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재계·언론·민간 단체까지 얽혀 과학의 상업화를 조장하는 구조
과학자를 일개 부속품이나 사업가·정치가로 만든 게놈 프로젝트에서 출발
▣ 김동광 과학저술가
아직 검찰 수사가 종료되지 않았지만 내용의 측면에서 황우석 사태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과학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는 매체들에서는 황우석 사태에 대한 분석글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만큼 과학계에 준 충격이 크고 이번 사태를 통해 되새겨보아야 할 문제들이 허다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과학에 대한 비평이나 성찰이 턱없이 부족했고, 육성 이외의 다른 목소리가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황우석 사태를 통해 우리의 과학을 깊이 있게 살펴보려는 노력은 과학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황우석 박사는 왜 연구주제 바꿨을까
그럼에도 황우석 사태가 과학 자체를 성찰하는 데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논쟁 주제가 논문 조작으로 국한되고 원천기술이 있는가, 조작 당사자가 누구인가 등의 말초적인 문제를 둘러싼 시시비비로 전락했을 뿐이다.
사건의 진실 추적에 매몰돼 과학을 생각하는 담론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논쟁 초기에 윤리 문제가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줄기세포 연구라는 과학적 주제를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내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논문 조작 사실이 밝혀진 뒤, 세간의 관심이 조작으로 몰리면서 사실상 과학은 실종되다시피 했다.
그렇다면 황우석 사태에서 우리가 심도 있게 들춰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황우석 사태에서 국내의 생명공학 연구, 나아가 과학 연구의 구조적 문제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황우석 교수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이 지경에까지 치닫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오늘날 생명공학 연구에서 나타나는 여러 특징들이 서로 깊숙이 결부돼 있었다는 점이다. 한 과학자의 연구가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나아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까닭은 무엇이었으며, 수의대 교수인 황우석 박사가 자신의 연구 주제인 동물 복제에 머물지 않고 사람의 배아 줄기세포로까지 주제를 확장한 이유를 새삼 따져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줄기세포 연구가 가장 잘나가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재 생명공학 분야에서 최첨단이자 가장 유망주로 꼽히는 연구 분야 중 하나가 줄기세포 연구다. 다른 한편으로 이 분야는 난자나 배아처럼 사람과 직결된 소재를 다루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생명공학의 산물로 처음 시장에 등장한 유전자 조작식품이 초반의 기대만큼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인체 유해성을 둘러싼 길고 지루한 논쟁이 끝나지 않고 있는데, 하물며 난자와 배아를 연구 재료로 삼는 배아 줄기세포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여기에서 황우석 박사가 배아 줄기세포로 연구 주제를 바꾼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아직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유럽처럼 윤리 문제가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상당 기간 동안 윤리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고, 특히 난자를 수월하게 얻을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난자 공급책을 맡았던 미즈메디 쪽에게 특허 지분의 약 40%가 배당됐다는 사실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이런 구상을 가능하게 한 또 다른 요인은 정부와 민간을 망라한 전방위적 지원 시스템이었다. 최근 속속 밝혀지는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황우석 교수 연구팀이 결코 일개 실험실에 국한되지 않았고 청와대와 정부, 정치, 재계, 언론, 인권 및 민간 단체, 일부 생명 윤리학자, 인터넷상의 지원단체 등을 두루 포괄하는 거대한 산업복합체(industrial complex)를 형성하고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국가 단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정부는 이미 2000년부터 21세기 성장동력의 핵심축으로 생명공학을 설정했고, 최근 수년 동안에는 노골적으로 황우석 박사를 중심에 놓고 맞춤식 생명공학 지원 시스템을 구축했다. 예를 들어 2003년 12월에 통과된 생명윤리기본법이 1년의 유예기간을 둔 것은 황우석 박사팀에게 난자 공급을 비롯해서 윤리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될 부분들을 처리할 수 있는 여유를 준 것이었다. 더구나 이 법을 기반으로 지난해 구성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전 위원장이 논문 조작 사실이 드러나자 대책회의에 참석하고 기자회견문을 손질해준 것은 이러한 구조를 잘 보여주었다.
