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2006년 국내 디지털 기기 시장을 지배하는 키워드는 심플함과 디자인
MP3까지 기술과 기능을 과도하게 집어넣은 상품은 퇴색</font>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구글(Google)은 전세계적으로 2005년에 가장 주목받은 정보기술(IT) 기업이다. 구글은 2005년에 매출 5조원, 영업이익률 34%라는 놀라운 성과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구글이 등장하던 1999년, 검색 포털 사이트들은 저마다 “재미있고 희한한 서비스로 가득하다”며 다양한 서비스를 강조했다. 반면 구글은 로고와 검색창만 있는 심플하고 다소 썰렁한 홈페이지를 제시했다. 검색 포털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정확하고 빠른 검색 결과 찾기’에 역량을 집중하고, 불필요한 것은 모두 버렸다. 이런 심플함은 구글이 성공한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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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슬림폰이 대세
구글의 성공은 2006년 국내 디지털 기기(휴대전화·MP3플레이어·디지털카메라·내비게이션 등) 시장의 소비 트렌드를 미리 보여주는 창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국내 디지털 기기 시장의 화두는 다양한 제품들과 기능을 한꺼번에 구현하는 통합형 ‘디지털 컨버전스’였다. 휴대전화에서는 카메라·영화·음악·방송·게임을 몽땅 집어넣은 카메라폰, MP3폰 등이 탄생하면서 새롭고 무한한 시장을 열었다. 기술적 진화도 눈부시게 거듭됐다. ‘500만 화소’ 휴대전화, ‘블루투스’(Bluetooth·10m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 컴퓨터·휴대전화·가전제품을 무선 연결하는 기술) 휴대전화,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폰 등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출시됐다. 과연 2006년에도 ‘제2차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고, 기술혁신으로 수많은 컨버전스 제품이 등장하고 신기능 제품이 잇따라 출현할 것인가? 대체로 전문가들은, 2006년에는 디지털 기기마다 구매 패턴에서 ‘심플함’과 ‘디자인’이 강조되고 ‘기능’은 후순위로 밀려날 것이라고 말한다. 구글의 단순함이 국내 디지털 기기 시장을 지배하는 키워드가 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LG경제연구원 형민우 선임연구원은 “그동안 기술적으로 진보된 디지털 제품들이 소비자들의 기술 수용 속도에 비해 너무 앞서갔고, 이에 따라 제품의 디자인 측면이 훼손되기도 했다. 첨단 디지털 기기마다 ‘기능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고객은 ‘많은 기능’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기능’에 열광한다. 필요 없는 기능 때문에 비싼 돈을 지불할 소비자는 없다. 기업이 최초, 최고 등의 수사를 동원해 마케팅하지만 정작 고객은 혼란만 늘어났고, 이제는 구매 패턴이 오히려 단순함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사실 디지털 기기는 휴대 이동성이 강한 제품이라서 거기에 모든 기술을 집어넣고 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기능이 과도하게 많아지면 자연히 사용이 복잡해지고 가격은 크게 올라가 소비자들이 외면하게 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최항섭 연구위원은 “용산전자상가에서 휴대폰 새 제품이 나오면 한두 달 전에 출시된 모델조차 거의 소비되지 않는다. 즉 제품 주기가 아주 짧아져 ‘디지털 폐품’이 늘고 있다. 특히 하나의 단말기에 여러 기능들을 집어넣는 건 괜히 가격만 높이고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디지털카메라 200만 화소짜리가 600만 화소로 기술적 진화를 이뤘다고 진짜로 만족과 행복이 3배 늘어난 것일까?”라고 물었다. 단순히 화소 수를 늘리는 전략이나 무엇이든 접목시킨다는 발상만으로는 소비자들한테 어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휴대전화를 보면, 업체마다 카메라 화소 싸움과 MP3 용량 싸움을 벌이면서 점차 두꺼워지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이에 큰 효용을 느끼지 못했고, 2005년부터 슬림폰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삼성전자의 초슬림형 ‘블루블랙폰’(이른바 블루투스폰)과 LG전자의 초슬림 500만 화소폰이 대표적이다.
