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손오공이 ‘風’ 자를 쓰면서 글자의 모양을 만화상으로 보여주고, “바람 풍”이라는 구호를 함께 외치며 바람이 부는 마법을 만화로 보여준다. 손오공의 흥미진진한 모험 속에 책 한권마다 한자가 20개씩 들어 있다. 등장인물들이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그에 맞는 한자가 주문과 함께 제시된다. “열려라! 열 개(開)!” 하면 문이 열리고, “활 나와라! 활 궁(弓)!” 하면 활이 나온다. 마법한자 주문은 서너쪽마다 계속 이어진다.
어린이 한자학습만화 시리즈 <마법천자문>(글·그림 시리얼, 아울북)이 베스트셀러 종합순위에서 소설 <다빈치코드>를 누르고 최근 3주 가까이 1등을 달리고 있다. 2003년 11월 첫권 출시 이후 총 판매량 270만부. 현재 8권까지 나왔다. 지난해 말에 이미 누적 매출액 100억원을 훌쩍 넘겼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판매기록(1천만부)을 깰지도 관심거리다. 내년 말까지 총 20권이 완간될 예정이다. 이를 본뜬 ‘마술천자문’ 등 짝퉁도 시장에 벌써 대여섯종이 나왔다.
마법천자문의 주요 타깃층은 초등학교 2∼3학년. 취학 전 아동들도 독자층의 10%를 차지한다. 빅히트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새로운 변화에 주목했다. 한자학습지 시장은 국·영·수 시장보다 훨씬 적다. 새로 개척할 시장도 아니고 이미 포화상태였다. 다만 무조건 달달 외는 패턴의 ‘낙후된 시장’이었다. 아울북 김진철 상무는 “만화를 이용해 한자를 가르치는 학습만화는 이전에도 많았다. 그러나 대개 단편만화에 그쳤다”며 “이 책은 단막극의 토막토막난 에피소드 구성을 탈피하고 과감하게 장편 스토리로 기획했다. 어린이 학습만화 시장에서 스펙터클하게 이야기를 전개한 최초의 성공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달라진 아이들은 이미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등 장편을 즐기고 있었다. 손오공 외에 각 등장인물도 스쳐지나가는 액세서리가 아니라 비중 있는 역할을 맡는다. 자칫 이로 인해 이야기가 복잡해지고 쉽게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흥미를 유지·강화하기 위해 등장인물들간의 갈등축을 기본 구조로 삼고 활극 중심으로 배치했다. 손오공이 마법에 걸린 소녀 삼장을 구하기 위해 친구들과 힘을 합쳐 펼치는 모험이 전편에 걸쳐 전개되는데, 사라진 마법천자패를 모아서 천자문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대마왕 패거리와 한판 대결을 벌이게 된다. “책 한권에 한자 25자를 넣을 것이냐 20자를 넣을 것이냐를 놓고 고민했다. 앞에 나온 한자가 반드시 뒤에 반복 등장하기 때문에 5자 차이라도 애들한테 30% 이상 부담이 커진다. 또 스토리가 건조해질 수도 있어서 20개로 잡았다. 글자가 너무 많으면 ‘이거, 학습지야?’ 하면서 ‘흥미모드’가 사라지고 단지 ‘공부모드’만 남게 되는데 그러면 실패한다.” 마법 놀이와 한자학습을 결합한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밀리언셀러의 탄생 뒷얘기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참모들은 왜 윤 대통령 기자회견 말리지 않았나?
제주서 침몰한 129t 대형 어선…2명 사망·12명 실종
목줄 매달고 발길질이 훈련?…동물학대 고발된 ‘어둠의 개통령’
[영상] 윤 기자회견 특별진단…“쇼킹한 실토” “김 여사 위한 담화”
여성 군무원 살해한 남성 장교, 신상공개 결정에 ‘이의 신청’
미 연준 기준금리 0.25%p 인하…파월 “트럼프가 요구해도 안 물러나”
11월 8일 한겨레 그림판
[국제발신] 499,500원 결제완료…불법문자 28억개 범인 잡았다
윤 대통령 때문에…‘김건희 행위’가 국정농단인지 답하게된 국립국어원
[사설] “이런 대통령 처음 봤다”, 이젠 더 이상 기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