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극단을 넘는 과학의 상보성

등록 2000-10-25 00:00 수정 2020-05-02 04:21

강건일의 과학읽기

노벨상 수상자 닐스 보어는 1928년 빛이나 전자, 즉 양자와 관련된 개념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보성 원리’(complementarity principle)를 제시했다. 양자는 실험 방법에 따라 입자 또는 파동으로 측정된다. 그런데 입자는 일정한 공간에 잡아 둘 수 있는 국지성인 반면 커다란 공간으로 퍼져 나가는 장(場)인 파동은 비국지성이다. 입자와 파동은 분명 배타적이다. 하지만 논리적 모순이 없이 두 성질을 사용하여 양자의 실제를 좀더 완전히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어의 다른 예를 소개한다. 한 여인의 동생은 왕을 몰아낼 기도를 하던 중에 살해됐다. 그 여인은 왕과 사회에 대한 충성심을 가졌으므로 동생은 배척해야 할 반역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여인은 가정에 대한 의무가 있다. 때문에 동생의 시체를 묻고 그의 추억을 영예롭게 해야 한다. 이때 그 여인의 왕과 사회에 대한 의무와 가정에 대한 의무는 도덕적으로 배타적이다. 그러나 그 여인을 이해하기 위해 두 의무는 보완적이다.

과학은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구의 식량, 에너지, 보건문제를 해결해왔다. 이런 혜택과 반대로 과학의 발달에 따른 수명의 증가, 즉 인구증가는 위험이다. 또한 직접적인 과학의 탓은 아니라고 해도 과학은 영을 상실한 물질적 인간상, 환경문제 그리고 핵무기 개발의 문제를 초래했다고 비난받는다. 이들 위험을 인식한 어떤 사람은 “과학이 필요한가?”라고 의문을 품는다.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반(反)과학론자도 생겨났다.

이에 대해 노벨상 수상자 막스 페루츠는 과학을 상보성 원리로 이해해야 한다고 답을 제시했다. 혜택과 위험은 어쩔 수 없는 과학의 두 얼굴이다. 위험만을 인식하여 과학을 중단하거나 감소한다고 하자. 페루츠는 경제적 붕괴를 가져온 중국의 문화혁명을 상기시켰다. 또한 만일 그렇게 한다면 “새로이 나타나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존 지식을 지적으로 적용할 수 없고 심지어 문제가 무엇인지 조차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19세기 위대한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는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농부에 비해 중요성이 없는 것 같다”며 인간의 존재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화학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농약과 살충제야말로 그 많은 인구의 식량을 해결해왔다. 그런데 이들에게서 환경오염 위험이 발견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생명공학적 접근 또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과학의 상보성을 이해 못한 채 위험만을 전부인 양 말하는 극단적 환경론자, 농업의 유전공학 반대론자와 이들에 힘을 실어주는 언론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 같다. 노벨상 수상자 로얼드 호프만은 화학자에게 “교육과 민주주의에 대한 책임 외에 아무 선택권이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들에게 “과학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주고 어떤 권위자가 아닌 보통 국민이 무엇을 택하고 버릴지 결정하도록 하는 길밖에 없다는 말이다.

전 숙명여대교수·과학평론가 dir@kopsa.or.kr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