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이 무시무시한 자산 불평등

등록 2006-03-24 00:00 수정 2020-05-03 04:24

대한민국 소득 상위 10%가 전체 부동산의 40.1%, 금융자산의 42.7%를 소유… 저소득층 투자는 감소하는데 주택 가격 상승으로 부유층 자산소득 늘어만 가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우리나라의 ‘부의 불평등’ 수준은 20∼30년 전 비슷한 경제발전 단계에 있던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엇비슷하거나 오히려 양호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과연 그럴까? ‘근로소득’과 ‘자산소득’을 나눠서 불평등을 각각 따져보면 자산소득 격차가 매우 심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말할 때 ‘소득분배’를 주로 언급하지만 사실은 ‘부의 분배’가 더 불평등하다.

‘소득’에는 임금·사업소득·이자·배당·임대료 등이 포함되는 반면, ‘부’는 한 개인이나 가구가 소유하는 부동산(거주 주택· 토지 및 기타 부동산)·금융자산(예금·주식·채권·보험료 등) 등의 총액이다. 특히 자산소득은 임금소득과 비교해 ‘불로소득’으로 분류된다.

부유층 부동산 소유 대폭 증가

부동산과 예금·주식에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불로소득 계층은 부를 독점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부를 축적한다. 서울의 경우 2003년에 자가는 126만 가구이고 전·월세는 177만 가구에 이른다. 물론 자기 집을 남한테 세놓고 자신도 세들어 사는 가구도 있겠지만, 단순하게 보면 1채 이상 집을 가진 사람들이 177만 채 주택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2005년 2월 말 현재 10채 이상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전국적으로 2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인구 약 17만 명이 서울시 전체 면적의 3분의 2를 소유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2년 저축성 은행계좌 가운데 1억원 이상 예금자는 33만9천 명 정도로 전체 계좌의 0.3%에 불과하지만 전체 예금액의 41.9%를 차지했다. 주식은 2004년에 주식 보유자 376만 명 중 2%(7만5천 명)가 1억원어치 이상의 주식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정우(경북대)·이성림(울산대) 교수가 ‘한국의 가계자산 불평등’(대우경제연구소 패널자료, 1993∼1998년·4천∼2천 가구 조사)을 분석한 것을 보자. 1998년 소득 상위 10%가 차지한 몫을 보면, 근로소득은 우리나라 전체 근로소득의 25.7%인데 부동산은 전체의 40.1%(토지는 47.3%), 금융자산은 42.7%에 달했다. 특히 금융자산은 불평등이 축소됐을 가능성이 큰데, 집값에 육박할 정도로 큰 전·월세 보증금이 금융자산 항목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토지는 소득 상위 20%가 국내 토지의 67.3%를 차지한 반면, 소득 하위 50%(하위 20%가 아니라)가 보유한 토지는 고작 5.4%에 그쳤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패널’ 자료를 활용해 따져본 다른 결과를 보면, 소득 ‘하위 50%’에 속하는 가구는 근로소득의 경우 우리나라 전체 근로소득 중 26.3%를 차지하는 데 비해 부동산 소득은 전체의 8.5%, 금융소득은 전체의 8.9%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반면 ‘상위 10%’(상위 50%가 아니라) 가구는 근로소득의 경우 전체의 26.5%를 벌어들이고 있으나 부동산소득은 전체의 52.4%를, 금융소득은 전체의 48.3%를 가져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건 소득 상위 10%는 순자산(부동산과 금융자산을 합친 총자산-부채)이 1997년 3억8천만원에서 1998년 4억5천만원으로 늘었는데 금융자산은 5천만원 안팎으로 별다른 변동이 없었으나 부동산은 3억4천만원에서 4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시점에 부유층이 부동산을 대거 순매입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토지 가치가 너무 높아서 자본주의가 아니라 ‘지본(地本)주의’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부유층은 그 뒤 부동산값 폭등에 따라 엄청난 규모의 ‘자산이득’을 올렸다. 한탕을 좇아 아파트·토지·주식에 걸쳐 이리저리 휩쓸고 다니는 부자들의 자산 구성 흐름에 따라 투기 광풍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삼성금융연구소가 2005년 전국 2천 가구를 대상으로 가계금융 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상위 20% 계층의 자산 보유액은 평균 7억6986만원, 하위 20% 계층은 평균 3938만원으로 나타났다. 자산 격차(상위 20% 계층의 자산액 대비 하위 20% 계층의 자산액)는 19.5배에 이른다. 2003년 조사에 비해 상위 20%는 4684만원이 늘고, 하위 20%는 오히려 569만원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자산에서 부동산 비중 압도적

이처럼 자산소득은 임금소득에 견줘 극단적인 불평등을 보여준다. 소득불평등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심화)를 보자. 대체로 부동산소득·금융소득·기타 소득은 지니계수가 0.6 이상으로 소득분배 지니계수(대체로 0.3∼0.4)보다 훨씬 높다. 이정우·이성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합친 부의 불평등은 1998년 0.65로 나타났다.

