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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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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CSI처럼?

등록 2006-08-24 00:00 수정 2020-05-03 04:24

구더기에서 단서를 얻고 미세 시료를 분석하는 최첨단 과학수사… 지문·혈흔 찾아내는 수사로는 지능화된 범죄에 맞설 수 없다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황우석 사태는 온 국민을 줄기세포 전문가로 만든 데 이어 서래마을 냉동고 영아 사건이 과학수사의 진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인 가정에서 발견된 머리카락과 병원에서 얻은 자궁조직 세포의 디옥시리보핵산(DNA) 분석 결과에서 아기와 집주인 부인의 유전자가 일치하는 것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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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 병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시료에 DNA가 들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부인의 신체조직에서 나온 시료라 의문을 제기하기 어렵다. 이런 사건이 20여 년 전에 벌어졌다면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았을 게 틀림없다. 당시엔 DNA를 분석하려면 적어도 1ℓ의 시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노그램 단위의 미세한 시료만 있어도 DNA를 분석할 수 있다.

거대한 생물학 데이터베이스 구축

이처럼 과학적 단서는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제는 공중파 방송에서도 인기 드라마 목록에 오른 <csi:>(이하 CSI)는 고도의 법의학 지식을 보유한 인력들이 최첨단 기계장치를 이용해 사건을 풀어간다. 예컨대 <csi>의 팔방미인 캐서린 윌로스는 현실 세계 다양한 분야의 전문 수사관 여럿을 한데 섞은 듯한 인물이다. 그가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시료를 장비에 걸면 환한 스크린에서 불빛이 반짝거리며 ‘메이블린 립스틱, 컬러 43, 일련번호 A-439’라는 메시지가 뜬다. 그것을 증인에게 제시하며 “피해자의 립스틱이 당신의 셔츠 칼라에 묻어 있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과학수사 요원은 드라마처럼 현장에서 용의자를 심문하지 않는다. 미국 CSI의 신분은 경찰이다. 대부분 이공계 출신으로 사건 현장에서 직접 증거를 수집해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 이에 견줘 국내의 과학수사 요람이라 할 수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연구원 신분이다. 당연히 수사권이 없다. CSI 구실을 하는 기구로는 경찰청의 과학수사센터를 꼽을 수 있는데, <csi>에 나오는 최첨단 기기를 수사에 활용하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미국 CSI도 드라마에서의 장비를 보유한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장에서 최대한 많은 단서를 확보해 과학적 분석 도구로 활용할 뿐이다.
기껏해야 지문이나 혈흔, 범죄 도구 등을 찾아내는 수사로는 지능화된 범죄에 대응하기 어렵다. 갈수록 과학수사는 첨단기기의 의존도가 높아지게 마련이다. 수집된 증거물이 많아지면서 이를 보관하고 추적하려면 컴퓨터 프로그램이 필요하고, DNA 같은 생물학적 증거를 분석하는 시스템은 기본이고 보관 시설도 갖춰야 한다. 미국의 경우 50개 과학수사연구소에서 해마다 의뢰받는 사건이 120만 건 이상이다. 국과수에서는 올해 상반기 동안 3500건의 사건을 처리하면서 1만2천여 건의 실험 분석을 진행했다. 가장 요긴하게 쓰이는 실험기기로는 유전자 분석에 쓰이는 20여 대의 DNA 증폭기를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최근의 첨단 과학수사는 어떻게 이뤄질까. 일단 사건 현장에서 과학수사의 단면을 살펴보도록 하자. 만일 사건이 발생한 지 72시간 이상이 지났다면 주검에 침입한 구더기의 종을 구별해 사망 시각을 추정한다. 구더기의 길이를 측정하고 특정 지역 내 어떤 종이 어떤 비율로 발달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여기에 유전학이 적용되기도 한다. 모든 주검에 있는 상처와 구멍으로 유인된 구더기 성충은 좋은 단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성충이 되기 전에 죽는다면 구더기로 사망 시각을 추론하기 어렵다. 이럴 때 유전적 기술을 동원하면 다양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선 거대한 생물학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서부오스트레일리아대학 법의학센터 연구원 미셸 하비는 주검을 감염시키는 전세계의 파리 종들을 채집해 이들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출하고 염기서열을 분석해 다른 종들과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서 ‘털검정파리 구더기’가 유전학적 추적종 구실을 한다. 이 구더기는 서식지에 따라 선호하는 ‘침입지대’가 다르다. 어느 지역에선 깨끗한 육체를, 또 다른 지역에선 부패된 육체를 좋아한다. 이런 차이를 DNA에 나타난 경미한 변화로 파악해 사망 시각은 물론 이동 경로까지 파악할 수 있다.

