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최태원 회장 사촌형제들의 SK케미컬 지분 매입… 그룹쪽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라며 부인 </font>
▣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SK그룹의 지배 구조에 무슨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일까? SK케미칼 대주주들이 회사 주식을 계속 사들이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대주주들의 지분 취득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됐다. 그런데 지분 취득이 올 들어서도 쉼 없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최종건 창업주의 아들로, 최태원 회장의 사촌인 신원·창원 형제의 지분 확대가 두드러진다.
SK케미칼의 최대주주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최태원 회장으로, 그 지위를 위협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지난해 3월 말 현재 주식 소유 현황을 보면, 최태원 회장이 6.84%이고 최창원씨는 1.24%, 신원씨는 0.41%에 불과했다. 그런데 올해 3월 말이 되자 최창원씨의 지분은 4.72%로, 최신원씨의 지분율은 0.67%로 늘었다. 이후에도 사촌들의 지분 매입은 계속되고 있다.
형제 지분 합하면 최태원 회장보다 많아
SK케미칼은 지난 7월16일 공시를 통해, 최창원씨가 19만8천여주를 사들인 것을 비롯해 4월19일부터 최근까지 최신원씨 형제자매들이 모두 34만주를 사들였다고 밝혔다. 이로써 최창원씨의 지분율은 6.48%로 최대주주인 최태원 회장의 6.83%에 바짝 근접했다. 최신원씨의 지분율도 0.9%까지 높아졌다.
SK케미칼은 SK그룹에서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기업이다. 최종건 창업주가 1969년 설립한 선경합섬으로, 그룹의 모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SK그룹의 경영권은 최종건 회장의 자제들로 이어지지 않았다. 최종건 회장은 일찍 세상을 뜨고, 동생인 최종현씨가 가업을 승계했으며, 그의 장남인 최태원씨가 그룹을 승계한 것이다.
최종건 선대 회장의 장남인 신원씨는 현재 SKC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그러나 최신원씨는 경영권을 행사할 만큼의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SKC는 SK(주)가 47%를 가진 절대주주다. 최신원씨는 단지 0.1%의 지분만 갖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올 들어 장내에서 사들인 것이며, 최태원 회장의 동생 재원(0.3%)씨보다 지분율이 낮다.
그러나 최신원씨의 동생인 창원씨가 SK케미칼의 지분을 늘리는 것은 주목을 받을 만하다. 최창원씨는 SK케미칼의 등기임원으로 상근 부사장을 맡고 있다. 또 다른 계열사들은 SK케미칼의 주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데 비해, 최신원씨가 경영하는 SKC는 SK케미칼의 지분을 6.2%나 갖고 있다. 따라서 신원씨와 창원씨 형제가 동원할 수 있는 SK케미칼 지분을 합하면, 최태원 회장의 지분보다 많아진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신원·창원씨의 계속되는 지분 확대가 계열 분리를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소버린 펀드의 SK(주) 지분 매입에 따른 경영권 분쟁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SK그룹은 아직 최씨 일가의 경영권이 확고하지 못하다. 소버린쪽은 지분을 계속 보유하고 있으며, 내년에 다시 한번 지분 대결을 벌일 기세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 사촌간 계열 분리가 가능할 것인가?
외국인 지분 적은데 누가 경영권 위협?
SK그룹쪽은 계열 분리는 호사가들이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그룹쪽은 “최태원 회장 사촌들의 지분은 앞으로도 계속 늘게 돼 있다”고 말했다. 대주주 특수관계인들의 지분 매입은 오히려 그룹 경영권 안정을 위한 조처라는 설명이다. 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소버린이 경영권을 위협하자 사촌들이 합의해서 내부 지분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최태원 회장은 돈이 없어서 사지 못하고, 최 회장의 동생인 재원씨는 지난해에 주식을 사서 지금은 여력이 없다. 따라서 자금 여력이 있는 사촌들이 나서서 지분을 사들이고 있는 것이고, 사촌들의 수가 많다 보니 더 눈에 띄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설명은 SK(주)에 대한 최씨 일가의 경영권이 매우 취약한 상황이라는 점을 근거로 한다. 실제로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SK(주)에 대해 최태원 회장은 0.1%를 갖고 있을 뿐이고, SK텔레콤이 20.8%, SK C&C가 8.6%, SK건설이 3.3%, SK케미칼이 3.2%를 갖고 있다. 소버린 펀드가 14.75%를 갖고 있고 소버린을 포함해 외국인들이 43%(3월 말 현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경영권은 불안하다. 그룹쪽은 이런 상황에서 SK(주)의 주요 주주인 SK케미칼의 경영권이 매우 취약해, 이를 방어하기 위해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들이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계열사들이 사들이면 좋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부분적으로만 맞다. 그룹쪽이 설명하는 대로 SK케미칼에 대한 최씨 일가의 경영권이 취약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 2002년 말 현재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들의 지분은 18.8%에 불과했다. 그동안의 주식 취득에도 불구하도, 내부 지분율은 지난 3월 말까지 28.43%로 높아졌을 뿐이다. 하지만 과연 누가 경영권을 위협한다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딱 부러진 대답이 나오기 어렵다. SK케미칼의 지분은 대부분 개인 투자자들이 갖고 있다. 외국인들의 지분율은 지난 3월 말 현재 4%에 불과하다.
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SK케미칼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취약한 구조였다”고 강조한다. 그는 “적대적 인수합병의 대상이 되기 쉬운 기업은 흔히 3가지 특징을 갖는다고 한다. 우선 비즈니스 모델이 좋고, 시가총액이 작으며, 보유지분의 가치가 높다는 것인데, SK케미칼은 이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시가총액이 작다는 것은 사실이다. SK케미칼의 시가총액은 1400억원에 불과하다. SK(주)의 지분 3.2%를 포함해 자본총액은 4082억원(2003년 말)으로 시가총액에 비하면 매력적이다.
그룹쪽은 무엇보다 SK케미칼이 그룹에서 분리 독립할 경우 독자 경영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지난해 SK그룹 분식회계 파문이 일었을 때, 가장 먼저 유동성에 문제가 생긴 곳은 SK케미칼이었다. 2002년 557억원의 적자를 냈고, 지난해 순이익도 63억원에 그친 상황에서 관계사들의 실적도 썩 좋지 않다. 이런 점에서 보면 최신원·창원 형제가 SK케미칼의 최대주주로 등장한다고 해도 당장 기업을 그룹에서 분리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창업주의 아들들이 언제까지나 사촌인 최태원 회장의 그늘 아래 남아 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장 분리하기는 쉽지 않아도…
최신원 SKC 회장은 지난 6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형제간 협의를 거쳐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방향이라면 그룹의 분가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SK네트웍스의 정상화’라는 전제조건을 붙였지만, “서로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사업 부문을 중심으로 분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SK케미칼에 대한 최신원·창원 형제의 지분 확대의 주목적이 그룹 경영권 방어보다는 그룹 분리로 가는 준비 작업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대그룹이 2세·3세에게 경영이 승계되는 과정에서 창업주의 자손들 사이에 분할 승계된 사례는 적지 않다. 삼성은 삼성 본가 외에 제일제당·신세계·한솔 등으로 나뉘었고, 현대는 현대자동차·현대백화점·현대산업개발과 모체인 현대그룹으로 분리됐다. LG도 구씨 일가와 허씨 일가가 계열 분리를 하고, LG전선그룹도 따로 떨어져 나갔다. 이제 SK그룹 차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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