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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다도해 해상 관광상품 아냐?

등록 2005-09-14 00:00 수정 2020-05-03 04:24

국내 첫 저가 지역민항인 한성항공 청주~제주 노선 탑승기
작지만 소음 견딜만 하고 비디오 대신 내내 풍경 감상할 수 있어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HAN303편’. 지난 9월5일 오후, 청주 국제공항 국내선 탑승구 위에 붙은 노선시간표에 여러 편의 ‘KAL’ ‘OZ’ 사이로 ‘HAN’ 한편이 선명했다. 오후 4시 청주에서 제주로 가는, 국내 첫 저가 지역 민항인 한성항공 편이다. 공항청사 2층 대기실에서 차창 바깥으로 보이는 한성항공 비행기(ATR72-200)는 한눈에 봐도 아주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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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곳을 원하면 뒷좌석으로

비행기와 직접 연결되는 통로는 없었다. ATR기는 동체가 작고 낮아서 공항청사에서 브릿지(연결통로)를 통해 바로 탑승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활주로가 있는 지상으로 내려가 20m 정도 걸어서 직접 타야 한다. 일반 항공기는 대부분 동체 앞부분에 탑승구가 있는데, ATR기는 출입구가 뒤편에 있다. 대형 항공기 기내에 들어서기 전에 흔히 집어들던 신문은 한성항공에서는 제공되지 않았다.

기내에 들어서자 내부가 좁다는 느낌이 금방 들었다. 한 열에 4석이 배치되고 2석 중간에 통로가 있는데, 한 열에 8석짜리인 대한항공기에 비해 매우 작은 편이었다. 기내 전체 좌석 수도 66석으로, 보통 180∼250석 되는 대한항공기에 비해 훨씬 작다. 물론 좌석 등급은 따로 없다. 그러나 좌석간 거리는 그리 넉넉하지는 않아도 결코 좁지 않았다. ATR기는 원래 72인승으로 설계됐으나 한성항공이 66석으로 줄여 앞의자와의 간격을 기존 항공기보다 3cm가량 넓혔다고 한다. 다리를 꼬고 앉아도 그다지 불편함이 없었다. 중간 통로는 다소 좁아 보였으나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는 충분했다. 다만 동체가 작은 탓인지 대한항공기에 비해 객실 천장이 눈에 띄게 낮았다. 일반 항공기는 배 바닥에 화물칸이 있는데, ATR기는 얇아서 바닥이 없고 대신 조종실 뒤편과 객실 뒤편에 작은 화물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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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웅∼. 출발 시각인 오후 4시가 되자 항공기 양쪽에 달린 대형 프로펠러가 힘차게 돌기 시작했다. 기자는 객실 중간에서 조금 앞쪽 자리에 앉았는데, 창문 바깥으로 보니 대형 날개 중간에 달린 프로펠러가 돌면서 항공기가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커브를 돈 항공기는 곧바로 활주로 입구에 진입했다. 4시8분께 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15초 정도 지났을까? 이륙 거리가 짧아서 그런지 항공기는 지상에서 벌써 이륙하고 있었다. 소음이 다소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행기가 고도를 높일수록 소음이 더 커졌다. 이날 오후부터 한반도가 태풍 ‘나비’의 영향권에 든다고 했는데 기류에 항공기가 조금씩 흔들렸다. 그러나 어느 대형 항공기라도 이륙할 때 느끼게 되는 정도의 흔들림이었다. 조종실 뒤부터 앞쪽 좌석까지는 항공기 프로펠러와 엔진의 영향으로 소음이 크기 때문에 한성항공 편을 타는 승객은, 조용한 곳을 원하면 뒷좌석이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전체 좌석 요금은 똑같다.

사실 소음이라고 해도, 귀를 세우면 앞뒤 좌석에서 말하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이니 크게 심한 건 아니다. 비행기를 타고 5분 정도 지나면 누구나 익숙해질 정도의 소음이랄까? 4시18분께 항공기는 기체의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정상 안정고도에 진입했다. 다들 처음 타보는 저가항공기라서 이륙할 때 승객들 모두 아무 말 없이 긴장하는 듯했지만, 불안한 표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좌석벨트 사인이 꺼졌다. 비행기가 정상 고도에 진입했다는 신호였다. 승객들은 벌써 눈을 감고 잠을 청하거나 책을 꺼내 읽고 있었다.

