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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케이’ 드라마에는 케이가 없다

<오징어 게임> 등 전세계 인기 한국 드라마, ‘융합(짬뽕)’적 모습으로 ‘무국적’ 콘텐츠화
등록 2022-09-17 15:52 수정 2022-09-18 01:46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제공

“비영어 시리즈의 수상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길 희망합니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2022년 9월13일(한국시각) 에미상 감독상을 비영어 시리즈의 ‘첫 번째’로 수상하고 남긴 소감이다. 감독상을 비롯한 남우주연상(이정재), 여우게스트상(이유미) 등 에미상 6개 부문 수상은 <오징어 게임>이 2021년 9월17일 오티티(OTT·방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인터넷 플랫폼)를 통해 공개된 이후 남긴 무수한 기록들의 정점이었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나라 83개국 중 82개국에서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했다. 또한 가장 긴 기간 1위를 한 시리즈 드라마로 기록됐다.

한국 드라마 인기, 사건이 아닌 시대로

<오징어 게임>은 ‘마지막’이 아니라 물꼬였다. <오징어 게임> 시즌2뿐 아니라 또 다른 <오징어 게임>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오징어 게임> 이후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은 <오징어 게임>보다 더 빨리 넷플릭스 1위에 올랐다. 현재는 윤종빈 감독의 <수리남>이 넷플릭스 글로벌 3위에 올라 있다. ‘글로벌’해 보이는 시리즈뿐만이 아니다. “이런 걸 왜 보지?”(이진숙 프로듀서) 싶은 시리즈 드라마도 세계인이 지켜보고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신사와 아가씨> 같은 드라마가 그렇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2022년 8월 13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고, <신사와 아가씨>는 인도네시아·카타르 등에서 글로벌 1위까지 올랐다. <신사와 아가씨>는 기억이 상실된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KBS 주말드라마다.

한 번 휩쓸고 갈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건대 사건은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 콘텐츠의 선전은 시스템적이기 때문”(김봉석 영화평론가)이다. 한국 최초의 아카데미상 작품상 수상작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최초의 에미상 감독상 수상작 <오징어 게임>에는 다른 콘텐츠들과의 차이가 있다. 작가와 시스템이라는 차이다.

이 시스템의 특징은 ‘짬뽕’이라는 점이다. ‘콘텐츠’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배경도 출신도 다양하다. 황동혁 감독은 이전에 이지연 프로듀서와 영화를 만들었고(<남한산성>), 현재 한국 넷플릭스 1위를 하는 <작은 아씨들>의 정서경 작가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헤어질 결심> 등을 함께했다. <지옥>은 최규석의 네이버 만화가 원작이다.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함께 만들던 연상호 감독이 시리즈를 진행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2009년 네이버 웹툰이 원작이다.

배경만큼 콘텐츠 내용 역시 ‘짬뽕’으로 뒤섞인다. <오징어 게임>의 감독과 제작자는 <남한산성>이라는 아주 한국적인 영화도 함께 만들긴 했지만, <오징어 게임>에서는 <도박묵시록 카이지> <라이어 게임> <배틀로얄> 등 ‘일본적’인 서바이벌 구조를 가져왔다. 정서경 작가는 일본 작가 사카모토 유지의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마더>가 첫 드라마 대본이었다. <작은 아씨들>은 한국의 이른바 ‘막장드라마’를 비롯한 스릴러와 공포물·로맨스·소녀물·복수극 등 여러 장르의 극단적인 조합이다. <지옥>은 전형적인 만화적 상상력이 화면으로 옮겨졌으며,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무수한 좀비물 중 하나다.

<작은 아씨들>. tvN 제공

<작은 아씨들>. tvN 제공

융합적인 한국 콘텐츠에 더해진 ‘지적’ 양념

시스템의 인적자원은 1990년대 후반 시작된 한국 문화산업 부흥을 함께했던 세대다. “이전 세대는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고 작가주의를 보며 자랐다. 이전 세대가 이념과 계급을 중요하게 여기고, 도식화가 있다면 이 세대는 국적과 이념 등에서 자유롭다. 이전 세대는 서구에서 유행한 문화가 늦게 들어왔다면, 이들은 동시대적으로 감각하면서 자랐다.”(김봉석 영화평론가)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1971년생), 제작자 김지연, <작은 아씨들>의 정서경 작가(1975년생), <지옥>의 연상호 감독(1978년생), 최규석 만화가(1977년생) 모두 1970년대생이다.

이런 융합(짬뽕)적 특징은 케이팝에서도 보이던 특징이다. 케이팝은 장르가 아닌 ‘국적’이 이름에 들어간 ‘스타일’이다. 장르의 변종이 특징이다. 이디엠(EDM)으로 시작해 랩 구간이 있으며 클라이맥스에서는 발라드와 록풍의 고음이 가해지면서 단체 춤을 선보인다. 장르의 전환도 순간적이고 빠르다. 국적이 들어간 스타일이 ‘혼종’이라는 점이 아이러니다. “할리우드에서는 액션이면 액션, 코미디면 코미디, 로맨스면 로맨스인데 한국에서는 그것만으로는 안 되는 특징이 있다. 액션을 하더라도 사회비판을 하고, 로맨스 불륜을 넣어도 감정적으로 진실하게 묘사된다. 에로영화에도 좌절한 청년 세대의 고민이 녹아 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한국 콘텐츠의 특징이다.”(차우진 문화평론가) 여기에 더해 차 평론가가 말한 한국 콘텐츠의 특징은 ‘지적’인 양념이다. “댄스뮤직에도 앨범의 지향점과 가사의 상징을 넣는 게 한국이다.”

<뉴욕타임스>는 “<오징어 게임>은 한국의 뿌리 깊은 불평등과 기회의 상실에 대한 절망감을 활용해 전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은 최근 한국 문화의 수출품이다. 성공하기 힘들어졌다는 내용은 미국 등 다른 나라 국민에게도 친숙한 이야기”(2021년 10월6일치, ‘<오징어 게임>과 콘텐츠 혁명’)라고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 이진숙 프로듀서는 “할리우드의 주인공이 평범하다면 한국의 주인공은 가난하다. 양극화가 세계적인 화두가 되고, 자본주의가 영악해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돈을 벌어 일확천금을 얻고 싶은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이후로도 이어진 흐름을 설명한다.

<수리남>. 넷플릭스 제공

<수리남>. 넷플릭스 제공

무국적 세계로 진입한 ‘케이 드라마’

차우진 문화평론가는 ‘케이’(K)를 내세운 언론의 호들갑과 달리, 에미상 수상은 ‘무국적 세계’로의 진입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우리 것인데, 미국 드라마를 대상으로 하는 시상식에서 상을 받아버렸다.” 애플이 4천억원을 들여서 제작한 <파친코>는 “한국적인 스토리여서가 아니라 호소력 있는 이야기여서”이며, 에미상에서 한국 시리즈에 상을 준 것은 이제 ‘한국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글로벌로 편입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류 드라마’ ‘케이팝’ ‘케이컬처’ 등 이전에 없었기에 ‘케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장르’는 에미상이라는 극적 계기로 ‘케이’를 떼고 ‘글로벌’로 융합해 들어간다. 바로 오티티 등의 인터넷이라는 한없이 평등해 보이는 세계로, 대자본이 형성한 흐름 속에서.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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