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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 백수보험을 매우 쳐라

등록 2005-12-22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10년 동안 보험료 내고 확정배당금 한푼 못받는 어느 가입자의 소송 투쟁
시중금리와 예정이율의 차이 설명 안한 보험사 상대로 ‘보소연’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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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경기도 부천에서 대를 이어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 이승배(65)씨가 문제의 그 보험에 든 건 41살 되던 해인 1981년 11월 어느 날.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보험모집인으로 일하던 친구 여동생 김아무개씨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배당금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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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은 대단히 좋아 보였다. 다달이 4만원 안팎, 10년 동안 보험료를 내면 55살 되는 해부터 세상을 뜰 때까지 매년 700만~750만원(생활자금 100만원+확정배당금 600만~650만원)을 준다고 모집인은 설명했다. 100살까지 장수하라는 뜻을 담은 ‘백수보험’이었다.

이씨의 부인 이청자(60)씨는 이미 몇 달 전 그 보험에 가입한 터였다. 남편 이씨까지 보험에 들면서 부부의 보험료는 한달 7만~8만원 수준. 모집인의 설명에 따라 계산을 해보니 55살부터 평생 다달이 60만~70만원은 받을 수 있어 노후 걱정은 없겠구나 싶었다. 직장인들의 월급이 15만~20만원에 지나지 않던 시절이었다. 현재 분양가 1억5천만원인 부천 지역 아파트 값은 1600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굉장히 좋은 조건이었지. 그러니 안 할 사람이 어딨어.” 보험 가입 당시를 떠올리는 이씨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친구 동생 돕는 셈치고, 내 주위 사람들한테도 권유하고 다녔어. 내 친구 셋, 마누라 친구 8명이 (동방생명 백수보험에) 가입했다니까. 그것 때문에 나중에 참 난처해졌지.”

이상한 낌새가 나타나기 시작한 건 보험에 가입한 지 몇 년 뒤였다. 이씨 부부의 권유로 동방생명 백수보험에 들었다가 급한 사정으로 중도 해약하는 이들이 생겨나면서 가입 때 설명하던 것과 많이 다르다는 얘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이씨 부부의 권유로 백수보험에 든 13명 가운데 1명만 빼곤 모두 불만을 품은 채 해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중에도 이씨 부부는 ‘설마, 큰 회사가 속이기야 하려고’라는 심정으로 꿋꿋하게 보험료를 납입해 계약기간 10년을 채웠다.

55살에 이른 1995년 보험사 영업점을 찾은 이씨는 아연실색할 설명을 듣게 된다. 종신 때까지 700만원을 주는 게 아니라, 100만원을 그것도 10년 동안만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생활자금 명목의 100만원외 확정배당금은 애초 가입 때 얘기한 것과 달리 한 푼도 없다는 설명에 기막혀하는 이씨에게 보험사는 “당시 확정배당금은 정기예금 이율 연 19.5%를 기준으로 산출한 것이고, 지금은 금리가 8~9%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배당이 없다”는 설명을 들려줬다. 동방생명의 당시 백수보험 지급예시표에는 ‘확정배당금 55살부터 매년 600만원, 65살부터 650만원’이라고 쓰인 큰 글씨 아래 깨알 같은 글씨가 붙어 있었다. ‘이 예시표는 정기예금 이자율(연 19.5%)을 기준으로 산출하였습니다. 정기예금 이자율이 변동될 경우 확정배당금도 변동됩니다.’ 이 문구는 훗날 이어지는 백수보험 소송에서 보험사에 유리한 결정적인 근거로 제시된다. 확정배당금은 보험료 산정기준인 예정이율(12%)과 정기예금의 차이에서 발생하는데 정기예금 금리가 크게 떨어지는 바람에 배당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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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승소’ 기사에 힘 얻어 싸움 시작

이씨는 “친구 동생의 말만 들은 채 가입했는데, 설사 예시표를 보았더라도 따로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그런 사정을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이자율이 떨어졌다곤 해도 예시표에서 600만~650만원이라고 제시했던 확정배당금이 어떻게 제로(0)가 될 수 있다는 건지 이씨로선 납득할 수 없었다.

