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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터키 노선 실종 미스터리

등록 2005-10-13 00:00 수정 2020-05-03 04:24

외환위기 때 아시아나항공이 노선 폐지한 뒤 대한항공 운수권 신청 난항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터키항공의 독점 유지하는 건교부의 태도가 의혹사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터키에 거주하는 교민 김상진(48)씨는 사업 목적으로 한해 4~5차례씩 한국을 오가며 터키항공을 이용한다. 터키항공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 국적기가 없기 때문이다.

터키한인회장이기도 한 김씨가 이렇게 터키항공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데 따른 불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터키항공에는 한국인 승무원이 배치되지 않고, 11시간에 걸친 비행 내내 한국어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 한국적인 기내식을 기대할 수도 없으며, 고국의 소식을 전해주는 한국 신문이나 잡지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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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안전문제 들어 난색 표명했으나…

터키에 살고 있는 1천여 교민 대부분이 무역·관광업에 종사하는 점을 감안할 때 김 회장처럼 불편을 겪는 이들이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이 올해 4월부터 주 3회(화·금·일) 정기성 전세기(부정기편)를 운항하고 있지만, 교민들의 불편은 여전하다. 전세기 운항에서는 정기편과 달리 터키 현지에서 항공권을 발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터키를 오가는 비행 노선을 이처럼 터키항공이 사실상 단독으로 운항하게 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하반기에 아시아나항공이 이 노선의 운항을 중단한 데 이어 이듬해 4월 정부 조처에 따라 노선을 폐지한 데서 비롯됐다. 아시아나항공은 1997년 2월 터키 노선을 배분받아 그해 5월부터 터키 이스탄불에 취항했다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승객이 크게 줄어들자 이 노선을 포기했고, 2003년 10월 노선 운수권을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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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은 터키 노선 폐지 뒤 2000년 들어 터키항공과 ‘코드셰어’(code share)를 맺어 55석(연간 7천석 규모)을 임대해 운영하고 있다. 코드셰어는 항공사 사이의 제휴 방식의 하나로, 편명 공유 또는 좌석 공유를 뜻한다. 상대 항공사의 일정 좌석을 할당받아 자사의 항공편명으로 판매해 수익 증대와 운항편 확대를 꾀하는 방식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코드셰어로 일정한 판매 수익을 거두는데, 터키 교민들은 아시아나항공 편명(OZ)의 항공권을 구입한다는 점을 빼곤 터키항공을 이용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터키항공이 외환위기 초기인 1997년 한-터키 노선 운항을 일시 중단했다가 2000년 3월 재취항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런 차이는 터키는 1개 항공사만 있는 반면, 우리나라엔 2개 항공사가 있는 데서 비롯됐다. 아시아나가 한번 잃은 노선권을 다시 회복해 재취항하는 것은 여러모로 특혜로 보여 정부로서도 허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풀이된다.

아시아나항공이 터키 노선 운수권을 잃은 다음날인 2003년 10월31일 대한항공은 터키 운수권을 배분해달라는 신청을 한다. 아시아나항공이 노선권을 상실했으니 대한항공으로 넘겨달라는 주장은 일견 당연해 보이는데 어찌된 일인지 건설교통부는 지금껏 아무런 조처를 내리지 않고 있다.

터키당국의 태도, 정부 설명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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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이 운수권 배분을 처음으로 제기한 당시 건교부는 항공 운항의 안전 문제를 들어 운수권 배분에 난색을 표명했다. 이라크 전쟁, 터키 폭탄테러 등으로 안전 운항에 위협을 받고 있어 국제 노선 배분에서 터키 노선은 제외한다는 것이었다. 2003년 10월의 국제 정세를 감안하면 이런 설명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데, 문제는 이듬해 4월에도 같은 이유로 운수권 배분이 미뤄졌다는 사실이다. 터키항공은 2000년부터 서울에 재취항해 정기편을 운항해왔다는 점에서 안전 문제를 이유로 한 운수권의 배분 유예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낳았다.

