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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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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문학, 노벨문학상 한 번 받고 시들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서울국제도서전 등 책 축제와 독립서점 예산까지 삭감
‘번역·출간의 장’ 있어야 부커상도 노벨문학상도 있다
등록 2025-03-15 17:49 수정 2025-03-19 07:41
관람객으로 가득 찬 2024서울국제도서전 현장 모습.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관람객으로 가득 찬 2024서울국제도서전 현장 모습.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독자들 못지않게 환호한 분들이 있으니 바로 국외 번역자와 출판사들이다. 폴란드 출판사들은 앞다투어 “우리가 ‘채식주의자’ 폴란드어 초판을 발간했다!” “우리 출판사에서는 최신작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다 냈다!” 하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 체코어로 한강 작가의 대표작들을 대부분 번역한 내 친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발표 소식을 인용하며 “10월9일은 한글날이니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발표된) 10월10일을 ‘한강날’로 제정하자”는 포스팅을 올렸다.(개인적으로 한강날 제정 열혈 찬성한다.)

번역 출간은 중요하다. 한강 작가가 100명이라도 일단 번역을 해서 외국에서 출간돼야 부커상도 탈 수 있고 노벨문학상도 탈 수 있다.(물론 한강 작가는 단 한 분밖에 없다. 찬양하라 한강 작가.)

그렇다면 문학작품 번역 수출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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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전은 저작권 판매의 장

 

우선 원작의 저작권자 혹은 그 대리인이 국외 번역가, 출판사, 판권 전문가와 접촉하고 협상해서 계약을 맺는다. 계약은 보통 저작권자와 출판사 사이에 이루어진다. 계약서에는 출판사가 어떤 언어로 언제까지 번역해 어느 나라에서 출간하겠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된다. 그런 뒤에 출판사가 번역자와 계약하고, 번역자가 번역을 열심히 해서 출판사에 원고를 주고, 편집자와 번역자가 수정과 교정교열을 열심히 하면 책이 출판된다. 그러면 번역자가 번역료를 받고, 책이 팔리면 원작자와 원작 출판사와 원작자의 저작권 대리인과 국외 출판사와 국외 출판사의 저작권 대리인이 모두 인세와 배분금과 월급을 받아 행복하게 먹고산다. 원작이 국외에서 번역, 출간되는 것은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굉장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이다.

도서전이나 문학 축제는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장이면서 문학작품의 원작자와 원작 출판사와 저작권 중개 대리인이 번역자와 국외 출판사와 판권 거래 전문가들을 만나는 현장이기도 하다. ‘저주토끼’는 2018년 서울 와우북 축제에서 안톤 허 번역가를 만나 3년 뒤인 2021년에 영어로 번역돼 출간됐고, 2024년 국외에서 2만 권 이상 팔린 책으로 집계됐으며, 2025년 현재 세계 22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됐거나 번역 진행 중이다. 이 모든 사건이 와우북에서 번역가가 어떤 책을 집어들었기 때문에 일어났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지원 예산이 깎이기 전인 2023년까지는) 출판사들이 책을 판매하는 전시홀만큼이나 커다란 공간을 저작권 전문가들에게 개방했다. 저작권 전문가들, 즉 작가 에이전트나 출판사의 판권 담당자가 참가비를 10만원 정도 내고 참가 신청을 하면 출입증을 받아 도서전 기간 내내 저작권홀에서 자유롭게 저작권 협상을 하고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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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지원 예산이 삭감되면서 2024년 6월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은 기존 행사장의 3분의 1 크기 공간으로 쫓겨나야 했다. 저작권 거래 전문가들은 비좁아진 저작권홀에서 미리 정해진 횟수만큼만 협상 장소를 빌릴 수 있었다. 당연히 저작권홀 사용 민원이 늘어났다. 그러자 마지막날에는 저작권홀이 아예 닫혀버렸다.

이래서는 안 된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부터 국외에서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이제 노벨문학상 수상 국가가 되었으니 2025년 열릴 국제도서전과 문학 축제에는 더욱 많은 저작권 전문가가 찾아오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많이 찾아오도록 유혹해야 한다. ‘노벨상 특수’가 단발성 반짝특수로 끝나게 해서는 안 된다.

2023년 6월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만난 안톤 허(왼쪽) 번역가와 정보라 작가. ‘저주토끼’는 2018년 서울 와우북 축제에서 안톤 허 번역가를 만나 3년 뒤인 2021년에 영어로 번역 출간됐다. 이유진 기자

2023년 6월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만난 안톤 허(왼쪽) 번역가와 정보라 작가. ‘저주토끼’는 2018년 서울 와우북 축제에서 안톤 허 번역가를 만나 3년 뒤인 2021년에 영어로 번역 출간됐다. 이유진 기자


문학 작품 수출에도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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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와 한국 문화는 국외에서 꾸준히 관심을 받고 있다. 영어판 코리아헤럴드 2023년 1월 기사를 보면, 2021년 기준으로 전세계 42개국 1806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한국어를 선택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대학의 경우 미국 현대언어학회(Modern Languages Association) 통계를 보면, 2006년 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학교 수는 5665개였는데 2016년에 1만2066개로 10년 사이에 두 배 이상 늘었다. 영국의 경우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학은 2012년 50곳이었는데 2018년에 175곳으로 세 배 이상 늘어났다. 영국에는 2016년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국제부문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코리아헤럴드 기사는 2020년 아카데미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2019년 영화 ‘기생충’과 2021년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성공을 케이(K)-문화 열풍의 주역으로 언급했다. 그런데 사실 2002년 드라마 ‘대장금’은 중동 지역에서 무려 시청률 90%의 신화를 이룩하며 전세계적으로 한류 드라마 열풍을 일으켰다. 중동뿐만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에서도 한국 드라마는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 내가 2012년께 학술대회에서 만난 어느 고려인 교사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이웃이 딸을 낳았는데 드라마 ‘대장금’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딸 이름을 ‘장금이’라고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키르기스스탄에서는 ‘구준표와 결혼하는 법’이라는 코미디 영화가 영화제에서 인기를 얻었던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한국 드라마 ‘꽃보다 남자’(2009)에 빠져 구준표와 결혼하겠다며 한국행을 결심하자 주인공이 여자친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의 로맨틱 코미디다.

