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으로 회의하던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장관이 화면이 켜진 걸 모르고 음란행위를 한다. 이로 인해 공석이 된 장관 자리에 누가 오는 게 좋을까? 수많은 후보 중 청와대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손병호 게임’(다섯 손가락을 펴고 자신이 해당하는 경우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 게임). 일단 남자는 다 접는다. ‘아들 군면제’도 접는다. 다주택, 위장전입, 탈세, 논문 표절도 접는다. 거리두기 2.5단계에 회식 사진 올린 사람도 접는다. 장관 명함 파주면 다음해 대선판에 기웃댈 사람도 접는다. 맙소사! 살아남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당신이 대통령이라면 누구를 문체부 장관으로 임명할까? 청와대의 카드는 사격 금메달리스트이자 야당 국회의원 출신 이정은(김성령 분)이었다. 군 복무 경험도 있는데다 남편인 김성남(백현진 분)은 진보 논객. 이 정도면 여야를 막론하고 무난한 인물 아닌가.
장관이 된 이정은은 체육계 폭력과 비리를 수사하기 위한 ‘체수처’ 설립을 위해 노력하는데, 그 와중에 ‘리스크’가 생긴다. 역시나 배우자 문제다. 어디서 많이 본 상황 같다. 누군가가 떠오르기도 하고. 하지만 이건 실제 이야기가 아니다.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이하 <이상청>)의 내용으로 2021년 11월 총 12부작(1회당 30분 분량)으로 웨이브에 공개됐다. 12월5일 <이상청> 연출을 맡은 윤성호 감독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2007년 윤성호 감독은 독립영화 <은하해방전선>으로 각종 영화제의 상을 휩쓸었다. 이후 일반의 예상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웹드라마’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2010년 그는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라는 짧은 분량의 드라마를 유튜브에 공개했다. 이 드라마는 웹드라마의 시초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출출한 여자> <출중한 여자> 같은 웹드라마도 제작했다.
그간의 작업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전성시대를 미리 준비한 걸까. “몇 년씩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 제작을 하는 건 나와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60분짜리 16부작인 드라마를 할 자신도 없었다.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고 빨리 결과물이 나오는 걸 원했다. 그렇게 웹드라마를 만들던 와중에 OTT의 시대가 왔고 웨이브에서 제안이 왔다.”
웨이브에선 윤 감독에게 ‘정치’ ‘블랙코미디’라는 두 가지 키워드만 제시했다. 윤 감독은 정치인을 주로 그리는 방식인 범죄자 혹은 혜성처럼 등장한 영웅, 둘 다 경계했다. 실제로 <이상청>은 정치인에게만 집중하지 않는다. 여느 영화나 드라마에서 잘 다루지 않던 공무원의 전문성이 잘 드러나 있다. “공무원은 그 어떤 콘텐츠에서도 다뤄진 적이 없다. 대한민국 정치는 오직 선출직만 하는 것인가 싶어 무력감을 느꼈다. 사실 공무원이 하는 일도 정치 행위다. 이분들을 투명인간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기, 그것이 목표였다. 전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는 20대 남성, 종교행사를 빙자한 정치집회를 벌이는 현직 목사, 취재윤리를 지키지 않는 기자, 필요에 따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정치인 등 어딘가에서 본 것만 같다. 그러나 대부분 상상으로 만들어낸 인물이다. “‘아이러니’에 중점을 두고 인물들을 그렸다. 벼르고 벼른 인사청문회는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의원들이 발견되는 바람에 최단시간에 종료되고, 북한 고위 관료가 주식에 몰두하며, 진보 논객을 자처하는 한국 남성 김성남이 아내인 장관에게 ‘한남’이라고 욕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모두 상상으로 쓴 것이지만, 실제 드라마가 공개되고 나니 현실과 비슷하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어느 시청자가 ‘현실 한국은 <이상청>을 위한 거대한 메타버스’라는 평을 남겼는데 공감됐다.”
<출출한 여자> <출중한 여자> <대세는 백합> 같은 전 작품에서 그러했듯 이번에도 여성 서사에 집중했다. 이정은을 정치에 입문시킨 야당 여성 중진의원인 차정원(배해선 분)도 매력적인 캐릭터다. 차정원은 능숙한 정치 수완을 바탕으로 때론 이정은을 압박하면서 적이 되다가도 필요에 따라 동지가 돼주기도 한다. “여자들끼리 돕고 살아야죠”라며. “‘페미 코인’ 탑승하고 싶었냐는 질문도 들었다. 2030 여성에게 사랑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무엇보다도 여성 정치인이라서 겪을 수 있는 일을 그리고 싶었다. 만약 남성 정치인의 아내가 납치됐다면 이 사실을 공개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리스크가 된다. 남편이 바람났네, 사고를 쳤네 그런 생각부터 들지 않나. 그동안 여성 서사에 집중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같은 이야기라도 여성이 주인공이 되면 긴장감과 집중도가 달라진다.”
“정치란, 몫을 나눌 권리를 획득하고 유지하고 행사해서 상호 간의 이익을 조정하는 것. 나는 오늘 정치를 했어.” <이상청>에 나오는 대사다. 이 한마디가 윤성호 감독이 사회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였다.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구성원에게 배분할 것인가,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정치이고, 그 결정을 할 사람을 국민이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선출하고 실행하는 것. 이 모두가 다 정치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윤 감독은 <이상청> 시즌2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시즌2로 가야 한다. <이상청>에는 김성남이 시사주간지에 자신의 글을 연재하는 내용이 나온다. “잡지 소품은 미술팀에서 준비했다. 잡지로 개똥을 닦는데, 김성남이 쓴 글의 페이지는 실제 <씨네21>에 내가 연재한 글로 했다. 내 글로 개똥 닦은 거니까 괜찮겠지 하고.(웃음)” 시즌2가 나온다면 감독 인터뷰 기사가 나온 <한겨레21>을 써주세요.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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