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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의 미래는 있나

등록 2004-05-13 00:00 수정 2020-05-03 04:23

유기농 판별 기준 · 유익함 등은 과학적 규명 부족… 값싼 육류 포기하면 충분한 식량 공급 가능

오철우 기자/ 한겨레 사회부 cheolwoo@hani.co.kr

유기농업은 ‘제2의 녹색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까. 합성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산물이 요즘 ‘웰빙’ 바람을 타고 우리 식탁에서 몸값을 더욱 높이고 있다. 유기농의 몸값 높이기는 요즘 국내의 일만이 아니다. 일찍부터 유기농 바람을 경험하고 있는 유럽과 북미는 이미 세계 유기농 식품·음료 판매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윤을 위해 유기농을 택하는 기업농도 늘고 있다.

유기농 판별법 개발에 나서

최근 영국의 저명한 과학저널 는 유기농업의 가능성을 따져보는 ‘유기농업이 농업의 미래인가’라는 특집을 실었다. 세계에 부는 유기농의 바람에 가린 개념의 혼란, 그리고 유기농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과학의 측면에서 조목조목 짚어 눈길을 끈다. 는 “유기농의 가장 큰 장애는 거름과 콩과식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질소의 총량이 오늘날 농업에서 소비되는 질소량 8500만t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지금의 값싼 육식 생활을 포기해야만 유기농은 인류에 충분한 식량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 조사한 바를 보면 유기농의 생산물은 여전히 ‘틈새시장’ 규모에 머물지만 세계 판매량은 지난 5년 동안 해마다 20%씩 늘어났다. 이런 추세에서 소비·생산지의 분화 현상도 뚜렷한데, 북미와 유럽은 세계 유기농 식품·음료 판매량의 97%를 차지하며 유기농 생산지의 거의 절반은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남미에 집중돼 있다.

유기농 생산과 소비는 늘고 있지만 아직 무엇을 유기농법과 유기농산물로 볼지에 대한 ‘표준’은 나라마다 다르다고 는 전했다. 예컨대 질산나트륨의 자연광물을 비료로 쓰는 아메리카 농민은 농산물을 유럽 시장에 유기농의 이름으로 내다팔 수 없다. 유럽에선 이 광물 비료가 자연산이긴 하지만 유럽의 유기농 표준으로 볼 때 토양에 매우 쉽게 녹아서 합성 비료와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젖소가 얼마 동안 유기사료를 먹었느냐에 따라 우유를 유기축산물로 인정하는 기준도 유럽과 미국에서 판이하다.

이 때문에 비싼 유기농으로 위장하는 가짜 유기농들도 시장에 자주 출현해, 일부 연구자들은 진짜 유기농을 선별해내는 분석법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합성 비료를 대신해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하는 식물들에 훨씬 더 많이 축적되는 질소의 무거운 동위원소 ‘질소15’의 양을 재어 유기농을 판별하기도 하며, 기존농과 유기농의 생산물 사이에 나타나는 칼슘·보론·마그네슘·셀레늄 등 미량 원소량의 차이에 바탕을 둔 판별법도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시장에 나온 농산물을 측정할 뿐 농민들이 얼마나 유기농법에 충실했는지를 보여주진 못한다.

는 유기농이 무조건 우리 몸에 좋다는 지나친 믿음은 유보했다. 거의 모든 유기농 소비자는 유기농에 살충·제초제 등 농약이 없고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기 때문에 우리 몸에 절대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관련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유기농 자체가 이런 이점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은 아직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는 전했다.

