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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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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에게 갈까, 명의에게 갈까

등록 2006-09-02 00:00 수정 2020-05-03 04:24

인간의 손보다 후유증 적고 효율적인 로봇 수술의 가능성…국내선 전립선 절제술 등에 실용화됐고 원격수술도 개발중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아무리 로봇의 성능이 좋다 해도 생명을 맡기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암 판정을 받고 막다른 상황에 몰렸다면 분야의 명의를 찾아 병원 순례를 하기 십상이다. 50대 후반의 김아무개씨도 그랬다. 전립선암 판정을 받은 뒤 복부에 20cm 길이의 칼자국을 내는 전립선 절제술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누군가 로봇 수술을 귀띔했을 때 “로봇이 뱃속에서 무슨 실수를 하면 어쩌냐”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개복수술을 한 사람에게서 소변을 처리하는 게 번거롭고 성기능 장애가 올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국내 유일의 수술 로봇 ‘다빈치(da Vinci) 시스템’에 기꺼이 몸을 맡겼다.

600kg의 다빈치, 소형화가 관건

이렇게 수술 로봇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4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국내에 처음으로 다빈치를 들여와 7월18일 담낭절제 수술을 한 뒤 지금까지 110여 차례의 로봇수술이 이뤄졌다. 여기엔 전립선암이 절반가량 차지하고 직장암, 심방중격결손증(ASD) 같은 특이 수술도 포함돼 있다.

세브란스병원 이우정 로봇수술실장은 “이전의 인공 관절 수술이나 복강경 카메라의 시야 확보에 쓰이던 로봇과는 차원이 다르다.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게 한계이지만 수술 환자의 만족도가 높아 수술 횟수가 늘어나는 추세다”라고 밝혔다.

사실 다빈치도 완전한 의미의 수술로봇은 아니다. 의사는 수술 시간 내내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다. 아직까지 다빈치가 자율능력을 배양하지 못한 탓이다. 수술이 시작되면 다빈치는 3, 4m 떨어진 곳에 있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환자의 몸에 구멍을 뚫은 뒤 카메라가 달린 소형 장치를 부착한 상태로 몸속에 들어간다. 그런 다음 의사는 3차원 입체영상을 보면서 직접 수술을 하는 것처럼 조이스틱으로 손동작을 하면 로봇팔이 수술을 한다. 의사의 동작을 로봇이 그대로 재현하지만 로봇팔이 사람의 손보다 정교해 수술 부위의 신경세포를 건드리지 않아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현재 다빈치의 업그레이드가 이뤄지는 가운데 소형화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다빈치는 환부의 절제에서 봉합까지 수술 전 과정에 걸쳐 의사를 대신한다. 문제는 의사의 손이 신체 내부의 조직을 직접 만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조이스틱을 움직이는 의사가 외부에서 직접 환부를 만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려고 한다. 의사가 직감에 의존하지 않고 촉감센서를 이용해 암세포 조직이나 담석 등을 탐지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전자피부 구실을 할 촉각 센서는 전계발광 방사나 전류밀도의 변화 등을 통해 진짜 손가락의 민감도로 수술로봇의 카메라 장치에 결합해 스크린에 정교한 영성을 제공하게 된다.

또 다른 연구는 수술로봇의 크기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다빈치만 해도 무게가 600kg이 넘어 대형 수술실이 아니라면 설치가 아예 불가능하고 수술 횟수에 따라 교체해야 하는 기구도 있다. 담낭절제 같은 작은 수술에 다빈치를 쓰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미국 퍼듀대학교 기계공학과 윌리엄 페인 같은 연구자는 의사들이 필요할 때 즉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술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작은 수술에도 로봇을 활용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빈치 같은 수술로봇의 가격을 지금의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뜨려 많은 병원이 로봇 수술실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전장에서 응급수술한다?