정부가 그 뒤에 제기한 다른 이유는 터키 당국의 태도였다. 이스탄불 노선에 대한 ‘지정항공사’를 아시아나항공에서 대한항공으로 바꿀 수 없는 건 터키 항공당국이 이를 꺼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아시아나항공은 노선 운수권은 상실했지만, 애초 노선권 배분으로 얻은 지정항공사 자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노선 폐지 뒤 건교부가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이 터키항공과 코드셰어를 맺을 수 있었던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항공회담이라는 공식 절차를 거쳐 지정항공사 변경을 논의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터키 당국이 꺼린다는 건교부의 설명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난다. 올해 4월 노무현 대통령의 터키 방문 때였다.

당시 이종희 대한항공 사장이 터키 항공청장과 만나 노선 문제를 논의한바 터키 항공청은 대한민국쪽의 지정항공사 변경에 간섭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녹취록에 나와 있다. 그 부분에 대한 터키 항공청장의 발언 내용은 이렇다. ‘It is our position that a change of designated carrier is simply possible if the government of Korea makes the decision to do so and communicates this decision to the Turkish government.’ 지정항공사(designated carrier)의 변경은 한국 정부가 결정해 터키 정부에 통보해주면 된다는 내용으로, 터키 당국이 지정항공사를 바꾸는 것을 꺼린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음을 보여준다. 터키 항공청이 두 나라 사이의 오해를 없애기 위해 이종희 사장과 만났을 당시 한 발언과 같은 취지의 공식 서한을 건교부에 발송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에 대한 건교부의 해명을 듣기 위해 10월5일 담당자인 유한준 항공기획관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오양진 국제항공팀장의 소관이라고 미뤘고, 오 팀장과는 여러 차례 전화 접촉을 시도했음에도 연결되지 않았다.

국익론 “정기편 운항하면 시장 넓어진다”

대한항공은 터키 교민들의 불편 문제와 함께 ‘국익론’까지 거론하며 터키 노선권을 배분해달라는 주장을 거듭 펴고 있다. 한국쪽이 정기편을 운항하지 못함에 따라 터키항공이 한-터키 노선을 사실상 독점하면서 상당한 국부가 유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터키항공 이용객들 가운데 상당수가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터키항공에 확인한 결과, 주 2회 운항하는 271석짜리 비행기의 탑승률이 80%를 웃돌아 한달 평균 탑승객이 2300명에 이르는데, 이 중 85~90%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이렇게 한국인 승객이 많은 것은 터키에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 루트, ‘노아의 방주’로 유명한 아라라트산 등 기독교 성지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대한항공이 정기편 노선권을 갖는다고 해서 터키항공 이용객이 대한항공쪽으로 곧바로 발길을 돌린다고 보기는 어렵다. 터키항공이 저가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한항공이 국익론을 들고 있는 것은 한-터키 노선의 시장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다. 올 6월부터 대한항공이 정기성 전세기를 운항한 뒤에도 터키항공의 탑승률은 80% 안팎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형우 대한항공 부장은 “정기편을 운항하면, 터키 현지는 물론이고 일본 등 세계 곳곳에서 한-터키 노선의 탑승권을 발매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이 크게 넓어진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쪽은 2003년 10월 터키 노선 배분 신청 뒤 올해 5월까지 생긴 기회 손실액 722억원, 터키항공 단독 운항에 따른 외화 유출액 375억원 등 이미 1천억원을 웃도는 국가경제적 손실이 생겼다고 주장한다. 주 4회 운항에 탑승률을 70%로 가정한 셈법이다.

건교부는 내년 1월 한-터키 항공 회담을 통해 지정항공사를 복수로 하는 방안을 추진하려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또한 대한항공의 불만을 누그러뜨리지 못하고 있다. 1개 항공사만이 있는 터키쪽에서 이를 받아들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올 8월 항공회담에서도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서 이를 엿볼 수 있다. 건교부로선 바깥에서 알기 어려운 말 못할 고민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되 노선권 배분의 기준을 비롯한 일 처리 방식의 불투명성 때문에 자꾸 의혹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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