속만 부글부글 끓이던 이씨가 소송에 나서게 된 건 그로부터 6년 뒤인 2001년. 이씨는 “(험난한 소송의 길로 들어선 건) 순전히 <한겨레>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해 4월 <한겨레> 경제면에 실린 ‘백수보험 계약자 첫 승소’라는 기사가 이씨의 눈길을 확 잡아끌었다. 부산 지역의 이아무개씨가 제일생명보험(현 알리안츠생명)을 상대로 낸 보험금 지급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제일생명은 약관상 보험금 (매년) 100만원이 아니라 확정배당금 등이 포함된 1001만원의 보험금과 지연이자를 매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이는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확정됐다. 당시 대법원 판결은 1월에 나왔는데, 몇 달 뒤에야 판결 사실이 알려졌다. 이씨의 경우와 하등 다를 게 없는 사안이었다.

“그 기사를 보고선 판결문을 받아봤지. 그것을 변호사한테 갖다줬더니 처음엔 떨떠름한 표정인 거야. 주저주저하더라고. ‘거대 기업 삼성과 싸워서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느냐’는 식이었지.” 그렇게 3개월을 끌다가 그에게 보험 가입을 권유했던 모집인한테서 ‘(금리가 떨어지면 배당금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걸)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증언까지 받아내 변호사에게 들이밀고선 결국 소송에 나서게 됐다.

1심 판결이 내려진 건 그로부터 2년 뒤인 2003년. “그해 9월쯤에 선고날을 받아놓고 있었는데, 재판부에서 느닷없이 ‘조정’에 나서겠다고 하더라고. 난 무슨 확정배당금 액수를 조정하는 줄 알았지. 그런데 그게 아닌 거야. 판사라는 사람이 그날 법원에 나온 삼성생명 직원 둘한테만 이것저것 묻고 우리한테는 물어보지도 않더라고.” 결국 배당금액 조정은 이뤄지지 않았고, 몇 달 뒤 이씨의 보험금 청구소송은 기각됐다. 이씨는 지난해 11월 대법원 최종 판결에서도 패소하는 바람에 수백만원의 소송비만 날리고 말았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삼성생명을 상대로 한 이씨의 싸움은 그래도 끝날 것 같지 않다. 부인 이씨의 계약건으로 소송을 이어갈 태세다. 이번엔 단독으로 진행하는 게 아니라 보험소비자연맹(보소연)을 통해 1500여 백수보험 가입자들과 공동으로 싸움을 벌이게 된다. 그는 지난 11월 보소연에 소송 참여의 뜻을 밝혔다.

삼성생명 “문구 적혀 있어 책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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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소연을 통한 공동소송은 올해 말 또는 내년 초에 제기될 예정이다. 보소연은 지난해 3월 백수보험피해자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린 지 한 달 뒤에 백수보험 가입자 303명 공동명의로 6개 보험회사를 상대로 보험금 지급 청구소송을 냈으며, 올해 1월 2차로 가입자 365명의 공동소송을 제기했다. 올 12월 소송은 3차 소송인 셈인데, 지금까지 나온 소송의 결과는 엎치락뒤치락이다. 보소연은 올 6월 1차 소송의 1심 판결에서 대한·알리안츠·금호·흥국생명에 패소한 뒤 항소했고, 9월 들어 삼성생명에는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이는 3차 소송단에 가입자들이 대거 몰려든 계기가 됐다. 2차 소송의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삼성생명 고준호 상무는 이에 대해 “예정이율(12%)과 시중금리 차이만큼 배당금으로 돌려준다고 했는데, 알다시피 백수보험 판매 뒤에 시중금리가 예정이율 아래로 뚝 떨어져 배당을 해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백수보험을 판매한 1980년대 초 보험사 쪽에서 내부적으로 상정한 예정이율은 12%, 시중 정기금리는 20% 안팎이었는데 보험금 지급 시점에선 시중 금리가 한 자릿수대로 떨어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고 상무는 “계약자들이 몰랐다고 하지만, 약관이나 상품 안내장에 확정배당금은 향후 금리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는 문구가 있었다”며 “백수보험 송사에서 보험사가 진 적이 거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보험사 쪽이 패소한 경우가 간혹 있었지만, 그건 설계사와 영업점이 ‘금리가 떨어져도 배당금을 주는 걸로 얘기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하는 경우 등 특수한 사례였다는 게 고 상무의 설명이다. 요컨대 계약자가 약관의 문구를 잘 살피지 않은 데 따른 결과이지, 보험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소연은 “당시 6개 보험사가 고객에게 제공한 안내장, 가입설계서, 보험약관 등 어디에도 예정이율을 명시하지 않았으며, 단지 ‘확정배당금은 정기적금 최고이율의 변동에 따라 변할 수 있다’고만 적어놓아 소비자들이 ‘0’의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며 “이는 보험사들이 소비자들을 속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보소연을 통한 공동소송 대리인단에 참여하고 있는 이홍주 변호사는 “시중금리가 예정이율보다 떨어지면 배당금을 주지 않도록 한 백수보험의 설계상 하자는 없지만, 문제는 이런 점을 계약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 당시로는 상당히 고액의 보험료를 내는 상품이었다. 어떤 계약자는 월급의 2분의 1까지 납부했고, 월급의 3분의 1을 보험료로 낸 경우도 많았다. 이는 20년, 25년 뒤의 노후 보장을 위해 들었다는 걸 보여준다. 확정배당금이 ‘0’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면 어떻게 그런 계약을 할 수 있겠나.” 이 변호사는 “보험사 쪽에서도 시중금리가 그렇게 빨리 떨어질지 몰랐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백수보험은 일종의 실패한 상품”이라며 “그 실패에 따른 부담을 보험사도 일부 나눠 져야 한다”고 말했다. 애초 약속한 확정배당금을 모두 지급하지는 않더라도 합리적으로 조정된 액수만큼은 책임지고 지급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쌍방 과실 인정하고 타협점 찾아야

