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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댐, 이번엔 환경사기극!

등록 2004-07-16 00:00 수정 2020-05-03 04:23

첩첩산중의 은밀한 증축 공사로 화천군 일대 파로호 훼손… 남한 최후의 자연 하천이 망가진다

▣ 화천= 글 · 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남한에 마지막 남은 자연 하천이 사라지고 있다. 평화의 댐 증축 공사로 인해 한강의 최상류인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수하리 일대 파로호 상류 지역이 마구잡이로 훼손되고 있다. 전두환 정권이 벌인 희대의 사기극이 지난 2002년 가을 ‘부활’해 북한강을 두번 죽이고 있다.

산 파헤쳐 둑쌓기… 돌가루 · 흙에 탁해져

정부는 2002년 9월 북한의 임남댐(금강산댐) 완공으로 유사시에 발생할 상황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평화의 댐 2단계 공사를 시작했다. 평화의 댐은 5공 때인 1987년 2월 착공돼 1988년 1단계 공사를 마치고 14년 동안 방치됐다. 지난 4월 마무리된 2단계 공사는 댐의 높이를 애초 80m에서 125m로 높였다. 저수용량이 26억2천t인 북한 임남댐에 대응하기 위해 저수용량을 5억9천t에서 26억3천t으로 늘렸다.

그러나 타당성도 의심스러운 댐 증축 공사를 급하게 하는 바람에 심각한 환경 파괴가 일어났다. 북한강 상류의 둔치와 산림을 갈아엎어 여기서 나오는 토석으로 물막이 둑을 쌓았는데, 이로 인해 남한에 마지막 남은 하천 생태계의 한 축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산을 통째로 갈아엎는 공사로 돌가루와 흙이 북한강의 본류로 그대로 유입돼 깨끗하던 강물이 탁하게 변해버렸다. 용존산소량이나 오염도 등 공학적 수치를 언급할 필요 없이 현장에서 눈으로 확인되는 것만으로도 오염의 정도를 알 수 있다.

평화의 댐은 과거 1차 공사 때도 주변의 산과 하천변을 마구 파헤친 뒤 복구나 복원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지난 14년 동안 장마나 집중호우가 발생하면 계속해서 토석이 북한강으로 몰려들었다. 다른 지역이었으면 환경 훼손 논란이 있었어도 여러 차례 있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하지만 워낙 깊은 첩첩산중이라 세간의 관심을 피할 수 있었다.

도로공사에 따른 환경 훼손도 심각하다. 댐의 증축으로 기존 460번 지방도의 일부 구간을 버리고 약 2.5km의 구간을 도로로 새롭게 건설하면서 숲을 깎아내고 있다. 본래 경사가 급하고 선형이 구불구불해서 도로 건설에 적합하지 않은 곳에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한 결과다. 지질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도로공사를 하고 있어 장마나 태풍 때는 산사태의 우려도 있다.

평화의 댐이 단절시킨 물줄기는 북한강의 본류로 금강산 중에서도 가장 속 깊은 내금강으로 바로 연결된 곳이다. 평화의 댐에서 100m 지점이 육군 백두산부대의 민통초소이고, 이곳을 지나 북한강 줄기를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면 내금강이다. 생태적으로 금강산과 한강을 연결하는 축이자 연결통로가 평화의 댐 주변지역이다. 비무장지대와 수도권을 생태환경적으로 연결해주는 줄기가 북한강을 통해 이어지는 한강이다. 그러나 1987년 평화의 댐 공사는 그 단절의 ‘서막’이었고, 이번 증축공사는 단절의 ‘본편’이었다.

민물고기 · 수달 · 산양 어디서 다시 볼까

안타까운 것은 이곳이 남한에서 마지막 남은 자연 하천이라는 점이다. 한강의 다른 지류는 물론 낙동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등 남한의 주요 하천을 망라해도 이곳과 같은 자연 그대로 보존된 하천의 원형은 찾아보기 힘들다. 주요 하천들이 산업화로 난개발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기 전에 간직했던 하천의 모습이, 아직도 평화의 댐 주변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런 곳을 건교부와 환경부가 협의해 흉물스러운 대규모 채석장으로 갈아엎은 것이다.

당초 이 지역은 하천 생태계와 산림 생태계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곳이었다. 천연기념물 190호인 황쏘가리와 259호인 어름치를 비롯해 1급수에서 사는 민물고기들이 마음껏 헤엄쳐 다녔다. 그러나 댐 공사로 인한 토사 유출과 수량 감소에 따라 천연기념물인 물고기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지표종이자 깃대종인 황쏘가리와 어름치가 사라졌다는 것은 이 하천의 악화된 상태를 총체적으로 드러낸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천연기념물 330호 수달과 217호 산양도 심각한 위협을 받은 지 오래다. 평화의 댐 주변은 민통선 생태계의 전형이다. 댐 주변에서 200m만 벗어나도 오소리, 너구리, 고라니, 멧돼지와 흔하게 마주칠 정도로 동물들이 많다. 이 지역의 자연 생태계 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야생동물이다. 백두대간 핵심 지역을 능가할 정도로 ‘멸종위기종’의 천국이다. 표범으로 추정되는 고양잇과의 중대형 맹수를 비롯해 사향노루, 여우, 수달, 산양, 담비, 삵, 하늘다람쥐 등 즐비하다. 가곡 의 2절에 나오는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데~’라는 구절에서 궁노루가 바로 사향노루다. 전쟁 전후부터 사향노루가 화천 지역에 많이 살았다. 그러나 공사로 사향노루의 서식처 주변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 지역은 1998년 초 호랑이 출몰로 논란이 됐던 곳이다. 주요 방송사들이 석달가량 내려와서 진을 치고 취재했던 곳이 현재 개발하고 있는 채석장 주변이다. 당시 환경부에서 비공개로 처리한 내부 문건에는 “호랑이는 아니지만 표범으로 추정되는 고양잇과의 중대형 맹수”라고 결론지었다.

건교부는 “환경부와 협의해서 환경영향평가를 마쳤고, 사후 환경 점검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 확인된 것은 환경을 고려한 공사가 어떻게 이토록 심각할 정도로 자연 생태계를 훼손했는가 하는 점이다. 환경부는 팔당수질종합대책을 만들어 한강을 지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한강 상류인 평화의 댐 공사 현장은 환경부의 공언이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천은 하류에서 아무리 돈을 투자하고 기술을 동원해도 상류에서 오염시키면 소용이 없다.

“환경 점검한다” 건교부 공염불

가장 맑고 깨끗해야 할 곳을, 초대형 광산을 방불케 하는 ‘채석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하천과 주변 숲을 파헤치면서 ‘맑은 물 보전’을 얘기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일이다. 지금 평화의 댐 앞에는 한강이 형성된 이래 가장 큰 규모의 환경훼손이 벌어지고 있다. 이 땅의 후손에게 한강을 온전히 물려주는 것은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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