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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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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황우석은 없다

등록 2007-11-30 00:00 수정 2020-05-03 04:25

‘연구윤리 정립 활성화 심포지엄’… ‘썩은 사과’ 아닌 ‘썩은 상자’ 구조 문제로의 인식 보여줘

▣ 김동광 과학저술가

황우석 사태가 있은 지 2년이 지나면서 이제 연구윤리에 대한 논의는 우리 학계에서 어느 정도 제자리를 잡아가는 양상이다. 지난 11월16일 그동안 과학자들의 연구윤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연구자들 사이에서 연구윤리 교육을 하고 그에 수반되는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주된 노력을 기울여온 4개 학회(한국과학기술학회, 한국과학사학회, 한국과학철학회, 한국생명윤리학회)가 공동으로 ‘과학기술계의 연구윤리 정립 노력 활성화를 위한 범학회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 심포지엄은 황우석의 논문조작 사태로 우리나라의 과학계가 대내외적으로 큰 타격을 받은 뒤 스스로 연구윤리를 정립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

△지난 11월16일 한국과학기술학회,한국과학사학회, 한국과학철학회, 한국생명윤리학회가 공동으로 ‘과학기술계의 연구윤리 정립 노력 활성화를 위한 범학회 심포지엄’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저자 자격 부여, 이중 저자, 실험실 문화, 내부고발자, 연구윤리를 위한 제도 마련 등이 진지하게 논의되었다. (사진/ 한국과학철학회 제공)

대한전기학회를 보라

우리의 경우도 그렇지만 미국을 비롯한 일부 나라들에서도 심각한 연구부정 사건이 발생한 이후 그 충격으로 연구윤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경우가 많다. 가령 미국에서는 1974년에 흰쥐의 피부조각에 검은색을 칠해 마치 검은 쥐의 피부를 흰쥐에 이식한 것처럼 속인 슬론케터링 연구소의 윌리엄 서머린 사건, 80년대 초에 있지도 않은 자료를 날조해서 무려 100여 편의 논문을 조작해 세상을 경악시킨 하버드의대 존 다시 사건과 같은 대형 부정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다. 그 영향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이어져 한쪽으로는 연구자들 내에서 연구부정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스스로 연구부정을 막기 위해 연구윤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윤리 교육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다른 한편으로는 연방 차원에서 연구부정을 막고 연구윤리를 확립하기 위해 1989년에 과학윤리국(OSI)과 과학윤리검토국(OSIR)을 만들었다. 이 두 기관은 1992년에 통합돼 연구윤리국(ORI)이 됐다.

대개 연구윤리에 대한 논의가 처음 시작될 때 반드시 극복해야 할 중요한 단계가 있다. 그것은 연구부정이 ‘문제가 있는 개인이 혼자 저지른 행위’이고, 따라서 그 개인만 처벌하면 된다는 이른바 ‘썩은 사과 이론’, 즉 사과 상자에는 늘 썩은 사과가 있기 마련이고 썩은 사과 하나만 들어내면 된다는 식의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황우석 사태 당시와 그 직후에 우리 과학자 사회에서는 이런 관점이 통용됐다. 그동안 황우석과 친분을 과시하던 많은 인사가 태도를 갑자기 바꿔 “과학자가 그러면 안 된다” “그는 이미 과학자가 아니다”라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것은 황우석이라는 개인이 저지른 부정일 뿐 과학계에는 문제가 없다는 금긋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번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많은 사례들은 우리 과학자 사회가 이러한 왜곡이나 자기 식구 감싸기에서 벗어나 연구부정을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과학연구 내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대학·연구소·학회 차원의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날 사례 발표에 나선 대한전기학회는 지난해 12월부터 이장규 교수(서울대)를 중심으로 김용권(서울대), 윤태웅(고려대) 교수 등이 연구윤리 준비위원회를 조직해서 2007년 5월에 연구윤리 강령과 윤리위원회 규정을 작성했다. 더구나 이 윤리강령은 전문에서 “전기공학 기술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생활환경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을 인식”한다고 밝힌 뒤, ‘사회에 대한 책임’ ‘신의의 원칙’ ‘친환경 기술 및 지속 가능 기술을 확립하려는 노력’ 등 10개 항을 채택하고 학회원들이 연구 현장에서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까지 발간하는 선구적인 업적을 이루었다.