이처럼 엄청난 일들이 가능했던 것을 황우석 교수 개인의 뛰어난 능력으로 돌린다면 그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일부 개인적 능력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지만, 오히려 황우석으로 표상되는 여러 가지 이미지와 재능이 거대 산업복합체 구상에 적합했기 때문에 전격적으로 채택돼 키워졌다고 보는 편이 옳다.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러면 그 배후가 누구냐?”라고 묻겠지만, 이 복합체는 몇몇 개인이 아닌 시스템 자체가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태에 여러 나라가 연루되듯이 그 시스템은 국가 단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처럼 논문 사기라는 표피적 사건 너머를 꿰뚫어보면 엄청난 사태의 뿌리에 거대 산업으로 변형된 생명공학 연구의 속성이 닿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제는 이미 역사가 되어버렸지만 지난 1990년 미국은 사람 유전자의 염기 분석을 모두 해독한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국제 컨소시엄의 형식으로 출범시켰다. 우리말로는 인간 유전체 사업으로 해석되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2001년에 완성된 이 거대 프로젝트는 오늘날 생명공학을 비롯한 과학 연구의 성격을 크게 바꿔놓았다. 이 연구계획은 겉으로는 유전병 치료 같은 거창한 수사(修辭)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정보기술 이후 세계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이 선택한 차세대 기술인 생명공학의 국제 표준을 선점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시도였다.
당시 버나드 데이비스와 같은 미국의 저명한 생물학자들은 생물학의 거대과학화에 대해서 “그 필연적 귀결인 과학의 정치화와 상업화, 그리고 과학자들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일꾼처럼 달라붙어 일개 부품처럼 전락할” 우려를 제기하며 반대했다. 또 하버드대학의 생물학자 리처드 르원틴도 <dna>이라는 책에서 게놈 프로젝트를 “대중들을 희생시켜서 산업적 이익을 얻는 거대 사업”이라고 비판했다.
안타깝게도 이번 사태는 10여년 전 게놈 프로젝트 출범 당시 많은 과학자들이 우려했던 사태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오늘날 무엇을 어떻게 연구하는지에 대한 주도권은 결코 과학자 개인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자연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과학자가 되는 이야기는 위인전에나 등장할 뿐 현실에서는 대학이든 연구소든 팀에 속해서 주어지는 일을 해야 한다. 과학자가 실험실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원론일 뿐이다. 연구비를 얻으려면 많은 시간을 연구계획서 작성이나 로비에 할애해야 하고, 과학자로 성공하려면 과학자-사업가나 과학자-정치가의 덕목이 빠질 수 없다.
다른 과학 분야들도 벤치마킹하는 사태
생명공학에 대한 우리의 성찰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인 ‘국가 간 경쟁’은 오늘날 생명공학의 정치화와 상업화가 개별 국가 차원을 넘어서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배아 줄기세포의 원천기술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매달린 것도 “이러는 동안 경쟁국들이 약진한다”는 논리였다. 우리가 과학의 상업화와 정치화에 저항하기 힘든 것은 우리의 과학이 이 거대 복합체 속에 옴짝할 수 없이 구조적으로 포박돼 있기 때문이다.
생명공학의 위세와 거기에 투여되는 엄청난 연구비를 부러워하는 다른 과학 분야들도 생명공학을 벤치마킹해서 자신들의 상업적 가치를 부각시키려고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생명공학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머지않아 과학 전체의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윤리를 짓밟고 논문을 조작해서 그를 지지해준 숱한 사람들을 우롱한 황우석 교수와 공동연구자들의 죄는 매우 중하다. 그러나 최소한 이런 사태가 재현되지 않게 하려면 그 뒤에 숨어 있는 거대 산업복합체의 구조적 요인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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