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기에도 왜 3%대 유지할까… 통계의 문제 외에도 불완전 취업자 · 자영업자 증가 등 원인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실업자는 80만1천명으로 1년 전보다 4만5천명 증가했다. 실업률은 3.5%로 지난 2001년 이후 3%대를 줄곧 유지하고 있다. 경기가 후퇴하면 가구주의 실업 또는 노동시간 감소 현상이 나타나고, 이로 인해 그동안 가정에 있던 주부나 자녀 등 ‘2차적 노동자’까지 노동시장에 쏟아져나오기 때문에 구직활동이 늘면서 결국 실업이 증가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내수경기 위축에도 실업률이 비교적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뭘까?
체감실업률은 두배
경제성장률이 2001년 3.8%에서 2002년 7.0%로 상승했지만 실업률은 같은 기간 동안 3.0%에서 3.1%로 변동폭이 미미했다. 지난해 경기침체기에도 실업률(3.4%)은 3%대를 유지했다. 3%대 실업률은 대부분의 선진국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미국의 실업률은 1990년대 후반 경제 호황 시절에도 4∼5%를 기록했다. 대체로 외국에서 실업률 2∼3%대는 완전고용에 근접한 수준으로 본다.
그렇다면 정부가 중장기 실업대책을 짜는 데 척도로 쓰는 실업률 3%대는 과연 믿을 만한 것일까? 우리나라 실업률 통계가 ‘1주일에 1시간 이상’ 수입이 있는 일을 한 사람은 취업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지표실업률이 체감실업률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거나, 구직을 포기한 실망실업자가 모두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실업 통계에서 누락된다는 점은 늘 지적돼왔다. 실망실업자 증가에 따라 비경제활동인구는 1998년 1392만명에서 계속 증가해 지난 8월 1458만명으로 늘었다.
물론 대부분의 통계는 관련 지표들의 단순한 평균치이기 때문에 체감지표와 괴리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업률은 발표되는 지표와 피부로 느끼는 체감 사이의 괴리가 지나칠 정도로 크다. 삼성경제연구소 손민중 연구원은 “전체 취업자 중에서 30시간 미만 불완전 취업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고, 구직 단념자가 2002년 7만명 수준에서 꾸준히 늘고 있으며 실망실업자도 2001년과 2003년에 20만명을 웃돌았다”며 “실망실업자 등 유휴 인력과 임시직· 일용직 등 불완전취업자 비중을 고려한 체감실업률은 올 상반기 7.0%에 이른다”라고 말했다. 노동시장에서 일반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실업률은 지표실업률의 2배 수준에 이른다는 것이다. 청년층 실업률 역시 공식적인 청년실업률은 7.8%(38만7천명)이지만 취업 준비중인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30만6천명)와 특별한 활동 없이 무작정 쉬고 있는 유휴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24만1천명)까지 포함하면 체감 실업률은 12.3%에 달한다.
체감실업률에 비해 우리나라 지표실업률이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우선, 농업 부문 취업자 비중을 들 수 있다. 농업 부문은 제조업·서비스업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업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우리나라의 경우 농업 부문 취업자 비중은 지난 8월 기준으로 전체 취업자 2238만2천명 중 193만8천명(8.7%)으로 나타났다. 2002년 기준으로 일본(4.7%), 미국(2.5%), 영국(1.4%)에 비해 훨씬 높다.
서울 · 경기 실업률 더 나빠
특히 우리나라 취업 구조를 보면 취업자 중 비임금 근로자, 즉 자영업주와 무급가족 종사자의 비중이 높다. 지난 8월 자영업주는 619만1천명이고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을 돕는 무급가족 종사자는 160만6천명으로 나타났다. 이 둘을 합친 비임금 근로자(779만7천명)는 전체 취업자의 35%를 차지한다. 이는 2001년 기준으로 일본(16.0%), 미국(7.4%), 영국(12.2%)에 비해 현저하게 높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조기정년, 명예퇴직 등으로 직장을 떠난 사람들이 소규모 생계형 창업으로 몰리면서 자영업자는 갈수록 더 늘고 있다. 무급가족 종사자는 정규직 취업이 곤란하자 가족이 하는 일을 돕는 형태가 대부분인데 사실상 불완전취업으로 볼 수 있다. 또 ‘고용 없는 성장’ 추세 속에서 자영업이 계속 늘고 있지만, 실업자에서 자영업자로 재취업하더라도 자영업자는 극도로 위축된 내수 부진의 충격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그런데 자영업자나 무급가족 종사자는 경기가 악화되더라도 실업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드물다. 따라서 이들의 취업자 비중이 높을수록 지표실업률은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 체감실업률은 비임금 근로자가 늘수록 더 악화된다. LG경제연구원 임일섭 책임연구원은 “농업 부문 취업자와 자영업자 등 비임금 근로자 비중이 높다는 것은 전체 취업의 질이 좋지 않음을 뜻한다”며 “농업 부문은 노동생산성과 부가가치 측면에서 뒤떨어지고, 소규모 자영업 역시 비록 취업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취업의 질은 취약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불완전 취업 상태인데도 실업률 통계에서는 취업자로 간주되는 것이다.
