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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하지 못한 ‘순결교육’

등록 2000-12-07 00:00 수정 2020-05-03 04:21

학교 성교육 현장의 한국청소년순결운동본부, 통일교 배후 논란

“성적 호기심은 이젠 옛말”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아이들과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기 전까지 순결을 유지하라”는 순결강사가 만나면?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김경천 의원은 학교 성교육의 상당부분이 민간단체인 한국청소년순결운동본부의 순결교육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인천시와 대구시 등 일부 지역에서는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예방교육마저 순결교육으로 채워진 것으로 드러났다. 순결운동본부는 98년부터 초·중·고교 학생들에게 순결강의를 한 뒤 다짐선서를 하게 하고 순결사탕과 은장도 그림이 그려진 순결책받침을 나눠줬다. 최근에는 일부 학부모들의 반발에 따라 다짐선서를 없애고 강의로만 진행하고 있다. 올해에는 563개교 21만1900여명의 학생들에게 순결강의를 했고, 267개교 2만5100여명의 학부모들과 174명의 학교장, 2900명가량의 교사들을 상대로 순결가치관 세미나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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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이 단체에 대해 “특정종교의 교리전파를 주된 목적으로 설립·운영되고 있는 것인지 여부가 불분명하다”며 비영리단체 등록을 반려했다. 구체적인 이유는 “순결운동본부의 순결교육은 통일교에서 추진하는 ‘순결한 가정, 건전한 사회를 위한 참가정운동, 순결운동’과 일치하고, 본부 운영 예산의 89.5%를 일본청소년순결운동본부에서 지원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순결운동본부의 이재호 홍보실장은 “단체 관계자가 교회와 관련이 있긴 하지만 종교적인 목적과는 무관하게 사회운동 차원에서 하는 것”이라며 거듭 “통일교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는 “단체 활동가들에게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 기독교도 믿을 수 있고 불교도 믿을 수 있다. 그동안 학교 성교육의 일부를 아무런 대가없이 담당해온 우리를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아 달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 실장의 설명과는 달리 통일교의 기관지는 순결운동을 산하 청년연합의 활동성과로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심지어 각 시도 교육청이 협조공문을 보내준 것을 두고 “천사장 입장에 있는 정부가 가인편 2세들의 사탄세계 혈통단절에 적극 협조한 조건이 되었다는 점에서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섭리적 승리”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순결운동본부는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을 통해 사단법인 등록을 했고,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5월에도 이 단체에서 주최하는 교사 세미나를 소개하는 공문을 내려보내기도 했다.

지난 10월 중순 교육부는 “강사의 질이나 교육적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민간단체가 학교 성교육을 실시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달라”는 내용의 협조요청서를 각급 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일부 학교에서는 여전히 성교육을 순결강사들이 맡고 있다. 한 교사는 순결교육 논란을 두고 “교육청은 협조공문을 보내고 교육부는 자제공문을 보내는 것만 봐도 그 동안 교육당국이 성교육에 대해서 얼마나 계획도 철학도 없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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