디자인을 채용하고 있고, 디자인의 우열 차이가 크게 줄었다. 우리가 2000년에 처음 미국 시장을 뚫을 때(미국의 전자제품 양판점 베스트바이 입점) 그쪽에서 플래시 타입 MP3플레이어를 만들어내라는 조건을 붙였는데 주어진 기간이 석 달이었다. 연구실에 단열재를 깔고 숙식을 해결하면서 날밤을 새우는 강행군 끝에 프리즘 타입 MP3플레이어를 만들어냈고, 이것이 전세계에서 히트를 쳤다. 레인콤의 도전정신은 살아 있다. 내가 1천억원대 벤처 부호가 됐다고 하지만 언제든 주식은 100만원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끝없이 승승장구할 수는 없다. 삼성도 애플도 고비를 몇 번 넘기지 않았는가? 우리가 6년쯤 성장했는데, 한 번쯤 위기가 올 수 있다. 지금은 MP3플레이어 진화의 방향을 찾아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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