체감실업률과의 괴리는 지역별 실업률 차이에서도 볼 수 있다. 전체 실업률은 3%대이지만, 시·도별 실업률을 보면 지난 8월 서울 지역은 4.7%, 인천 4.4%, 대구·광주 4.0%로 나타났다. 반면 강원(2.0%), 충남·경남(2.1%) 등은 2%대에 그쳤다. 이처럼 서울· 경기 지역에서 체감하는 고용 사정은 전체 실업률 지표보다 훨씬 더 나쁜 상황이다.
다시 통계청의 8월 고용 동향을 들여다보면, 취업 시간대별로 주당 1∼17시간 미만 취업자는 78만5천명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주당 54시간 이상, 즉 법정 근로시간(주 40시간)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하는 취업자는 795만4천명으로 나타났다. 800여만명에 이르는 취업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주당 17시간 미만의 불완전 취업이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개인 사정에 따른 자발적 단시간 노동도 있겠지만 상당 부분은 일자리 부족에 따른 비자발적 파트타임 ‘취업자’들로 추정된다. 비정규직이 급증하는 현실에서 정규직 중심의 실업률 통계 방식만 갖고는 실업 체감지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특히 주당 54시간 이상 일하는 취업자는 1년 전(682만명)보다 무려 16.6%나 늘었다. 왜 그럴까? 저임금 비정규직 취업자들이 생계임금 확보를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하고, 기업에서는 일감이 늘어 인력이 더 필요해도 추가 고용하지 않고 기존 취업자를 활용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다.
‘일자리 증감률’ 추가해야 할까
흥미로운 건 직장에 다닌 경험이 있는 전직 실업자가 대폭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 실업자 80만1천명 가운데 직장을 가져본 경험이 없는 신규 실업자는 2만2천명으로 1년 전(4만2천명)보다 크게 줄었다. 하지만 1년 이상 실직 상태인 전직 실업자는 11만4천명으로 1년 전(8만7천명)보다 크게 늘었다. 실직 상태 1년 미만인 사람도 66만4천명으로 1년 전(62만8천명)보다 4만명 가까이 늘었다. 어느 한 업종이나 대기업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건 아니지만, 현재 알게 모르게 여러 직장에서 해고와 고용조정이 상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실업급여 수급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과 맥락을 같이한다. 실업급여 수급자는 2003년 43만3천명이었는데, 올해는 6월까지에만 벌써 35만7천명에 달했다. 올 상반기에만 2002년(36만2천명), 2001년(37만4천명) 연간 실업급여 수급자를 육박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부 고용보험과는 “비자발적 실업자 수가 늘어나는 게 실업급여 수급자 증가의 한 원인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경제성장률 5.4%, 물가상승률 3.5%, 콜금리 3.50%…. 대표적인 거시경제 지표들이다. 여기에 ‘일자리 증감률’이라는 새로운 지표를 추가하는 건 어떨까? 산업연구원 박태주 연구위원은 “외국에서처럼 실업률 지표 외에 일자리 증감을 보여주는 일자리 지표를 중요한 거시경제 지표로 작성해 매월 또는 매주 단위로 집계해 공표하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한덕수 ‘거부권’ 행사…양곡법 등 6개 법안
권성동·한덕수, 롯데리아 ‘권’모술‘수’ 세트 [그림판]
김병주 “선관위 30명 복면 씌워 납치하는 게 정보사 HID 임무”
거부권 쓴 한덕수 “헌법정신 최우선으로 한 결정”
[영상] 김문수, “내란공범” 외친 시민 빤히 보면서 “경찰 불러”
[속보] 법원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 해임 취소” 판결
“다른 언론사 하세요”… 권성동, MBC 기자 질문 노골적 무시
민주 “탄핵 기간 빈집에 통지서”…‘이재명 재판 지연’ 주장 반박
[단독] 방심위 시사보도 신속심의 64%는 국힘·공언련 민원
‘야당 비판’ 유인촌, 결국 사과…“계엄은 잘못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