디지털 기기 시장에서 2006년은 디자인 파워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MP3 구매 이유를 설문조사한 결과 음질(31.5%)이 가장 중시되고, 다음으로 디자인(24.4%)이었다. 가격(11.2%), 용량(6.0%) 등은 한참 뒤로 밀려났다. 디지털 기기가 그동안 기술적 진화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면, 2006년부터는 디자인이 시장을 주도하는 ‘디자인 리더쉽 시대’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경향은 2005년에 LG전자의 초콜릿폰·애플컴퓨터의 아이팟(iPod) MP3플레이어 등 패션형 디지털 기기들이 인기를 끈 데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LG전자의 초콜릿폰은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심플함을 강조하기 위해 순수 검정색 컬러를 사용하고 불필요한 선과 로고, 장식 등을 크게 줄였다. 디지털기기의 기능이 업체들마다 엇비슷해지면서 소비자들이 디자인을 선호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카메라는 핵심기능 강조
디자인적 요소와 함께 더욱 흥미로운 건 백색가전에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컬러 마케팅’인데 레드와 블랙이 대표적인 두 가지 색상이다. LG전자의 스탠드형 에어컨 매출의 40%는 레드 계열이고, 휴대전화에서도 블루블랙폰과 블랙라벨 초콜릿폰 등 컬러를 앞세운 제품들이 주목받고 있다. 아이리버 MP3플레이어 가운데 대표적인 히트작인 H10 모델도 매출의 33%가 레드 색상이고, 빨간색 슬림형 에어컨과 블루·핑크색 세탁기들은 더 이상 백색가전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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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디지털 기기는 새로운 기능을 발굴하기보다는 오히려 필요하지 않은 기능을 걸러내는 흐름을 보일 공산이 크다. MP3플레이어를 보면, 아이리버 U10 모델은 MP3플레이어와 FM 라디오 기능은 기본이고 게임, 동영상 재생 기능도 추가했다. 반면 애플의 아이팟은 명함 크기의 얇고 심플한 디자인으로 소비자들한테 어필하고 있다. 애플코리아 쪽은 “다른 MP3플레이어들은 대부분 라디오·녹음기 기능 등을 갖추고 있고 버튼도 많다. 반면 아이팟은 저장 용량의 크기보다는 음악 기능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고 음악을 찾기 쉽고 듣기 쉽게 했다. 다른 기능은 액세서리로 끼워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편안하고 쉽게 테크놀로지와 만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얼리어답터’라고 불리는, 디지털 기기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빠른 수용은 ‘신형 휴대전화 중독’과 ‘구형 휴대전화 콤플렉스’를 낳았다. 그러나 LG경제연구원 박재범 선임연구원은 “극소수의 얼리어답터를 제외한 대다수 소비자들은 보수적”이라며 “이전에는 ‘어, 이 제품 신기하다’라는 생각과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소비 패턴에 작용했지만, 이제 소비자들이 카메라나 동영상이 좀더 들어갔다고 해서 무턱대고 신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술이 충분히 성숙한 단계에 이미 들어섰고, 따라서 더 나은 기능을 갖춘 디지털 기기에 프리미엄을 지불하겠다는 소비자들의 의사도 줄어들고 있다. 그전에는 생산자가 시장을 주도하면서 공급되는 기술에 소비자들은 마냥 따라가기만 했으나 이제는 소비자들이 시장을 이끌어가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2005년에 삼성테크윈의 ‘샵(#)1’을 비롯해 슬림형 열풍이 불었던 디지털카메라의 경우 2006년에는 화소 경쟁에서 벗어나 소비자들한테 핵심 기능이 더욱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올림푸스코리아 쪽은 “이제 전지현, 장동건이 들고 다닌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무조건 사지 않는다. 화소도 중요하지만 손떨림 방지 기능이나 고감도 등 어떤 기능을 갖추었는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디플레이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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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스플레이 쪽은 독일월드컵과 DMB 보급 확산에 따라 2006년에 폭발적인 성장이 기대된다. 내비게이션은 2004년 국내 판매 대수가 20만여 대에 불과했으나 2005년에는 80만 대에 육박했다. 내비게이션마다 MP3플레이어·영화감상·전자수첩·게임 등 부가 기능들이 다양해지고 DMB 일체형도 본격 출시되고 있다. 현대오토넷 쪽은 “2005년이 내비게이션 대중화의 원년이었다면 2006년은 DMB 시장과 더불어 내비게이션 수요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여행지와 맛집 등 문화정보까지 제공하면서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에게까지 내비게이션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디지털 기기가 마찬가지지만 디지털TV는 경쟁 격화와 공급 과잉에 따라 제품 가격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디지털 디플레이션’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37인치 LCD TV 가격은 2003년 초 900만원대에서 2005년 말에 200만원 후반까지 떨어졌다. 이른바 ‘디지털 후폭풍’인데, LCD TV는 2006년에 매직가격(32인치 1500달러)에 도달해 그동안 가격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수요가 한꺼번에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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