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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황우석, ‘맵시’ 에 물어봐!

등록 2005-06-10 00:00 수정 2020-05-03 04:24

태아 간 조직에서 얻은 성체 줄기세포로 재생의학에 도전하는 정형민 교수
3차원 배양 시스템 구상하며‘맞춤형 치료’ 가능성 열어

▣ 글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요즘 포천중문의대 정형민 교수(분자발생학·차바이오텍 대표이사)는 전자현미경을 통해 놀라운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맵시’(MAPC·Multipotent Adult Progenitor Cell)라 불리는 만능성인전구세포다. 전자현미경에 드러난 맵시는 원형에 가까운 배아 줄기세포와 달리 길쭉한 타원형에 가깝다. 물론 복제를 통해 얻은 줄기세포도 아니다. 정 교수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은 맵시가 태아의 간 조직에서 얻은 성체 줄기세포이면서도 배아 줄기세포에 버금가는 놀라운 분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년여 동안 맵시를 통해 정 교수의 재생의학에 대한 믿음을 더욱 키울 수 있었다.

동물실험 결과 당뇨병 치료 가능성 확인

흔히 배아에서 얻은 줄기세포만이 분화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아주 작은 점에 지나지 않는 배아 줄기세포는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하기에 재생의학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게 한다. 우리가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인간 배아복제 줄기세포에 열광하는 까닭도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미세한 세포 덩어리가 난치병 치료의 열쇠를 제공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더구나 환자 자신의 세포 유전물질을 이용해 척수를 복구할 신경세포나 당뇨병을 치료하기 위한 이자섬 등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치료용 복제는 생명윤리의 문제를 피할 수 없고 여성의 난자를 이용하는 탓에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연구자들이 성체 줄기세포를 통해 윤리적 문제를 극복하려고 한다. 애당초 지난 2002년 미국 미네소타대학 줄기세포연구센터 캐서린 버페이 교수팀은 쥐의 골수에서 얻은 성체 줄기세포로 만능 분화 가능성을 밝혀냈다. 환자가 자신의 몸 속에 들어 있는 성체 줄기세포를 이용해 병을 고칠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버페이 교수팀은 이후 맵시를 다시 만들지 못해 효용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맵시를 만든 정형민 교수는 성체 줄기세포의 놀라운 가능성을 예감하고 있다. “아직은 동물실험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단계지만 뜻밖의 치료 효과가 나와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차바이오텍 연구진은 맵시에서 분화시킨 췌장세포를 개에 적용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미 누드 마우스 실험에서 의미 있는 치료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마우스의 혈당치가 450에 이르면 5일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데 췌장세포를 주입받은 마우스가 정상적으로 자랐다. 불과 하루 만에 혈당치가 100 아래로 떨어진 때문이다. 이에 고무된 정 교수는 전체 100여명에 이르는 연구 인력의 3분의 1을 맵시 관련 연구에 매달리도록 했다. 만일 개 실험에서 맵시의 치료 효과가 그대로 나타나면 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 실험도 추진할 예정이다.

면역거부 유전자 없어 맞춤 치료 가능

최근 줄기세포 연구는 ‘맞춤 치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환자의 체세포 복제를 통한 배아 줄기세포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맞춤 치료의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치료용 복제에서도 면역거부 반응이 나타날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힘들다. 환자의 유전물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모든 세포 안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미토콘드리아가 모계를 타고 미량씩 유전되는 탓이다. 또 다른 맞춤 치료는 거대한 인간 배아 줄기세포 은행을 통해 환자에 맞는 것을 찾아내는 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 마치 골수은행에서 골수 유전자 6개가 일치하는 것을 가려내는 방식인데 오랜 기간 준비해야 가능한 일이다.

만일 모든 환자에게 적용 가능한 ‘유니버설 줄기세포’를 만든다면 맞춤 치료가 손쉽게 이뤄진다. 유전자 조작으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이식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 전부 혹은 일부를 없앤 뒤 세포이식에 이용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맵시가 특별한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맵시는 만능 분화를 증명하는 soz-2·nanog·oct-4 등의 유전자를 지녀 내·외·중배엽 세포를 모두 만들어내면서도 초급성이나 급성 면역거부 반응에 관련된 HLA-2 유전자가 있지 않아 유니버설 줄기세포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으로선 맵시의 치료 효과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지난 2년 동안 6개의 태아 간 조직으로 만든 4개의 맵시를 얻었다. 배아 줄기세포의 장점을 고루 갖추고 있으면서 분화를 조절하기는 쉽다.” 이런 맵시의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배아 줄기세포를 대신할 유력한 대안으로 꼽을 만하다. 하지만 정 교수는 조심스럽다. 일반적인 성체 줄기세포와 달리 9∼10주가량 자란 태아의 조직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윤리적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탓이다. 게다가 실험실에서 확인한 맵시의 효능을 생체 내에서 입증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일단 맵시가 난치병 치료제로 쓰이려면 줄기세포에 관련된 일반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차바이오텍 연구원들이 하는 일은 매우 단조로워 보인다. 전자현미경에서 눈을 떼지 않고 줄기세포를 분리해 적절히 분화시키면 유세포분석기(FACS 시스템)로 분석하는 과정을 거치는 식이다. 그런 과정을 거친 줄기세포가 있는 세포배양기만 해도 49개나 있다. 무균 사육시설도 마련해 랫 200여 마리와 마우스 4천여 마리를 키우면서 신경세포를 만들고 혈관을 재생하며 연골과 뼈·치아를 형성하는 등의 줄기세포 효능을 확인하고 있다. 그만큼 줄기세포의 기초 연구를 광범위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나노입자 이용한 배양 시스템 성공할까

물론 그것만으로 줄기세포의 가능성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요즘 정 교수가 관심을 기울이는 사안은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시스템을 3차원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줄기세포가 주입될 인체가 3차원적인데 배양기가 2차원에 머물러 있다면 인체 적합성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아이디어 차원이지만 3차원적으로 배양할 시스템을 구상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해 나노 입자에 분화 유도물질을 넣어서 줄기세포 구슬을 만들어 생체와 닮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체 친화적인 물질을 찾아서 나노와 바이오가 결합되도록 해야 한다. 이같은 줄기세포의 실용화 연구를 위해 정 교수는 의학과 생물학·공학 등 여러 학문의 연계를 모색하고 있다.

아무리 조지 부시 대통령이 연방정부 예산을 줄기세포 연구에 지원하지 않아도 미국은 줄기세포 연구의 중심지다. 기업과 주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지원해 한 대학 연구소의 예산이 연간 100억원을 웃돌 정도다. 차바이오텍은 미국의 줄기세포 연구 정보를 얻고 치료 거점으로 삼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시에 있는 500병실 규모의 할리우드 장로병원을 인수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인간 배아 복제 줄기세포는 만능 세포라는 게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 될 수 있다. 분화를 조절하더라도 줄기세포를 어디에 얼마나 주입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밝혀야 한다. 일단 맵시의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연구를 제대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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