이착륙 거리 짧아 안정감 준다

항공기는 한동안 정지된 듯 조용히 날아갔다. 컵 안에 든 음료수도 거의 떨림이 없이 잔잔했다. “현재 우리 비행기는 고도 1만4천피트, 시속 500km의 속도로 달리고 있습니다.” 기장의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ATR기 객실에는 오디오나 비디오 시설이 전혀 없다. 청주∼제주까지 1시간10분가량 걸리는데, 다소 지루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한성항공에는 지루함을 달래줄 만한 ‘다른 재미’가 있었다. 우선, 일반 항공기에 비해 비행 고도가 높지 않아 지상 풍경이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였다. 정상 궤도에서 일반 비행기는 고도 2만∼2만5천피트(5600∼7100m)에 시속 700∼850km로 비행하는 반면, ATR기는 고도 1만8천피트(5천m)에서 시속 500km로 비행한다. 하늘 저 아래로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물체가 버스인지 승용차인지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했고, 짙은 구름 사이로 뱀꼬리처럼 휘감아도는 도로와 바둑판 농지들이 살짝 드러났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태풍의 영향 탓인지 구름층이 두꺼워졌고, 빠르게 몰려가는 구름 사이로 어느덧 다도해의 풍광이 뚜렷이 펼쳐졌다. KAL이라면 제주도 해안 착륙 지점에 가까이 다가가서야 낮은 고도로 비행하면서 보일 만한 풍경인데, 비행 고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한성항공 편에서는 수많은 바위섬들이 흐릿하게 ‘점점이 흩어진’ 모양이 아니라 섬 자체로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다도해 해상 비행관람을 상품으로 하는 관광상품용 비행기를 타고 있는 듯했다면 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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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상공에서 기류가 불안정해 기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포장이 덜 된 길을 달리듯 기체가 흔들렸다. 그러나 불안정한 기류를 빠져나오면서 항공기는 곧 안정을 되찾았다. 옆좌석에서는 객실 여승무원이 손님으로 탄 여자 어린이의 손등에 아쿠아 물감으로 문신처럼 페인팅 서비스를 해주고 있었다. 이것이 한성항공의 또 다른 재미였다. 아이 손등에 시원스럽게 푸른 바다와 갈매기, 요트 그리고 붉은 태양이 몇분 만에 그려졌다. 아이가 신기한 듯 기뻐했다. 엉엉∼. 그 뒷자리에 앉은 또 다른 여자 어린이가 눈물을 글썽였다. 자기도 페인팅을 해달라고 보챘지만, 어느새 제주공항이 가까워지면서 페인팅 서비스를 계속해주기에는 시간이 빠듯했다.

5시3분, 창문 바깥으로 제주 해안이 한눈에 들어왔다. KAL기 같으면 항공기가 착륙을 위해 고도를 계속 낮추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확연히 들 정도로 동체가 아래쪽으로 계속 떨어질 텐데, 한성항공기는 이미 낮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도를 낮추고 있다는 느낌도 없이 벌써 공항 활주로에 진입하고 있었다. 착륙 과정에서 동체의 떨림이 크긴 했지만, KAL기와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착륙 거리가 짧아서인지 뜨고 내릴 때 기존 항공기보다 안정감이 있고, 비행기 바퀴가 금방 멈췄다. ATR기의 이·착륙 거리는 최장 1400m로 제트기의 절반 수준이다. 프로펠러가 멈췄다. 5시12분이었다.

취항 이후 탑승률 80%대

“생각보다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지 않아 괜찮았어요. 처음에는 좀 불안하고 진동도 있고 떨리기도 했는데, 하늘에서도 지상 풍경이 잘 보이니까 좋은 것 같아요.” 같이 한성항공 편을 탄 임숙(51·대전시)씨가 말했다. 임씨는 노모와 초등학생 딸을 데리고 탔는데, 1년에 한번씩 제주도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저가항공이라서 안전을 더 걱정한 것일까? 임씨의 휴대전화로 잘 도착했는지를 묻는 가족의 전화가 연방 걸려왔다. 임씨는 “제주에서 돌아가는 편도 한성항공을 이용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승객 김장민(39·청주시)씨는 “사실 제트기보다 작아 안전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다. 소음도 그리 크지 않았다. 기존 항공기보다 훨씬 가격이 싼데, 신문 제공 같은 기내 서비스가 없어도 승객으로서는 이용할 만한 항공 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승객이 다 내린 뒤에도 기내 객실에서는 승무원이 아까 울던 아이한테 페인팅 서비스를 해주고 있었다.

이날 HAN303편을 조종한 강재필(58) 기장은 “군에서 24년간 팬텀기를 탔고 대한항공에서 A600을 11년간 조종했다. A600하고 ATR기가 프랑스의 같은 에어버스 계열이라서 쉽게 적응이 된다. 조종실 시스템과 전자장비가 A600과 거의 똑같다”고 말했다. 한성항공 민경창 객실팀장은 “우리 항공기는 날개가 동체 위쪽에 붙어 있어서 어느 좌석에서든 바깥 풍경이 잘 보이고 운항 고도가 낮아서 지상 풍경도 가깝게 볼 수 있다”며 “소음에 대한 불만 제기도 아직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유료 기내 서비스의 경우 음료수는 한잔보다는 캔이나 병으로 파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한성항공 한우봉 사장은 “취항 이후 9월8일까지 탑승률이 80%대에 달한다. 애초 예상했던 수준이다”며 “전혀 광고를 하지 않는데도 이 정도 탑승률이면 꽤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한성항공은 올 연말에 ATR 2번기를 도입해 김포~제주 노선에 취항하고, 내년에는 국제선 취항도 검토하고 있다.



