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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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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결이라는 이름의 차별

등록 2004-06-25 00:00 수정 2020-05-03 04:23

왜 여성에게만 청결이 강요되는가… 화장실 비데 등의 기술에 숨어 있는 차별의 이데올로기

김동광/ 과학저술가 · 고려대 강사

날씨가 더워지면서 본격적인 노출의 계절이 돌아왔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여성은 계절 특수를 노리는 온갖 업체들의 표적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노출은 주로 여성에게 해당하는 행사이며, 거리와 해변 모두에서 노출을 둘러싼 뜨거운 경쟁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출의 증가가 성과 연관된 숱한 범죄의 증가를 수반한다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여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여성에게 차별적인 계절인 것 같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광고들은 계절 특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여성을 집중 공략의 대상으로 삼는다. “체중 감량, 당신도 비키니를 입을 수 있다” “노출을 대비해서 체형을 관리하세요” “겨드랑이 땀냄새를 없앤다” “체모 영구 제거” “뜨거운 햇빛을 피하는 선블록” “예쁘게 태우세요, 선탠”. 이런 문구들로 뒤덮인 거리를 볼라치면 마치 사회 전체가 여성이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노출하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온통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과학기술 역시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충실히 복무한다. 식이요법에는 항상 “과학적”이라는 보증이 따라붙고, 햇빛을 차단하는 화장품들은 저마다 나노와 같은 최첨단기술이 사용되었음을 강조한다.

땀냄새를 기피하는 사회

사실 이런 일들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과학기술이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정도가 날로 높아가고 있고, 그처럼 높은 규정력 때문에 상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어떻게든 첨단기술을 자사 제품에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홍보하는 과정에서도 과학의 권위를 동원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한 업체가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다”라는 문구로 큰 성공을 거두었듯이, 오늘날 과학을 어떻게 동원하느냐는 성공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다만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과학기술의 동원, 즉 적용 방식이 모두 고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특히 남성과 여성에 대해서 과학기술이 적용되고 발전하는 방식이 같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려 한다.

우리는 흔히 “여자에게 청결은 기본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해묵은 고정관념이며, 여성은 자라는 과정에서 중요한 ‘성 역할’(sex role)의 하나로 청결을 몸에 익히고 스스로 행한다. 어머니들은 지저분한 아들의 방에는 관대하면서도 딸에게는 높은 기준을 적용한다. 그러다 보니 청결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강조되는 허위의식, 즉 청결 이데올로기로 발전했다. 오래 전 어떤 광고에서 “여성은 청결한 것만으로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를 본 기억이 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불결한 여성은 추하다”이다.

물론 청결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기준은 소득이 증가하면서 꾸준히 상승해왔다. 가령 얼마 전부턴가 여름철에 공공장소에서 땀냄새를 풍기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로 간주되고 있다. 이것은 에어컨디셔너가 보편화되어 도시 생활에서 땀을 많이 흘리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면서 생겨난 또 하나의 청결 기준이다. 심훈의 소설에서는 땀냄새를 풍기는 남자 주인공에게서 건강미를 느끼는 여성 주인공의 독백이 등장하고, 60~70년대까지만 해도 여름에 땀을 흘리고 땀냄새를 풍기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었지만 90년대 이후 땀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것은 죄악은 아니더라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로 간주된다. 이것이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는 이유는 화이트칼라가 아닌 육체 노동자의 경우 여름에 땀냄새를 풍기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일임에도, 특정 계층의 청결 수준이 일방적으로 강요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방영된 땀냄새가 나지 않은 속내의 광고는 땀냄새 풍기는 사람을 기피하는 모습을 극단적으로 묘사했다. 더구나 여성에게는 남성보다 높은 청결 기준이 강요된다. 가령 여성이 겨드랑이 냄새를 풍기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요즈음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잘생긴 남성 앞에서 자랑스럽게 겨드랑이를 노출시키는 여성의 광고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데 앞장선다. 따라서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여성에게 청결 이데올로기는 두 겹의 짐을 지우는 셈이 된다.

노출과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얼마 전 크게 유행한 화장실의 비데 역시 비슷한 경향을 나타냈다. 비데는 사회적인 청결의 기준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청결기술의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굳이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도 뒷물은 오랜 전통이었다. 뒷물은 목욕탕이 없던 시절에 남성이든 여성이든 한 바가지의 물만 있으면 혼자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그 뒤 집안에 목욕탕이 생겨 계절을 가리지 않고 몸을 씻을 수 있게 되면서 그 용어조차 잊혀졌다.

청결 기준에 맞추려 허둥대며…

그런데 화장실이 고급화되는 과정에서 뒷물이 비데로 모습을 바꾸어 다시 등장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성적 편향(bias)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것은 무척 흥미로운 현상이다. 전통적인 뒷물에는 없었는데, 뒷물이 청결기술인 비데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성적 편향이 덧붙여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겠지만, 국내 대표적인 업체의 텔레비전 광고는 이 편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비데를 하지 않은 한 ‘여성’이 의자에 앉으려 하자 의자들이 도망친다. 그리고 비데를 하고 다시 온 여성의 엉덩이에는 의자들이 다투어 몰려든다. 앞에서 소개한 내의 광고에서 남자가 겨드랑이 냄새를 풍기는 여성을 피하는 모습과 동일하다. 왜 이런 광고들은 여성을 표적으로 삼는 것일까?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 문제일 뿐 이런 기술 자체는 여성에 대해서 어떤 편향도 갖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조금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얼마 전 내가 하는 ‘과학기술과 사회’라는 교양수업을 듣는 한 학생이 ‘화장실 기술의 성적 편향’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다. 얼마 전에 보도된 가짜로 물 내려가는 소리를 내는 장치에 대한 내용이었다. 유독 여자 화장실을 위해 이런 장치가 개발된 것은 여성들이 소변 보는 소리를 감추어야 한다는 편견을 강화하고 제도화한다는 것이다. 편견이 기계장치 속에 기입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청결은 좋은 것이다”라는 생각이 고정되어 있다. 물론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의 감염을 막는다는 점에서 청결의 수준은 그 사회의 공중보건의 중요한 지표이다. 그러나 문제는 기준과 그 부과 대상이다. 요즈음 우리는 누가 세웠는지도 모르는 높은 청결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많은 비용을 치르고 허둥대며 살아간다. 땀냄새를 풍기지 않기 위해 바쁜 아침 시간에도 샤워를 하거나 최소한 매일 머리를 감는다. 그리고 깨끗한 셔츠를 입기 위해 세탁과 다림질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세탁과 다림질은 대개 여성들의 몫이거나 아니면 비싼 비용으로 세탁소를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여성에게 청결은 기본입니다”라는 고정관념이 더해진다. 비데는 청결에 대한 요구를 여성의 몸 깊은 곳까지 확장하는 장치인 셈이다. 과연 청결 이데올로기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기준의 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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