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공학으로 필수 영양소 함량 높인 ‘황금미’ 개발…빈국에 만연한 기아와 질병에 효과 기대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지난해 말 1년 동안 진행한 쌀 협상이 마무리됐다. 올해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관세화 유예를 연장하는 대신 의무 수입 물량을 늘리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올해 22만5575t(1990년대 소비량의 4.4%)인 수입 물량이 10년 뒤에는 40만8700t으로 늘어난다. 이미 쌀이 중국이나 미국 등지에서 들어왔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구경하기 힘들었다. 정부가 수입 쌀을 시장에서 격리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는 6월부터는 소비자들이 할인매장이나 양곡센터 등지에서 수입 쌀을 만나게 된다. 당장 소비자들이 만날 수입 쌀은 전체 소비량의 1%도 되지 않는 2만3천여t에 지나지 않는다.
당뇨병에 효과 있는 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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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마저 무너지면 식량주권을 잃는다는 목소리도 시장의 흐름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다. 다국적 곡물 메이저들의 입김에 쌀값이 들썩일 날도 멀지 않았다. 현재 쌀을 수출하는 나라 중에서 상위 5개국의 물량이 전체의 75%를 웃돌고 있다. 그만큼 곡물 메이저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는 시장 상황이다. 식생활 변화로 인스턴트 식품과 대체식품의 소비가 늘어나면서 쌀 소비가 줄어들었다지만 쌀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실제로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82kg으로 1990년(119.6kg)에 비해 40kg이나 줄었다. 하지만 쌀 소비량 감소세가 계속 이어지리라 단언하기는 힘들다. 생명공학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쌀이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인도에서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쌀이 시장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유전공학으로 비타민A의 함량을 크게 높인 쌀이다. 이 쌀은 비타민A가 벼를 노랗게 만들어서 ‘황금쌀’(Golden Rice)이라 불린다. 그동안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이 급속히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주는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몬샌토사 같은 생명공학 기업만 살찌게 할 뿐이다. 제초제 내성 작물 등으로 재배를 손쉽게 하고, 종자에 대한 특허권을 내세워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황금쌀은 비타민A 결핍으로 각종 감염이나 야맹증, 빈혈 등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황금쌀 연구자들은 개발 이익을 챙기지 않고 특허권을 무상으로 넘기고 있다.
이미 많은 농작물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단백질이나 탄수화물 같은 영양소를 더 많이 함유하도록 품종을 개량했다. 생명공학 기술은 식물에 함유된 영양소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예컨대 맛에 아무런 차이도 가져오지 않으면서 비타민이나 단백질 비율을 놓이고 당분의 비율은 줄이는 유전자를 식물에 넣는 식이다. 쌀만 해도 ‘육종’이라는 생명공학 기술을 통해 다수확 품종으로 거듭났다. 식물은 질소를 많이 흡수하면 잘 자라고 열매도 많이 맺는 대신 키가 너무 자라 바람에 쓰러지기 쉽다. 국내에서 1971년에 나온 ‘통일벼’는 ‘왜소 유전자’를 지닌 벼를 잘 자라면서도 바람에 잘 견디도록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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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황금쌀은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스위스연방기술연구소의 잉코 포트리쿠스 박사팀이 제안했다. 쌀의 일반 영양성분은 백미의 경우 가식부 100g당 당질이 76.2g이고 단백질이 6.5g, 지방 1.1g, 조섬유 0.2g 등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칼슘·인·철 등의 미량원소가 있는데 비타민A와 철분 함량은 너무 낮다. 연구진은 비타민A의 전구체인 베타카로틴과 사람이 흡수하기 쉬운 형태의 철분을 함유하는 쌀은 1990년대 초반부터 연구했다. 베타카로틴은 수선화에 기생하는 박테리아를 이용해 유전자를 복제하고, 피테이즈라는 효소의 유전자를 통해 유용한 철분의 함량을 높였다.
황금쌀 개발 과정에 상용화된 벼의 유전자 지도가 쓰이기도 한다. 이를 통해 10여년에 걸쳐 비타민A와 철분을 주입한 황금쌀에 다른 성분을 1, 2년 내에 첨가하게 됐다. 이미 황금쌀에 단백질과 아미노산을 강화한 황금쌀이 개발되기도 했다. 심지어 당뇨병 환자들이 쌀을 주식으로 삼으면 식사 뒤에 높아지는 혈당을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연구진은 식사 뒤에 혈당을 내려주는 인슐린이 나오지 않는 ‘2형 단백질’ 환자를 위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GLP-1’ 호르몬을 첨가한 벼를 만들었다. 보통 쌀에 포함된 단백질의 10~15%가 ‘GLP-1’ 호르몬인데, 유전자 변환 기술로 함유율을 3배 이상 높였다.