‘출혈경쟁’도 고공 비행

한성항공 인기 끌자 다른 항공사들도 같은 노선 같은 시간대 할인

한성항공의 청주∼제주 노선 요금은 비수기 때는 평일 편도 4만5천원, 주말은 5만2천원이다. 성수기는 편도 6만원으로 기존 대형 항공사 운임의 70% 선이다. 한성항공쪽은 터보프롭 항공기의 연료비가 제트기의 58% 수준인데다 운항시간당 정비비용도 85%에 불과하고 기내 서비스를 없애거나 유료화했기 때문에 일반 항공사의 70%대 운임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말한다.
한성항공이 인터넷 예약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추석 및 개천절 연휴 표가 매진됐고, 평일 탑승률은 80%, 주말에는 거의 만석에 가까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9월5일 한성항공 청주∼제주 노선 오후 4시 편은 66명 좌석 정원에 43명이 탔고, 같은 날 대한항공의 경우 오후 3시 청주∼제주 편은 188석에 100명이, 오후 6시 편에는 188석에 23명이 탔다. 또 이날 한성항공 제주∼청주 노선 오후 5시50분 편은 66명 정원에 64명이 탔다. 반면 대항항공은 같은 날 제주∼청주 4시30분 편은 188석에 95명, 7시30분 편은 188명에 105명이 탄 것으로 나타났다.
한성항공은 9월 한달간 취항 기념으로 청주∼제주 노선 요금을 1만원을 깎아줘 3만5천원(공항이용료 포함 3만9천원)에 팔고 있다. 그러자 아시아나항공은 한성항공 취항 다음날인 9월1일부터 청주~제주 노선 가운데 한성항공 비행기가 뜨는 시간대의 앞뒤 편에 대해 항공료를 9월 한달간 30% 특별 할인해주고 있다. 대한항공도 9월15일까지 청주∼제주 노선 항공료(정상요금 6만4400원)를 최고 25%까지 할인(4만8천원)한 가격에 팔고 있다. 저가항공 취항이 국내선 항공요금 인하 경쟁에 불을 지핀 것이다. 한성항공 한우봉 사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청주∼제주 노선 요금을 파격 할인해주고 있지만 인터넷 판매에만 해당될 뿐 여행사를 통한 판매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가격을 더 낮추면 저쪽도 따라서 더 낮추는 출혈경쟁만 일어나게 된다. 우리는 요금 인하 계획이 아직 없다”며 “저쪽이 가격을 내려도 우리가 한번 붙어보지 뭐”라고 말했다.




남태평양에서 날아온 ‘비행 버스’

연료 효율성 위해 프로펠러 단 한성항공 ATR72-200기 이모저모

한성항공의 ATR72-200기는 프랑스의 에어버스 자회사가 만든 기종으로 유럽에서는 단거리 운항에 주로 사용돼 ‘날아다니는 버스’로 불린다. 현재 운항 중인 ATR 1번기는 지난 95년 제작된 비행기로 남태평양 타히티섬에서 8년간 국적기로, 또 키리바티섬에서 2년간 운영됐던 기종이다. 한성항공 자체 보유는 아니고 임대해 쓰고 있다. ATR72-200은 제트엔진에 프로펠러를 장착한 터보프롭 항공기다. 전세계 30여개국에서 지역 민항기로 682대가 운항되고 있으며 최대 운항속도 시속 525km, 최대 항속거리 2천km다. 한성항공 정비팀 심규태 부장은 “우리가 도입한 ATR가 10년 된 것이지만, 항공기는 새 비행기 헌 비행기가 별 의미가 없다. 항공기는 수명이 따로 없다. 항공기의 부품은 정해진 사용시간이 다 되면 엔진이든 바퀴든 모두 새것으로 교체하게 된다. 따라서 단순히 자동차처럼 10년 됐다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일반 항공기와 달리 저가항공기에 왜 프로펠러가 달려 있을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트와 프로펠러가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에 제트엔진이 꺼져도 대신 프로펠러로 글라이딩을 해서 비상 안전착륙할 수 있다”는 설명이 주로 보태진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좀 다르다. 메인 엔진과 보조 엔진이 둘 다 멈췄을 때 무동력으로 프로펠러만을 이용해 저가항공기의 활공이 가능한지에 대해 항공전문가들은 자신있게 답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ATR는 날개를 굉장히 크게 만들었기 때문에 무동력 활공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을 뿐이다. 한성항공 정비팀 심규태 부장은 “날개가 크기 때문에 더 느린 속도로 날 수 있다. 따라서 착륙을 시도하면서 활주로에 접근할 때 느린 속도로 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성항공 강재필 기장은 “일반 항공기는 ATR보다 더 높은 고도로 올라가 비행하기 때문에 갑자기 기류 불안이 닥치면 승객의 안정성이 더 떨어진다. 갑자기 고도를 확 낮춰서 속도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저가항공기의 프로펠러는 연료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다. 터보 제트엔진은 연료를 많이 먹는데, 여기에 프로펠러를 돌리면 단거리 운항에서 열효율을 좋게 해 연료 소모를 줄일 수 있다. 한성항공의 기장은 4명, 부기장 4명, 객실 승무원 19명이다. 기장· 부기장은 모두 대한항공 출신 등 베테랑급이고, 객실 승무원 19명 중 4명은 경력이고 15명은 신입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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