먼저 흔히 유기농과 기존농의 농산물을 비교 분석할 때 그 방법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는 지적했다. 기존 농법은 생산량이 높은 작물을 쓰는 데 비해 유기농은 질병에 저항성이 큰 작물을 선호해, 서로 다른 작물을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 여러 연구가 ‘어떤 유기농에 비타민과 철분이 더 많다’고 밝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 식생활에서 필요한 비타민과 철분을 충분히 섭취해 이런 결과는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2차 대사산물’이다. 2차 대사산물은 작물이 미생물이나 동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거나 특정한 서식지를 확보하는 먹이경쟁에 처할 때 만들어내는 물질이다. 예컨대 과일이나 채소들이 벌레를 쫓아내기 위해 내뿜는 2차 대사산물은 항암 성분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체로 유기농은 기존 농산물에 비해 10~50% 더 많은 2차 대사산물을 지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는 전했다. 이는 기존 농산물에 쓰는 비료가 지나치게 많은 영양분을 공급하고 작물은 많은 에너지를 병충해 저항보다는 성장에 쓰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차 대사산물의 기능에 대해선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현재 대략 1만여 종류의 대사산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여러 대사산물들은 적당한 양은 항암 작용을 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식으로 아직 그 기능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기농의 친환경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를 규명하는 데도 아직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는 분석했다. 현재 유기농은 대체로 친환경 농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무엇보다 합성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은 여러 미생물·벌레·동물들과 더불어 살아 생물 다양성을 지키는 데 큰 구실을 하고 있다. 유기농은 에너지도 적게 쓴다. 미국 워싱턴주립대 연구팀의 조사를 보면, 유기농과 기존농으로 사과를 재배하는 데 드는 노동력과 전기·비료·살충제·제초제 등의 에너지 총 소비량을 비교하면 유기농이 7%가량 더 높은 에너지 효율성을 지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합성 비료·사료에 쓰는 포장지 쓰레기도 덜 만들어낸다.

그러나 는 강과 바다로 흘러드는 빗물과 공기에 대해서는 유기농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아직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일부 연구결과는 물고기를 질식시키는 질산염과 인을 강·바다에 흘러들게 하는 빗물의 영향이 유기농에선 줄어든다고 보고했으나, 그 효과는 과학 분야에서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다. 공기에 대한 영향도 유기농에선 비료와 농약을 제조·수송하는 데 드는 화석 연료의 사용이 없어져 이산화탄소를 적게 생산하는 것으로 보고됐지만, 산성비의 원인 가운데 하나인 일산화질소를 유기농이 합성 비료를 쓰는 토양에 비해 과연 실제로 얼마나 덜 생산하는지는 더 연구해야 한다고 는 전했다.

사료생산에 드는 질소를 줄인다면…

그렇다면 유기농법은 과연 미래에 기존농법을 대체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현재 인류의 먹을거리 생산에 드는 질소 총량이 유기농에서도 충분히 확보될 수 있을 것인가가 가장 큰 관심거리다. 스위스 유기농연구소가 21년간 조사한 바를 보면 유기농지는 기존 농지보다 평균 20%가량 더 적게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미국 연구진의 조사에선 옥수수·대두의 생산량이 두 농법에서 대체로 비슷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리긴 어렵다는 것이다.

유기농법이 장기적으로 성공하려면 식물의 생장에 절대 필요한 질소를 풍부하게 제공하는 합성 비료를 대신해 공기 중의 질소를 땅 속에 고정하는 질소 고정 식물들을 정기적으로 심어 땅힘을 길러야만 한다. 그러나 문제는 클로버와 같은 대표적 질소 고정 식물들은 사람이 먹지 않는 것이어서 유기농지의 토양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유기농이 농업의 미래가 되는 데 가장 큰 장애는 질소 고정 식물들과 거름을 통해 농민이 얻을 수 있는 질소 총량이 현재 세계 농업에서 소비하는 질소 총량인 8500만t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질소 소비량의 상당 부분은 가축이 먹는 사료용 작물을 재배하는 데 쓰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는 우리가 지금처럼 계속 값싼 육식 생활을 한다면 유기농이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반대로 값싼 육식 생활을 포기한다면 유기농은 충분한 식량을 공급하는 농업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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