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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의 ‘철밥통’ 폭파 작전

등록 2005-06-10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파격적인 인사·채용 혁신에 나서는 한국토지공사
보직제한제·후배할당제 등으로 ‘복지부동’ 직원 도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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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마음 편하게 일하던 ‘복지부동’ 시대는 갔다. 토지공사 안에 여기저기서 긴장된 분위기가 역력하다.”
지난 3월 행정자치부가 단행한 서열·직급 파괴 인사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정부 부처 중에서 행자부가 복지부동을 깨는 개혁을 선도하고 있다면, 공기업에서는 한국토지공사(사장 김재현)가 인사·채용에서 변화와 도전을 꾀하고 있다.

직종간 벽도 허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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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임직원 승진심사는 007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의 보안 속에 이뤄졌다. 토지공사는 승진심사 1∼2시간 전에 전격적으로 승진심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직급, 직종, 지역별로 심사위원 52명을 느닷없이 선정해 통보한 것이다. 동시에, 심사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인사팀·감사팀 직원, 그리고 보안회사 직원 22명으로 구성된 ‘체포조’를 만들어 전국 각 지역본부·지사에 급파했다. 체포조는 방금 전에 심사위원으로 선정된 직원들의 휴대전화 등 개인 소지품을 전부 압수했다. 청탁 커넥션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조처였다. 김재현 사장은 승진심사가 이뤄진 1주일 동안 아예 자기 집을 비워버렸다. 집에까지 찾아와 청탁하는 일은 이제 사라졌다. 토지공사 윤복산 과장은 “능력위주 인사에 따라 뒤에 처지는 사람들은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인사 청탁했다가 들통날 경우 나중에 불이익이 돌아올까봐 요즘에는 청탁이란 말도 못 꺼낸다”고 말했다.

공기업은 곧 철밥통이라는 생각도 바뀌고 있다. 토지공사는 지난해 공기업 최초로 ‘보직제한제’를 도입했다. 무사안일에 젖어 있던 것으로 평가된 직원 4명에 대해서는 아예 보직을 주지 않았다. 연공서열 타파를 위한 ‘후배할당제’도 시작됐다. 입사 동기 중에서 절반 이상이 승진했을 경우 그 기수의 남은 직원은 일단 제외하고, 대신 후배 기수 중에서 승진 대상자를 찾는 제도다. 토지공사 인사부 박용민 차장은 “회사 이직률이 1∼2%에 불과해 인사적체가 심한 편인데, 앞으로 후배할당제 비중을 더 높여서 일하지 않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도태되도록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내부의 직종간 벽도 허물어지고 있다. 토공은 최근 보직인사에서 전통적으로 사무직군인 인사관리처장을 기술직군으로, 기술직군인 환경교통처장을 사무직군으로 발령냈다. 또 홍보실장·경제자유구역사업단장·국외사업처장 등 13개 (도전적) 자리는 사내 공모를 받아 내부 경쟁을 통해 선발하고 있다. 이런 ‘직위공모제’에 따라 각 직위에 지원한 사람은 여러 경쟁자들을 물리쳐야 그 자리에 갈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박용민 차장은 “토공의 직위공모제는 정부 부처의 개방직 공무원처럼 외부에 자리를 개방하는 형태로 가는 전 단계 성격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토공이 오랫동안 몸에 밴 ‘공기업 체질’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건 변화에 더 이상 둔감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택지를 비롯한 토지개발·공급 사업은 토지공사 독점 체제가 깨지고 이제는 민간과 지방자치단체도 토지개발에 본격 뛰어드는 등 경쟁 체제로 바뀌고 있다.

채용제도 역시 획기적으로 바뀌고 있다. 공기업 최초로 2003년부터 도입한 ‘제로베이스’ 채용제도는 입사 지원서에서 학력·본적지·가정환경 등 차별적 신상정보란을 완전히 없앴다. 응시자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을 배제하기 위해 면접서류에는 개인 신상정보나 필기시험 성적을 전혀 올리지 않는다. ‘무자료 면접’(Blind Interview)이다. 박용민 차장은 “2004년 현재 간부와 전체 직원들의 학력을 분석해봤는데, 학벌과 능력은 별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이를 근거로 학력 관련 자료 없이도 우수 인재를 채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2004년에 간부급의 경우 출신 대학별로 수도권 소재 대학 49.4%, 지방 50.6%였고, 전체 직원은 수도권 대학 45%, 지방대 55%로 나타났다. 지방대 출신자들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간부로 승진한 비율이 수도권 대학 출신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방대 출신을 전체 입사자의 40%로”

토공은 특히 올해부터 ‘지역인재 우대채용제도’를 도입해 지방대생을 전체 입사자의 40%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가이드라인을 잡아놓았다. 올해 뽑은 신입사원 211명 중에서 지역인재 우대채용으로 지방대 출신자 84명이 합격했다. 토공은, 성적·평가 위주의 공개전형에서 40%에 못 미치는 숫자가 뽑힐 경우에는 정원 외 채용 방식으로 지방대 출신자를 추가 합격시키기로 했다. 서울·수도권 출신자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비켜가기 위해서다. 신입사원 채용에서 나이제한도 없앴다. 이에 따라 올해 32살 이상인 13명이 입사했다. 최고령 입사자는 36살이었다. 나이제한이 있던 예전에는 31살이 최고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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