흔히 연구윤리 논의의 초기 단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연구 부정행위를 위조, 변조, 표절(이 세 가지의 영어 두문자를 따서 대개 FFP라고 한다)과 같은 대표적인 경우로 한정하는 것이다. 연구윤리에 대한 인식이 워낙 낮고 부정행위가 만연하기 때문에 우선 가장 심각한 부정행위부터 막고 보자는 생각인 셈이다.

과학자를 무력화시키는 ‘칸막이 문화’

그러나 이날 쟁점이 된 주제들은 저자 자격 부여, 이중 저자, 실험실 문화, 내부고발자, 연구윤리를 위한 제도 마련 등이었다. 이는 우리의 연구윤리 논의가 이미 FFP를 넘어서 그보다 더 세부적이거나 포괄적인 주제들로 확산 심화되고 있으며, 외국의 논의를 그대로 적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우리의 실험실 문화에서 그 원인을 찾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먼저 저자 자격 부여의 경우 20세기 이후 과학연구가 발전하고 고도화되면서 단일 저자가 아닌 공저자가 일반적 현상이 되어 부적절하게 저자 자격을 부여하는 문제가 불거지게 됐다. 이날 논의에서는 연구에 실제로 기여하지 않으면서 공저자에 이름이 오르는 이른바 ‘선사 저자’(gift authorship)와 도용 저자 등의 문제가 제기됐다. 아직도 제자의 논문에 지도교수의 이름이 함께 오르는 식의 잘못된 관행은 극복되어야 할 구습이다. 실제로 지난해에 이루어진 ‘과학자 사회 연구’ 설문조사에서 우리 연구자들은 위조나 표절보다도 ‘부당한 저자 표시’가 가장 심각한 연구부정 행위라고 지적했다.

또한 연구윤리에 수반되는 출판윤리와 이중 게재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나라의 평가제도가 주로 외국의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저널만을 연구성과로 인정하면서 설 자리를 잃게 된 국내 학술저널들이 이중 게재를 용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이중 게재의 구조적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과거에는 국내 문헌을 외국에 알릴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외국의 유명 저널에 이중 게재를 권장하기까지 했다. 연구자들이 이중 게재가 윤리적으로 잘못임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무조건 외국 저널만이 선호되는 왜곡된 학문적 위계서열, 지나친 성과주의 등의 문제가 깔려 있다.

우리의 잘못된 실험실 문화가 연구윤리 문제를 낳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것도 이날의 성과다. 황우석 사태에서도 잘 나타났듯이 동료나 선임자가 무슨 연구를 하는지 모르고 오로지 지시받은 연구만을 수행하는 이른바 ‘칸막이 문화’는 연구부정을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연구자들을 무력화시키는 요소다.

이번 심포지엄은 과학자 사회가 연구윤리 문제에 대한 진지하고 성숙한 노력을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여러 가지 한계와 장애물이 엄존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하나는 발표자들이 최근 연구윤리 문제가 비롯된 시발점인 황우석 사태의 원인 제공자인 정부의 성과주의 과학기술 정책과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문화를 정면으로 다루지 못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도 과학기술부의 연구윤리에 대한 인식이 지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꿈쩍도 않는 청와대와 과기부

이날 폐회사를 한 송상용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회원이 지적했듯이 황우석 사태가 있기 전부터 생명윤리학회와 시민단체 등에서 황우석 팀의 연구윤리와 생명윤리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제기했지만, 과기부와 청와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후 전대미문의 사기극이 벌어지는 것을 조장·방조했다. 그리고 황우석 사태가 밝혀진 뒤에도 정부는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은 채 똑같은 행태를 반복해왔다. 더욱이 황우석 사태를 밝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제보자 부부는 아직도 복직되지 못한 채 불안감과 생활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과기부의 한 국장은 우리 사회의 연구부정이 정부와 연구기관들의 과도한 양적 성과주의와 경쟁주의로 인한 결과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은 개인의 문제일 뿐”이라는 고루한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번 행사의 후원자 역할을 했던 과기부는 연구윤리를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자금 지원에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 생명공학을 비롯한 대형 연구기획에 대한 묻지마식 투자와 성과주의로 잘못된 연구 관행을 부추겨온 스스로의 행태에 대한 진정한 반성에서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황우석 사태의 제보자 부부가 원직에 복직되고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의 연구윤리는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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