환경단체들의 거센 반발 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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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황금쌀은 다양한 성분을 첨가해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6천여년 동안 경작한 쌀의 유전자를 개선해 인체 건강에 필수적인 비타민과 무기물이 강화된 ‘건강식품’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생산된 벼의 반을 소비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황금쌀로 밥을 짓기까지 풀어야 할 숙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동안 연구자들은 통통하고 짧은 품종을 중심으로 황금쌀을 개발했다. 주로 온대 기후에서 개발된 쌀이다. 문제는 황금쌀이 필요한 사람들이 주로 열대 기후에 속하는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인도 사람들이 황금쌀을 먹으려면 길쭉한 인도형 쌀에 유전자를 옮기는 이종교배에 성공해야 한다.
설령 황금쌀 생산에 필요한 기술적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섭취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황금쌀이 겉보기엔 일반 벼와 다르지 않더라도 유전자 조작을 거친 것이라서 환경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들은 황금쌀에 대해 신종 변이체 탄생의 위험을 지녔다며 불안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런 탓에 황금쌀에 관심을 보이던 나라들이 경작을 포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타이는 황금쌀 재배를 하지 않겠다고 국제사회에 밝혔다. 유럽 등지에서 유전자 조작 벼를 재배하는 지역의 농산품 수입을 꺼리는 탓이다. 물론 인도를 비롯해 중국과 중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황금쌀 재배를 추진하고 있다.
언젠가 국내에도 황금쌀이 특유의 효과를 내세워 수입 쌀 대열에 합류할 수도 있다. 요즘 시판되는 쌀이 제값에 걸맞은 맛과 품질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국산 쌀의 가격이 품질이 아닌 산지와 브랜드 이미지에 따라 결정되는 탓에 품질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틈새로 엄격한 품질관리로 밥맛을 좋게 하고 건강에 이로운 성분으로 질병을 예방하는 황금쌀이 들어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일단 황금쌀은 빈민국에서 굶주림을 덜어주고, 그로 인한 질병을 막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런 다음 비만 해소 성분을 넣거나 질병 치유력을 보강해 우리나라 식탁을 비롯해 세계 각국으로 시장을 넓힐 것으로 보인다. 지금 기능성 쌀의 시대를 맞아 의료용 벼가 쑥쑥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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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마솥 밥맛의 비밀 |
쌀은 지구촌 인구의 절반가량인 30억명의 주곡이다. 세계적으로 10억명이 농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애당초 쌀은 밥을 지어먹지 않았다고 한다. 초기 농경시대 주거 유적에서 발견되는 것을 보면 곡물을 이용한 최초의 조리 형태는 볶은 쌀 형태에 가까웠다. 그 뒤 죽이나 찐 밥으로 상에 올랐다고 한다. 그런 다음에 서기 4∼5세기 무렵부터 곡물을 끓여 짓는 밥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벼의 생산성을 높이고 메탄가스 발생을 줄이는 경작 방법에 대한 관심과 함께 쌀을 이용해 밥맛을 높이려는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가마솥 밥’을 최고의 밥맛으로 여긴다. 가마솥에서 퍼올려 모락모락 김을 내며 입맛을 돋우던 밥상. 그런 상을 한번이라도 받은 사람이 가마솥 밥맛을 잊기 어려울 것이다. 가마솥 밥은 추억으로 맛을 내는 게 아니다. 거기엔 특별한 맛을 내는 비결이 있었다. 아궁이에서 장작으로 불을 때 강력한 화력으로 가마솥을 입체적으로 가열해 쌀이 층지지 않고 골고루 익었던 것이다. 한때 일본 여행객들이 줄줄이 들고 오던 ‘코끼리 밥솥’이 제아무리 밥 짓는 로봇 구실을 해도 우리 입맛에 맞는 밥을 만드는 가마솥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요즘 전기밥솥의 원조국가라 할 수 있는 일본에서 한국산 밥솥이 상종가를 기록하고 있다. 그 비결은 가마솥을 재현해 밥맛을 좋게 하는 데 있다. ‘전자유도가열’(IH·Induction Heating) 방식을 이용해 가마솥 밥맛을 내는 것이다. 기존 전기밥솥은 전기난로 구실을 하는 ‘열판 히터’가 달궈지면서 밥솥 아랫부분을 가열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IH 전기밥솥은 장작불처럼 밥솥 전체를 입체적으로 달군다. 밥솥 주위에 구리 코일을 감아 자기장을 변화시키면 유도전류가 흐른다. 이 유도전류가 밥솥에 흐르면 저항이 생겨 밥솥 전체가 뜨거워진다.
IH 방식을 이용한 전기밥솥은 1400W의 강한 화력으로 115~120도의 고온에 1.7 기압을 빠르게 유도한다. 신속한 고온·고압은 쌀 조직의 붕괴를 막고 비등 유지 시간을 충분히 확보한다. 이로 인해 아밀라아제 활성을 높여 당분이 높아지게 된다. 게다가 최근에 나온 IH 전기밥솥은 식물성 섬유질을 비롯한 각종 효소, 비타민, 미네랄 등의 영양소가 듬뿍 들어 있는 현미 조리 기능도 지녔다. 버튼만 누르면 적정한 수분과 온도에 산소를 공급해 현미를 발아시킨 발아현미밥을 내놓는 것이다. 밥맛을 과학이 결정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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