그러니까 드라마에서 시작된 한류는 이미 20년 이상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 뒤를 K팝이 이어받아 가수 싸이가 2012년 ‘강남스타일’ 열풍을 일으키고 비티에스(BTS)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대표적인 K팝 그룹이 됐다. 그런 뒤에 지금 K문학이 주목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문화 산업은 이렇게 여러 분야가 모르는 사이에 서로 손을 잡고 밀어주고 끌어주며 발전한다.

그리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어렸을 때 한국 드라마를 보고 청소년 시기에 K팝을 들으며 성장한 사람이 자기 나라말로 번역된 한국 문학을 읽고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에 관광하러 오거나 한국어를 배운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한국 드라마와 한국 노래를 어린 시절의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그냥 자기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중 몇 명은 한국학을 전공하고 한국에 유학을 오고 한국 문화상품을 번역해서 수출하거나 한국 문화나 경제를 연구하는 전문가가 된다. 좋아하기 때문에,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다.

2024년 6월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서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이 축사하는 동안 대한출판문화협회 임원진이 정부의 출판·독서 정책에 항의하는 어깨띠를 두르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양선아 한겨레 기자

2024년 6월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서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이 축사하는 동안 대한출판문화협회 임원진이 정부의 출판·독서 정책에 항의하는 어깨띠를 두르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양선아 한겨레 기자


K문학은 시들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여기에 문화의 힘이 있다. 문화를 통해 한국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나는 이런 번역자와 연구자들을 폴란드에서, 독일에서, 프랑스에서, 콜롬비아에서, 스페인에서, 미국에서, 여러 문학 행사에서 만났다. 한국인이 아닌데 한국과 한국 문화와 사랑에 빠진 다양한 사람들이 한국 문학을 번역하고 공부하며, 남미에서 혹은 유럽에서 혹은 미국에서 “요즘 한국 문학이 정말 인기가 좋다”고 나에게 한국어로 자랑스럽게 말한다. 이런 분들이 세계 곳곳에서 한국 문화 산업을 떠받치고 한국학 연구를 이끈다.

그렇기 때문에 지원이 필요하다. BTS의 무대가 공짜로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듯이 문학 작품 수출도 공짜로 이뤄지지 않는다. 출판사 판권 담당자가, 번역자가, 편집자가 한국에 와서 자유롭게 여러 작품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몰랐던 작품들을 발굴하는 기회를 계속해서 만들어야 한다. 여러 나라 문화 산업 종사자들이 쉽고 편하게 한국에 와서 원작 출판사와 원작 저작권 대리 중개인과 접촉하고 협상하고 또 새로운 작품들과 새로운 제안들을 한 아름 안고 돌아가게 해야 한다. 한국 도서전 참가, 문학축제 참가가 이들에게 보람 있고 즐거운 경험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계약된 작품의 번역자들이 번역지원금을 받고 한국 문학을 출판하는 소규모 출판사들이 출판지원금을 받아야 한다.

2024년에 이 모든 예산이 전부 줄어들거나 사라졌다. 국외 출판 지원, 서울국제도서전이나 서울와우북페스티벌 같은 국내 대표적인 책 축제 지원, 심지어 국내 독립서점의 행사 지원까지 전부 사라졌다. K문학은 노벨문학상만 한 번 받고 시들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문화 산업은 돈을 먹고 자란다. 문학은 무대공연이나 촬영이 필요한 다른 문화 분야에 비하면 투자 대비 성과가 아주 좋은, ‘싼’(?) 산업 분야다. 그리고 동시에 문학은 모든 이야기의 원천이고 언어와 서사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산업 전체의 기반이기도 하다.

 

문화 강국으로 갈 것인가 뒤처질 것인가

 

2024년 4월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에서 열린 엘에이(LA)도서전에 참가했을 때 그린룸, 즉 참가자 대기실에 놀란 적이 있다. 교수회관 1층 전체가 참가자 대기실이었고 상시 음료와 간식이 제공됐다. 공간이 넓고 앉을 자리도 많아서 ‘연사’ 혹은 ‘참가사’ 출입증이 있으면 자유롭게 드나들며 공짜로 제공하는 음식과 음료를 먹으며 LA도서전에 참여하는 모든 작가, 평론가, 번역가, 출판사 관계자 등등과 빈 테이블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아 한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라고 도서전을 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이 만나 일을 벌여야 문화산업이 발전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런 투자를 본받아야 한다. 노벨문학상이 끝이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 돈을 더 쏟아부어야 한다. 더욱 통 크게 지원하고 더욱 폭넓게 판을 벌여야 한다.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계엄, 내란, 여행 불안 국가, 후진국으로 뒤처질 것인가? 한강 작가 보유국, 노벨문학상 수상국, K팝과 K드라마와 K문화의 한류 강국으로 굳건히 나아갈 것인가?

책의 축제를 살려내라.

문화예술 예산을 살려내라.

정보라 작가. 사진 혜영

정보라 작가. 사진 혜영


정보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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