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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카드, 위기의 악순환

등록 2004-07-29 00:00 수정 2020-05-03 04:23

상반기 경상손실 1조원… 정책 실패의 반복, 그 실패를 국민의 돈으로 메우는 정부

▣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지난 5월20일 공시된 LG카드의 1분기 사업보고서는 LG카드의 험난한 앞날을 예고한다. LG카드의 1분기 경상손실은 무려 5462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LG카드는 1조7397억원의 자본금을 모두 날리고, 자본이 마이너스 2941억원에 이른다. 문제는 이후에도 적자가 계속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5월 말 연체율이 16%에 이르는 등 LG카드의 영업은 당분간 흑자로 전환할 가망이 없다. 2차 LG카드 사태가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국책은행이 해결한 1차 LG카드 사태

1차 LG카드 사태는 지난 1월 LG카드가 보유 현금 부족으로 현금서비스를 중단하면서 시작됐다. LG그룹은 LG카드를 과감히 내던졌다. 이미 주식 매각 등으로 대주주들은 1조원의 자금을 회수한 상태였다. LG카드를 살리기 위해 수조원의 자금을 투입해 모험을 하느니 회사를 포기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LG카드의 운명은 결국 채권단의 결정에 넘겨졌다. LG카드를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살린다면 누가 자금을 지원할 것인가가 문제가 됐다. 정부로서는 금융시장에 큰 파장을 미치도록 LG카드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

정부는 채권단이 공동으로 LG카드를 인수하도록 압박했다. 이에 국민은행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10여일간의 갈등 속에 정부는 LG그룹을 압박하고 채권단을 회유했다. 채권단은 결국 LG그룹이 일부 책임을 지는 조건으로 LG카드의 새 주인이 되기로 했다. 지난 1월9일 채권단이 ‘합의’한 내용을 보면, 산업은행 등 16개 채권금융기관은 1조6천억원의 신규 유동성 지원 등 모두 3조6천억원을 LG카드에 출자 전환하기로 했다. 특히 채권단 중 산업은행은 25%의 지분을 갖고, 1년간 LG카드를 위탁 관리하기로 결정했다. 또 1년 안에 LG카드에 추가 부실이 발생할 경우 25%를 산업은행이 책임지고, LG그룹쪽이 75%를 책임지기로 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나선 것은 사실상 공적자금의 투입이다. 그러나 추가 부실이 5천억원 이상이 되면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려하던 사태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LG카드의 적자 행진이 멈출 줄 모르고 있다. 1분기 당기순이익은 1210억원이지만, 이는 채권단의 채무 재조정으로 6673억원의 장부상 이득을 봤기 때문일 뿐이었다. 영업상으로 보면, LG카드는 1분기에만 5천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2분기 실적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적자가 확실하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LG카드의 상반기 순손실은 3500억원 안팎으로 점쳐지고 있다. 지난 1분기 채권단의 출자전환에 따른 특별이익 6673억원을 고려할 경우 실질 영업손실이 1조원대에 이른다는 얘기다. 그러나 하반기 중에도 흑자로 전환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증권업계는 LG카드의 올해 적자 규모가 1조3천억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앞으로도 2조원의 증자 필요”

급기야 LG카드는 대주주가 된 채권단에 다시 한번 ‘SOS’를 날렀다. LG카드는 지난달 채권단에 제출한 경영정상화 계획서에서, “조정자기자본비율을 8% 이상으로 유지하고, 상장 폐지를 피하기 위해서는 1조5천억원 규모의 추가 출자전환이 필요하다”며 지원을 요청했다. 또 자금 운용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자산유동화증권(ABS)과 카드채 등 7조1천억원 규모의 차입금에 대해서도 2∼3년간 만기 연장을 요청했다. LG카드가 자기자본비율을 8% 이상으로 유지하지 못할 경우, 감독 규정에 따라 적기시정조치 대상이 된다. 자본 잠식을 해소하지 못하면 상장이 폐지된다. 이 두 가지 모두 회사 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쳐, 매각 작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증권사는 LG카드가 요청한 1조5천억원 규모의 증자로도 부족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대증권 김혜원 연구위원은 “LG카드의 전체 채권 중 45%의 부실자산을 정리하는 데 필요한 대손상각액은 8600억원, 완전 자본잠식 해소비용 4900억원, 자기자본비율 8% 충족을 위해 필요한 비용 6700억원 등 모두 2조원 정도의 추가 출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LG카드는 조만간 LG투자증권을 매각할 예정이므로, 여기서 생기는 3500억원을 빼더라도 1조7천억원의 증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출자할 것인가? 기본적으로 증자는 기존 주주들이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채권금융기관들은 LG카드의 추가 출자 요청을 단호히 일축하고 있다. 지난 1월 채권금융기관의 입장을 대변했던 국민은행이 이번에도 나서는 모습이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7월23일 오후 증권거래소에서 열린 기업설명회(IR)에서 LG카드에 대한 추가 지원 가능성을 묻자 “아직 요청 받은 일이 없지만 종전의 입장에서 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종전의 입장이란 추가 지원은 없다는 것이다. 채권단은 올해 초 LG카드 정상화 방안에 합의하면서 “산업은행을 제외한 다른 채권 금융회사는 추가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못박은 바 있다.

국민은행쪽은 LG카드가 자본 잠식으로 상장 폐지되더라도 별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이성규 부행장은 “현재 LG카드의 현금 흐름에는 큰 문제가 없다”며 “연말께 쟁점으로 예상되는 문제로는 자본금 부족에 따른 상장 폐지와 적기시정조치인데 상장 유지 여부는 채권단에게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적기시정조치다. 적기시정조치란 자기자본비율이 기준인 8%에 미달할 때 금융감독원이 내리는 조처다. 이를 면하려면 자본금을 확충해야 한다.

채권단은 추가 지원 거부 못박아

채권은행들이 지난 1월 1차 LG카드 사태 때 정부의 지원 요구에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LG카드의 시장 퇴출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버티면, 급한 쪽이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채권비율이 많지 않았으면서도 LG카드의 지분 25%를 떠안는 등 가장 큰 짐을 졌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각 14%, 10% 주주가 되는 데 그쳤다. 주주가 된 채권단은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나설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지난번 지원으로 끝이라는 공개적인 선언까지 있었던 상황이다.

자본이 완전 잠식된 LG카드를 지금 청산한다면 주주들은 한푼도 건질 게 없다. 그럼에도 7월23일 LG카드의 주가는 액면가를 넘는 6100원에 이른다. 이는 투자자들이 LG카드가 어떤 방식으로든 정상화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뜻이다. 한 증권사의 리서치 담당자는 “증자가 이뤄지지 못해도, 감독당국이 LG카드에 대한 적기시정조치를 유예해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을 버는 것으로 해결되지 못하면 다음 수순은 증자가 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 다시 한번 산업은행이 나서야 한다. 이는 국민의 돈으로 또다시 LG카드를 지원한다는 뜻이 된다.

정책 실패의 반복, 그 실패를 국민의 돈으로 메우는 정부, 그러나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한국식 금융 구조조정의 악순환은 이번에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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