정말로 로봇수술은 기존의 개복수술보다 의학적인 효용성이 높을까. 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나군호 교수팀은 지난 5월 대한비뇨기과 학술대회에서 ‘수술용 로봇을 이용한 ‘아프로디테 베일(신경막) 보존법’에 대해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로봇수술이 전립선암 수술의 경우 신경세포 손상을 줄이면서도 소변 조절과 음경 발기 등이 빠르게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에서 수술로봇을 사용한 일부 의사는 “경험이 많은 의사가 집도하는 개복수술에 견줘 장점이 대수롭지 않다”거나 “배뇨나 성 기능이 높은 수준으로 향상되지는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로봇수술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개복수술에 견줘 출혈과 고통이 적고 회복이 빠른데다 암 제거에서도 14%가량 높은 능력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신장이식에서 자궁절제술 등에 이르기까지 3만7천여 건의 로봇수술이 이뤄졌다. 2004년보다 50% 이상 늘어난 수치다. 국내에서도 사정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다빈치가 20억원에 가까운 고가의 장비이면서 한 번 수술에 350만원의 소모성 비용이 들어가 수술 비용이 비싸다는 데 있다. 게다가 지난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무보험으로 결정해 수술 환자는 적게는 700만원에서 많게는 1500만원까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오랫동안 미래의 일로 여긴 로봇수술의 꽃은 뭐니뭐니 해도 원격수술에 있다. 미국 텍사스대학의 로봇연구개발그룹을 이끄는 델버트 티저는 ‘트라우마 포드’(Trauma Pod)라는 원격수술 로봇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한마디로 로봇수술실을 전장에 옮기려는 것이다. 국방첨단연구개발국(DARPA)과 에너지부 등의 지원으로 여러 대학이 참여해 수술 침상과 로봇팔 등을 개발하고 있는데 티저 교수팀은 자율적인 로봇팔 부분을 맡았다. 다양한 시스템을 결합해 원거리에서 로봇을 이용해 최대한 빨리 응급수술을 하려는 것이다.

만일 트라우마 포드가 완성되면 응급수술의 획기적인 진전을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따른 원격의료 로봇수술 시나리오는 이렇다.

전장에서 병사가 다치면 동료 병사가 상황을 무선으로 알린다. 곧바로 응급 수술실이 딸린 무인 후송 차량을 출동시켜 부상병을 들것으로 옮기도록 한다. 부상병이 수술 침대에 누우면 신체 스캐닝 장비가 작동돼 부상 부위를 찾아 진단을 내린다. 이어서 원격지의 의료진들이 차량에 있는 로봇을 작동시켜 수술을 한다. 수술이 끝나면 무인 비행기가 출동해 병사를 싣고 병원으로 후송한다. 아직까지 트라우마 포드는 미래의 일이지만 각각의 시스템을 하나씩 갖춰가고 있다.

간호사·간호보조용 로봇도 개발중

이와 함께 수술실 안과 밖에서 로봇이 자리를 차츰 넓혀가고 있다. 수술실에서 집도의를 돕는 간호사들이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외과의사 마이클 트리트는 로봇 간호사 ‘페넬로페’(Penelope)를 개발하고 있다. 이 로봇은 3년 동안 ‘간호사 수업’을 받으면서 음성에 반응하는 방법을 익히고 14개의 수술도구를 정교하게 다룰 정도로 숙련도를 높였다. 병동에서 환자를 돌보는 간호보조 로봇도 개발되고 있다. 이 로봇은 교차감염을 통해 발생하는 황색포도상구균 같은 질병을 예방하면서 변기를 청소하거나 주사를 놓는 등의 임무를 맡을 수도 있다.

국내에서도 의료용 로봇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의사처럼 환자의 맥을 진단하는 '진맥로봇'이 개발되기도 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김종열 부장팀은 지난해 맥진 시스템에 다채널 센서와 압저항 센서를 도입한 3차원 맥상으로 확장시킨 지능형 로봇이다. 이 로봇은 환자의 손목에 압력을 가해 변화하는 맥을 검출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도 고관절 수술용 로봇 ‘아쓰로봇’(Arthrobot)과 복강경 수술 로봇도 개발하고 있다. 머지않아 동네 병원에서도 로봇수술이 이뤄질 수도 있다. 고가의 다빈치를 구경하긴 힘들다 해도 “로봇에게 갈까, 명의를 찾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때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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