우주탐사 기술에서 나온 시료 분석

이런 식으로 주검을 확인한 다음에는 현장에서 물리학적 증거를 찾아야 한다. 현미경이나 적외선 분광 센서 등을 이용해 미세한 물질을 구별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분석 방법은 크기가 아주 작은 시료를 분석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고, 물질의 물리화학적 유사성을 구별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게다가 시료 처리 과정이 복잡해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하고 오염으로 인해 분석 성분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를 보완하는 게 ‘레이저박리유도쌍극플라스마 질량분석법’(LA-ICP-MS)으로 고강도 레이저 펄스를 고체 시료 표면에 조사해 증기화한 다음 수송 기체로 고온 플라스마를 주입해 이온화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범죄 현장에서 수집한 유리 파편이나 직물의 섬유처럼 미세한 현미경적 시료를 PPB(PPM의 1천분의 1) 수준에서 분석할 수 있다. <csi>에서 셔츠에 묻은 립스틱 자국으로 제조업체를 알아낸 것처럼, 미세한 시료만 있어도 물질의 기원과 제조업체, 브렌드 등까지 파악한다. 세계적인 프린터 제조업체 휼렛 패커드의 자회사인 미국 애질런트테크놀로지가 개발한 이 분석법은 1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 이하의 초미세 시료를 전처리 과정 없이 분석할 수 있어서 과학수사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이동형 장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건 현장에서 시료를 첨단기기로 분석할 수는 없을까. 이에 관한 아이디어는 우주탐사 기술에서 나왔다. 미국 항공우주국 고다드 우주비행센터의 물리학자 제이콥 트롬브카는 지구근접 소행성 랑데부 우주선에 이용한 X-선 형광 기술로 휴대용 수사 장치를 만들고 있다. 소행성에서 반사되는 우주 X-선의 파장을 측정하여 지구로 전송해 물질의 화학성분을 확인한 기술을 적용하려는 것이다. 예컨대 사건 현장에서 혈흔과 정액, 미세 물질 등을 X-선 형광으로 읽어 컴퓨터로 전송 처리하면 된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사건 현장을 그대로 보존한 상태에서 원격으로 시료를 분석할 수 있다.
이렇게 현장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뒤에도 첨단기술을 이용한 과학수사는 이어진다. 용의자를 찾는 과정에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검색 엔진이 주요 구실을 한다. 미국 애리조나대학 인공지능연구소 신춘 첸이 개발한 ‘캅링크’(coplink)는 대용량 데이터베이스를 이른 시간에 검색해 용의자의 이름과 신체적 특징, 차량 등 관련 정보를 지능적으로 연결시킨다. 신경망을 내장한 캅링크는 다양한 데이터베이스에서 입력되는 정보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연관성과 패턴 등을 학습한다. 물론 해커들의 공격에 대비해 강력한 보안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법의학과는 정원도 못 채우는데…

이제 유전자 분석 같은 과학수사는 범죄 해결의 필수 과정으로 여겨진다. 과학수사가 적용되지 않으면 용의자를 붙잡고도 법정에 세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사건 현장에서 형사들이 DNA나 지문 등과 같은 기본적인 물적 증거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기도 한다. <csi> 열혈 시청자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미국에선 <csi>의 인기몰이로 법의학 관련 과목 수강자들이 폭증하고 있다지만 우리에겐 남의 일일 뿐이다. 국과수의 법의학과는 정원 26명도 채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과학수사가 첨단기기 의존도가 높은 만큼 전문가들이 범죄 해결에 도전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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