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직업지도를 통해본 전문직종 소득… 금융 전문가 소득이 ‘사’자 제치고 부상
▣ 글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 사진 박항구 기자 underfl@hani.co.kr
“변리사, 지난 1999년 이후 5년째 전문직 사업자 소득 1위.” 지난 8월 말 일부 언론이 보도한 내용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도대체 변리사는 왜 그렇게 많은 돈을 벌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오보다. 애초 이 보도는 민주당 김효석 의원이 국세청에서 넘겨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낸 보도자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자료 내용은 고소득 전문직 사업자의 ‘소득’이 아니라 ‘매출액’이었다. 소득은 매출액에서 여러 비용을 빼고 계산해야 하는데, 매출액이 소득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다.
의사가 공급 과잉이라고?
그렇다면 전문직종 사업자들의 소득은 과연 얼마나 될까? 김효석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개업 변리사 한 사람당 연간 매출액은 평균 4억9천만원으로 나타났다. 2위는 변호사로 3억3700만원, 이어 관세사(3억2400만원), 의료업자(의사·2억9100만원), 회계사(2억2400만원), 세무사(2억1300만원) 순이었다. 감정평가사(1억7700만원), 법무사(1억3100만원), 건축사(1억1500만원)도 1억원이 넘었다. 변리사는 지난 1999년부터 5년째 매출액 1위를 기록하고 있고, 변호사와 관세사가 엎치락뒤치락 2위 자리를 다투고 있다.
그러나 매출액이 반드시 소득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국세청 자료는 소득에 대한 내용은 없어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기 어렵게 돼 있다. 이에 대해 변리사협회쪽은 변리사가 변호사보다 소득이 많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변호사는 자동적으로 변리사 자격을 갖는다. 따라서 변리사가 변호사보다 소득이 많다면 변호사가 변리사 개업을 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변리사의 주고객은 기업체라서 매출이 투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전문직종보다 상대적으로 많게 신고됐을 가능성도 거론됐다.
고소득 전문직종의 소득을 추정해볼 수 있는 자료가 최근 나왔다. 한국산업인력공단 부설 중앙고용정보원은 최근 ‘2004 한국의 직업지도’를 완성해, 조만간 세부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지난해 9~12월 전국 5만 표본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 작성한 이 자료는 직업별 종사자 수와 평균소득을 담고 있다. 직업지도에 따르면 역시 변호사가 고소득 전문직중 소득이 가장 많다. 변호사들의 월평균 소득은 556만원으로 연봉으로 치면 6672만원이다. 국세청에 매출액을 가장 많이 신고한 변리사의 월평균 소득은 421만원으로 변호사보다 연간 1620만원가량 적다.
올해 직업지도는 이른바 ‘사’자 직업이 여전히 소득 상위 직업에 포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78개로 분류된 직업 중 치과의사(월평균 488만원)가 3위, 항공기 조종사(457만원)가 4위에 올라 있고, 한의사(436만원)와 의사(434만원)가 7, 8위에 올랐다. 변리사는 12위, 회계사(412만원)가 14위, 세무사(377만원)가 20위, 판·검사(365만원)가 22위다. 법무사(323만원)도 30위에 턱걸이를 했다. 기업의 고위 임원(615만원·1위)을 제외하면 소득랭킹 30위 안에 든 직업은 대부분 관리자다. 이 밖에 사회과학연구원(395만원·16위), 대학교수(380만원·17위), 보험계리인(336만원·25위), 임상심리사(330만원·26위)가 30위 안에 들었다.
그러나 ‘사’자 직업의 소득에도 분명한 변화가 눈에 띈다. 2년 전인 지난 2002년 직업지도와 비교하면 ‘의사’들의 소득이 크게 늘어난 점이 무엇보다 두드러진다. 치과의사는 월평균 소득이 396만원에서 488만원으로 늘었고, 한의사도 339만원에서 436만원으로 늘어났다. 이는 소득의 증가와 함께 고비용 치과 치료가 늘어난 것과, 양의에 비해 한방치료 수요가 상대적으로 늘어났음을 보여준다. 일반 의사도 소득이 409만원에서 434만원으로 늘었다. 이런 현상은 의사의 공급과잉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와 어긋나는 것이다.
시험 합격자 증가와 소득의 관계
반면, 변호사의 소득은 크게 줄었고, 회계사·변리사·법무사·세무사 등은 소득에 별 변동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변호사는 여전히 소득 2위 직업이지만, 2년 전 월평균 608만원에서 556만원으로 줄었다. 법무사는 329만원에서 323만원으로 약간 줄었다. 변리사는 418만원에서 421만원으로, 회계사는 403만원에서 412만원으로, 세무사는 367만원에서 377만원으로 조금 늘었다. 국세청 자료에서도 이런 흐름이 엿보인다. 개업 변리사의 연간 매출액은 2002년 5억5천만원에서 2003년 4억9천만원으로 줄었고, 변호사는 3억4천만원에서 3억3700만원으로, 회계사는 2억4700만원에서 2억2400만원으로 각각 줄었다.
이런 변화는 이들 고소득 전문직종의 시험 합격자를 계속 늘려 뽑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때 300명을 뽑던 사법시험 합격자는 현재 1천명으로 늘어나 있다. 공인회계사도 1천명을 배출하고 있다. 변리사의 경우 1995년까지는 30명을 합격시켰지만 2001년 120명으로 늘었고, 지금은 200명씩 합격자를 배출하고 있다.
고소득 전문직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은 관련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경쟁을 격화시켜 소득감소로 귀결되지만, 소비자들에게는 서비스가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전문직 종사자의 평균소득이 줄어드는 것보다 더 큰 변화는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 소득 편차가 매우 커지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평균소득이 줄어도 이른바 ‘잘나가는’ 사람은 소득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사법연수원 졸업자들이 취업을 못하고 곧바로 개업을 하거나, 회계사 시험 합격자들이 연수할 곳을 찾지 못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변리사협회 고영회 공보이사는 “다른 업종에서는 몇몇 뛰어난 사람만 관심거리가 되는데, 전문직 종사자들의 경우 일부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서 관심거리가 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어느 영역에서든 하위 20%는 도태되는 것이 고객 서비스 향상을 위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한편, ‘2004 직업지도’를 보면, 금융자산운용가(429만원·9위)와 투자·신용분석가(427만원·10위), 기타 회계 및 금융·보험 관련 전문직(378만원·18위) 등 금융 분야 전문가들의 소득 증가가 눈에 띈다. 이들 직종은 전통적인 ‘사’자 직업을 제치고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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