또 한국노동연구원의 2000년 ‘노동패널’ 자료를 이용해 따져본 부동산 소득의 지니계수는 0.66, 금융소득은 0.64인 반면, 근로소득은 0.37로 나타났다. 그러나 자산소득은 조사할 때 소득을 실제보다 훨씬 낮게 대답하거나 은폐하고 수십억, 수백억원을 가진 최상위층은 대부분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소득불평등은 더 클 가능성이 높다. 사실 부의 불평등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관심사이고 사회 양극화의 핵심이지만 통계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주택·토지·금융자산을 포괄해 가계자산을 파악한 자료는 거의 없고, 개별 연구기관에서 조사하더라도 “부의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결과가 나올 경우 정치적 이유 등으로 공개를 꺼리기도 한다.

소득계층별로 가계의 자산은 어떻게 구성돼 있을까? 삼성금융연구소 조사에서 가구당 총자산은 2억7912만원인데 금융자산은 5977만원으로 21%에 불과하고, 부동산 자산은 2억1935만원(79%)을 차지했다. 가계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다. 대우경제연구소의 1998년 가계패널 자료를 봐도 부동산 자산은 총자산의 80.2%, 금융자산은 19.8%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 구성에서 부동산과 금융자산은 8 대 2 정도다.

그런데 부동산 자산 또는 비금융 자산은 갈수록 비중이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 자산 구성에서 비금융 자산(주택자산+전·월세 보증금)은 1993년 76%에서 1999년 81%, 2001년 83%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주택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 기대를 반영한 가계의 높은 주택 선호 현상 때문”이라며 “그러나 최근 주택 가격 상승에 따라 집이 없는 가계는 집을 장만할 능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3월 초 전국 700여 도시가구를 대상으로 한 ‘가계의 자산보유 현황’ 조사에 따르면, 가계 자산의 89.8%가 주택 등 비금융 자산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 거주하는 주택에만 평균 83.4%가 들어가 있고, 금융자산은 10.2%에 불과했다(표 참조). 대한상의 쪽은 “미국은 2004년 가계 자산 중 주식에 17.6%, 채권에 5.3%를 투자하는 등 금융자산 투자 비중이 꽤 높고 비금융 자산은 64.3%에 달하는데, 우리나라는 주식·채권의 직·간접 투자 비중이 가계투자 금액의 0.9%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특히 저소득층은 소득 감소에 따라, 금융자산 투자와 부동산 투자 등 재테크 금액이 월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4년 28.1%에서 지난해 26.3%로 떨어졌고 올해는 23.9%로 더 낮아질 것으로 조사됐다. 가처분 소득이 감소하는 탓에 근로소득을 모아서 실물자산(부동산 등)이나 금융자산(예금·주식·채권 등)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대한상의의 이번 조사에서 주목할 만한 건 응답자들이 재산 증식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절약(34.2%)을 꼽았으나, ‘운’(運)이 중요하다는 응답이 6.3%로 ‘재테크 전문지식’(3.7%)보다 높았다는 점이다. 부동산에든 일단 투자해놓고 운이 좋아 집값이 뛰면 돈을 벌수 있다는 뜻일까? 참고로 2003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 전국 땅값은 평균 13%, 아파트값은 18% 올랐다. 토지는 821조원, 아파트는 250조원이나 가치가 증가했다. 많은 자산을 가진 상위계층일수록 더 많이 부를 축적하게 된 셈이다.

근로소득의 불평등도 커지고 있다

비정규직으로 노동생애를 시작한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정규직으로 옮겨가지 못하고 영원히 비정규직 ‘함정’에 빠지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저소득층 역시 저소득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자산소득에서 엄청난 격차가 벌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근로소득에서도 불평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2005년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도시 근로자 가구 하위 20%가 올린 월평균 소득은 116만5천원, 상위 20%는 633만원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소득 상위 20% 계층과 하위 20% 계층을 비교한 ‘소득 5분위배율’은 5.43으로 1999년(5.49) 이후 가장 높았다.

최상위계층의 소득이 취하위계층의 소득보다 5.43배 많은 것이다. 전국 가구로 넓혀서 따져보면 격차가 더 벌어져 소득 5분위배율이 7.56으로 나타났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경쟁 격화에 따라 제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노동시장 유연화로 임금소득도 갈수록 줄어들자, 각국 정부는 상품 소비를 뒷받침할 구매력의 원천을 부동산과 주식시장에서 찾았다. 임금소득 대신 자산소득을 올려줘서 경제 성장을 유지하려는 것인데, 전세계적인 저금리 현상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런 정책에 따른 자산가치 증가의 혜택은 대부분의 가계 자산을 부동산과 주식에 넣어둔 부유층에 집중되고 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4월3일부터 한겨레 로그인만 지원됩니다 기존에 작성하신 소셜 댓글 삭제 및 계정 관련 궁금한 점이 있다면, 라이브리로 연락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