전국에서 개별적으로 이뤄진 백수보험 관련 소송은 50건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가입자 쪽에서 완벽하게 승소한 경우는 2건뿐일 정도로 아직은 보험사 쪽에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승소의 사례가 차츰 나타나고 있는데다 보소연을 통한 공동소송으로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백수보험 계약은 12만 건으로, 확정배당금 액수로 따지면 조 단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소연을 통한 공동소송 결과에 따라 보험사들은 심각한 경영 위기에 빠질 수도 있는 폭발력을 띤 사안이다.

정재욱 세종대 교수는 “보험에 든 이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보험사들이 너무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일반 직장인의 월급이 15만~20만원 하던 시절에 3만~4만원의 돈을 넣었다면 ‘확정적인’ 금액을 받는 것으로 여겼을 게 뻔하다”며 “보험사 쪽에서 소송으로 부딪치기보다는 쌍방 과실을 인정하고 타협점을 찾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소연을 통해 다시 싸움터로 나서는 이승배씨는 이제 ‘보험’이라면 진저리를 치고 있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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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살까지 장수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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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고액 배당금으로 소비자 유혹한 백수보험의 딜레마

백수보험은 1979년부터 1985년까지 대한·제일(현 알리안츠)·동방(현 삼성)·흥국·동해·교보 등 6개 생명보험사가 판매한 종신연금 상품이다. 100살까지 장수를 누리라는 뜻에서 정해진 이름이다.
당시 보험사들은 월 3만~9만원씩 3~10년 동안 보험료를 납입하면 55살 또는 60살 이후에 당시 정기예금 금리인 25%와 예정이율(12%)의 차이에 따라 기존 보험금 외에 해마다 600만~1천만원 수준의 확정배당금을 지급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계약자들을 대거 끌어들였다. 노후에 고액의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로 월급여의 30~50%에 이르는 보험료를 납입하는 예가 적지 않았다. 보험업계 전체적으로는 30만~40만 건이 팔렸고, 지금도 12만 건 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상품 판매 때 보험 모집인들이 ‘확정’배당금이란 표현을 쓴데다 시중금리의 변동에 따라선 배당금을 받을 수 없다는 설명은 빼먹기 일쑤였다고 전해진다. 예정이율이 12%라는 사실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고, 회사 내부적으로만 관리했을 뿐이다.
사단이 벌어진 것은 1980년대 중반. 이때부터 시중금리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보험사들은 확정배당금은커녕 예정이율을 맞추기조차 힘들어졌다. 600만~1천만원에 이를 것이라던 확정배당금이 ‘0’으로 나타나자 곳곳에서 소송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보험소비자연맹을 통한 공동소송의 움직임으로 번지고 있다. 올 연말 또는 내년 초에는 1500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소송이 제기될 예정이어서 생명보험 업계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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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r><tr><td colspan="5"></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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