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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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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등록 2003-07-02 00:00 수정 2020-05-02 04:23

화가와 모델

이주헌 지음, 예담(02-704-3861) 펴냄, 1만8천원

차분하고 깊이 있는 글쓰기로 대중과 미술의 거리를 좁혀온 지은이는 25쌍의 화가와 모델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과 서양 인물화의 역사를 두루 보여준다. 서양 회화사에서 수많은 여자 모델이 남자 화가의 시선과 붓으로 그려졌다. 렘브란트의 진실한 반려자였던 헨드리케 스토펠스, 두명의 사생아를 둔 이혼녀로 손가락질을 받다 29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를 사랑했던 제임스 티솟의 그림 속에 영원히 남은 캐슬린 뉴턴…. 그녀들이 없었다면 화가의 그림도 없었을 예술적 동반자였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삶을 새롭게 만난다는 것은 분명 흥미롭다.

욕망하는 천자문

김근 지음, 삼인(02-322-1845) 펴냄, 2만5천원

중문학자인 지은이는 천자문 250개 문장에 담긴 권력과 욕망을 해부한다. 천자문이야말로 우리의 사유방식과 사회·문화, 행동·관습 밑에 깔린 무의식이라고 보고 푸코와 라깡의 정신분석학적 이론틀을 통해 비판적 분석을 시도한 것이다. ‘옥은 곤륜산에서 나온다’는 옥출곤강(玉出崑岡)은 훌륭한 인재는 좋은 가문에서 나온다는 뜻으로 가문과 학연, 지연에 얽매이는 무의식을 강화시켰고, ‘부인과 첩들이 길쌈을 한다’는 첩어적방(妾御績紡)은 길쌈 노동, 즉 단순노동에 여성을 묶어두며 남존여비의 사회를 당연하게 여기게 하는 도구였다는 것이다.

월경(越境)하는 지식의 모험자들

강봉균, 이진우 외 54명 지음, 한길사(031-955-2038) 펴냄, 3만5천원

경계를 넘어 끊임없이 새로운 경지를 향해 움직이는 76명의 학자와 예술가, 운동가들에 대해 56명의 국내 전문가들이 글을 썼다. 세계 지식의 첨단 흐름을 소개하는 고급스러운 저술들이다. 백남준이나 신디 셔먼, 이세이 미야케 등 조금 낯익은 이름도 있지만 대부분은 모험에 가까운 지적 궤적을 보여주는 낯선 이름들이다. 중국 젊은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철학자 리쩌후나 탈식민주의 소설가 응구기와 씨옹오, 물리학자에서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반다나 시바, 급진 페미니스트 주디스 버틀러나 안드레아 드워킨 등을 탄탄한 저술로 만나는 즐거운 경험이다.

도널드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아리엘 도르프만, 아르만 마텔라르 지음, 김성오 옮김, 새물결(02-3141-8697) 펴냄, 1만3천원

로 유명한 칠레의 소설가 도르프만과 사회학자 마텔라르는 어린이에게 꿈과 사랑을 심어준다는 디즈니 만화의 이면을 실랄하게 파헤친다. ‘도널드 덕’을 자세히 보면 고결한 (미국) 오리들과 추레한 (제3세계) 도둑들의 사회적 차이로 가득차 있으며, 이는 결국 열등한 원주민들에 대한 미국 제국주의 지배를 강화하는데 그 시대의 람보였다는 것이다. 지은이들은 이런 논리가 노동착취와 제3세계 하청의 왕국인 디즈니 내부에도 적용된다고 지적한다. 친미 쿠데타로 들어선 피노체트 독재정권은 이 책을 판금시켰다.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박상륭 지음, 문학동네(02-927-6790) 펴냄, 9800원

이후 신화와 종교에 뿌리를 두고 새로운 언어의 세계를 펼쳐온 소설가 박상륭씨의 세 번째 장편소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자 전면적 반박이다. 니체의 책에서처럼 차라투스트라가 산에서 내려와 늙은 기독교도 성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니체의 책에서 차라스투라에게 패했던 성자는 이 책에서는 조목조목 그의 생각을 펼쳐 반박한다. 인간의 정신적 진화에 대한 생각들을 종교적·철학적 사유와 낯선 어휘들로 표현하며 미궁을 헤메는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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